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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12)

만손 어멈이 들어올 때 건넌방 앞에서 “상제님, 큰쇠 여기 왔습니다.” 하고 소리쳐서 한온이가 방 앞문을 열고 내다보니 큰쇠는 방 앞을 지나서 마루로 올 라가고 만손 어멈만 방 앞에 섰다가 웃으면서 “늙은것이 찬바람맞이에 나가 섰 느라고 혼났습니다.” 하고 공치사를 하였다. “누가 놈이 할멈더러 치운데 나 가라구 했소.” “아들 대신 나갔지요.” “만손이가 여태껏 나가 섰다가 지금 막 들어왔는데 놈이 할멈이 무슨 요공이요.” “상제님 방문 닫구 들어앉아 기 셔두 바깥일을 용하게 아시네.” “방문만 닫혔지 내 귀야 닫혔나.” 큰쇠가 마 루로 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온이가 만손어멈더러 “치운데 혼났으 니 어서 안방 영감 옆에 가서 몸을 녹이우.” 하고 웃음 섞어 말한 뒤 앞문을 닫고 돌아앉아서 ..

임꺽정 10권 (11)

“상제님께서 물어보실 일이 없으시더라도 데리고 와서 문안을 시켜야겠지요 만 그놈이 집에도 한만히 나오질 못합니다. 물어보실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면 내가 가서 보고 물어다 드리는 게 어떨까요?” “그놈을 내가 꼭 좀 봤으면 좋겠네.” “그럼 어떻게든지 불러내서 데리고 와야겠구먼요.” 하는 순이 할멈 말끝에 만손 어멈이 나서서 “그저 나오라고 해서 잘 나올 것 같지 않거든 마누 라가 급살을 맞았다고 기별하구려. 그럼 곤두박질해서 뛰어나올 테니.”하고 웃 으니 “이 늙은이가 얼쩡하고 남을 방자하지 않나.”하고 순이 할멈이 눈을 흘 기는 체하였다. “살기 싫증이 날 만큼 살고도 죽기는 원통하우.” “임자는 죽 고 싶어서 몸살이 났나.” “나는 얼른 죽기를 바라우. 얼른 죽어야 영감 손에 묻힐 테니까.” “..

임꺽정 10권 (10)

순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매파가 만손이 아들 놈이의 혼인을 중매하여 정하였 는데 색시집에서 혼인 준비에 신랑집 의향을 알아다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어서 순이 할머니가 만손이 집에를 왔었다. 순이 할머니는 한첨지의 여자 부하 중 구 군으로 한온이 집에를 무상출입하던 매파라 한온이가 목소리를 들으면 대번 알 것인데 목소리가 평일과 달라져서 몰랐던 것이다. 순이 할머니가 만손이 부모를 보고 색시집에서 부탁한 일을 대개 이야기한 뒤 “건넌방에 누가 오셨소?”하고 물으니 만손이 어머니가 영감의 입을 치어다보 다가 그저 “손님이 오셨소.”하고 대답하였다. “어떤 손님인데 손님 혼자 내버 려두고 주인은 모두 안방에 와 있소?” “손님이 낮잠을 주무시는가 보우.” “ 어디서 오신 손님이오?” “저 시굴서 오신 손님이오...

임꺽정 10권 (9)

한온이가 만손이 내외의 지공스러운 접대와 지성스러운 공궤를 받고 하룻밤을 편히 지냈다. 이튼날 아침에 한온이는 덕신이 아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아침때 오마고 했다는 사람이 이른 아침때가 지나고 늦은 아침 때가 지나고 해가 한나 절이 다 되도록 오지 아니하였다. 만손이나 집에 있었으면 한번 보내보기도 하 겠는데 만손이가 남부에 들어가고 없어서 한온이는 초조한 맘을 억지로 참으며 기다리었다. ‘윤원형 집 차지 방에서 인제 일어섰겠지.’ ‘지금쯤은 남촌을 건너섰으렸 다.‘ ’지금쯤은 남소문 큰길 어귀에 왔으렸다.‘ ’인제 다 왔겠는데.‘ ’아 니다, 볼일을 잊은 것이 있어서 윤원형 집에서 자기 집으로 도로 간게다.’ ‘볼 일 다 보고 인제는 나섰겠다.’ ‘가까운 샛길로 오나 큰길로 돌아오나. ’ ‘걸 음을 좀..

임꺽정 10권 (8)

도회청에 난데없는 불이 붙어서 붉은 불길이 용솟음을 치는데 불을 잡는 사람 도 없고 구경하는 사람도 없다. 사람이라고는 씨도 없더니 별안간 꺽정이 한사 람이 땅에서 솟아나듯 나서는데 얼굴과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보기가 끔찍하였 다. 한온이가 소스라쳐 잠을 깨었다. 방안에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몸에는 정한 이 불이 덮이었다. 방안 사람 나가는 것도 모르고 이불을 덮어주는 것도 몰랐으니 잠시일망정 잠이 곤히 들었던 모양이다. 꿈속에 본 광경이 생시 일 아닌 것만은 다행이나 헛꿈이 아니고 전조인 듯 생각이 들었다. 이번 순경사 손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인데 청석골 앉아서 대항하는 건 공연한 객기다. 객기인 줄 번연히 알며 객기 부리는 사람들 따라서 신명을 그르치면 그런 원통할 데가 어디 있을까. 자기는 다른 두령..

