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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2)

사정을 하고 평소에 말수 적은 박유복이의 안해까지 “대장께서 형님을 위해 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걸 그 말씀을 어기시면 됩니까. 형님이 고만두셔야 지요. ” 사리로 권하였다. 여러 여편네들이 입을 모은 것같이 다같이 백손 어머 니더러 구경 갈 생각을 고만두라고 권하고 달래는 중에 오직 황천왕동이 안해만 말이 없었다. 여러 입이 백손 어머니의 고집덩이를 녹이어서 시원치 않게나마 아니 갈 의사를 말하게 되었다. 백손 어머니가 안 간다고 하니 시누님을 따라간 다던 황천왕동이의 안해도 체면을 차리느라고 자기 역시 안 가겠다고 말하는데, 가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고 가자고 끄는 사람도 없어서 마침내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여섯이 넷으로 줄었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백손 어머니에게 치사하는 뜻으로 “저이들 이번 ..

임꺽정 8권 (1)

임꺽정 8권 송악산 송악산은 송도의 진산이요, 국내의 서악이니 산신 송악대왕이 영검하기로 유 명하였다. 태조 개국 후 2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 전에 팔도 성황을 벼슬을 봉하는데 송악산 성황은 진국공을 봉하고, 화령, 안변, 완산 성황은 계국백을 봉 하고, 금성산, 계룡산, 감악, 백악, 삼각산 성황과 진주 성황은 호국백을 봉하고, 그외의 성황들은 몰밀어 호국지신이란 칭호를 주었다. 이로써 송악산은 성황 중에 지위가 가장 높았다. 성황과 산신이 이름은 다르되 나라에서 봉한 진국공과 민 간에서 일컫는 송악대왕이 실상 한 귀신이건만, 진국공 위패를 받드는 성황당과 송악대왕 목상을 뫼신 대왕당이 각각 따로 있고 그외에 출처 모를 귀신들을 위 하는 국사당, 고녀당, 부녀당이 있어서 송악산 위에는 신당이 자그마..

임꺽정 7권 (43, 完)

밥재 윗고개 길로 고량진까지 나오는 데는 김억석이와 김산이가 길라잡이 노 릇을 하였고 고량진서 점심 요기하고 장단을 지나 송도까지 오는 데는 황천왕동 이가 앞서 오며 뒤의 사람을 재촉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노량으로 걸었지만 김억 석이와 김산이는 따라오느라고 죽을 애들을 썼다. 점심 위에 팔십 리 길을 오고 보니 삼사월 긴긴 해도 벌써 다 지고 달빛이 생기었다. 세 사람이 달을 보고 청 교를 지나올 때 황천왕동이가 뒤를 돌아보며 “시장들 하지. 우리 어디 가서 술 잔이나 먹구 가세.”하고 말하니 김억석이가 풀기 없는 말소리로 “송도서 주무 시지 않구 바루 나가실랍니까?”하고 물었다. “그럼 밤에 나가지 이삼십 리 남 겨놓구 잔단 말인가?” “저는 발병이 나서 십리두 더 못 갈 것 같습니다.” “ 밤중에 들어..

임꺽정 7권 (42)

“임꺽정이를 한번 본 적두 없구 서로 상종한 일도 없지만 만나서 이야기 하면 잘 알 겝니다.” “김서방 이름이 무어요?” “산입니다.” “김산이 김산 이.” “성명이 우습습니까? 경상도 골이냐구 조롱하는 사람두 있습니다.” “임 꺽정이가 큰아버지께 검술을 배울 때 어째 한번 보지두 못했소?” “큰아버지가 재주가 특별하니만큼 성미가 괴상해서 저의 부모가 뫼시구 지내려구 해두 말을 안 듣구 부평 요광원이란 데 가서 혼자 따루 사셨습니다. 그때 저의 집은 파주 멀원이 있었으니까 임꺽정이를 만나보지 못했습지요.” “임꺽정이 말은 뉘게 들었소?” “큰아버지가 마지막 저의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저더러 ‘네가 이담 에 검술을 배우구 싶거든 양주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에게 가서 배워라. 그 아이 가 내게 배웠으니까, 네..

임꺽정 7권 (41)

이튿날 아침 후에 황천왕동이가 금교서 떠나서 개성.장단 적성 땅을 지나서 마 전읍에를 오니 해가 겨우 점심때쯤 되었었다. 읍내 바닥으로 돌아다니다가 그중 의 좀 정갈스러워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앉아서 술을 사먹으며 주인 계집더러 말을 물어보았다. “이 골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다는데 그 관상쟁이가 어느 동리 사는지 아우?” “나는 장단서 살다가 이리 온 지기 얼마 안돼서 여기 일 을 잘 몰라요.” 밖에 섰던 사내 하나가 “ 여보 관상쟁이는 왜 찾소? 상을 보 러 왔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네 그렇소.”하고 대답하였다. “여기 달 골이란 데 상 잘 보는이가 하나 있을텐데.” “그가 성이 무어요?” “조씨요.”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옳다. 됐다.”생각하며 달골 가는 길을 물었다. 달골은 읍에서 지척이..

