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7 1999. 4. 2 (금)
오후 버스 흔들려 덕포 H근이의 화실.
그곳에서 S곤이도 만난다.
H근 녀석, 얼굴은 불콰하여 보기는 좋으나 혈압이 238이라니.
서면 대한극장 옆의 자그마한 구멍가게.
그 조그만 가게의 엄청난 매출에 입이 멀어진다.
S규의 친구 JJ덕 씨가 운영하는 가게.
S곤이는 양산 덕계, 방이 60개나 된다는 모텔을 인수하는 일로 바쁘다.
모텔.. 情事... 말랑말랑한 느낌의 단어.
서면서 늦도록 JJ덕 씨, S곤이, S규와 어울려 늦도록 마신다.
19048 1999. 4. 3 (토)
昨日의 일견 호쾌한 술마시기.
아직 마음은 호쾌하다.
도서관은 가지 않는다.
마음을 잃지 말것, 가슴을 잃어버리지 말것.
그리고 이야기하기.
마음을 말하지 못하니까 개는 짖는다.
짖지 말고 이야기하기.
마음을 말하는 법을 다시 배워 시작하기.
핏빛 선연한 구호는 더 이상 외치지 말기.
개가 되지 말고 사람이 되기.
짖지 말기.
말하기.
기도.
19053 1999. 4. 8 (목)
두주일 남은 시험일.
미상불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률들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요즘, 새로운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그것도 염려스럽다.
J는 예수를 믿는다. 이제.
성격 그대로 곧장 들어가 하나님께 알현을 청하는 J.
스스로에 대한 고뇌가 선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편짜리에게는 없지 아니하다.
한비야의 여행기.
여행담의 재미도 재미려니와 그녀의 삶의 자세를 엿보는 의미도 쏠쏠하다.
제 목숨을 사랑하는 자만이 머나먼 낯선 세계로 떠나 남의 목숨을 사랑할수 있는 용기가 있다.
언제나 새로운 삶을 사는, 한비야.
나는 그녀를 존경하며 또한 사랑한다.
19057 1999. 4. 12 (월)
구청앞 게시판에 공고된 내 응시번호의 시험장소는 명륜동 동래중학교.
나중 PI서 씨에게서 전화왔는데 그도 역시 동래중학교.
범론사의 교재 '부동산학개론'을 다시 훑어보았는데 참 난삽하게도 풀어 놓았다.
이 책에서는 8, 9회의 기출문제가 실린것 말고는 취할바 없다.
오후 시청각실 영화.
'레인 메이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인데 전혀 그답지 않은 다소곳한 영화.
맷 데이먼이 주연한 변호사 이야기.
한비야 여행기를 계속 빌려 읽는다.
부럽고 부럽고 사랑스런 한비야...
기도.
19058 1999. 4. 13 (화)
바람소리, 싸이렌 소리를 내며 휘젓는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 흑백의 바다는 음울하다.
S규가 전화하여 자꾸만 술 한잔 하러 나오란다.
부도로 도망 내려온 제 고향, 부산에서 이제 한술꾼 되려는 모양이다.
새벽.
기도.
'단순한 이성을 뛰어 넘어라. 그 분께 향한 타오르는 사랑의 날개를 타고서'
19059 1999. 4. 14 (수)
J가 사다준 모의고사 문제집.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시간을 재면서 풀어본 몇차례의 답의 평균은 무난히 80점은 넘는다.
자신있다.
한비야.
그와 같은 정신과 행동력을 주신 신에게 그녀는 감사해야 한다.
종장에 가까웁지만 내게도 그런 능력을 주셨으면.
상황에 갇힌채 질질 짜지나 말고 한비야를 꿈꿀 일이다.
19060 1999. 4. 15 (목)
까탈스러운 과목은 세법이다.
기출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어렵게 내고자하면 얼마든지 어려울수 있는 과목이다.
한비야와 함께 떠나는 남미 여행.
"주어진 환경은 순순히 불평말고 받아 들이자, 불평하여도 소용없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심플하게 살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자."
우선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비야의 어록일 법한데 과연 그럴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하고 얘기할수 있을까...
19062 1999. 4. 17 (토)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실직자 재취업 훈련.
수강료 공짜, 교재제공, 교통비 지급.
신문의 공고를 보고 찾아가 수강신청.
서면의 한진정보처리학원.
인터넷 검색사과정, 5월 3일부터 하루 4시간씩의 4개월 과정이다.
타이밍도 좋을뿐더러 무얼 하던지 인터넷은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비교적 안온한 기분의 요즘, J의 온유함도 커다란 힘.
19063 1999. 4. 18 (일)
모의고사 문제집.
과목에 따라 70점에서 80점 수준이다.
과락 40점, 평균 60점이상이면 합격이니까.
이 문제집 수준이라면 합격을 자신하는 건방짐이 내게는 있다.
19065 1999. 4. 20 (화)
종일 집.
오전에 문제집 풀다.
오후들자 어김없는 소주.
한낮의 TV프로 재방송을 보며.
플리처상을 받은 기록사진.
안정효씨가 해설을 맡았는데 그 한컷 한컷의 사진들은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 없고 사실을 뛰어넘는 예술성이 있다는 것.
역사를 증언한다는 기록성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창조한다는 것.
로버트 카파...
