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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22)

초운이가 순경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지가 이번 사또 덕택에 ”하고 말 을 내다가 별안간 “사또란 칭호가 듣기 좋으세요?”하고 딴소리를 물어서 “그 건 무슨 소리냐?”하고 순경사가 되물었다. “제 맘에는 사또라고 부르는게 영 감마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못 할 듯해요. 정다워 들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인제부 터 영감마님이라고 부를까요?” “영감에 마님까지 받치지 않으면 더 정답지요. 그럼 영감이라고만 부를 테니 꾸중 마세요.” “오냐, 남 듣는 데만 그렇게 홀하 게 부르지 마라.” “남 듣는 데는 사또라 부르지요.” “그래 내 덕에 무에 어 쨌단 말이냐?” “영감 덕택으로 올해에는 모녀 남매 한데 모여서 설을 쇠게 되었 세요.” “말미를 얼마나 얻었기에 여기서 설까지 쇠게 되느냐?” “한 달 얻었 세요.” ..

임꺽정 10권 (21)

재령군수가 순경사 온다는 노문을 본 뒤 백성들을 내세워서 연로의 치도를 시 키고 관속들을 내보내서 지경에 등대를 시키고 순경사의 사처를 친히 나와서 간 검하고 순경사의 조석 지공을 각별히 하라 색리에게 신칙하였다. 순경사가 이틀 밤을 해주서 자고 또 이틀길로 재령에 왔다. 재령읍에 들어올 때 해가 아직 높 이 있었으나 다음날 숙소참 봉산읍이 하룻길이 알맞은데 구태여 엇참을 댈 까닭 이 없으므로 재령읍에서 그대로 숙소하게 되었다. 순경사가 사처로 나와 보는 군수를 데리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듣기도 하다가 관청색의 진배 하는 저녁밥을 먹고 군수가 동헌으로 들어간 뒤 곧 취침하려고 의관을 벗을 때 기생 하나가 밖에 와서 문안을 드린다고 하여 불러들여 보니 곧 초운이었다. “너 이거 의외로구나. ..

임꺽정 10권 (20)

순경사가 점잖게 묻자면 “네가 무슨 근심이 있느냐?” 하고 물을 것을 실없 는 말로 “네 애부가 오늘 밤에 기다린다구 했느냐?” 하고 물으니 초운이는 대 답이 없었다. “어째 대답이 없느냐?” “어떻게 대답하올지 대답할 말씀을 생 각하는 중이올시다.” “지가 애부가 있다고 하오면 사또를 기망하는 것이옵고 없다고 하오면 사또께서 곧이 안 들으실 테니까 그래서 대답을 아뢰기가 어렵소 이다.” “그래 네가 애부가 없다는 걸 내가 잘못 넘겨짚었단 말이냐?” “바른 대로 아뢰자면 없다고 아뢸밖에 없소이다.” “전에는 있었구 지금은 없단 말이 냐?” “지금도 없고 전에도 없었소이다.” “그럼 아까 너의 감사가 수청 분부 할 때 실심한 건 무슨 까닭이며 지금 예 와서두 눈살을 펴지 못하구 앉았는 건 무슨 까닭이냐?”..

임꺽정 10권 (19)

황해도 순경사는 그 동안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황해도 순경사가 서울 서 떠나던 날 파주 숙소하고 다음날 개성 숙소하고, 개성서 숙소하던 이튿날은 유수와 이야기하다가 점심대접까지 받고 다 저녁때 떠나서 벽란도 나와 숙소하 고 다음날 숙소참은 연안이 알맞았으나 부사의 등대 범절이 태만하여 괘씸할뿐 더러 이튿날 해주를 대기가 어려워서 홰를 잡히고 삽다리 와서 숙소하고 그 다 음날 해질 무렵에 해주를 들어왔었다. 감사가 노문을 보고 순경사의 사처와 군 사들의 숙소를 미리 정하여 놓고 중군을 5리 밖에서까지 마중을 내보내고 사처 에 와서 든 뒤 예방비장을 내보내서 엄동설한에 원로행역이 얼마나 수고되시느 냐고 위로 전갈을 하였다. 예방비장은 감사 김덕룡의 서족인데 이사중이 등과하 기 전에 같은 한량으로 ..

임꺽정 10권 (18)

대장과 두령들의 식구 수효를 저저히 쳐보면 꺽정이의 식구는 애기 어머니 모 녀와 백손 어머니 모자에 소홍이까지 다섯이고, 이봉학이는 소실과 그 소생 세 살 먹은 아들과 두 식구요, 박유복이도 안해와 네살 먹은 딸과 두 식구요, 황천 왕동이도 역시 안해와 젖먹이 아들과 두 식구요, 배돌석이는 단 내외뿐이라 안 해 한 식구요, 한온이는 식구가 제일 많아서 서모와 형과 형수와 조카와 안해와 큰 첩과 작은 첩과와 모두 일곱이요, 이외에 남은 두령 오가와 곽오주와 김산이 는 다 딸린 식구 없는 단신들이었다. 이상 식구가 도합 스물 네 명인데 이찬동 이와 한온이와 의원 허생원을 따라보내면 셋 모자라는 삼십 명이고, 두목과 졸 개들의 처자 사 십여 명을 함께 보내면 칠십 여 명이 하나가 넘지 않을 리가 없 었다. 조..

