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머리 땋은 모양새나 댕기 물린 맵시, 그리고 낭자머니 비녀 지른
뒷태는 사람마다 달랐으며, 다른 만큼 흉도 되고 허물도 되고, 태깔이 하도 기품
있고 고와서 칭송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망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하
였다.
"사람은 누구라도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실해야 한다. "
"살고 난 뒷자리도 마찬가지라."
고 어른들은 말했다.
"앞에서 보면 그럴듯해도 돌아선 뒷태가 이상하게 무너진 듯 허전한 사람은,
그 인생이 미덥고 실하지 못하다. "
고도 하였다.
앞모습은 꾸밀 수도 있으마 뒷모습만큼은 타고난다는 뜻도 있으리라.
"사람 귀천은 뒤꼭지에 달려 있느니."
"뒷모습은 숨길 수가 없다. "
또 그렇게도 말했다.
이는 관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상이 불여후상이라."
고 하여, 사람의 앞모습 좋은 것이 뒷모습 좋은 것만 못하며
"포상이 불여 심상이라."
고 하여, 뒤모습이 아무리 보기 좋아도 그 사람 마음의 모습이 마르고 훌륭한
것만 못하다 했다.
비록 다 떨어진 누더기를 골백번 기워 입은 남루를 걸쳤다 하더라도 깨끗이
빨아서 푸새하여 더럽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 아니었으나, 머리 매무새 헝클어진
것은 '동촌댁 버선'보다 더 몹쓸 일로 알았다.
머리는 몸의 맨 위에 있어 사람의 정신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그 머리를 감
싼 머리카락을 결코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머리카락 땋거나 낭자한 뒷
모습 못지않게 앞머리 가리마를 중요하게 알았다.
그래서 옛날부터도
"무릇 아들 딸을 머리 빗길 때, 정수리 위의 가리마를 평평하고 곧게 타서 조
금도 기울어짐이 없게 하여야 한다. 아이의 코를 중심으로 대중하여 보아, 만일
조금이라도 비뚤어졌으면 낯과 눈까지 다 틀어져 기울어지게 되는 것이다. "
고 하였다.
가리마가 비뚤어지면 얼굴이 비뚤어지고, 얼굴이 비뚤어진 사람은 못나 보여
온전한 대접 받기 어려우며, 온전한 제 대접을 못 받는 사람이 제정신을 올바로
갊을 수 있으랴.
자신을 바르게 가지고자 함이 머리카락 한 올에까지 이대도록 뻗친다면, 그
앉고 서는 것을 스스로 길들이고 몸에 익히는 것이며, 언행에 마음가짐인들 오
죽하겠는가.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누가 홀로 깨친 것이 아니라, 누대 누백년 누천 년
을 두고 면면히 내려온 법도가 어느덧 살로 되어 버린 것이리라.
"아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집을 망치고, 딸을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 그러므로 잘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죄다."
하여, 무릇 부모 된 이들은 그 자녀 훈육하기를 일생에 가장 중요한 일로 알았
으니, 명나라 사람 하의려선생 같은 분은, 여러 딸들을 열두 가지 조목으로 엄격
하게 일러 가르쳤다.
1. 침착하고 자상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2. 제사를 받들 때는 엄숙히 하여야 한다.
3.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효도로써 받들어야 한다.
4. 남편을 예의로써 섬겨야 한다.
5. 동서들을 온화 화목으로써 대접하여야 한다.
6. 아들 딸을 바른 도리로써 가르쳐야 한다.
7. 남녀하인들을 어진 은혜로써 어루만져야 한다.
8. 친척을 공경으로써 대접하여야 한다.
9. 옳은 말을 기쁜 마음으로써 들어야 한다.
10. 간사하고 망령된 것을 진정으로 경계하여야 한다.
11. 길쌈을 소중히 여기어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12. 부디 재물을 아껴 쓰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말을 일일이 조목 지어 문자로 적어 놓고, 짚어 가며 배우지 않는다고
모를 리 있으랴만, 각별히 명심하여 네 앞날에 아로새기라고 너한테 이렇게 적
어 주는 것이니라."
종조모 청암부인은 섣달 그믐날 밤 묵은 세배 하러 올라온 강실이한테, 궁체
로 손수 쓴 두루마리를 새해 선물로 내려주었다.
"이제 네가 당혼하여 미구에 남의 집 사람이 될 것인즉."
혼의에 이르기를
"부녀자의 덕행과 말씨와 몸맵시와 일솜씨를 잘 가르쳐야 한다."
라고 하고, 이를 풀이하여 말하되
"덕행은 정숙하고 온순함을, 말씨는 알맞고 사려 깊은 언사를, 몸맵시는 단정
하고 부드러움을, 일솜씨는 길쌈하는 재주를 말한다."
고 하였는데, 이는
"편벽스럽고 똑똑한 것을 잘났다고 추어서 덕행이라 할 수 없으며, 구변이 좋
아 매끄럽게 말을 잘하는 것을 좋은 말씨라 하는 것이 아니다.또 몸맵시란, 자지
러지게 곱고 아름다워 홀리도록 염미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솜씨는 교
묘하고 야단스러운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니라."
고 부인은 말하였다.
오류골댁도 강실이와 마주앉아 바느질을 하여 말한 일이 있었다.
