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실이를 눕히며 오류골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야 물론 그 끔찍 참변의
"태맥."
이란 소리 들었을 때 이미 다 글러 버린 것이었지만, 새끼 낳은 어미의짐승 같
은 본능으로, 어떻게든, 이 다 떨어진 치맛자락으로 가리고 감추어서 아무도 눈
치 못 채게 무마해 볼 수는 없을까, 가련한 방책을 찾아보려 한 것이 사실이었
다.
반가의 부녀로 이러한 일 당하여서 더러운 목숨 부지해 보겠다고 눈알 굴리는
것이, 능욕보다 더 욕된 일인 것을 그네가 모를 리 있으리야. 비록 반가의 여인
아니라 할지라도, 조선의 강토가 난 아녀자, 노류장화 창기라면 모르겠거니와 그
어느 누구라서 몸을 더럽히고 살기를 꿈꾸리오.
더욱이나 이처럼 서릿발 돋는 가문에서 아직 시집도 안 간 규방의 처녀로, 종
조모 상중에 아이를 배었다니.
아이를 배었다니.
쇠꼬챙이 갈고리로 뒤꼭지를 찍어 찢는 이 한 마디는, 너무나도 참악하고 참
절하여 차마 되뇌이기조차 사참하고 두려운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심상치 않은 일의 덜미를 다른 사람도 아닌 기표한테 호되게
잡히고 말았다. 들키고 만 것이다. 그러니 일은 이제 난장에 나앉은 꽹과리가 되
고 만 것 아닌가.
왜 하필이면 그 순간에 수천서방님은 무엇을 하시려고 우리 사립문간에 서 계
셨으며, 왜 또 하필이면 꼭 그 순간에 안서방네는 공고롭게도, 이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몰골을 정면으로 추켜들고 나타났을꼬.
업어 온 것이 참말로 고맙기는 그지없다마는.
모르기는 몰라도 저것이 죽으러 갔었겄지. 내, 그럴까 싶어서 뜬눈으로 지키고
있었는데, 그 잠깐 새, 방 비운 틈을 안 놓치고 그예 니가 나가드니. 필경에는
이렇게 일을 저질러 버렸구나.
이제는 틀렸다.
틀려 버렸다.
죽을라면 접시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말도 있기는 하더라만, 니가 꼭 죽기는
죽을라고 그러냐... 왜 일마다 죽을 구녁으로만 파고들어가냐.
멧돌짝이 위아래 맞갈려도 가루가 된 밀가루 사이에 안 갈린 통밀이 한두 개
남는 경우가 있는 것인데, 장차 이 일이 어디로 갈라는고.
"그런데 어떻게 안서방네가 이 사람을, 어디서 보고 업어 왔는가? 어쩌고 있는
것을?"
속 깊은 사람은 줄은 알지만 도무지 머리 속이 우둔거리고, 아랫것한테 보여
서는 안될 것을 창자까지 훑어내서 모조리 보여 버린 민망함에다. 이 지경의 경
위를 알 수 없는지라, 짐짓 모르는 척 안색을 꾸미어 묻는 말에 안서방네도 눈
치껏 변죽만 지어내서 대답한다.
"방죽골에 심바람 갈 일 있어 갖꼬 새복같이 갔다 오는디, 작은아씨가 웬일로
거그 기시대요."
"무슨 심부름?"
"예. 저어, 아씨께서 조께 갔다 오라신 일 있그만요."
"이 사람이 거기서 어쩌고 있었던가?"
"기양 서 계시든디요, 바람이 창게 그랬등가 현기증이 나겼등게비여요. 지가
방죽 모팅이 막 돌아옴서 얼핏 봉게로 작은았가 기셔서, 추운디 멋허니라고 나
와 지싱고오, 허고는 막 아는 체헐라는디 기양 눈 깜작 새 휘르르 씨러지시길
래... 왜 엊저녁 때도 안 그러어요잉? 기운이 없으싱게로."
