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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8)

카지모도 2023. 5.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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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성한 눈깔 마저 멀구 싶은가?” “이놈아 악담마라. 내가 판수 되면

네가 먹여살릴 테냐?” “이놈아 네가 악담했지 내가 악담했어!” “나는 이날

이때까지 악담이라구 한번두 해본 일이 없다” 졸개가 또 대꾸하려구 입을 벌릴

즈음에 “기탄없이 떠들지 말구 짐이나 지구 나서라” 꺽정이가 꾸짖어서 졸개

가 입을 다물었다. 노밤이는 이것을 보고 저의 볼기짝을 두들기며 “아이구 고

소해라”하고 웃다가 꺽정이가 별안간 “무에 고소하냐!”하고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목을 움칠하고 입을 딱 벌렸다. 졸개가 짐짝을 지는 동안에 노밤이는 내

던진 칼을 찾아가지고 와서 앞서서 저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노밤이의 집이란 것이 후미진 곳에 외따로 묻은 움집이라 집 전체가 곧 방 한

간인데 그 방에 거적을 매단 문이 있고 또 종이를 붙인 창구멍이 있건만 침침하

고 음산한 방안이 널찍하게 만든 초빈 속과 비슷하였다. 꺽정이가 거적문을 치

어들고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이런 속에서 사람이 어떠게 산단 말이냐?”하고

옆에 섰는 노밤이를 돌아보았다. “아늑한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며칠 계셔 보

실랍니까?” “예끼 미친 눔, 하룻밤 자기두 답답하겠다” “이 방을 답답하다

시면 좁은 굴 속에선 잠시를 못 지내시겠네요. 저는 철원 있을 때 겨우 다리 뻗

구 누울 만한 굴 속에서 일년 이태 지냈습니다” “네가 철원서 살인하구 도망

한 눔이냐?” “살인이라니요? 말만 들어두 끔찍스럽습니다” “철원서두 내 이

름 가지구 도둑질 해먹었지?” “행인을 혼내느라구 함자를 잠깐 잠깐 빌려 써

봤습니다.” “인제 알구 보니 네가 철원 있던 눔이야.” “무슨 소문을 들으신

게 있습니까?” “살인하구 도망했단 소문을 들었다.” “살인했단 악명만 뒤집

어썼지 실상 살인한 일은 없습니다.” “누가 너를 대살시킨다구 발명이냐?”

“억울한 말씀을 하시니까 자연 발명이 나옵지요.”

꺽정이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억울한 사정을 물어 주지 않는 까닭에 노밤이는

제풀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가 어느 때 하루 종일 굶고 자는데 밤에 배가

과서 잠이 잘 오지 않습디다. 그래서 무엇을 좀 얻어먹을까 하구 가까운 동네에

단 내외 사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방안에 불은 키였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서 문

구멍을 뚫구 들여다보니 서방놈은 아랫목에 앉았구 기집년은 웃목에 앉아서 마

주 바라보구 있는데 중간에 조그만 떡시루 하나가 놓였습디다. 마침 잘 왔구나

생각하구 제가 문을 열구 들어서지 않았겠습니까. 내외 연놈이 다 쳐다보면서

말 한마디 않습디다. 제가 되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우두머니 섰다가 우선 떡이

나 좀 먹구 이야기할 배짱으루 시루 앞에 와서 떡을 떼어먹는 데 한 켜를 다 먹

구 두 켜를 시작하자 웃목에 있는 기집년이 아이구 저것 봐 다 먹겠네 하구 소

리지르구 기집년의 입에서 말이 나오며 곧 아랫목에 있는 서방놈이 인제 떡은

다 내 게다 하구 소리지르며 쫓아와서 떡시루를 끌어안습디다. 나중에 아니 그

연놈이 다르며 쫓아와서 떡시루를 끌어안습디다. 나중에 아니 그 연놈이 다 흉

악한 떡보라 조그만 시루 하나 가지구 둘이 양이 차지 못하는 까닭에 내외간에

누구든지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떡을 못 먹기루 내기를 했더랍니다. 제가 그때

그건 알지 못하구 떡을 맛나게 먹는 중에 서방놈이 시루째 뺏으려구 하는 것이

괘씸해서 왈칵 떠다박질렀더니 손에 살이 있든지 그놈이 시루를 안고 자빠지며

바루 천장을 쳐다보겠지요. 이래서 제가 살인 악명을 뒤어쓰게 되었습니다” “

네 이야기란 것이 천생 미친 눔의 이야기다”꺽정이가 껄껄 웃는데 졸개도 한옆

에서 낄낄 웃었다. 노밤이는 저녁 하늘을 치어다보며 “해가 다 졌네. 저녁을 지

어서 잡숫게 해야지”하고 방안에 들어가 쌀 한 바가지를 들고 나와서 한데 걸

린 곱돌솥에 밥을 짓는데 꺽정이의 졸개와 오랜 사귄 친구같이 너나들이 해 가

며 같이 지었다.

