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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0)

카지모도 2023. 2. 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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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는 본래 초례 지낸 뒤에 상면하는 법이지만 사위를 못 봐서 성화하는 사람이라

우선 속시원하라구 상면을 시키네. 자네두 아냇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보아서

맘에 궁금할 테지. 궁금치 않게 보여줌세. " 이방이 다시 사람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가 가서 건넌방 문을 열어놓았다. 처녀가 아랫목 방문 앞에 앉았는데 맞은

편을 향하고 앉아서 뒷모양만 보이었다. "이 편으루 돌아앉아라. " "아비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얼른 돌아앉아라. " 처녀가 조금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바루 앉아라. " "어서 바루 앉아. " 옆 모양이 보이었다. 처녀가 다시

몸을 움직여서 이편을 향하고 앉았다. 그러나 고개를 깊이 숙이어서 가리마가

바로 보일 뿐이었다. "병신성스럽다. 고개를 들어라. " "백년해로할 사람이다. 보

기 부끄러울 것 없다. " 이방의 잔소리에 처녀가 고개를 들어서 비로소 그 얼굴

이 다 보이었다. 이방이 자리에 와서 앉으며 "안햇감이 어떤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정신 놓고 처녀를 바라보며 건성으로 “녜. ” 하고 대

답하였다. 이방은 허허 웃고 이방의 안해는 빙글빙글 웃고 심부름하는 계집아이

와 드난하는 여편네들까지 입을 막고 웃었다. 천왕동이는 남들이 웃건 말건 돌

보지 않고 처녀만 바라보는 중에 처녀가 살며시 눈을 거들떠보다가 눈과 눈이

서로 한번 마주치기까지 하였다. 이방이 천왕동이의 어깨를 치면서 "여보게 나

좀 보게. " 하고 소리쳐서 천왕동이는 겨우 고개를 돌이켰다. "오늘 부엉사위 용

왕당에 노구메를 올리구 와서 사위 취재가 끝났다는 방을 써붙일 텐데 우리 내

외 가는데 자네두 같이 가세. " "노구메는 왜 올리시렵니까? " "용왕이 자네 같

은 좋은 사위를 지시해 주셨는데 노구메 한 그릇두 안 올려서 쓰겠나? “ 천왕

동이는 혼인 완정을 뒤로 미루려던 처음 생각이 그 동안에 가뭇없이 사라져서

노구메를 올리러 마자는 데도 싫단 말을 아니하고 "아무리나 하십시다. " 하고

허락하는 말로 대답하였다. 이방이 그 안해에게 용왕당에 나갈 준비를 차리라고

이른 뒤에 천왕동이를 보고 "우리는 바깥방으루 나가세. " 말하고 곧 먼저 일어

서니 천왕동이는 건넌방 바라보이는 자리를 뜨기가 싫어서 꾸물거리다가 가까스

로 몸을 일으켰다. 바깥방에 나와서 앉은 뒤에 이방이 천왕동이더러 "택일두 오

늘 아주 하세.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택일이라니 혼인할 날 말인가요? " 하

고 물었다. "그럼 물론 성례할 날 말이지. 택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두 좋지만 용

왕당에 가서 노구메 올린 끝에 내 손으루 하겠네. " "날 가릴 줄까지 아십니다그

려. " "조금 아네. 내게 좋은 책이 있어. " 하고 이방은 벽장세서 책 한 권을 꺼

내 들고 "이 책만 볼 줄 알면 무슨 택일이든지 다 할수 있네. " 하고 천왕동이를

내어주니 "나 같은 까막눈이는 볼 줄을 알아야지요. " 하고 천왕동이는 책을 받

지 아니하였다. "자네 글을 못 배웠나? " "백두산 속에 글방이 있어야지 글을 배

우지요. " "장기는 어디서 배웠나? " "양주 와서 배웠습니다. " "거기 장기 잘 두

는 사람이 있나? " "장기를 두는 사람은 많아두 잘 두는 사람은 없세요. " "전에

과천에 오장기라구 장기 잘 두는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가서 두어 봤나? " "오

씨에게 배운 장기와는 더러 두어봤습니다. " "오씨에게 배운 사람이 오씨만한 장

기가 있을라구. " "제법 두는 사람이 한두엇 있습디다. 그렇지만 말 들으니까 다

오씨만 못하답디다. " "그럴 테지. 장기를 오씨만큼 두기가 쉽지 않거든, 오씨가

나버덤 좀 세었었네. " "장기 한번 두십시다. " "언제 장기 두구 있을 틈이 있나,

용추에 가야지. 이 다음에 두지. " "장기는 이내 한번 못 두어보구 가겠네요. " "