"양반이란, 배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양반은 겉보기에는 위용 있고 고결하
고 신선같이 때깔 있지마는, 그 속은 민어가시보다 억세고, 섬세하고, 미묘하고,
까다로워 그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니라.
일일이 무엇이나 말 안해도 저절로 터득해서 어느 자리에 서든지 앉든지, 오
직, 그 몸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둘레에 향내로 번져, 돌아서면서도 마음이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양반의 인품이고 기품이다.
너도 이제 남의 집으로 시집가서 위로 층층 시어른들 모시고, 시동기간, 일가
친척 공경하며 살아야 할 것인데, 집안마다 풍속이 같지 않으니, 성심으로 눈치
껏 제가 알아 익혀 나가야 한다. 처음 가서 모르는 건 흉이 아니지만, 말 안해도
스스로 깨달아 내 할 일 빈틈없이 해낸다면 상이지. 말해서 알아듣고 행하는 것
도 끝내 못 따르는 것 보담이야 낫겠지만, 벌써 남한테 말하게 한다는 것부터가
상은 아니니라."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아아, 너도 어서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인데."
탄식을 하고, 아차, 싶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흔연히 낯빛을 바꾸어 옛날이
야기 한 자락을 웃으며 들려 주었다.
"전에, 전에 말이다. 한 장수가 있엇드란다. 연개소문이라던가, 울지문덕이라던
가, 이름은 잘 생각 안 나는데, 하여튼 굉장히 용맹스럽고 훌륭한 장군이었대.
그런데 이상하게 혼인이 늦어, 나라 안에 그 이름 떨치지 않은 곳이 없건마는,
그만한 장수를 나랏님도 장가들이시기 어려웠던가, 아니 겨우도록 연분을 못 만
났단다.
이 장군이 하도 답답하여, 싸움터에서는 파죽지세 무적 장군이지만 홀로 앉아
서는 남모르게 한숨이 깊었더란다. 그럴 것 아니냐, 인륜지대사로서 마땅히 사람
이라면 치러야 할 혼사를 못하고, 까막까막 기다려도, 남 다 만나는 사람이 자기
앞에만은 나타나지 않으니.
그런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아주 유명한 스님을 만났다는구나. 길에서 만나
장군이 공손하게 읍을 하고 물었드래. 스님, 저는 언제쯤이나 제 사람을 만나겠
습니까아. 그러자 대사가 두 말도 더 안하고 지팽이를 치켜들어 한 곳을 가리키
는데, 보았더니, 저만큼에 웬 아낙이 등에 어린 애기 하나를 업고 서 있드라네.
아니, 누구 말씀이십니까, 또 그렇게 물었겄지? 아이 업은 부인이 장군의 배필
로는 당치않고, 그 주변에는 다른 사람도 없었거든. 그러자 이 대사가 좀더 바싹
가찹게 지팽이 끝을 들이밀어 가리키는데, 아 이게 웬일이냐, 지팽이는 그 갓난
애기를 똑바로 가리키고 있지 않어?"
실색을 한 장군이 벼락같이 분노하여
"네가 지금 누구를 놀리고 있는 것이냐?"
서릿발 같은 칼을 뽑아 대사의 목을 치려고 내리쳤는데, 대사가 비호처럼 몸
을 피하는 바람에, 그 칼날끝이 뜻밖에도 옆에 업혀 있던 애기 이마를 스치고
말았다.
칼 맞은 아이는 숨이 넘어가게 울고, 대사는 껄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그 장군이 스님한테 당한 봉욕이 수모스러워, 다시는 혼인한단 말조
차 어디에도 꺼내지 않은 채, 포기를 하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만 구국 일념으
로 몸을 바쳤더란다.
생각해 봐라. 그 말 묻던 때도 벌써 늦어 남들 같으면 아들이 자라나 장가들
인다 하게 생겼는데, 애가 타는 나이와 처지를 능멸이나 하는 것처럼, 강보에 업
은 애기를 가리켜 네 배필이라 하니, 누구라도 화가 나지 않겄냐.
다른 데서 들은 이야기로는, 그때 그 연개소문인가 을지문덕인가 하는 장군이,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분이 뻗쳐, 애기를 바라보며, 에잇, 내가 그만 저것을 죽여
버리자. 정말로 갓난 것이 내 연분이라면, 저것이 자라서 내 아내가 되기를 기다
리다 꼬부라져 죽느니, 차라리 죽여 버리면 포기하고 애나 안 타지, 했다고도 하
더라만, 그래서 그만 칼날을 치켜들어 단칼에 아이를 내리친 것이 빗나가 이마
에 칼자국만 깊이 남기고 말았다고도 하더라마는, 그게 그만치 속이 상했다는
이야기지, 그만한 장군이 설마 아무러면 아이를 죽일라고야 했을라고?"
그 연유야 어찌 되었든세월은 흘러 장군은 어느덧 백발이 되었다.
그런데 참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머리에 흰 터럭 성성하게 돋아
난 이 장군이 우연한 말 몇 마디 오간 끝에, 열여덟 살 큰애기를 신부로 맞이하
게 되었으니.
그토록 평생을 두고 기다리던 연분을 늦게 늦게 만나, 아리따운 신부와 마주
앉은 장군은 만 가지 감회가 새로워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대는 왜 이제야 내게로 왔는가."
신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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