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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41)

이튿날 아침 후에 황천왕동이가 금교서 떠나서 개성.장단 적성 땅을 지나서 마 전읍에를 오니 해가 겨우 점심때쯤 되었었다. 읍내 바닥으로 돌아다니다가 그중 의 좀 정갈스러워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앉아서 술을 사먹으며 주인 계집더러 말을 물어보았다. “이 골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다는데 그 관상쟁이가 어느 동리 사는지 아우?” “나는 장단서 살다가 이리 온 지기 얼마 안돼서 여기 일 을 잘 몰라요.” 밖에 섰던 사내 하나가 “ 여보 관상쟁이는 왜 찾소? 상을 보 러 왔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네 그렇소.”하고 대답하였다. “여기 달 골이란 데 상 잘 보는이가 하나 있을텐데.” “그가 성이 무어요?” “조씨요.”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옳다. 됐다.”생각하며 달골 가는 길을 물었다. 달골은 읍에서 지척이..

임꺽정 7권 (40)

서림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를 번갈아 보 면서 “우리가 각성바지루 모여서 형이니 동생이니 하구 지내는데 친형제버덤두 더 우애 있게 지내야 하지 않는가. 그까진 일에 서루 얼굴을 붉혀가지구 쌈질을 하려구 하다니 자네들 둘이 다 지각이 없는 사람일세.” 하고 두 사람을 한데 꾸짖고 그 다음에 황천왕동이더러 “대체루 말하면 자네가 형 대접 잘못하는 데 서 말다툼이 났으니까 자네 잘못이 많은데다가 거먹초립이니 무어니 그게 무슨 철딱서니없는 말인가.” 또 배돌석이더러 “찬왕동이가 자네게는 전날 친한 동 무요 지금 정다운 동생인데 말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웃통을 벗어 붙이구 곧 사 생결단이나 할 것처럼 대들었다니 그게 어디 지각 있는 사람의 짓인가? 그러구 형이란 사람이 매사에 용서성..

임꺽정 7권 (39)

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마당이나 마루나 다같이 조용하였다. 무식한 신불출이는 도록책을 펼쳐들고 글자 아는 곽능통이는 성명을 불렀다. “이오종이.” “녜, 등대하 였소.” “김몽돌이.” “녜, 등대하였소.” “최오쟁이.”“녜, 등대하였소.”“안되살이.” “녜, 등대하였소.” “정갑돌이.” “녜, 등대하였소.” “박씨종이.” “박씨종 이.” “박씨종이.” “신복동이.” “녜, 등대하였소.” “구봉득이.” “녜, 등대 하였소.” “장귀천이.” “장귀천이.” 장귀천이는 귀가 먹어서 못 알아듣고 가 만히 섰는 것을 옆에 사람들이 눈짓 입짓으로 가르쳐 주어서 “녜 녜.” 연거푸 대답하여 뛰어나왔다. “김억석이.” 전에 뒷산 파수꾼 패두이던 김억석이가 아 직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은 다들 잘 아는 까닭에 곽능통이가..

임꺽정 7권 (38)

꺽정이가 펄썩 주저앉듯 앉으면서 늙은 오가와 서림이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 한참 만에 “이런 법두 있소?” 말하고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꺽정이 의 눈치가 말들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이 함봉한 입을 열게 되었 다. “다섯 분 두령이 의를 세우려구 죽음으루 나가는 걸 보니 의리는 태산 같 구 죽음은 홍모같단 옛말이 헛말이 아니오.” 늙은 오가는 강개한 어조로 말하 고 “다섯 분이 같이 살 의리는 생각 않구 같이 죽을 의리만 세우려구 하니 다 섯 분의 일을 꼭 옳다구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림이는 주저주저하며 말하였 다. “서종사, 나가서 여럿이 알아듣두룩 말하구 같이 들어오게 하우.”“황두령 까지 같이 데리고 들어오리까?” 꺽정이는 고기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에게 사를 내리신다면 ..

임꺽정 7권 (37)

백손 어머니가 다리만 성하면 이봉학이가 아무리 말리더라도 혼자 서울로 쫓 아올 것인데 쫓아오지는 못하고 겁겁한 마음을 억지로 참느라고 눈물까지 내었 었다. 여러 사람이 기진하도록 기다린 끝에 꺽정이가 오기는 왔으나, 해가 벌써 서쪽으로 다 기울어져서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비선거리서 자게 되었다. 서울서 떠난 뒤 나흘 되는 날 저녁때 일행이 무사히 이천읍내에 당도하였는데 이때 해가 노루 꼬리만밖에 남지 아니하여 광복산까지 대어가자면 밤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교군꾼과 짐꾼들은 모두 자고 가자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듣 지 않고 밤길로 나가기로 작정하여 이봉학이가 박유복이와 백손이더러 “우리 셋이 홰꾼 노릇하자.” 하고 말한 뒤 홰 세 자루를 준비시키고 졸개는 빈몸으로 먼저 나가서 선통을 놓게 하였다. ..

