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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48)

둘이 권커니잣커니 먹느라고 술을 네 번이나 더 내왔다. 술기운이 팔구 분 오 른 뒤에 꺽정이가 봉학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자네는 대체 이 세상이 어떻 다구 생각하나?”하고 물었다. “어떻다니 무슨 말이오?” “좋은 세상이냐 망 한 세상이냐 묻는 말이야.” “글쎄 좋은 세상이라군 할 수 없겠지.” “내가 다 른 건 모르네만 이 세상이 망한 세상인 것은 남버덤 잘 아네. 여보게 내 말 듣 게. 임금이 영의정감으루까지 치든 우리 선생님이 중놈 노릇을 하구 진실하기가 짝이 없는 우리 유복이가 도둑눔 노릇을 하는 것이 모두 다 세상을 못 만난 탓 이지 무엇인가. 자네는 그렇게 생각 않나?”하고 꺽정이가 흰자 많은 눈으로 봉 학이를 바라보았다. 꺽정이의 입에서 말이 부프게 나올 때 눈동자 위로 흰자가 많이 나오..

임꺽정 5권 (47)

봉학이가 그제야 뜰 위 뜰 아래에 우뚝우뚝 섰는 관속들을 내다보고 다 물려 내보낸 뒤에 “곤하시거든 좀 누우시려우?”하고 꺽정이더러 물었다. “곤하긴 무어 곤하겠나?” “아까 보니 술이 꽤 취하신 것 같습디다.” “임꺽정이가 사 십 평생에 처음 원님 기신 동헌에 들어오느라고 좀 취한 체했네.” “그럼, 우리 내아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을 먹읍시다.” “아무리나 하세.” 봉학이 가 꺽정이를 데리고 내아로 들어왔다. 계향이가 봉학이의 큰기침 소리를 듣고 방에서 마루로 쫓아나오다가 패랭이 쓴 사람과 같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해괴하게 생각하면서 마루 한구석에 비켜섰다. 봉학이가 꺽정이를 방으로 인도하고 계향이를 돌아보며 “양주 장사 가 오셨으니 들어와 보입게.”하고 말하였다. 양주 장사 임꺽정이가 ..

임꺽정 5권 (46)

지난번 꺽정이에게 편지할 때 한번 유복이를 데리고 와서 몇 달 놀다 가라고 말하였더니 꺽정이에게서 육로 천 리, 수로 천 리에 놀러가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자기나 유복이나 원님의 손님 노룻할 주제가 못 된다고 거절하는 회답이 왔었다. 봉학이가 한번 서울을 올라갔다 오려고 생각하고 먼저 계향이에게 의논하니 계향이는 “수이 내적으로 옮기실 테라면 먼 길에 왔다갔다 하실 것 무어있소.” 하고 그만두면 좋을 뜻을 말하였다. “그렇게 쉽게 내직으루 옮기게 될지 누가 아나.” “지난번 구사또 서간에 그런 말씀이 기셨다고 하셨지요.” “차차 주선해 보자는 허락은 기셨지만 그것두 한번 가서 보입구 말씀으루 품해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상서로 사뢰어도 구사또께서 어련히 나으리 일을 생각해 주시리까.” “여러 가지 볼일..

임꺽정 5권 (45)

3 제주도 남쪽땅 구십여 리 폭원에 대정이 서쪽에 있고 정의가 동쪽에 있으니 정의읍에서 보면 국내에 이름높은 한라산이 서로 이십 리요, 신선의 놀이터라는 영주산이 북으로 사 마장이며 동으로는 성산포가 이십오리인데 해수 많이 모이 는 우도가 가까이 있고 남으로는 바다가 칠 마장인데 호호망망한 남해가 가이없 다. 산에서는 희귀한 약재가 나고 바다에서는 풍부한 해물이 나건마는 백성은 살기가 간구하였다. 토지가 대개 돌서덜밭인데 농구가 변변치 못하여 밭벼, 서속 같은 곡식이 소출이 적고 잠수질로 해의, 전복 등속을 따고 낚시질로 은구어, 옥 두어등속을 잡으나, 그물 같은 좋은 어구를 쓸줄 모르고 사내가 적고 계집이 많 은 곳이라 사내는 놀리고 계집이 일하는 것이 풍속인 까닭에 여름살이도 주장 계집의 일이요, 고..

임꺽정 5권 (44)

계향이가 몸져 누운지 육칠 일 만에 머리 들고 일어나기는 하였으나 한편 다리 팔을 조금도 쓰지 못하였다. 의원들의 말이 영영 반신불수가 될 것 같다고 하여 계향이는 문병오는 사람을 보면 한숨을 쉬고 눈물까지 흘리었다. 계향이가 병신이 되엇 기생 거행을 못하겠다고 소지를 바치니 감사가 행수기생을 불러서 물어보고 또 수노를 내보내서 알아보았다. 반신불수 병신 된 것이 확실하단 말을 듣고 감사는 계향이의 이름을 기적에서 빼고 다른 계집으로 대까지 들여세우게 하였다. 정의 현감 교지가 서울서 내려온 뒤 벌써 여러날이 지나서 신연 하인이 올때도 되었으 나 풍랑에 뱃길이 늦었는지 아직 오지 아니하였다. 이때 마침 감사의 과만이 다 차서 내직으로 옮길지 잉임이 될지 모르는 중이라 봉학이는 아주 알고 갈 마음 이 있었..

