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너, 그 치맛자락 좀 들어올려 봐라."
기겁을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 발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라자, 새각시는
아무 생각 없이 두 손으로 다홍치마 양자락을 잡고 버선발이 드러나게 들어올렸다.
"너 그게 버선이냐 쌀자루냐."
외씨같이 좁고 곱게, 흰 이처럼 드러나야 할 새각시 수줍은 버선발은 아닌게
아니라 펑퍼짐하고 야문 데 없이 헤벌어져 있었다. 그나마 수눅을 서로 왼쪽 오
른쪽 뒤바꾸어 신고 있었으니.
"아이고, 나, 이런 일이 어떻게 있다냐. 너 그러고 어디 가서, 이 집 며느리요오,
입도 뻥끗 하지 마라. 대관절 너 어느 것 어느 댁에서 살다가 시집온 애기씨
냐아. 응? 내가 아무래도 큰 실수 했는가 보다. 성씨 보고, 가문 보고, 집안간에
오가는 말 나무랄 데가 없어서 흔연 성례했더니만, 네가 분명 동촌서 온 아무개
가 맞어어? 맞는 게여? 너 도대체 이 나이 먹도록 네 안부모한테 무얼 배우고
무얼 익히다가 덜썩허니 키만 커 가지고 시집이라고 온 거냐, 지금. 그 버선이
시방 새각시 버선이냐 마당쇠 버선이냐, 응? 그게 네 솜씨야아, 네 어머니 솜씨
야? 누가 그렇게 퍼진 발로 수눅이랑 짝짝이 떠억 바꿔 신고, 내 발 여기 있소
오, 보란 듯이 펄렁거리고 앞뒷마당을 돌아댕기랬어, 댕기기를. 이런 숭이 있는
가 그래. 너 그 버선 내력 좀 상세히 일러 봐라. 내 좀 알어야 겄다. 꼭. 이만한
것도 모르는 댁일 리가 천만 없을 터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내 알어야겄다고오.
네가 정녕 그 댁에 서녀가 아니면 어디서 줏어 온 딸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
을꼬. 남이 알까 망신스러워 큰소리도 못 낼 것이니 얼른 말해라. 길게 끌어 애
통 터치지 말고."
시어머니는 어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 버선 바느질은 누가 했느냐?"
"침모가 했습니다."
"침모? 너희 집 침모는 바느질을 송곳으로 뚫어 허며, 네 발의 버선본 하나 없
어서 마당의 멍석을 끌어다가 버선본을 삼었다더냐?"
"아니요."
"아니요?"
"제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발 조이는 걸 어려서부터 못 참어 항상 제 버선은
넉넉하게 지었는데, 시집가는 버선이라고 어떻게나 꼭 끼여서 신으면 그냥 칼날
을 밟는 것같이 아프게. 발바닥이 또르를 오므라지게, 조그막한 애기 버선 모양
으로만 짓길래요. 사정 사정을 해서 억지로 몇 켤레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달래
숨겨 가지고 왔어요."
"허, 허이구우. 참, 한량으로 날 것을 여자로 잘못 났구나. 여자라면 의당 조이
는 버선 신고 발걸음도 사뿐사뿐. 소리 날까 겁내고 걷는 것이 몸에 배고, 발가
락 사이가 써렛발같이 벌어질까 애기 때부터 조여신고 크는 것이 당연헌데, 시
집을 오도록 자루를 신고 댕기셨구만잉? 그리고, 버선 수눅은 또 그게 뭐냐?"
숟가락으로는 밥 먹고 국 떠먹고, 젓가락으로는 반찬 먹는다는 말이나 마찬가
지로, 애초 설명조차 필요없는 일을 거꾸로 하고 앉은 새며느리 꼬락서니 기가
막힌 시어머니는, 묻기는 묻는 시늉이되 아예 대답 같은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들으나 마나 이미 대답이 될 만한 성질의 말일 수가 없는
탓이었다.
"몰라서."
"들어도 자꾸만 잊어 버려서."
"그냥 신다 보면."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어서."
같은 것 중에 무슨 말이 그 입에서 나오든지,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다시
친정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배워 오라고 쫓아내지 않을 바에야, 여기서 시어머
니가 가르치는 수밖에, 다른 도리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때 시어머니가 기가 막힌 것은 단순히 버선짝이 쌀자루만 하다든가, 신행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새각시가 벌써부터 정신머리가 그렇게 없어 칠칠치 못
하게 수눅을 바꿔 신었다든가 하는 것보다, 이로 미루어 다른 성질과 품행을 짐
작할 수 있는 점이었다.
