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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11)

17. 저 대나무 꽃  어지신 산신 할매 금지옥엽 우리 애기 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 먹고 자고 무럭무럭 키워 주소 복을랑 석숭에 타고 명일랑 동박식에 타서 균(귀염)자동이 금자동이 누가 봐도 곱게 보고 외 굵듯 달 굵듯 모래밭에 수박 굵듯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럭 무럭 키워 주소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우리 애기 무병장수하게 하옵소서 누구라도 아기를 낳으면 삼신 할머니한테 정한수 떠놓고 시루떡 올리며 미역국에 흰 밥을 차려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 축문을 외운다. 강실이를 낳은 오류골댁도 그랬었다. 아직 몸을 추스리기 어려운 첫이레 때부터 두 이레. 세 이레. 일곱 이레를 다하도록 그네는 칠 일마다 정성스럽게 소반 앞에 꿇어얹아 손을 비비며 빌었다. 그리고 삼신 바가지는 ..

혼불 6권 (10)

16. 시린 그림자  강실이는 선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빙천의 얼음 같은 달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울리는 대보름 풍물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서 오히려 강실이 서 있는 오류골댁 살구나무 검은 그림자 언저리 사립문간을 적막하게 도려내어, 무슨 깊은 물 가운데로 잠겨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 물은 소리도 없고 빛도 없어 이승이 아닌 어느 기슭에서도 저만큼 밀려나가 있는 물이었다. 그 묵적의 숨죽인 수면 위에 시린 달빛의 성에가 푸르게 어리고, 그 성에 속에 강실이는 마치 얼어 붙은 흰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이다. 달을 올려다보고 있는 강실이의 얼굴은 이미, 정월 밤의 검푸른 하늘에 뜬 흰 달보다 더 창백하게 얼어 있었다. 아까 날려 보낸 액막이 연은 어디로 날아가 하늘의 수심 까마득한..

혼불 6권 (9)

"봉출아. 너 개똥도 약에 쓸라면 없다어란 말 들어 밨제? 근디 무신 약에다 쓸라고 그런 지 아냐?"전에 한 번은 임서방이 봉출이한테 물은 일이 있었다. "에에, 말이 그렇다 그거이제 멋을 참말로 약에다 쓴다요? 개똥을, 그께잇 거이 머언 약이 되야라우? 시상에 흔해빠진 거이 그건디. 밟으먼 미끄러지고 던지럽기나 허제.""그렇제? 그런디 그게 아니여. 개똥은 줏어다가 잘 말려 두먼 이질약으로도 쓰고, 인자 봄에는 논에 거름으로 쓰제잉? 말허기 쉬워서 개똥, 개똥, 하찮허게 생각하지만 개똥이 그거 사람 못된 것보담 훨썩 쓸모가 많은 거이다. 너."기다란 집게와 개똥삼태기가 따로 있는 임서방의 두엄간에는 항상 어느 집보다 많은 개똥이 모아져 있었다. 임서방은 욕심이 많고 손이 빨랐다. 임서방이 바깥으로 나간..

혼불 6권 (8)

"우리 새서방님허고 상피를 붙었다고."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허허어, 허. 효원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한동안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네의 얼굴빛이 노랗게 질렸다. 그 질린 기운이 곤두서며 소름을 일으켰다. 그리고 송곳처럼 가슴 복판을 깊이 쑤셨다. 그런 중에 그네는 다만 한 마디를 누르듯 토했다."촐랑거리지 말어라. 방정맞게."그것은 콩심이한테만이 아니라 효원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하였다. 과연 '몸가짐'이란 무엇일 것이냐."형직영정."이라는 말이 '열자'의 일절에도 있거니와, 무릇 그 모습이 곧으면 그림자는 저절로 반듯한 법 아닌가. 그러니 그림자만 보아도 그 본모습이 어떤 모양인지 알 수가 있다."모습이 곧아야 그림자가 바르니라. 너는 모쪼록 구용 구사를 명심하고, 늘 몸가짐을..

혼불 6권 (7)

15. 그날  겨울 밤의 기나긴 어둠이 간밤 내내 서리를 틀었던 또아리를 풀면, 새벽은 깃을 털며 검푸르게 깨어난다. 먹지 같던 장지문 창호지에 이 새벽빛이 싸르락 스친다. 그러나 아직도 눈을 뜨기에는 이른 시각이다. 자다가 마시려고 떠다 둔 머리맡의 자리끼 물이 쩡 소리를 내게 얼어버린 방안은 여전히 캄캄하다. 군불 기운도 웬만큼 가시는 이때쯤이면, 검정 무명 이불 아래 오물오물 잠든 식구들의 발이 아랫복 온기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는 주인의 눈치를 보며, 부엌 아궁이 옆의 부뚜막 아래 따뜻한 자리를 찾아 제 대가리를 붙이고 잠드는 겨울 강아지같이. 돌아눕기만 해도 이불자락이 떠들어져 등이 썬득하게 끼치는 외풍 때문에, 어머니는 자다가도 몇 번씩이나 무망간에 손을 뻗어 아이..