S규 와 통화.
만나본지 오래된 N영이는 사직동의 아파트로 이사하였다고.
S곤이는 모텔을 5월 1일 오픈한다고 정신없이 바쁜 모양이다.
얼큰하여 초저녁 잠자리들다.
19068 1999. 4. 23 (금)
꼬박 밤을 세운다.
흐릿한 머릿속.
목욕하여 정신을 추스르고 오전 잠시 도서관 앉아 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하여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리고 이 시험은 결코 토끼가 아니다.
19069 1999. 4. 24 (일)
KS동 의 아내에게서 전화.
이 달말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4월 30일은 법원에서 결정한 날이다.
아마 남편과는 이혼하여 소유권은 그녀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새벽.
빌립보서.
바울이라는 사람.
이방인의 사도라는 소명을 코에 걸고 소아시아를 주름잡았던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없다는 굳은 신념의 사람.
그런 그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는 그토록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니.
그러나 이것이 바울의 이중성이나 모순은 아닐 것..
19071 1999. 4. 26 (월)
일요일 시험일.
시험- 뜻밖에 쉬운 문제들.
최선을 다하였음을 감사함.
하나님은 내게 무언가 주시는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시험 마친 박인서씨 만나 함께 지하철 오른다.
그는 썩 심상찮은 표정이다.
서면 JJ덕 씨 가게에서 S규와 S곤 만난다.
양산의 모텔.
8층 빌딩의 5개층을 차지한 상당한 규모의 모텔이다.
60실.
그런데 임대인과의 아규발생, 당초 내부 구조공사에 있어서 임대인이 약속한 사항 불이행.
N영의 이사간 집도 들려 늦은 귀가.
파김치.
그러나 시험을 잘 치루어서 기분은 무척이나 가볍다.
19072 1999. 4. 27 (화)
늦잠.
긴장이 풀려 종일 게으른 몸짓으로.
S곤 모텔 아규 건.
전화로 불러주는 내용을 기초로 문장을 다듬어 경위서를 작성하여 팩스로 송부하여 주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제.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잠언-
19073 1999. 4. 28 (수)
나는 이제 조금은 이 부동산에 관한 지식이 있음을 느껴, 살이의 테크닉을 조금이나마 익혔는지.
S곤이와의 약속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용두산 공원 올라간다.
광복동 입구서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편하기 짝이 없구나.
봄날 용두산 공원, 외로인 노인들 주위에 비둘기는 구구거리고.
어떤 노인 한분, 동료와도 어울리지 않은채 물끄러미 비둘기 노는양을 바라보고 앉았다.
나는 저만치 앉아서 지켜 보았는데, 한시간여 동안 노인은 고정된 한 곳의 시선을 움직이지 않는다.
뉘라서 그 노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수 있으랴.
젊은이들- 그들은 권태롭지 않다.
또는 권태를 즐기는 방법들을 알고 있다.
노인은 권태를 이기는 방법을 모른다.
서면 S곤이와 맥주집 앉아서 이것저것 대화.
민법에서의 매도인의 담보책임운운하며 변설을 늘어 놓는 나.
S곤 으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내용인 듯하여 기쁘다.
이제 조금은 이 부동산에 관한 지식이 있음으로, 아, 살이의 테크닉을 조금이나마 획득하였는가.
19074 1999. 4. 29 (목)
S곤 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양산시청, 등기소등를 돌며 공부를 발급받는다.
그 건물, LG화재의 21억 담보, 건물의 1층에 있는 기업은행장 만나 대담.
부산 시청 앞의 부동산중개업소.
임대인은 주먹세계의 보스폼이 나는 J회장이라는 사람과 공유자인 법무사.
이상한 위압감이 있는 분위기지만, 그러나 S곤이와 나도 지지 않는다.
결국 5층 60실을 모두 임차키로 하여 마무리.
보증금 3억, 월세 650 만원.
오늘 저녁에는 KS동 의 아내에게서 보증금 돌려받기로 한 날이다.
하나하나 숙제들이 풀리는가.
19075 1999. 4. 30 (금)
8시경, 가희 옆 횟집에서 KS동 의 아내와 만난다.
놀랍게도 KS동 의 인상과는 너무나 다른 음전한 마나님이다.
품위있게 조신한 작은 몸집의 할머니.
그동안 남편에게서 겪어왔던 눈물나는 역정을 듣는다.
숱한 옥바라지, 짐승같은 폭력, 자식들을 방기하는 아비짜리의 기막힌 이기주의, 아무리 헤어지려 하여도 거머리처럼 놓아 주지를 않고...
그런 그녀가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세상사 테크닉에 눈 뜨게 되었다.
그리하여 겨우 이혼에 성공하고, 자신이 마련한 건물이건만 남편에게 1억인가를 쥐어주고 소유권을 넘겨받아 그 짐승 같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당하게 고통받아야 했던 삶의 역정.
이제 자신의 정체성에 눈뜨고 세상의 가치와 생명의 환희에 눈뜬 마나님.
인간만세의 역정.
아, 이 할머니는 60넘어서야 세상사 눈이 뜨여젔는데 나는 이제 오십을 좀 넘겼을 뿐이다.
늦을바 없다.
보증금을 돌려주며 그간 미안하였다는 할머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여 콧등이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