임꺽정 7권 (36)

“타구 가시면 될 텐데 왜 안 가신답니까?” “나는 서울 좀 더 있다 가요.” “우리가 다 가두 혼자 떨어져 기시겠단 말입니까?” “백손이는 나하구 같이 가겠지요.” “서울 구경하구 가실랍니까?” “구경할 것이 어디 있나요?” “ 그럼 무슨 일루 내일 안 가신답니까?” “볼일이 있어요.” “볼일을 말씀하면 우리가 내일 식전 봐드리지요.” “아니오.” “아니라니, 우리더러 말씀 못할 볼일이 무업니까?” “말 못할 것도 없지만 먼저들 가시면 백손이를 다리고 찬 찬히 볼일 보고 갈 테요.” 백손이가 옆에서 듣다가 “어머니, 무슨 볼일이오?” 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돌아보며 “나중에 알려주마.”하고 핀잔 주 듯 대답하였다. “볼일은 무슨 볼일이오? 내일 다 함께 갑시다.” “너는 어미 원수도 갚아 줄..

임꺽정 7권 (35)

“아가릴 찢어놓기 전에 가만히 닥치구 있거라.” 꺽정이가 호령할 때 윗간 방문이 열리고 이봉학이가 백손이를 들여다보고 “잠깐 이리 나와서 내 말 좀 들어라.”하 고 불러내 가더니 억지로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자식에게라 두 그렇게 당해 싸지.”하고 백손 어머니가 혼잣말로 말을 내기 시작하자 “무 엇이 싸단 말이야, 이년아!” 꺽정이가 대뜸 년자를 내붙였다. “무얼 잘했다구 큰소리야!” “이년아, 내가 네게 큰소리 못할 게 무어냐!” “콧구멍 둘 마련 잘했다. 사람이 기가 막혀 죽겠네.” “되지 못한 말 지껄이지 말구 가만히 있거 라.” “되지 못하게 기광 부릴 생각 마라.” “이년을 곧.” “곧 어째?” “내 가 창피한 생각이 없었으면 너희들은 벌써 초죽음했다.” “꼴에 창피를 다 알 아..

임꺽정 7권 (34)

“대장 형님 내외간에 쌈이 나면 내가 어디 말릴 수 있소.” “그야 누군 가면 말 릴 수 있나.” “이두령 형님!” 황천왕동이가 불러서 이봉학이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었다. “내가 아까 들으니까 산상골 아주머니가 편치 않으시답디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박두령 형님이 가실 수 있소. 그리구 형님이 가셨으면 누구버덤 두 낫겠소.”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의 말은 대답 않고 다시 박유복이를 돌아 보며 “아주머니가 병환이 났어?”하고 물었다. “배가 좀 아프답디다.” “대단 친 않아?” “대단친 않아요.” “그럼 긴말 할 것 없이 너하구 나하구 둘이 가 기루 작정하구 가보자.” 황천왕동이가 먼저 “그러면 더욱 좋겠소.” 말한 뒤에 다른 두령들도 다 좋다고 말하였다. 이봉학이가 서림이를 뒤에 남기며 졸개 하 나에게 ..

임꺽정 7권 (33)

“그것 보시오. 세상에는 영웅이 더 염려라구 내 말하지 않습디까?” 서림이가 먼저 한마디 하고 “대장 형님이 기집에 곯아죽었더면 서종사는 퍽 신통할 뻔했소.” 곽오주가 뒤받아 한마디 하고 “우리 대장이 기집질에두 대장일세.” 늙은 오가 도 한마디 하고 “사생동고하자구 맹세하구 갈 놈은 누구며 가랄 놈은 누구야? ” 배돌석이도 한마디 하고 “시골 안해 한 분에 서울 안해 셋이면 대장 형님두 배두령 형님과 같이 사취 장가까지 드신 셈이군.” 길막봉이도 한마디 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들 한마디씩 지껄이는데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입들을 다물 고 말참례를 하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과 박유복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형님네는 아이적 동 접으루 자형 일을 고주리미주리까지 다 잘 아시지만 기집동사에 생각이..

임꺽정 7권 (32)

한온이가 노래 한마디를 법제로 부르고 나서 “어떠냐, 잘하지?” “시굴뜨기 가 소리를 들을 줄이나 아나.” 찧고 까불듯 말하고 또 허허허 웃는데 황천왕동 이는 수심에 싸인 것같이 양미간에 주름을 잡고 펴지 못하였다. “젓국 먹은 괴 양이 상호를 하구 앉았지 말구 좀 웃구 지껄여라.” “나는 자겠으니 고만 가게. ” “내가 바루 가 잘 것이지만 네가 혹시 기다리구 있을까 봐서 일부러 왔다. 황송한 줄을 모르구 가라다니 너두 사람 될라면 아직 멀었다.” “진정 말이지 내가 웃구 지껄일 경이 없네.” 황천왕동이가 말하는 것까지 힘담이 없는 것을 한온이는 딱하게 보았던지 홀저에 정중한 말소리로 “여보게 근심 말게. 선생님 일간 가신다네.”하고 말하였다. “기생방에서 그런 말을 다 할 틈이 있던가?” “기생방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