거적문 앞에서 저녁밥들을 먹어치우고 방안에 들어와서 등잔불을 켜놓고 앉았

을 때 꺽정이가 노밤이더러 고향을 물은 것이 노밤이의 신세 이야기를 자아내었

다. 노밤이는 본래 해주 사람으로 황해감영에서 금도군사를 다니었는데 힘꼴이 든

든하고 위태한 일에 몸을 사리지 아니하여 군사로 들어간 지 불과 사오 년에 도

적 잘 잡기로 감영 안에서 이름이 났었다. 어느 때 도적 몇 놈이 약산 청량사란

절을 떨어가서 그 도적놈들 종적을 수탐하는 중에 임판서댁이란 해주서 한골 나

가는 양반의 댁 행랑에 수상한 놈이 파묻혀 있는 것은 알았으나 양반의 댁 낭속

이라 막 들어가서 잡지 못하고 그 놈이 동네 테 밖으로 나오기만 기다리었다.

어느 날 그놈이 친구 하나를 데리고 어디 나가다가 노밤이 손에 붙들리는데 그

놈이 항거할 뿐 아니라 그 친구놈도 편을 들어서 노밤이 혼자 둘을 대적한 끝에

두 놈을 함께 오라를 지웠었다. 그 친구놈은 한옆에 제쳐두고 그놈만 잡아내서

밥을 내려고 한즉 그놈이 독하고 모질어서 좀처럼 불지 아니하여 그 친구놈도

간간이 족쳐 보았었다. 두 놈을 며칠 두고 단련하는 동안에 임판서 집에서 어떻

게 감사께 청질을 하였든지 감사가 두 놈을 다 그대로 들어내 놓게 하고 노밤이

는 양민 포착하였다고 눈을 빼게 하여 대통에 눈자위를 박고 뒤통수를 쳐서 눈

알을 뽑는 마당에 감사가 무슨 선심으로 사를 내렸으나 사가 늦어서 눈알 하나

는 뽑았다가 다시 박은 까닭에 애꾸눈이가 되고 말았다.

노밤이가 병신되고 밥줄 떨어져서 집에 나와 있는지 불과 일 년 만에 늙은 어

미는 굶주린 끝에 병나서 죽고 젊은 계집은 어떤 총각놈을 붙어서 도망하여 계

집 찾아나선다고 고향을 등지고 떠나서 일 년 남짓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운달산패에 입당하여 박연중이 수하에서 칠팔 년을 지내었는데 이 동안에 양주

장사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많이 얻어들었었다. 박연중이가 자녀까지 낳은 첩이

있건만 젊은 첩을 여러 번 갈아들이었는데 한번 원첩이 새로 들어온 첩을 모함

하여 내쫓는 통에 노밤이가 새 첩에게 심부름 잘한 탓으로 원첩에게 먹혀 운달

산에 있지 못하게 되어서 운달산 나온 뒤 오륙 년 동안 재령, 서흥, 신계, 토산,

철원 여러 고을 땅으로 굴러다니고 철원서 햇수로 삼 년을 지낸 것이 한 군데서

가장 오래 있은 것이라고 하였다.

노밤이의 신세 이야기가 대강 끝난 뒤에 꺽정이가 노밤이더러 “네 기집은 이

내 못 찾았느냐?”하고 물으니 노밤이가 고개를 외치며 “운달산 들어가기 전까

지는 찾을 생각이 바이 없지 않았지요만 지금은 눈앞에 있대두 찾지 않겠습니

다.”하고 대답하였다. “남에게 뺏겨두 아깝지 않은 기집이드냐?” “말뼉다귀

라두 제 것을 남에게 뺏기구 어찌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일이 석어서 아

까운 맘두 다 없어졌습니다.” “네 나이 지금 한 사십 되었지?” “마흔에 우

사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사십 홀애비눔이 각처루 돌아다니며 남의 기집

겁탈두 많이 했겠구나.” “싫다는 기집을 우격다짐해서야 무슨 재미가 있습니

까. 저는 남의 기집 겁탈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눔, 거짓말 마라!” “제가

어디서 기집 겁탈했단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그럼 십여 년 동안 기집을 모

르구 지냈단 말이냐?” “저를 보구 꼬리치는 기집은 대개 다 받아주었지요.”