자네는 소문 없는 국수장기야. 자네 장기가 과천 오씨버덤 나면 낫지 못할 것

없네. ” 이방이 천왕동이와 장기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 중에 그 안해가 되창

앞에 와서서 "여보 좀 나오시오. " 하고 불렀다. "왜? “ 하고 이방이 곧 일어서

나가더니 얼마 뒤에 "여보게 잠깐 들어오게. " 하고 천왕동이를 불렀다. "점심은

좀 늦더래두 갔다 와서 먹구 술이나 한잔씩 먹세. " 이방이 천왕동이를 데리고

술을 먹고 난 뒤에 이방 내외는 노구메 제구를 심부름꾼 지워서 앞세우고 천왕

동이와 같이 부엉바위로 나갔다. 부엉바위는 읍에서 시오리 길이 채 못 되었다.

바위 위 솔밭 속에 있는 용항사당에 올라가서 용추를 굽어보고 다시 내려와서

용추물이 넘쳐 흘러나가는 냇가에서 새옹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할 때 이방이

흘저에 아차 소리를 질러서 그 안해가 까닭을 물었다. "택일할 책을 안 가지구

왔네. 언제 다시 가서 가져오나. " 이방이 한걱정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다시 가

서 가져오리까? " 하고 천왕동이가 말하였다. "아니 고만두게. 심부름꾼을 보내

지. " "그럴 것 없이 내가 잠깐 갔다오리다. " 천왕동이는 이방의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다시 읍내로 들어갔다. 새옹에 불 지피는 것을 보고 간 천왕동이가

새옹밥이 익기 전에 내왕 삼십리길을 다녀왔다. 이방은 처음에 거짓말같이 생각

하다가 천왕동이가 가지고 온 책을 보고는 안해를 돌아보며 "우리 사위가 축지

법두 할 줄 아네그려. " 말하고 내외 다같이 좋아하였다.

노구메 정성이 끝난 뒤에 이방이 용왕당 앞에 나앉아서 책을 가지고 택일을

하는데 천왕동이는 이방의 안해와 같이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방이 저고리

고름에서 필낭을 끄르고 단령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놓더니 행연에 먹을 갈아 초

필에 묻혀 들고 먼저 천왕동이의 생년월일을 천왕동이에게 물어서 적고 다음에

자기 딸의 생월생시를 안해에게 다지어 적은 뒤 책장을 이리 넘기고 무엇을 적

고 또 저리 넘기고 무엇을 적었다. 책을 한동안 뒤적뒤적한 끝에 이방이 "사윌

보름날 이날이 좋은데. " 하고 두동싸게 말하며 옆에 앉은 안해를 바라보았다. "

사월 보름이면 지금 십여 일밖에 안 남았게. 너무 촉박해서 안되겠소. " "그 뒤

에는 팔월 스무날과 구월 초닷샛날이 좋구 그 안에는 좋은 날이 없네그려. " "그

럼 팔윌 스무날로 합시다. 햇곡식도 잡히고 그때가 좋겠소. " "글쎄 팔월루 정할

까. " 이방이 의향을 묻는 눈치로 옆에 앉은 천왕동이를 돌아보았다. "팔월은

너무 늦지 않은가요? " "혼인 완정 안하구 간다던 때와는 아주 딴판일세그려. "

"혼인을 이왕 정한 바엔 얼른 해치워버리는 것이 좋지요. " "얼른 해치우는 것이

좋지만 사월 보름날은 날짜가 너무 촉박해. " "냉수 한 그룻 떠놓구 절 한번

할 작정이면 오늘두 할 수 있지요. “ "체면이 있으니까 초례를 초라하겐 할 수

없네. " "그래두 팔월은 너무 늦어요. " "될 수 있네. 혼인날두 용왕께 취품하구

정하세. " 이방의 안해가 "용왕께 취품할 도리가 있소? " 하고 물으니 이방이 "

도리가 있겠지. 가만 있게. " 하고 대답한 뒤에 한참 생각하다가 심부름꾼을 불

러서 냇가에 가서 납작한 돌을 둘만 집어오라고 하여 심부름꾼이 집어온 돌을

이방이 받아서 물기를 씻어버리고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하나는 팔월 스무날이

구 하나는 사월 보름날일세. 이것을 가지구 용왕께 축원하구 나서 부엉바위에

붙여보세. " 하고 이방이 그 안해와 천왕동이를 돌아보았다. "둘 다 붙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테요? " 그 안해가 물으니 "그러면 구월 초닷샛날을 다시 붙여보겠네.