주섬주섬 말을 이어붙이는 안서방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류골댁은 고개를
외로 돌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 말을 누가 믿겄는가."
안서방네는 작은댁 상전의 탄식에, 아니라는 말을 얼른 둘러대지 못한 채 고
개를 떨구었다. 본디 성품이 순직하여 요사비사에 능하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일이 워낙 중악한 것이어서 혼자 감당하기 속이 떨리는 탓이 컸다. 그네는 오류
골댁 앞에서 일부러 범상 무관한 척하려 했으나, 마른 음성이 헛짚이며 뜨고 갈
라져 놀란 심중을 저도 모르게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왕에 자네는 무슨 짐작이 있는 모양인데... 들은 말 혹 없는가? 누구한테?"
오류골댁이 체면을 몰수하고 건너짚어 물었다.
안서방네는, 원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 황급히 손을 저으며 한 걸음 뒤로 옴찔
물러앉기까지 하였다.
"말을 해.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이게 그래 함봉하고 앉었다고 해결될 일
인가? 아니 매안 마을 이씨들은 청맹과니 당달봉사만 떼지어 살고 있는 줄 알
어? 어엉?"
별안간에 바윗돌로 부시를 치는 벼락 같은 고함 소리에 그만 기급을 한 것은
안서방네와 오류골댁이었다. 그것은 건넌방에서 터진 소리였다. 두런두런 들리는
가 싶던 기응과 기표 형제의 음성 끝에,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기표가 고
함을 지른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으로 가리는 것이 더 쉽지, 내 눈에 뜨인 것을 무슨 수로 숨
긴다고 뻑뻑 우기면서 모른다고, 모른다고만 허고 앉었는 것이야, 시방? 지나가
던 삼척동자가 보았대도 이상할 일이 이 꼭두새벽 이 자리에서 내 눈앞에 벌어
졌는데, 말 안할 것이 따로 있지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 왜, 무엇 때문에, 어젯
밤에는 남원서부텀 진의원이 숨넘어 가도록 급헌 왕진왔다 가게 아펐던 사람이,
강실이가, 몇 시간도 안 지난 지금 어째서 방죽가에 날람허니 섰다가 남의 등에
업히어서 조리를 돌리듯이 동네 사람들한테 구경을 한 바퀴 자알 시키고는, 기
진맥진 귀신처럼 허옇게 펄럭거리며 들어오느냐고오. 응? 내가 다 보고 서 있었
다지 않어어? 다 보고 , 누구 남의 말을 건네 듣고 애민소리 허는 게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본 이애기를 나는 허고 있는 게야. 지금."
기표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럴수록 오류골댁 간장이 졸아들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그네는 너
무나 심정을 조이고 있어 자기 옆에 안서방네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 버리고 만
사람처럼 보였다.
안서방네는 두 손을 가슴에 붙인 채 오그리고 앉아 오류골댁 안색을 훔쳐 살
피며, 몸둘 바를 모르고 어서 일어설 핑계만 노리었다.
"당장에 저 강실아란년 업고 온 안서방네만 해도 벅꾸 천치가 아닌 바에야 속
으로 요상허지 않겄다고? 이왕지사 깍 숨기기로 작정을 했으면 감쪽같이 머리터
럭 한 올 안 뵈이게 숨길 일이지 터억하니, 나 보란 듯이 온 동네 방네 온몸으
로 펄럭펄럭 외장을 치고 나서, 아랫것 눈에 뜨인 것은 괜치않고, 아랫것 등짝에
업혀서 한 동아리 짝짝꿍 난 것은 괜채않고, 집안간 형제지간에는 말허면 아니
디어서 철벽같이 입다물어 비밀을 지키는, 그 일이 과연 무엇이야? 왜 말을 못
해?"
