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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1)

안마당의 문간과 전각 중간에 놓는 것을 서림이가 상궁의 한다 못한다 대답을 기다리는 중에 곁눈으로 보고 일꾼을 불러 말을 일러서 마루방과 문간 어름에 옮겨놓게 하여 상궁방 맞은편 곳간 앞은 불이 멀어서 어스무레 하고 문간에서 바로 보이는 전각 안은 불이 미치지 못하여 어둠침침하였다. 무수리가 사내 하인들에게 말하는 상궁의 분부를 서림이는 듣고 고개를 끄덕하며 씽긋 웃고 먼저 곳간 앞으로 가면서 세 사람을 손짓하여 불렀다. 네 사람이 머리돌을 맞대다시피 하고 쭈그리고 앉은 뒤에 서림이가 옆에 사람 겨우 들을 만한 입속말로 ”황두령, 인제 청석골 나가서 교군을 가지구 오시우.“ 하고 말하니 ”승교바탕을 천만이가 보낼 텐데.“ 황천왕동이가 말을 반동강 하고 서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천만이게 부탁한 승교..

임꺽정 8권 (10)

이때 해가 거의 다 져서 매로바위에는 아직 햇발이 남아 있으나 층층대 아래 굿판에는 벌써 땅거미 다 되었다. 그네 뛸 사람도 훨씬 줄고 굿구경하던 사람도 많이 빠졌다. 굿은 점심 전 세 거리, 점심 후 일곱 거리, 모두 열 거리를 마치고 앞으로 두 거리가 남은 것을 저녁들 먹고 마저 하기로 되어서 상궁이 굿판에서 대왕당으로 올라오는데 당집 안에 잡인을 금하였다. 청석골 사내들은 김억석이 의 말을 좇아서 안식구들만 마루방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서 매로바위 밑에 와 모여앉았다. 길막봉이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평이고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도 별로 염려하는 빛이 없는데, 서림이만 혼자 조바심을 하였다. “천만이가 산밑에 다 내려갔겠지?” 조금 있다가 “천만이가 제 집에 갔을까?” 또 조금 있다가 “교군꾼이 지금쯤..

임꺽정 8권 (9)

배돌석이의 돌팔매를 맞은 왈자들이 모조리 죄다 면상을 맞아서 혹은 이마가 깨지고 혹은 볼이 터지고 혹은 입술이 짜개진 위에 앞니까지 부러지고 처음에 뒤로 설맞아서 망건 뒤만 끊어진 자도 나중에 앞으로 쫓아나가다가 삭은 코를 맞아서 코피로 옷을 물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 지난 뒤에는 고꾸라지고 엎 드러진 자들이 거진 다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서 상처들을 서로 보아주고 만져 주고 하였다. 그중의 영수격인 도사의 아들만은 뒤통수에 한번, 양미간에 두번 되게 맞고 고꾸라질 때 까물친 채 이내 깨어나지 아니하여 여럿이 모두 와서 구 원들 하였다. 반듯이 눕혀놓고 띠, 옷끈 다 풀고, 버선, 행전 다 벗기고 중간에서 가슴을 문지른다, 갈빗대를 문지른다, 옆에서 손바닥을 비빈다, 발바닥을 비빈다, 한동안 좋이 애..

임꺽정 8권 (8)

그 왈자패가 험한 산길에 발버둥이치는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느라고 빨리 가 지 못하여 김억석이 아들이 곧 뒤를 쫓아오게 되었다. 그자들이 송악산의 수풀 속 시냇가 으슥한 곳을 다 버리고 멀찍이 부산동까지 와서 어느 산모롱이 구석 진 곳으로 들어갔다. 산모롱이를 돌아 얼마 아니 들어가서 나지막한 언덕 아래 편편한 잔디밭이 있는데 아늑하기가 방안과 같았다. 미리 자리를 잡아놓은 듯 잔디밭에 기직이 서너 닢 깔려 있었다. 김억석이 아들이 아이들 마음에 그자들 하는 짓을 보고 가려고 산모롱이에 선 큰 소나무 뒤에 와서 은신하고 바라보았 다. 아무리 약한 여편네라도 죽기 한정 날뛰는 것이란 무서워서 여러 사내의 힘 으로 좀처럼 주저앉히지 못하였다. 죽이라고 악쓰며 날뛰는 황천왕동이의 안해 를 중간에 넣고 왈자들이..

임꺽정 8권 (7)

휘파람 소리가 오고가는 동안에 백손 어머니는 아득한 아이 적 일이 생각에 떠올랐다. 아렴풋한 꿈자취와 또렷한 환조각이 한데 뒤섞여서 나타나는 듯 사라 지고 사라지는 듯 나타나서 정신 놓고 멍하니 서 있는데 다시 들리는 휘파람 소 리, 동생이 자기를 오라고 부르는 것만 같아서 허둥지둥 신발을 신었다. “어디 를 가실라고 그러세요?” “바위에 가실래요?” “아이 고만두시지, 거긴 가 무 어 하세요.” 다른 안식구들의 말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는 듣는지 만지 대답 한 마디 아니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멍석자리에서 길로 내려설 때 “우리 영감을 혼자 가시랄 수 있나, 내가 따라가야지.” “갈 테면 사람 없는 데로 해 갑시다. ” “아무리나.” 백손 어머니가 곽능통이의 안해와 같이 대왕당 뒤를 돌아서 매로바위께로 오..

