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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41)

카지모도 2024. 10. 2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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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하나 헝 것만도 사지 멀쩡헤기는 힘든 일인다. 믿을 자리라 내가 참 죽을

작정허고 헌 말이요. 그런디 그보담 더 헌 소리를 시방 내가 해야는디, 이 말은

나 하나만 죽고 사는 거이 아니라 여러 사람 생목심 달린 거이요. 그렁게 내가

보장을 받어야 말을 허제."

"보쟁이라니?"

"혼자만 일고 있겄다고 맹세를 해야지."

"허께 해 바."

"말이 쉽소."

"그러먼 어디다 달어매 꼬아주까? 에럽게?"

"나도 암만 상년이지만 살고 잪지 죽고 잪든 안헝게 그러제."

"그보담 더헌 소리란 거이 머이야, 그렁게."

"내 이얘기 좀 들어 보시오. 내가 조상을 잘못 타고나서 천하 상것으로 났소. 허

나, 상것이라고 넘 사는 세상을 못 살 거이요? 나도 이팔 청춘 이쁜 나이 되야

서, 옹구 아배 만나 귀영머리 마주 풀고 작수 성례 초리청에 찬 물 한 그륵 떠

논 부부를 지어, 우리 옹구도 낳고, 넘들이사 어뜨케 살든지 두 내우간 오손도손

애기 데고 의좋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생과부 신세가 되야 부렀는디. 아이고 내 팔짜야. 이노무 인생, 귀헌

것도 없고 놓은 것도 없습니다. 그저 기리운 것배끼.

"먼 이얘기를 허고 있는 거이여, 시방? 그 신세는 내가 다아는 신셍게 그만 말허

고, 아까 그 경천동지 깜짝 놀랜다는 그 이얘기를 해 바. 무단히 돌려 빼지 말고."

안서방네가 옹구네 타령조를 듣다가 중간에 쐐기를 박는다. 순간 옹구네는, 춘복

이와 자신의 애야기부터 시작하여 춘복이와 강실이의 이야기로 이어 하려던 마

음을 바꾸어 먹는다. 그것은 자신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지만 상대방한테는 사족

이기 때문이었다.

"애기가 머 어쩐다고?"

안서방네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그치듯 묻는다. 하도 황당한 말이라 이쪽

에서 조목을 대어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탓에, 그네는 옹구네가 들려 주

는 이애기를 들을 수밖에는 없었다.

"춘복이 애기를 뱄능가도 몰라서 허는 소리요."

단도직입, 거두절미로 토막을 내서 던지는 옹구네 말에 안서방네는 말 그대로

악, 소리가 나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춘복이?"

라고 되물을 수조차 없었다. 옹구네는 그런 안서방네한테 한 마디씩 땀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그날 애기씨가 왜 그랬등가 사립문 문간에 나와 섰드라요. 대보름 달 뜬 밤에

춘복이가 마침 일이 있어서 매안으로 올라가다가, 참. 애기씨가 살라고 그랬겄지

맹, 안 그랬으먼 그날 무신 일을 당해도 당했을 거이라요, 삽작문 저테 섰든 애

기씨가 그만 시르르르 맥을 놓드니 그렇게 기운 없이 혼절을 허시드라고 안허

요? 멋 헐라고 혼자 나와 그러고 지셋능가. 주위는 적막, 아무도 없었등게비데.

모다 달놀이야, 불놀이야. 풍물이야, 다리 밟으러들 나가고 빈 집에 혼자 지시다

가 그 추운디 얼매나 오래 떨고 섰었등가, 그렇게 헛것맹이로 씨러지시드랑만.

춘복이가 너무나 놀래서 상하 신분이고 반상 신분이고 생각헐 계를이 없이 달라

들어, 그 차디차게 식어 부린 몸을 빠진 디 없이 다 비비고, 불고, 주물르고, 해

서는...... 얼매나 그랬다디야..... 하이간에 교옹장히 오랫동안 보듬고 앉어서 그랬

능갑습디다. 그래도 한 번 넋을 놔 부린 애기씨는 정신이 안 돌아오고, 오

류골 양반내외 어른들도 안 돌아오시고. 누구 지내가는 사람도 없었등게비데요.

속으로 얼매나 무섭고 놀래고 당황을 했든지, 누구라도 하나 지내가먼 사정을

말허고 매끼고 가겄드래요. 그런디 참 일이 그렇게 될라고 그랫등가, 그렇게 얼

매나아 되드락 암도 안 지내강게로오, 어쩌, 벨 수 없제잉, 애기씨 보듬고 앉었

다가 그대로 기양 가먼, 은공은 그만두고 외나 사람 쥑인다 소리 들을지도 모를

일 아니요오. 번언히 얼음밭에 혼절허싱 걸 봄서나도 기양 길가테 내불고 갔다

고 말이여. 죽을 지 암서도 내불고 갔다고. 아니 꼭 누가 그런 말 않는다 허드라

도 사람의 심정 가진 사램이먼 어찌 기양 그대로 갈 수 있겄능가. 개새끼라도

기양 두고 못 갈 거인다. 잉? 그래서 다시 애기씨 온몸을 머리끝으로부텀 발톱

끄트리끄장 어디랄 것도 없이 비비고, 주물르고..... 정신이 돌아오드락 보듬고는,

애기씨를 애타게 불름서 신체(시체)가 다 되야 부린 식은 몸을, 지 몸뎅이로 문

질러 뎁혀 디렛드라요."