" 이방은 대답하고 "둘 다 붙지 않으면 다시나 붙이지만 만일 둘 다 붙으면 어

떻게 하나요? " 천왕동이가 물으니 "그건 정성이 부족한 탓이니까 새루 축원하

구 한번 다시 붙여 보지. " 이방은 대답하였다. 이방이 사당 앞에 나서서 무릎을

꿇고 한동안 입속말로 중얼중얼 지껄이고 부엉바위 위에 나와 앉아서 바위 앞이

마에 날짜 쓴돌 두개를 붙이는데 먼저 한개는 떨어지고 나중 한 개는 붙었다. "

용왕께서 사월에 혼인하라시네. " "아이구, 이거 근두박질할 일이 났구려. " "그

대루 지낼 수밖에. 내일부터 준비하면 그 동안에 대강 되겠지. ” "어떻게 된다

고 그러오? " "안 되더래두 할 수 있나. " 이방이 뒤에 와서 섰는 천왕동이를 돌

아보며 "자네는 바쁘지 않겠나? " 하고 물으니 "그 동안에 양주를 한번 갔다오

면 고만이지 바쁠 거 무어 있세요? “ 하고 천왕동이는 일이 소원대로 되어서

벙글벙글 웃는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부엉바위 나왔던 일행이 읍에 들어을 때 길거리에서 동선관 갔다 오는 일행과

서로 만났다. 손가가 천왕동이를 보고 "이 사람아, 남들을 기다리라구 해놓구 어

디 다른 데를 간단 말인가. " 하고 책망하는데 천왕동이는 유복이를 향하고 "미

안하게 되었소. " 하고 사과하였다. 이방의 안배가 오가 마누라를 보고 "저 마누

라가 요전에 우리 집에 왔다 간 이 아니라고. " 하고 알은 체하여 서로 인사 수

작하는 동안에 이방이 천왕동이에게 "자네 동행들인가? " 하고 묻고 나서 유복

이와 손가를 차례로 인사한 뒤에 "우리 집으루 같이들 갑시다. " 하고 끌어서 두

일행이 함께 이방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천왕동이가 동행들까지 데리고 이방의

집에 와서 점심 저녁 두 끼를 대접받았다. 유복이와 손가가 이방에게 작별할 때

천왕동이도 역시 작별 인사를 말하려고 한즉 이방이 "자네는 내일 아침을 내게

와서 먹구 가게. " 하고 말하였다. "내일 식전 일찍들 떠난다니까 올 수가 없을

걸요. "아침을 일찍 시켜놓구 기다림세. " "그럴 것 없세요. 여럿이 같이 먹구 떠

나는 게 편하지요. " "그러면 여럿이 다같이 오게. " 유복이가 먼저 "천만의 말씀

이오. " 하고 고개를 외치고 또 손가가 뒤따라서 "오늘두 폐를 많이 끼쳤는데 내

일 아침 또 오다니 될 말인가요. " 하고 고개를 외쳐서 이방은 "그러면 내가 내

일 식전 조사 보러 가는 길에 객주에 들림세. " 하고 말하여 작별은 흐지부지하

고 객주로 돌아왔다. 이튿날 식전에 과연 이방이 일찍이 객주에 와서 오가 마누

라에게까지 잘 가라고 인사하고 천왕동이를 따로 보고 "혼인 날짜가 급하기두

하려니와 자네는 대사라구 발심 섭력해 줄 사람이 별루 없는 모양이니 미비한

것이 있더래두 그대루 오게. 내가 여기서 주선할 건 주선하구 변통할 건 변통해

줌세, 아무쪼록 열나흗날 전에 여기를 대어 오두룩 하네. 조사가 바빠서 떠나는

건 보지 못하구 가니 잘 가게. " 다정한 말로 작별하고 갔다. 봉산서 돌아오는

길에 천왕동이는 청석골을 들르지 않고 양주로 바로 가려고 하니 유복이가 "오

늘 우리게 가서 쉬어서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하고 끌었다. "같이 가서 할

일이 있소? " "자네 혼행 떠나는 것을 보러 갈 텔세. " "볼 것두 없겠지만 보구

싶다면 내다 갈 때 잠깐 들러가리다. " "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보러 가겠네. "

오가 마누라까지 "오늘 하루 우리게 와서 묵어간다구 낭패되지 않을 테니까 고

집세우지 말구 같이 가요. " 하고 끌어서 천왕동이는 청석골서 하룻밤 지내고 이튿

날 유복이와 동행하여 양주로 떠나오는데 유복이가 전에 없이 큼직한 보따리를

들고 나서서 천왕동이가 "크게 무슨 보따리요? “ 하고 물으니 유복이는 "양주

갖다 둘 것일세. " 하고 더 말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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