임꺽정 8권 (6)

청석골 일행이 그네터에서 멍석자리로 돌아왔을 때, 자리를 보라고 한 김억석 이의 아들은 어디 가고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어나지 아니하여 황천왕동이가 “이것이 임자네들 자리요?”하고 시비조로 말을 붙이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빈 자리에 누구는 못 앉겠소.” 말대꾸를 하였다. “빈 자 리엔 앉아두 좋겠지만 주인이 왔으면 내놔야지.” “앉았는 사람이 주인이지 또 따루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이오?” 말하는 꼴이 문문히 자리를 내놓을 것 같지 않더니 “임자들두 한 번씩 꺼꾸루 치어들려 보구 싶소?” 황천왕동이의 으름장 한번에 말대답하던 사람과 앉아 보던 사람이 모두 흘낏흘낏 눈치를 보며 슬금슬 금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한동안 지난 뒤에 김억석이의 아들이 와서 “ 자리 안 보고 너 어..

임꺽정 8권 (5)

무당과 박수들이 그네터 가까이 들어섰는 사람들을 훨씬 뒤로 물리고 그네터 옆에 새 멍석을 깔고 멍석 위에 등메를 덧깔고 그리하고 풍악을 잡히면서 대왕 과 대왕부인의 목상을 조심조심 받들어 내다가 등메 위에 세워놓았다. 장고 멘 무당과 징 든 무당이 저, 피리, 해금 등속을 가진 악수들을 데리고 그네 뒤에서 멀찍이 둘러섰다. 장고소리로 풍악이 시작되며 대왕을 그네 위에 올려세웠다. 함 진아비의 질삐와 같고 내행 보교의 얽이와 같은 무명 끝으로 아래위를 동여매는 데, 아랫도리는 좌우쪽 그넷줄에 각각 따로 잡아매었다. 젊고 끼끗한 무당들이 그네 뒤에서 슬쩍슬쩍 물을 먹이면서 바로 세게 먹이는 것처럼 ‘이잇’소리들 을 질렀다. 얼마 동안 그네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 뒤에 징소리로 풍악이 그치며 대왕을 그네에서 끌..

임꺽정 8권 (4)

바위 아래 굽이진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건너편 산등갱 위에 당집이 여러 채 있 고 또 이편 이편 큰 바위 비슷 뒤에 큰 당집 앞 비탈 위에 둥구나무가 섰고 그 둥구나무에 그넷줄이 매어 있었다.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길은 그네터 옆에 층 층대요, 건너편에서 이편으로 다니는 길은 장등 위에 있었다. 장등은 좌우쪽으로 휘어서 활등 같고 장등 아래는 비탈이고 비탈 아래는 평바닥인데 평바닥도 물매 되지 않는 지붕만큼 지울어졌다. 기울어진 평바닥에 멍석을 죽 늘여깔고 차일을 높이 친것이 굿할 자리를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여러 당집에 사람들이 들락날 락하고 장등길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길 위의 잔디밭에 사람들이 웅긋쭝긋 섰기도 하고 또 퍼더버리고 앉았기도 하고 굿은 아직 시작이 안 되었는데 굿할 자리에도 사람들..

임꺽정 8권 (3)

마전댁이란 배돌석이의 안해 말이다. 아무 두령이니 아무 두령이댁이니 하는 칭 호는 도중 밖에 나와서 쓰기 어려운 까닭에 이번에 청석골서 나올 때 사내들은 모두 성밑에 서방을 붙여서 아무서방이 부르기로 하고 여편네들은 본집의 골 이 름을 따라서 아무댁이라 부르기로 하여,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봉산댁이 되고 길 막봉이의 안해는 죽산댁이 되었는데, 백손 어머니는 본집이 없는 사람이라 전에 살던 양주로 양주댁이라고 하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마전 무당의 집을 본집이라 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대로 마전댁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 지 대신 따님이 울구 동생 대신 누님이 빌었으면 고만 쓱삭 다 됐구려. 그래 그 말 할라구 부르셨소?” “마전댁 낯을 보아서 내가 다른 데로 안 가고 여기서 자겠다고 빌었으니까..

임꺽정 8권 (2)

사정을 하고 평소에 말수 적은 박유복이의 안해까지 “대장께서 형님을 위해 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걸 그 말씀을 어기시면 됩니까. 형님이 고만두셔야 지요. ” 사리로 권하였다. 여러 여편네들이 입을 모은 것같이 다같이 백손 어머 니더러 구경 갈 생각을 고만두라고 권하고 달래는 중에 오직 황천왕동이 안해만 말이 없었다. 여러 입이 백손 어머니의 고집덩이를 녹이어서 시원치 않게나마 아니 갈 의사를 말하게 되었다. 백손 어머니가 안 간다고 하니 시누님을 따라간 다던 황천왕동이의 안해도 체면을 차리느라고 자기 역시 안 가겠다고 말하는데, 가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고 가자고 끄는 사람도 없어서 마침내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여섯이 넷으로 줄었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백손 어머니에게 치사하는 뜻으로 “저이들 이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