임꺽정 10권 (7)

“근일 도중 공사가 다단한데 내 사사를 말할 수가 없어서 아직 책장을 덮어 두었었소.” “상제님이 할아버님 성정을 닮으셨더면 그런 놈은 벌써 어떻게든 지 요정냈지 이때까지 가만두지 않으셨을게요. 할아버님 성정 참 무서우셨습니 다. 한번 어떤 놈이 댁에 들어올 상목을 반 동인가 한 동 떼어먹구 어디루 도 망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놈의 종적을 질지이심하게 찾아서 함경도 영흥 땅 으로 도망한 걸 아시구 사람들을 쫓아보내서 그놈을 용흥강 물귀신을 만드셨지 요. 사람들 보낼 때 부비가 너무 과다하게 들어서 첨지 영감이 고만두시면 좋을 듯이 말씀을 여쭈니까 소견 없는 자식이라고 꾸중하시구 나중에 타이르시는 말 씀이, 분풀이두 해야 하지만 이루 말하더라두 장래 몇 백 동이가 될는지 모른다 고 하십디다. 장래 몇 백..

임꺽정 10권 (6)

이튿날 새벽에 한온이가 자릿조반을 먹는 체 만 체하고 두패 교군을 타고 청 석골서 떠나서 송도 김천만이 집에 와서 아침밥을 시켜 먹고 장단읍에 와서 중 화를 하는 중에 복색이 선명하고 인물이 끼끗한 군사들이 객주집 앞으로 지나가 는 것을 보고 경군인 줄 알 뿐 아니라 순경사가 거느리고 오는 경군이려니까지 짐작하며 객주 주인을 불러들여서 점심밥을 재촉한 끝에 “문앞으루 군사들이 많이 지나가니 이 골에 무슨 일이 있나? ” 하고 물어보았다. “그게 경군입니 다. ” “글쎄 경군이 어째 내려왔나? ” “황해도 순경사 행차가 지금 읍에서 중화하는 중입니다. ” "옳지, 내가 송도서 들으니까 황해도와 강원도에 순경사 가 났다든군, 서울서 어제 떠난 모양일세그려." "어제 파주읍에 숙소했답니다." " 오늘은 송도 ..

임꺽정 10권 (5)

한온이와 꺽정이의 문답이 끝난 뒤 박유복이가 꺽정이 나중 말의 말끝을 달아 서 “접전해서 이길 건 미리 알 수 없지만 이기두룩 준비는 미리 해야 하지 않 습니까?” 하고 말하는데 박유복이의 의사는 그럴 리가 만무하지만 언뜻 듣기에 흡사 꺽정이의 말을 책잡는 것 같아서 꺽정이는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 “준빌 누가 안한달세 말이지.” 하고 박유복이의 말을 대답한 뒤 곧 이어 서 “준비할 것이나 잘 생각해서 이야기들 해봐라.” 하고 여러 두령들을 둘러 보았다. 여러 두령이 다 각각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을 대강 추려보면, 군량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고 군기를 조수하여 만일 파손된 것이 있거든 속히 수보하고 탑고개 길목 지키는 것과 두령들 매일 행순하는 것을 중지하고 사산 파수꾼 수효를 곱절..

임꺽정 10권 (4)

“서울 소식은 달리도 들으셨으려니와 가는 아이의 구전으로 자세히 들으실 듯 모두 줄이오며.” 이봉학이가 편지 비두에 적힌 사연을 읽은 뒤 황천왕동이 를 바라보고 “서울 소식 이야기할 사람을 서울루 돌려보내구 왔네그려.” 하고 한마디 말하자 다른 두령 오륙 인이 그 뒤를 이어서 “편지 가지구 오는 놈을 여기까지 왔다 가랬으면 낭패 없을 겐데 중간에서 보낸 게 잘못일세.” “중간 에서 보낼라면 서울 이야기나 다 듣구 보낼 게지.” 황천왕동이를 책망하는 사 람도 있고 “김선달이 처남인지 첩처남인지 보낼 때 서울 이야기를 가서 자세히 하라구 일러 보냈을 텐테 그 자식이 와서 이야기할 생각 않구 그대루 간 겔세그 려.” “고놈의 자식이 다리품 팔기가 싫어서 가라니까 웬 떡이냐 하구 간 모양 이오.” 김치선이의 처..

임꺽정 10권 (3)

서림이의 위인이 미덥지 못한 것은 김포장이 이순경사보다 더 잘 알지만 꺽정 이를 잡는데 유용한 인물로 김포장은 확신하는 까닭에 이순경사더러 데리고 가 서 잘 조종하여 써보라고 말하러 왔더니 이순경사가 소견이 부족하여 미덥지 못 한 것만 생각하고 유용한 것은 생각지 못하는 모양인데, 게다가 고집이 세어서 자기 소견을 좀처럼 고칠 리도 없으므로 김포장은 숫제 서림이 데리고 가란 말 을 입밖에도 내지 아니하려고 생각하다가 공사를 위하여 온 본의를 돌쳐 생각 하고 “서림이 같은 적당의 재정을 잘 아는 놈이 적당을 체포할 때 소용이 될 듯한데 영감 생각엔 어떻소?” 하고 데리고 가란 운만 떼어서 물으니 이순경사 입에서 “쓰기에 달렸지만 쓸데가 있다뿐이오.” 하는 대답이 나왔다. “그럼 서 림이를 맡아가지구 계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