“너 같은 놈을 보구 꼬리치는 기집이 다 있더란 말이냐?” “저는 사내가 아닙

니까. 왜 기집이 꼬릴 치지 않겠습니까. 대체루 사내 싫단 기집은 제 평생에 아

직 하나두 못 봤습니다.” “그럼 왜 다시 장가는 들지 못했느냐?” “맘에 드

는 기집을 고르는 중입니다. 이번 서울 가거든 좋은 기집이나 하나 골라서 장가

를 들여 주십시오.” “미친 년이나 하나 골라주랴?” “세상에 성한 기집이 동

이 났습니까. 왜 하필 미친 년입니까?” “네가 미친 눔이니까 미친 년이 얼맞

지.” 꺽정이가 누우려고 벨 것을 찾으니 노밤이가 일어나서 퇴침과 이불을 갖

다주는데 서울 양반의 행구를 빼앗은 것이라 오시목 퇴침과 명주 이불이 토굴방

과는 어울리지 않도록 훌륭하였다.

꺽정이는 처신으로 실없는 말을 안할 뿐외라 천성이 실없은 말을 잘하지 못하

는 까닭에 졸개가 근 일 년 동안 꺽정이 수하에 가까이 돌았건만 누구하고든지

실없은 말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꺽정이가 노밤이 데리고 수작하는 말

을 졸개는 옆에서 듣고 속으로 괴이쩍게까지 여겨서 슬금슬금 꺽정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노밤이가 손끝으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경치게시리 눈치 보는 자식

일세”하고 허허허 웃어서 “존전에서 방자스럽게 그게 무슨 웃음이냐?” 졸개

가 노밤이를 나무랐다. 누워 있는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너희들 맘대루

웃구 떠들어라.”하고 말하니 노밤이는 졸개보고 “자, 어디 꾸중하시나 봐라.

이때까지 눈치만 보구두 꾸중하실지 안 하실지 모른단 말이냐?”하고 오금박듯

말하였다. “꾸중만 안 들으면 장사냐? 사람이 도리를 차릴 줄 알아야지.” “나

두 대장을 뫼시구 지내본 사람이야. 도리 차리는 건 너깐놈한테 지지 않는다, 이

자식아.” “이 자식 저 자식 아니하면 말을 못하나! 말버릇두 고약하다.” “네

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은 바엔 쇠자식이든 사람의 자식이든 자

식은 자식이겠지.” “욕지거리가 난당일세. 망할 자식 같으니.”

노밤이와 졸개가 한동안 우스개로 욕질을 하는데 졸개는 입심이 노밤이를 당

치 못하고 또 꺽정이에게 눌려서 대거리를 톡톡히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아가리

를 더럽게 놀리면 주먹으루 우겨줄 테다.”하고 팔을 내미니 “새 종아리 같은

팔뚝을 내들구 힘자랑하는 모양이냐?”하고 노밤이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 팔

씨름 한번 해볼라느냐?” “네깐 놈은 회목 잡아주지.” “흰소리 같으면 하늘

의 별두 따겠다.” “하늘의 별을 딸 놈은 있을는지 몰라두 팔씨름으루 날 이길

놈은 아직 생겨나지두 않았다.” 노밤이의 시룽시룽하는 것이 밉지는 아니하나

시룽시룽하는 까닭에 더욱 미덥지 아니하여 꺽정이는 노밤이가 저의 집으로 가

자고 청할 때 “저놈이 무슨 딴 맘을 먹구 가자지 않나. 그러나 저깐 놈이 딴

맘을 먹는다면 나를 어찌하랴.”넘보아서 두말 않고 같이 왔었으나 같이 자는

데는 조심이 바이 없지 못하여 다소 설치게 되었다. 이튿날 꺽정이가 새벽 잠이

들어서 한숨 달게 자고 노밤이와 졸개가 아침밥을 지어놓은 뒤에 비로소 일어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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