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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혼불 6권   13. 지정무문  혼인하면 반드시 따르는 것이 사돈서였다. 이는 일생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로소 각기 그여아와 남아를 성혼시키고 난 후에,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시 세상에서 제일 가갑고도 어려운 사이가 된 안사돈끼리, 극진한 예절을 갖추어 정회를 담은 편지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양가의 정의를 더욱 두텁게 하고, 자식들의 근황이며 집 안팎 대소사를 마치 같이 겪어 나가는 것처럼 이야기로 나누는, 정성과 격식이 남다른 편지였다. 허물없는 친구에게 흉금을 털어놓는 사신이 아니면서도 자식을 서로 바꾼 모친의 곡진한 심정이 어려 있고, 그런 중에도 이쪽의 문벌과 위신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푹격을 지녀야 하는 사돈서는, 조심스러우나 다감하였다. 궁체 달필로 문장을 다하여 구구절절 써내려..

혼불 6권 (44)

"지금 애기씨가 작은집으로 내려가야겠는데요?"거두절미한 효원의 말에 율촌댁보다 더 놀란 사람은 오류골댁이었다. 그리고 누워 있는 강실이도 그 말을 어렴풋이나마 들었는지 몸을 움칠하였다."너 지금 정신 나갔냐? 아니, 아니 너. 너 , 누구 앞이라고.""긴 말씀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서두르셔야 해요.""이런 괘씸한 아, 이런...... 이런 일은 내 나고 첨 보겠네. 아니 너."율촌댁이 얼굴에 기가 질린 노기를 띄우며 강실이 쪽으로 한 무릎 다가앉았다. 절대로 안된다는 표시였다. 오류골댁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만 있다. 서글프고 야속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어머님. 사정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말을 해라.""지금은 안됩니다."어기가 찬 율촌댁이 엉버티고 앉은 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