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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3)

카지모도 2024. 11. 1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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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다시는 똑같은 일로 두 번 말을 안 들을 자신이 있을 때까지 남이 알까

두려우니, 이 골방에서, 문도 열지 말고 옴짝도 말고 틀어앉어 곰곰 생각에 생각

을 거듭해 봐라. 과연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를. 사람이 사소한 일을 우습게 알면

결국 큰일을 그르치게 되는 법이다. 네가 이 버릇 하나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식

을 낳아 기른다면 영웅 호걸 효자 열녀는 그만두고 삼동네 천덕꾸러기 만들기

딱 알맞지. 또 네 손에 밥 얻어먹고 옷 얻어입는 네 남편은 무엇이 되리요."

며느리는 선비가 머리에 정자관을 높이 세워 받쳐 쓰듯이, 뚝뚝 눈물을 떨어

뜨리며 버선 두 짝을 겹쳐 꿰어 거꾸로 쓰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 버릇만은 고쳐졌다.

그러나 타고난 성품의 우직하고 민첩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 그 뒤로도 시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까지 속을 여러모로 많이 상하게 하고는, 청암부인으로부

터도 꾸중을 빈번히 듣곤 하였으니.

그네가 바로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로고. 저 저고리 동정 좀 보소. 사람이 신 언 서 판이라

고, 우선 의관을 단정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거늘, 제 서방 옷을 저 지

경으로 만들어 놓고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고, 나요, 허는고?"

하는 호된 꾸중을 청암부인에게 들은 일 있는 동촌댁이었다. 그때 그네는 남

편의 저고리 동정을 오래되도록 갈아 달지 않아, 가무름하게 때가 오른 것을 천

연스럽게 횃대에 걸어 놓았다가, 무슨 일로 부인의 질항되는 이 집에 들른 청암

부인의 눈에 그만 띄었던 것이다.

당황한 동촌댁이 자라 모가지 기어들어간 채로 황급히 그 저고리를 끌어내려

우물쭈물 거둠거려 구석지에 치웠다가 내쳐 또 꾸중을 들었다.

"옷이란 그 사람의 몸이나 한가지인데, 남편 옷을 그렇게 아무런 정성도 없이

함부로 구겨서 박아 넣으면, 그게 네 남편을 구겨 네 남편을 구겨 박는 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는 공것이 없느니. 내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만큼 내 앞으

로 쌓이는 법인데, 정성 한 톨 쌓지 않고 무슨 염치로 해뜰 날을 바라는고."

그때 부인은 진심으로 혀를 찼었다. 그리고

"제 대접은 제가 받는다."

는 말을 남겼다.

바로 그러한 날이 두렵고 염려스러워서 시어머니는 며느리 새각시한테 그토록

이르고 또 이른 말들이었건만, 버선을 거꾸로 쓰고 앉아 울던 것도 별 소용없이

천성을 크게 어쩌지 못한 그네는 이제 희끗희끗 흰머리 돋아나는 동촌댁이 된

것이다.

동촌댁은 이런 날 이런 자리에는 어우러져 함께 끼지 못하지만, 자루버선 고

깔같이 뒤집어쓰고 눈물 떨구던 새각시 동촌댁의 이야기는, 해마다 꼭 빠지지

않고 웃음엣소리로 터져 나오곤 하였다.

"퇴계선생 부인께서도 성품이 무심하고 바느질 솜씨는 없으셨던가, 언제나 선

생님 신고 계시던 버선은 커다란 쌀자루만 하셨더라는데. 그래도 항상 선생님은

아무 불만 내색 않고, 그 헐렁한 버선을 정성ㄷ이 챙겨 신으시고는 흔연히 제자

들을 대하셨다 하던데요? 그 버선이, 훌륭하신 선생님 모습을 조금도 손상시키

지 않았더라고."

말하는 부인도 있었다.

"내가 안 보았으니 그에 무슨 말을 할 수는 없고, 또 우리가 퇴계선생 부인도

아니니. 남자의 옷이, 빨았는데도 때가 남아 있고, 꿰맨 것이 성기고 터진 데가,

구겨지고 얼룩지고, 넓고 좁음이 대중이 없는 것들은 다 부인의 책임이야, 그것

을 드러내 말하는 것은 사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녀로 하여금 공을 들이게 하

고자 함이지. 산다는 건 곧 공들인다는 것이다."

청암부인은 말했었다.

"할머님, 그거 배워만 갖꼬는 안되는 일인가 싶으대요."

붙임성 있는 사리반댁이 박속같이 옷으며 청암부인 쪽으로 낯을 돌렸다.

"왜?"

"아, 저, 동촌 아짐 보며는 문견이 없다고는 못헐 것인데, 꼭 고쟁이 빨어서 마

당 가운데 널어 놓고요잉."

"어 거 망헐 것이 똑 그렇지."

청암부인이 말 막듯이 대꾸한다.

민망한 탓이다.

쿡, 쿡, 웃음이 터진다. 부인들은 동촌댁 고쟁이 빨래만 본 것이 아니었다. 서

로 그것을 짐작하고 눈짓을 던졌다.