안서방네는 숨도 쉬지 않고, 침도 삼키지 않았다. 다만 그 승냥이 같은 춘복이가

푸른 달빛 교교한 아래 배꽃 같은 강실이를 어루고 다루는, 누구 지켜보는 이

하나도 없었다는 정경을 상상하여 떠올리며 억색이 되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만일에 옹구네 말이 근거가 있고 거기까지가 사실이라면 그 다음 일은 묻지 않

아도 정해진 것이요, 그 정경을 떠올리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춘복이가 사람은 천해도 성정은 또 갠찮은 디가 안 있소, 왜? 어쩌든지 애기씨

살리는 거이 급해서 앞 뒤 볼거 없이 지양 지몸으로 이불을 덮어서 따숩게, 돌

아오게 헐라고 얼매나 얼매나아 보듬고 있응게로, 얼음뎅이 같은 애기씨가 살어

돌아오드라요. 숨도 쉬고. 어드케나 그 기척이 반가운지 이양 왈칵 끌어안고 그

큰 몸뎅이를 꾸부린 채 뚝 뚝, 눈물을 떨굼서 울었다고 헙디다. 뜨거운 눈물에

놀랫등가, 아니먼 정신이 돌아와서 그랬등가, 안 그러먼 암만 혼절을 했었다고

허드래도, 암만 시집도 안 간 규중 애기씨라도 젊은 몸이라 그랬등가, 아 긍게,

믿을 말이요? 애기씨가 춘복이 목을 댕겨서 보듬음서 같이 우시드라요. 그러고

는 외나 뒤로 물러앉을라는 춘복이를, 인자 정신 들오곘잉게 춘복이 지 헐 일은

다 헝거 아니요잉, 그렁게 인자 일어날라고 그러는디, 외나 그런 춘복이를 애기

씨가 파고들어 붙들음서 그렇게에 서럽게 서럽게 우시드라요. 왜 그랬능가는 모

리겄지마는. 그렁게 춘복이 맘이 어쩌겄소. 춘복이 머라고 못헐 거이요. 상놈이

라 신분이 낮아서 그렇제 그것도 사램이고 한창 때 젊은 거인다, 넘 가진 감정

이 없겄서잉. 음양이 다 있는 거인다. 저도 모리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애기씨

옷고름을 풀어도 가만 있고, 그보담 더해도 가만 있으먼, 내가 춘복이라도 그 담

에는 어쩌겄소? 아 그러고 막말로 살려 놨는디 임자가 누구여? 나는 말은 바로

허네. 거기다가 겁탈을 헌 것도 아니고, 애기씨 전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새 몸

이라먼 또 몰라. 그렇다먼야 암만 앞뒤가 머 어쩌고 저쩌고 해도 베락을 맞어

사지가 찢어질 일이겄지요. 그런디 이건 또 경우가 안 달릉가아? 하이간에 춘복

이 못 만났으먼 그날 그 밤에 벌세 애기씨는 이승 사람 이니였잉게. 어쩌야여,

이 일을."

안서방네는 턱이 떨려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나 아까 애기씨 혼절했다는 말을 들응게, 그렇게 약헌 몸에, 엎친 데 덮

친 일을 말도 못허고 속을 졸이고 졸이는디다, 애기가 서서 그렁가 싶드라고요."

옹구네는 으레 그렇지 않겠느냐는 투로 말을 던지며, 덧붙인다.

"의원 불렀으먼 진맥허겄지맹,

이미 깜깜 해진 방안을 먹장으로 밀고 들어오는 어둠의 기세에 가슴이 짓눌린

안서방네는 저도 모르게 그 어둠을 밀어내려는 듯, 휘유우우. 깊은 한숨을 토한

다. 그 동안 옹구네는 밑빠진 제 가슴속 체구멍들을 한 칸 한 칸 막는 일로 애

오라지 강실이 생각에 골몰하였다. 강실이 모습을 떠올리고, 춘복이가 강실이와

뒤엉키며 어우러지는 상상을 하고, 그것들을 이빨 갈아 증오하며 진흙을 짓이기

듯이 뭉게어 가슴 밑찬에다 쟁이곤 하였다.

"우례, 멋 헝가이?"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아까 참에, 행랑채 우례한테 기웃 고개를 들이

민 옹구네는

"들오시오."

소리 들을 것도 없이 벌서 툇마루로 올라서고 있었다. 어미 곁에서 색색깔 헝겊

쪼가리를 늘어 놓고는 엉금엉금 서툰 바느질로 그것들을 이어 붙이던 꽃니가,

옹구네 들어오는 것을 말꼼히 바라 보았다.

"하앗다아, 곷니 바누질 허냐? 솜씨 좋네에, 시집가도 스겄다."

"아이, 야 야. 저리 치워라이? 수선시럽다. 저만치 한쪽으로 갖꼬 가서 허든지.

이리 앉으겨."

우례는 손에 든 바느질감을 반짇고리에 담아 넣고 한쪽으로 밀면서 주섬주섬,

대강 방바닥을 치웠다.

"봉출이는 어디 가고?"

"가가 시방 방에가 있을 때간디요?"

"헤기는. 종의 자식이 해 넘어가도 안했는디 방안 차지 못허제. 가도 엇어서 지

자리 찾어야 우례 속 맥힌 거. 걸린 고 맺힌 고 다 풀 거인디. 어엿헌 양반의

씨, 이씨 문중에 어뜬 자손이라고 구정물에다 땡감 맹이로 처박어 깢꼬."

"누가 듣겄소."

"들은 그 사람도 아니라고는 못헐 거이고."

"아이가, 그만 허랑게요. 꽃니 저거이 먼 ㅅ이 있다요? 나발나발 무신 소리 허고

댕기먼 어쩔라고."

"애들 속이 더 노랑쥐여. 안 그러냐, 꽃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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