임꺽정 5권 (43)

“그게 무슨 말씀이오? 장계를 하는데 일이 중대치 않게 되도록 어떻게 하오? 장 계를 하자면 자연 이봉학과 계향에게 문초를 받아서 전후사 사실대로 주달하지 별수 있고. 장계학 때 내 처지로는 자열소까지 아니할 수 없소.” “이러고 저러 고 하관이 소지 놓고 가면 고만 아닙니까. ” “영감이 소지를 놓고 가면 소지 놓고 가게 된 사실을 위에 장계할 수 밖에 없단 말이오.” “그러면 어떻게 해 야 좋겠습니까?”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질정한 생각이 없으니 도사를 불 러서 같이 상의해 봅시다.”도사가 불려들어와서 감사와 부윤의 말을 들은 뒤에 일을 버르집으면 감사 말씀과 같이 의외에 중대하게 될는지 모르고, 또 그렇게 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대윤으로 감영 비장과 기생 다툼하다가 소조를 당하였다는 소문이 세상..

임꺽정 5권 (42)

“아이구, 저게 왠일이야?” 늙은이와 계집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아이구, 우리 세간을 어떻게 하나. " 동자하는 여편네는 근두박질하여 밖으로 나갔다. “불이야! ” 소리가 연해나며 이웃들이 모여와서 불을 잡기 시작하였다. 계집아이는 감 영으로 뛰어가고 늙은이는 안을 비울 수 없어서 안마당에서만 왔다갔다 하였다. 다행히 사람이 빨리 서둘러서 불이 커지지 못하고 잡히었다. 불 잡은 사람들이 차차 흩어질 때 비로소 계향이가 계집아이를 데리고 감영에서 나왔다. 아직 가 지 않은 사람들을 인사하여 보낸 뒤에 계향이는 심부름하는 사내에게 불난 까닭 을 물었다. “불기없는 광채에서 어째 불이 났을까?” “모르겠습니다. " “모르 다니 불날 때 어디 있었기에 모른단 말이야?” “방에 누워 있다가 불이야 소리 를 듣..

임꺽정 5권 (41)

봉학이가 낮에는 선화당과 비장청으로 왔다갔다 하다가 해를 지우고 저녁밥은 감사의 분부로 선화당 대청에서 다른 비장들과 같이 먹고, 석후에는 감사를 뫼시고 서서 몸으로 겪은 일과 눈으로 본 일과 귀로 들은 일을 대강 다 말씀하고 이내 감사 께 저녁문안을 마친 뒤에 비로소 처소로 내려왔다. 봉학이의 처소는 전에 있던 곳이니 공방에서 병방으로 소임이 바뀐 후에도 감사의 말씀으로 처소만은 옮기 지 아니하였었다. 호젓한 처소에 계향이가 혼자 촛불을 돋우고 앉았다가 봉학이 를 맞아들였다. "저녁밥은 어디서 먹었느냐?" "여기서 먹었세요. " "집에서 들여 왔더냐?" "나으리가 통인에게 전갈까지 해 보내주시고 웬 딴 말씀이세요?” “ 나는 그런 일이 없는데 실없은 형방이 어주전갈을 시킨 모양인가. " “이번에 참 말..

임꺽정 5권 (40)

사수들의 화살은 한데 떨어지는 것이 많고 또 빗맞는 것이 많았으나 봉학이의 화살은 하나가 나가면 반드시 적병이 하나씩 꺼꾸러졌다. 봉학이가 옆에 놓인 화살을 반도 채 다 못 써서 적병이 뒤로 물러나가기 시작하였다. 봉학이가 적의 퇴진하는 것을 보고 성문을 열고 나가 서 뒤쫓으려다가 퇴군하는 적을 뒤쫓을 때는 복병을 조심하여야 한다고 들은 말 이 있는 까닭에 적의 복병이 있을까 염려하여 고만두었다. 적이 멀리가서 눈에 보이지 않은 뒤에 군사 몇십 명을 성 밖에 내보내서 죽은 적의 머리를 베어오라 하였더니 적이 퇴진할 때 머리를 잘라간 것이 많아서 베어온 머릿수는 십여 개 밖에 안 되었다. 성 앞문에서는 적의 머리를 십여 개나마 얻었지만, 성 뒷문에 서는 한 개도 얻지 못하여 첨사가 봉학이를 볼 때 부끄러워..

임꺽정 5권 (39)

2 봉학이의 주장 이윤경이 전라감사로 승탁될 때 직함이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 수군절도사뿐이라 도내 병사, 수사는 휘하에 들지 아니하였는데 이듬해 봄에 나 라에서 순찰사 직함을 더 주어서 병수사 이하 제장을 전제하게 되었다. 주장의 권사 이하 제장을 전제하게 되었다. 주장의 권한이 커지면 비장의 기세가 오르 는 것은 정한 일이라 각 비장이 다 좋아하는 중에 특별히 병방비징인 중군은 자 기의 직함이 돋친 것같이 바로 의기가 양양하였다. 병방비장이 어깻바람이 나게 다니는 것을 예방비장은 눈 거칠게 보았던지 같이 앉았는 다른 비장들을 돌아보 고 “중군은 요새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 하고 말하여 “다 같은 중군 이라두 순찰사 영문 중군이 좋거든요. " “그 사람 자기 말이 요새는 밥맛을 모 른다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