임꺽정 7권 (40)

서림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를 번갈아 보 면서 “우리가 각성바지루 모여서 형이니 동생이니 하구 지내는데 친형제버덤두 더 우애 있게 지내야 하지 않는가. 그까진 일에 서루 얼굴을 붉혀가지구 쌈질을 하려구 하다니 자네들 둘이 다 지각이 없는 사람일세.” 하고 두 사람을 한데 꾸짖고 그 다음에 황천왕동이더러 “대체루 말하면 자네가 형 대접 잘못하는 데 서 말다툼이 났으니까 자네 잘못이 많은데다가 거먹초립이니 무어니 그게 무슨 철딱서니없는 말인가.” 또 배돌석이더러 “찬왕동이가 자네게는 전날 친한 동 무요 지금 정다운 동생인데 말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웃통을 벗어 붙이구 곧 사 생결단이나 할 것처럼 대들었다니 그게 어디 지각 있는 사람의 짓인가? 그러구 형이란 사람이 매사에 용서성..

임꺽정 7권 (39)

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마당이나 마루나 다같이 조용하였다. 무식한 신불출이는 도록책을 펼쳐들고 글자 아는 곽능통이는 성명을 불렀다. “이오종이.” “녜, 등대하 였소.” “김몽돌이.” “녜, 등대하였소.” “최오쟁이.”“녜, 등대하였소.”“안되살이.” “녜, 등대하였소.” “정갑돌이.” “녜, 등대하였소.” “박씨종이.” “박씨종 이.” “박씨종이.” “신복동이.” “녜, 등대하였소.” “구봉득이.” “녜, 등대 하였소.” “장귀천이.” “장귀천이.” 장귀천이는 귀가 먹어서 못 알아듣고 가 만히 섰는 것을 옆에 사람들이 눈짓 입짓으로 가르쳐 주어서 “녜 녜.” 연거푸 대답하여 뛰어나왔다. “김억석이.” 전에 뒷산 파수꾼 패두이던 김억석이가 아 직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은 다들 잘 아는 까닭에 곽능통이가..

임꺽정 7권 (38)

꺽정이가 펄썩 주저앉듯 앉으면서 늙은 오가와 서림이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 한참 만에 “이런 법두 있소?” 말하고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꺽정이 의 눈치가 말들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이 함봉한 입을 열게 되었 다. “다섯 분 두령이 의를 세우려구 죽음으루 나가는 걸 보니 의리는 태산 같 구 죽음은 홍모같단 옛말이 헛말이 아니오.” 늙은 오가는 강개한 어조로 말하 고 “다섯 분이 같이 살 의리는 생각 않구 같이 죽을 의리만 세우려구 하니 다 섯 분의 일을 꼭 옳다구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림이는 주저주저하며 말하였 다. “서종사, 나가서 여럿이 알아듣두룩 말하구 같이 들어오게 하우.”“황두령 까지 같이 데리고 들어오리까?” 꺽정이는 고기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에게 사를 내리신다면 ..

임꺽정 7권 (37)

백손 어머니가 다리만 성하면 이봉학이가 아무리 말리더라도 혼자 서울로 쫓 아올 것인데 쫓아오지는 못하고 겁겁한 마음을 억지로 참느라고 눈물까지 내었 었다. 여러 사람이 기진하도록 기다린 끝에 꺽정이가 오기는 왔으나, 해가 벌써 서쪽으로 다 기울어져서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비선거리서 자게 되었다. 서울서 떠난 뒤 나흘 되는 날 저녁때 일행이 무사히 이천읍내에 당도하였는데 이때 해가 노루 꼬리만밖에 남지 아니하여 광복산까지 대어가자면 밤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교군꾼과 짐꾼들은 모두 자고 가자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듣 지 않고 밤길로 나가기로 작정하여 이봉학이가 박유복이와 백손이더러 “우리 셋이 홰꾼 노릇하자.” 하고 말한 뒤 홰 세 자루를 준비시키고 졸개는 빈몸으로 먼저 나가서 선통을 놓게 하였다. ..

임꺽정 7권 (36)

“타구 가시면 될 텐데 왜 안 가신답니까?” “나는 서울 좀 더 있다 가요.” “우리가 다 가두 혼자 떨어져 기시겠단 말입니까?” “백손이는 나하구 같이 가겠지요.” “서울 구경하구 가실랍니까?” “구경할 것이 어디 있나요?” “ 그럼 무슨 일루 내일 안 가신답니까?” “볼일이 있어요.” “볼일을 말씀하면 우리가 내일 식전 봐드리지요.” “아니오.” “아니라니, 우리더러 말씀 못할 볼일이 무업니까?” “말 못할 것도 없지만 먼저들 가시면 백손이를 다리고 찬 찬히 볼일 보고 갈 테요.” 백손이가 옆에서 듣다가 “어머니, 무슨 볼일이오?” 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돌아보며 “나중에 알려주마.”하고 핀잔 주 듯 대답하였다. “볼일은 무슨 볼일이오? 내일 다 함께 갑시다.” “너는 어미 원수도 갚아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