이때다 싶어서 자기 말이 튀어나온 김에 안서방네는 송구스러운 몸짓으로 주
춤주춤 일어서며 두 손을 맞잡았다.
"저는 그만 올라가 볼라네요."
"그러소, 욕봤네."
안서방네가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마당을 밟고 나가 총총히 사라지는 발짝 소
리를 짓뭉개며, 기표는 기응에게 격성으로 들이댔다.
"어젯밤에도 내가 똑똑히 봤지. 남 다 자는 오밥중 야심한 시각에, 저 살구나
무 고목 기둥뿌리가 패어 나가도록 이마빡 부딪쳐 찧으면서 응, 응, 울던 소리도
내가 다 들었고. 그런데도 모른대? 이게 필경 저하나 죽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온 집안 망신 파문이 걸린 일일 게야. 종당에는 이씨 문중, 매안 이씨를 싸잡어
모조리 다 망하게 하는 일이.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소동이 날 리가 있는가."
살점이 으깨어져 검은 피먹 멍등 이마를 곤지처럼 드러내고 있는 기응으로서
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뒷자리가 없었다.
"야밤중에 길 가다가 돌부리에 채여 고꾸라지는 바람에 그만 재수없어 이마가
깨졌다."
고 어색한 변명이나마 해 볼 여지조챠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아비로서는 비록 죄 지은 딸자식을, 차라리 네가 죽으라고
후려패어 짓찧고 난도를 쳤을지라도, 문중과 세상 사람들 앞에야 이 일을 어찌
차마 발설할 수 있으리오.
자식 가진 죄인이어서 그는 그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형님, 제 손으로 쥑이리다."
"뭐?"
"저년 하나 죽으면 없던 일 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기에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지 않어? 일에도 순서가 있고 말에도 순서가
있지. 왜 신짝을 머리에다 쓰고 나설려고 허는고? 그만한 분별도 못해?"
"제발 형님, 강실이란년, 저년을 내 손에다 맡기시고, 형님은 못 본일 못 들으
신 일로 해 주십시오. 죽어서 없는 사람한테 살어서 있었던 일이 무슨 쓸 데 있
습니까. 이미 죽었는데. 저것 죽은 것이다아, 그저 그렇게 여기고만 계십시오. 제
가 알아서 다 할 것이니."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누구를 데리고 어린애 장난을 허고 있나? 낫살이나 먹
은 골육지친 형제지간에 물팍 맞대고 앉어서, 나란히 구렁이 담을 넘어가자는
것이야아, 눈가리고 아웅을 하자는 것이야 뭐야?"
"세상을 살어가자면 모르고도 안 물어 보는 일 있고, 알면서도 묻지 않는 일
또한 있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그저 우선 잠시 참고 쪼끔만 기다려 주십시오."
"듣고 보니 흉측허네. 기다리면 살인 나는 일이구만, 질녀 목숨이 걸린 참경을
명색이 중부가 알고도 가만 있으란 말인가? 응? 인륜이 걸려서도 그리는 못허
지."
"다그치면 줄초상 나까 싶습니다."
"협박이야?"
"도적도 쫓을 ㄸ는 도망갈 길 터주면서 쫓는다 안합니까."
"내가 아는 것이 곧 숨통 터지는 길이야. 내가 모르면 일이 더 막혀.더 커지고,
더 꼬이고."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닌데 애비 몸에 살기가 돌아? 딸년을 쥑이려고?"
"아무리 형님과 저 사이 형제지간 한 탯줄에 동기간이라 해도, 또 저년허고 저
사이는 부녀지간이라, 애비와 딸자식이 서로 말 못헐 일 겪을 수도 있는 것 아
니요오? 그저 그런 일인가 부다만 허고 계십시오. 제발, 좀 답답우시더라도."
"이 사람이 이제 보니 의뭉헌 사람이네그려. 아조 몹쓸 성정이 있어. 지금 누
구 데리고 노는가?"
어히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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