혼불 6권 (6)

"나 같은 상놈이 어니 감히 그 문중에 큰마님 초상 영우에 가 향이나 한 오래기 사를 수가 있겄소오, 절이나 한 자리 헐 수가 있겄소. 그저 샅에서 요령 소리가 나게 허드렛일 허는 거이 고작이라, 그렇게 죄송시럽고 서운허드라고요. 말 못허는 짐생도 다 저 거둬주는 쥔은 알아보고, 허다못해 돼야지도 밥 주는 쥔 발짝 소리만 나면 꽤액 꽥 꿀꿀꿀 난린디. 이것은 멩색이 사람의 자식으로 인두껍을 쓰고는, 인자 영영 영결허는 마님한테 절 한 자리를 못허는 거이, 어디 그게 안 서운헐 일이요?""고마운 마음이제."“언감생심 머.""마님도 그 맘은 다 알고 가셌을 거이여. 너무 서운해 말어.""아 그래도 그거이 어디 그렇소? 해가 배끼니 배꼈다고 세배를 디릴 수가 있능가, 초하루 삭맹이니 상식을 올릴 수가 있능가...

혼불 6권 (5)

"달 봤다아"그것은 싸우는 소리였다. 그는 남모르게 혼자서 사력을 다한 승부를 달에 걸고, 단말마 같은 비명을 토하며, 또 그달을 들이마시며, 진땀이 나도록 달과 싸웠다. 그러는 중 어느결에 만동이와 백단이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은 솟아오른 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춘복이한테만 귀띔을 하고는 일찌거니 고리배미 비오리한테로 간 옹구네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도 별반 마음이 쓰이지 않을 만큼, 달맞이는 흥겨워졌다. "인자 고리배미로 풍물 귀경 가야제. 시절도 이런디 무슨 풍물인가만. 이럴수록이 진탕 한 번 노는 것도 좋온 일이제. 체찡맹이로 깍 차갖꼬 있는 속도 좀 내레갈 거이고. 안 그러먼 참말로 죽어 불제, 숨이 맥혀 어찌 살어. 가자. 자아, 가들 보자, 가들 바..

혼불 6권 (4)

14. 매화 핀 언덕이면 더욱 좋으리  "다 되야가는 거잉가?"만동이는 시퍼렇게 얼어붙은 달빛이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덤에 붙어 구부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백단이한테 묻는다. 그 목소리도 얼어 있다. 몸뚱이는 결결이 속까지 얼어들어 한기를 이기지 못하겠는데, 이마에만은 진땀이 소름같이 돋아난다. 진땀은 배짓이 돋으면서 그대로 얼어, 이마가 썬득썬득 시리다. 그의 손은 이미 아까부터 푸르딩딩 남의 손이 다 되어 버렸는데 손가락은 마디마디 툭, 툭, 부러져 떨어지게 곱아서 더 흙을 만지기에 아슬아슬하다. 그것은 추운 탓도 있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에 속이 떨리는 탓이 더 켰다. 바깥에서 끼치는 엄동의 추위는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두려움에 비하면 오히려 별 것 아니었다. 백단이는 그런 만동이에게..

혼불 6권 (3)

"전에 전에 옛적에, 한 백 년인가 백오십 년 전인가, 어느 고을 아무네 집에 젊은 청상이 하나 살았더란다. 그 시아버지는 항상 매일 밤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안을 돌면서 살펴보고 있었더래. 그러던 그 어느 날 밤,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하고 초생달은 희미한데, 며느리 방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고 누군가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오더란다. 의아하게 생각한 시아버지는 며느리 몰래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지. 그런데 며느리가 베개에다 죽은 남편 옷을 입혀서 마치 신랑처럼 꾸며 놓고, 마주앉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흉내를 내고 있더라지 않냐. 그렇게 온 밤을 새우더래. 그것을 본 시아버지는 그만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그후에 곧 그 며느리를 아무도 모르게 개가시켜 멀리멀리 북쪽땅 끄트머리 어디로 보내 놓고 그 ..

혼불 6권 (2)

지정무문이라 하여,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 남편과 아내같이 그 혈연이 지극히 가까운 사이에는 제문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 몸과 저 몸을 구분할 수없이 한 몸으로 절실한 이 사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궁천지통을 당하여, 찢기우고 무너지는 설움으로 애곡도 겨운데, 어느 하가에 붓 들고 먹 갈아서 심신을 가다듬고 문장을 갖추어 제문을 지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리라. 그만큼 글이란, 몸과 마음이 침착 안정, 옷깃을 여민 다음에야 씌어지는 것이었으니, 굳이 상중이 아니어도 반은 앉고 반은 서서 건 공중에 뜬 손으로 봉두난발 흩어진 머릿결을 거꾸로 쏟으면서는 쓸 수 없는 것이 글이었다. 하물며, 앉으면 앉는다, 서면 선다는 말을 듣기 쉬운 사돈댁에 보내는 내간 간찰이랴. 같은 자식, 같은 형제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