임꺽정 10권 (17)

이봉학이는 꺽정이가 그런 말을 물을 줄 미리 알고 기다린 것같이 꺽정이의 말이 떨어지자 곧 “우리 요전 가서 하룻밤 자구 온 자무산성이 어떨까요. 더 마땅한 데가 없으면 거기두 잠시 피난처루 좋을 줄 압니다. 우리 식구들 가 있 는 곳을 관군두 알아선 안되지만 첫째 서림이가 몰라야 안전합니다.” 하고 대 답하니 꺽정이가 이윽히 생각하다가 “자무산성이 잠시 피난처는 될는지 모르나 여러 집 식구들이 가서 당장 거접할 데가 없는 걸 어떡하나?” 하고 말하였다. “집이 십여 호나 되니 원거인들만 어떻게 처치하면 우리 식구들이 잠시 거접이 야 못하겠습니까?” “원거인들을 어떻게 처치하잔 말인가. 광복산 처음 갔을 때처럼 모두 죽여 없애잔 말인가?”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 것 있습니까? 어디 든지 가서 집 사가지구..

임꺽정 10권 (16)

도회청은 벽도 없고 문도 없는 사발허통한 대청인데 뒤와 양옆은 휘장이나 꽉 둘러쳤지만 앞은 그대로 터놓아서 춥기가 한데와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추위,더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꺽정이가 자기 생각만 하고 겨울에도 매일 조사를 여기서 보고 중대한 일 있을 때 좌기를 여기서 하는 까닭에 청 밖에 섰 는 두목과 졸개는 말할 것 없고 청 안에 앉는 두령들도 덜덜 떨 때가 없지 아니 하였다. 이 날은 날씨도 잔풍하고 남향 대청에 낮볕이 들이쬐어서 도회청 안이 그다지 춥지 않건만 낫살 먹은 오가는 추워 죽겠다고 꺽정이에게 사정하고 화로를 갖다 놓고 쬐었다. 여러 두령이 하나 빠진 사람 없이 다 모인 뒤 꺽정이가 신불출이 와 곽능통이더러 도회청 근처에 오는 사람을 금하라고 분부하고 한온이더러 서 림이 계책을 ..

임꺽정 10권 (15)

만손이의 붙드는 까닭을 큰쇠는 고사하고 한온이도 몰라서 “일찍 가게 두지 왜 붙드나?” 하고 물으니 만손이는 주저주저하다가 “상제님 잡수실 밤참을 만 든다기에 큰쇠 먹일 것까지 만들라구 일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한온이가 만손이더러 “밤참은 무슨 밤참이야. 일찍 자는 게 좋은걸.” 하고 말한 뒤 큰쇠 를 보고 “이왕 밤참을 만든다니 먹구 가려무나.” 하고 일렀다. “언제 밤참을 먹구 있습니까. 곧 가야겠습니다.” 큰쇠는 한온이에게 말하고 “곧 먹구 가게 해줄 테니 가만 있거라.” 만손이는 큰쇠더러 말하였다. 큰쇠가 만손이에게 붙들려서 밤참 냉면을 먹고 한온이한테 간다고 인사할 때 한온이가 상목 한 필을 손 가까이 내놓아 두었다가 큰쇠 앞으로 밀어 내주며 “ 이것 가지구 가서 너의 할머니 찬수 공궤나..

임꺽정 10권 (14)

“그날 밤에 남판윤 대감께서 오셔서 댁 영감마님하구 두 분이 약주를 잡수시 며 밤 늦두룩 이야기를 하시구......”“가만 있거라, 남판윤이 누구냐?”“그 양 반이 저의 댁 영감마님 바루 전에 좌변 대장으루 기시다가 장통방에서 청석골 대장을 잡지 못하구 놓친 까닭으루 벼슬이 갈리셨다든구먼요.”“남치근이 말이 구나. 그래 그가 지금 한성판윤이냐?”큰쇠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만손이가 앞질 러서 “한성판윤 하신 지 인제 한 보름 됐습니다. 상감께서 그 인재를 아끼셔서 특별히 판윤을 시키셨답디다.”하고 대답하여 한온이는 만손이를 돌아보며“특 지 제수일세그려.”하고 고개들 한번 끄덕인 뒤 다시 큰쇠를 보고 “그래 남판 윤이 와서 너의 댁 영감하구 무슨 이야기를 하더냐?”하고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건 ..

임꺽정 10권 (13)

만손이가 일어서 나간 뒤 한온이는 큰쇠더러 “대체 서림이가 잡힐 때 귀순하 겠다구 먼저 내통해 놓구 잡혔다더냐?”하고 말 묻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런 말씀은 듣지 못했는걸요.”“잡힌 뒤에 귀순한다구 했으면 포청에서 어리무 던하게 그걸 받아줬을 리가 있느냐.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었겠지.”“서림이가 엄 무엇이라구 변성명하구 서울 와서 있다가 잡혔습지요. 포교들은 서림이루 알 구 잡았는데 서림이가 서림이 아니구 엄 무엇이라구 내뻗다가 매를 맞게 되니까 서림이 말이 영부사댁 도차지가 저의 이성사촌이니 불러 물어봐 다라구 하더랍 니다.”“그래서?”“그날 밤 당번 부장이 서림이 거짓말에 속아서 매두 때리지 못하구 간에두 집어넣지 못했답니다.”“그래.”“서림이가 거짓말루 매를 모면 하구 나중에 포교들을 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