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820

임꺽정 5권 (28)

내가 속으로 ‘요년!’ 하면서 한번 허허 웃고 계집과 같이 누웠네. 서방님이란 자가 그동안 아씨 단속에 꿈쩍을 못하다가 인제 나 없는 틈을 타서 행랑 출입 을 시작한 모양이라. 내가 한번 제독을 단단히 주려고 속으로 별렀었네. 그 뒤 사오 일 지나서 보름 대목장날 장 구경을 나갔다가 옛날 남역서 살때 이웃하여 살던 사람을 만나서 술잔을 나누고 헤어질제 그 사람이 한번 놀러오라 고 말하기에 내가 그리하마고 대답했었네. 대답할 때 그 사람에게 놀러가고 싶 은 생각 외에 딴 생각이 있었네. 그날 밤에 계집더러 내일은 창원 가서 아는 사 람 좀 찾고 하룻밤 묵어서 모레 오겠다고 말하고 이튿날 식전에 사랑에 들어가 서 서방님에게 하루 말미를 말하여 첫말에 허락을 얻고 또 안에 들어가서 아씨 께 말하고 아침 먹은 ..

임꺽정 5권 (27)

아씨가 서방님에게서 외면하면서 나를 보고 "너는 고만 나가거라. " 하고 말하여 나는 밖으로 나오다가 내외간 말다툼하는 말이 궁금해서 안중문간 안에 서 발을 멈추었네. "비부를 들이더라두 사람이나 골라 들여야지. " "그래서 내 가 당신께 골라 들이시랬지요. 나같이 안방구석에 들어앉았는 사람더러 고르라 고 해노시고 지금 와서 무슨 말씀이오? “ "아무리 들어앉았더래두 배가가 양순 치 못하단 말은 들었겠지? ” "석전질을 잘하고 대정이란 벼슬을 했단 말은 들 었소. 비부쟁이로 과하지 않소? " "망나니니 개고기니 별명이 있는 자야. 과하긴 무에 과해! " "사람은 부리기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내가 실 수 없고 저를 잘 대접하면 휘어 부립니다. " "그자가 좋지 못한 사람인 줄까지 알구서 ..

임꺽정 5권 (26)

나는 김도사집 비부쟁이 노룻 하게 되는 것이 투석대 대정 첩지를 받을 때만 큼이나 맘에 좋았네. 내가 비부 노룻 하게 된 것이 작년 늦은 봄일세. 우리게 늦 은봄에는 노인도 흩것을 입는데 그때 나는 짠지국같이 된 겹옷을 입고 있었고 갓은 파립이고 망건은 파망이니 아무리 남의 집 비부쟁이라도 장가 명색을 들러 가며 그 꼴을 하고야 갈 수 있던가. 만만한데 한군데 가서 흩것 한벌을 우격다 짐으로 뺏고 또 다른 데 한 군데 가서 성한 관망을 억지로 빌렸네. 흩것을 입고 관망을 쓰고 이튿날 식전에 김도사집에를 가는데 일찍이 오란다고 너무 일찍이 가서 사랑 대문도 아직 열어놓기 전이데. 대문 밖에 초가 행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비었고 한 채는 사랑이 들었데. 사람 든 행랑 앞을 왔다갔다 하자니까 그 집 사내..

임꺽정 5권 (25)

늙은 여편네가 돌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저애가 내 며느립니다. " 하고 면면이 절을 시키었다. 그 며느리가 나이는 이십오륙 세쯤 되어 보이고 얼굴은 해반주그레하였다. "점심을 얼른 지어라. " 늙은 여편네가 며 느리를 내보낸 뒤에 "술들 잡수시겠지요? " 하고 물어서 사냥꾼 한 사람이 "없 어 못 먹습니다. " 하고 대답한즉 "손님들만 두고 나는 갈 수 없고 어떻게 하나! " 하고 한걱정하다가 말대답한 사냥꾼더러 “술을 좋아하시는 말씀이니 미안하 지만 술 좀 받아가지고 오실라오? 좁쌀을 떠드릴께. " 하고 청하였다. 손님들만 두고 갈 수 없다고 손님을 심부름 보내려고 하는 것이 성한 사람의 일이 아니 다. 그 사냥꾼이 웃으면서 "내가 술집을 모르니 어떻게 하우. " 하고 말한 다음 에 돌석이가..

임꺽정 5권 (24)

이튿날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을 데리고 호랑이 사냥을 떠나는데 찰방이 돌 석이를 보고 "대개 며칠이나 걸리겠느냐? " 하고 물으니 돌석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날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소인의 겉가량으루 열흘 잡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오냐, 열흘도 좋다, 그 동안 내가 궁금하면 사람이라도 보내볼 터이 니 너희들이 가서 숙소를 한 곳에 정한 뒤에 곧 한번 기별해라. " "죽은 놈의 자 식이 오릿골 저의 매가루 같이 가자구 합니다. " "그자의 자식두 사냥 간다느냐? " "녜, 호랭이 잡는 데까지 따라다니겠답니다. " "그러면 사람을 보낼 때 오릿골 로 보낼 테니 그리들 알고 가거라. " 돌석이와 사냥꾼들이 죽은 역졸의 아들아이 를 앞세우고 오릿골로 왔다. 죽은 역졸의 사위는 그 처남아이의 ..