"이 사소한 일에 네가 이럴진대 다른 것은 오죽하랴."
안 보아도 눈에 선하지 않은가.
한 집안의 가장이 의젓하지 못하면 딸린 식구들이 초라하고 궁핍한 생활을 면
치 못하는 법이요, 한 집안의 가모인 주부가 야물고 깔끔하지 못하면 가솔들 꼬
라지 꾀죄죄하기 동네 걸인 진배없고, 그 손에 얻어입은 의관으로는 드모지 남
편의 위용이 안팎에 서지 않으니, 남에게 존경받게 하기는커녕 멸시만 한 바가
지 가득이 아니랴.
억장이 무너졌지만 시어머니는 아들을 생각하여, 그날로 버선 신는법부터 시
범을 보이며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니. 몸소 그 앞에서 버선을 신어 보이고 벗어
보이고, 이렇게 신으라 신기어 주기도 하였으나, 들을 때뿐이고 돌아서면 다시금
천연스럽게 며느리는 수눅을 바꿔 신는 것이었다.
"온달장군은 바보라도 평강공주를 만나서 천하에 으뜸가는 장군이 되었다는데,
너 같은 마누라를 만나고서야 기생 오래비라도 멧방석을 입고 앉었지 않겄느냐.
너를 정말로 어쩔끄나. 내, 너 같은 며느리, 이씨 문중에 또 하나 더 있단 말 아
직까지 못 들어 봤다. 너 꼭 그렇게 내말 명념 안허고 너 허고 자운 대로만 헐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였지만, 별무효과였다. 그
것은 무어 며느리가 시어머니 의사를 거역하겠다거나 딱이 무슨 구집이 있어서
도 아니고, 그저 그네의 성품이 본시 그러하여, 마음은 착한 데 맺힌 것 없고,
조이는 것 싫어하며 게으른 때문이엇다. 거기다가 간추리고 챙기는 것 또한 남
의 일이었다.
"너 아무래도 안되겄다. "
드디어 어느 하루 시어머니는, 여전히, 그 다시는 신지 말라던 자루 버선을 헐
렁하게 그나마도 수눅을 뒤바꾸어 신고 앉은 며느리를 더 못 참고
"그것 당장 벗어라."
고 호령하였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제 버선을 뽑아 벗어 양손에 받쳐든 며느리
한테
"머리에다 뒤집어쓰라."
고 한 마디로 잘라서 명령을 했던 것이다.
아무러면 정말로 그러라 하시는 일인가, 그럴 수가 없어서 의아한 눈으로 시
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이대로 너를 두었다가는, 너는 필시 온 동네 문중의 웃음거리가 되고, 네 남
편 역시 의젓잖은 매무새로 한평생 남의 놀림 받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비
록 우리 집이 가난은 하다마는 행색은 빠지지 않아, 풀 먹인 미영옷이 비단보다
서걱서걱 날선 소리 났었는데, 네가 무슨 감추어 둔 복이 따로 없고서야 네 손
끝에서 그 풀 다 빠져 버려 후줄후줄, 어디 그나마 명색 버틸 재간이 있겄느냐.
안되겄다."
하고 준엄하게 나무랐다. 그러면서 어서 지금 당장 그 버선 벗은 것을 머리에
쓰라고 호통하였다.
"네가 시어머니 말보다 네 발 편헌 것을 더 따르니, 네 발이 시에미보다도 귀
허고 높은 것 아니냐. 그러니 발을 머리에 이고 앉을 수는 없을 것이고, 발에 신
은 버선을 발 대신 모셔서 머리에 이고 있으란 말이다. "
그러나 며느리는 차마 그리하지 못하고 버선 받쳐든 손을 오그린 채 고개만
깊이 떨구고 있었다.
"수눅 왼쪽 오른쪽도 분별 못허는 그 머리, 그 머리 속이 하도 장해서 정자관
을 씌워 줄라고 그러는데 무얼 망설여? 어서 못 쓰겄냐?"
시어머니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내 기어이 이노무 버르쟁이를 고쳐 놓아야지.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까지 들이밀며 버선을 머리에 쓰라고 바싹 다그치는 바
람에, 며느리는 큼지막한 무명 버선을 거꾸로 뒤집어 머리 위에 쓰고는 하염없
이 울었다. 이 일만큼은 중정 없는 무골의 이 며느리한테도 견디기 어려운 수모
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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