"참말로 누가 볼까 겁난다. 예기에도 이르기를, 속옷과 이불은 남에게 그 속을

보이지 말라고 했건만. 그걸 누가 시켜서 아는 것인가. 수치스러운 줄 모르고. 쯧,

쯧."

속옷을 빨아서는 조용한 곳에 널어서 말려야 하매. 간짓데 치켜올려 깃발처럼

펄럭이게 하면, 가랑이를 공종에 걸어 내보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천하 몹쓸 짓이지."

동촌댁에 화제가 이르면 끝이 없었다.

옷고름이고 치마끈이고 야물게 매지 못하는 사람이 동촌댁이었다. 맵시는 그

만두고, 금방 풀어질 것만 같은 옷고름이며 느슨한 치마끈은 한심하기까지 하였

다.

"그런 걸 두고 창피하다 하는 게야. 남의 흉들 보지 말고, 거울 삼어서 나를

돌아봐. 타산지석으로, 다른 산의 돌아라도 내 옥을 가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

러고 보면 세상에는 못쓸 것이 없어."

비단을 다듬기를 달걀과 같이 반들반들하게 하고, 베를 다릴 때 매미 날개와

같이 아늘아늘하게 하는 것은 사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것이 부녀

자의 정성이니. 정성이 없고서야 어찌 능히 인생을 이루리.

공들일 줄 모르는 아낙은 부덕한 족속이다.

"실을 잣고, 솜을 타며, 옷을 다리고 모시를 다듬질하는 일은, 비록 부리는 종

이 많고, 자기를 모시는 사람이 있더라도 손수 익혀야 할 것이다. "

그것이 부녀자의 할 일이라고, 예절 수신서에는 씌어 있다.

"아이고, 나는 열불이 나서 한겨울에도 치마말기를 꽁꽁 동이고는 못살겄데.

옷고름도 그래. 당최 짬매고 묶고 허는 건 못 전디겄드구만, 어찌 그리들 잘 참

고, 때깔들 잘 내이?"

이제는 그네도 시어머니가 된 동촌댁이 무어 누가 흉을 보든지 말든지 무람없

이, 생긴 대로 앉아서 한 소리 했다.

"나 죽으면 수의도 헐 것 없다. 그저 홑이불 둘둘 감어서 파묻어 주어. 까깝헝

게. 아 오직이 좋냐. 걸린 데 없고 매인 데 없고, 쾌활허지. 죽어서까지 그놈의

치마 저고리, 끈으로 묶고 고름 매는 거 나는 싫다. "

동촌댁은 며느리한테 보리방아를 찧으며 말했다.

"벗고 가면 더 좋고."

그렇게 후렴을 붙었다고도 한다.

"허어이, 웬수."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탁, 탁, 옷에 묻은 검불을 털어내던 동촌댁은 어디에랄

것 없이, 두 팔을 훨훨 내저으며 무언가 쫓아내는 시늉을 했다고도 하고, 타앙,

발까지 굴러 보였다고도 했다.

"세상에 날 때는 그냥 왔는데, 옷 입고들 사니라고오. 또 죽으면 다 빈 몸으로

그냥 갈람서도. 그것 다 시늉인데 그 지랄들이여."

동촌댁 말이 딴에는 옳다고 맞장구치며 웃는 부인도 있었다.

"그 양반 세수나 제대로 허는지 몰라."

"안 봤는지 모르지."

부녀자가 갖추어야 할 예절에 이르기를

"웬만한 병에는 머리를 빗고 낯을 씻기를 그만두어서는 안되고, 비록 가난하더

라도 옷은 반드시 깨끗이 빨아서 입어야 한다. 부인은 단정하고 정결한 것을

귀히 여긴다 함은, 얼굴을 화장하여 남편을 기쁘게 해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

다. 화장하고 예쁘게 옷을 입는 사람은 요사스러운 여자요, 머리를 어수선하게

하고 얼굴에 때가 있는 사람은 게으른 여자다. 경강(제나라 여자)이 말하기를,

부인은 몸매를 단정히 하지 않고는 감히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를 뵙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는 말들을 적어 놓았는데, 부녀자의 머리를 단정히 매만져 흐트러지

지 않아야 하는 것을 엄중히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매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머리카락 흐트러지는 것을 속옷자락 펄럭이

는 것이나 한가지로 민망하고 상스럽게 여기어, 평소에도 언제나 이른 아침 맨

먼저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 농밑에 챙겨 둔 참빗과 물로 머리를 단정히 빗어내

려 전반처럼 땋아서, 큰애기는 치렁치렁 숱많은 머리채 끝에 붉은 댕기 수줍게

물리고, 부인들은 밀기름 곱게 바른 그 머리를 날아갈 듯 감아올려 다홍 댕기

선연히 물린 낭자로 하고, 거기에다 옥비녀 비취비녀, 은비녀 금비녀, 칠보비녀,

혹은 나무비녀를 형편대로 지르는데. 영락없이 옥이나 비취를 닮은 사기비녀가

새로 나와 사 두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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