임꺽정 5권 (23)

"호랭이를 만나거든 아예 혼자 나서지 말아. 아무쪼록 조심해. 매사에 조심하면 낭패가 없는 법이야. " "녜, 조심할테니 염려 마세요. " 천왕동이가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장청으로 들어갈 때 장인 장모가 다 조심하라고 신신부탁을 하는데 안해만은 말 한마디 없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에 붙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는 천왕동이를 손짓하여 불렀다. 천왕동이가 방문 앞에 와서 "왜? " 하고 물으니 옥련이는 말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심 해요. " 하고 당부하였다, 천왕동이가 웃으면서 “호랭이에게 물려가지 않을 테니 염려 말아. " 대답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안해의 은근한 당부가 마음에 좋아서 장청에를 다 오도록 혼자서 싱글벙글하였다. 장교 열 사람이 떼를 지어 새남으로 몰려나갔다. 열 ..

임꺽정 5권 (22)

제 5장 배돌석이 1 봉산읍에서 황주읍까지 칠십 리에 거의 오십 리는 산골길인데 중란에 동선령 이 있고 새남이 있으니 동선령은 봉산읍에서 삼십 리요, 새남은 황주읍에서 삼 십 리다. 새남 남쪽에서 서남쪽으로 벌려 있는 한철산과 발양산은 봉산 땅이요, 북쪽으로 더 들어가는 무인지경 산골은 황주땅이요, 동쪽에 있는 삼봉산과 서쪽 에 있는 정방산은 모두 두 골의 접경이다. 새남 근방에 호랑이 나다닌다는 소문 이 있던 중에 황주읍내 사람 하나가 봉산읍내 볼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새남 아래서 대낮에 호환을 당하였다. 그 사람의 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안 해가 있어서 이틀 사흘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마침내 호환에 간 것을 알고 두 고부가 다같이 죽으려고 날뛰는 끝에 그 어머니는 상성이 다 되었다. 그..

임꺽정 5권 (21)

양주 꺽정이 집에서는 천왕동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궁금히들 여 기던 차인데 의외에 봉산 가서 혼인 정하고 온 이야기를 듣고 꺽정이는 "내 근 심 하나가 덜린 폭이다. "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백손 어머니는 "우리 천왕동이 도 장가를 들 날이 있네. " 하고 펄펄 뛰다시피 좋아하고 애기 어머니는 "봉산 꾀꼬리가 머리 곱게 빗구 황도령에게로 시집을 오면 양주 꾀꼬리가 서운하겠네. " 하고 조롱할 말을 잊지 아니하였다. "양주 꾀꼬리는 누구요? " "양주 죄꼬리는 뒤껼 느티나무에서 울던 꾀꼬리지, 누구는 다 무어야. " "나는 양주 꾀꼬리두 사 람이라구. " 천왕동이와 애기 어머니가 실없은 말을 주고받을 때 꺽정이가 옆에 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구 대사 치를 의논이나 하지. " 하고 나무라듯..

임꺽정 5권 (20)

"장모는 본래 초례 지낸 뒤에 상면하는 법이지만 사위를 못 봐서 성화하는 사람이라 우선 속시원하라구 상면을 시키네. 자네두 아냇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보아서 맘에 궁금할 테지. 궁금치 않게 보여줌세. " 이방이 다시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가 가서 건넌방 문을 열어놓았다. 처녀가 아랫목 방문 앞에 앉았는데 맞은 편을 향하고 앉아서 뒷모양만 보이었다. "이 편으루 돌아앉아라. " "아비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얼른 돌아앉아라. " 처녀가 조금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바루 앉아라. " "어서 바루 앉아. " 옆 모양이 보이었다. 처녀가 다시 몸을 움직여서 이편을 향하고 앉았다. 그러나 고개를 깊이 숙이어서 가리마가 바로 보일 뿐이었다. "병신성스럽다. 고개를 들어라. " "백년해로할 ..

임꺽정 5권 (19)

"그러구 끝이 났네그려. 잘되었네. 아주 잘되었네. " 이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 던 손가가 “첫날 잘 치른 사람은 전에두 더러 있었답디다. 장기를 잘 두니까 내일은 걱정없지만 끝날이 아무래두 탈이오. 남의 집 다락 세간 그중에 집안 사 람두 못 보게 잠가놓은 궤짝 속에 든 물건을 무슨 수루 알아낸담. " 하고 말하니 객주 주인은 ”내일두 쉽지 않소. 장기란 게 비기기가 쉽다는데 꼭 이겨야지 비 겨두 못쓴다우. 총각이 아무리 장기를 잘 두더래두 국수장기를 이기기가 어디 쉽소. " 하고 손가 말에 운을 달고 오가 마누라가 "하늘이 정해 놓은 연분이면 절로 다 되겠지. “ 하고 말하니 유복이는 "암 그렇지요. " 하고 오가 마누라 말 에 운을 달았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보고 "우리가 내일 약수산 약물을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