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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4)

꺽정이의 먼저 얻은 박씨는 한미한 집에서 고생으로 자라난 색시라 진일 마른 일 여편네 일치고 못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더구나 어머니가 있어서 남의 사람 열 스물 둔 것보다 나은 까닭에 꺽정이가 바깥 심부름할 아이년 하나만 얻어주 었지만, 새로 얻은 원씨는 손끝으로 물이나 튀겼을 재상가의 딸이라 사람 없이 는 못살 위인인 까닭에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두엇을 얻어주려고 생각하고 집부터 간수 적고 방 많은 것을 구하여 정하였다. 동소문 안에 새로 산 집이 꺽 정이가 거처하는 한온이의 집과 흡사하여 안에 안방, 건넌방이 있고 또 밖에 바 깥방이 있어서 건넌방에는 상직 할미와 아이년들을 두고 바깥방에는 행랑 사람 을 들일 수 있었다. 꺽정이가 한온이와 상의하여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둘과 행랑 사람까지 다 얻..

임꺽정 7권 (23)

“각항저방심미기 두우녀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류성장익진.” “진익장성 류귀정 삼자필묘위루규 벽실위허녀우두 기미심방저항각.” 방안에서 이십팔수 별 이름을 바로 외고 거꾸로 외고 하는 중에 꺽정이 는 걸 린 지겟문을 걸리지 않은 것같이 잡아당겨서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윗목의 상 직 할미는 자리 속에 누운 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아랫목의 계집아이는 자리 위에 앉았다가 그대로 포 엎드리는데 계집아이의 몸도 떨리거니와 상직 할미의 이불도 떨리었다. 꺽정이가 눈앞에 엎드린 큰 계집아이를 내려다볼 때 죽일마음 도 안 나고 살려두고 갈 마음도 안 나서 어찌할까 주저하는 중에 문득 산 사람 으로 잡아가지고 갈 생각이 났다. 꺽정이는 방안을 한번 돌아본 뒤 아랫목에 외 서 벽에 걸린 세수 수건으로 계집아이의 입을 ..

임꺽정 7권 (22)

갔다가 성공을 못한 것처럼 속여볼까, 아주 뱃심을 부리고 내대어볼까, 숫제 어디로 피신하여 볼까 이것저것 모두가 신통치 못하고 꺽정이를 움직여 보았으면 좋을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하면 움직일 수 있을까 종일 생각하였다. 이날 석후에 꺽정 이가 새집에 가려고 나설 때 노밤이는 미리 의관을 정제하고 있다가 얼른 정하 에 내려가서 밑도끝도 없이 “저는 오늘 저녁에 선다님께 마지막 하직을 여쭙겠 습니다.” 하고 허리를 구부렸다. “마지막 하직이라니 무슨 소리냐?” “오늘 밤에 제가 모교를 가기루 작정했는데 꾸중을 들을까 봐 말씀을 진작 여쭙지 못 했습니다.” “모교를 가다니?” 노밤이가 다른 사람 없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사방을 휘 돌아보고 나서 “기집애를 죽이러 갑니다.” 하고 나직이 말하였다. “네가 원수를 ..

임꺽정 7권 (21)

꺽정이가 색시 장가를 들어서 새로 살림까지 차렸건만 전과 같이 한첨지 집에서 유숙 하고 식사하였다. 꺽정이는 새집으로 아주 옮겨갈 의사도 없지 않았으나 거처 음식이 불성모양일 것을 염려하여 한온이가 지성으로 붙들어 못 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 나 꺽정이가 매일 밤에 가서 자고 올 뿐 아니라 낮에 가서 앉았다 오는 까닭에 처소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한온이가 계집에게 성화를 받다 못하 여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계집은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주는 것으로 듣고 즉시 꺽정이의 처소로 쫓아왔다. 꺽정이가 마침 처소에 없는 때라 계집이 빈 안방문 을 열어보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을까 집에 갔다가 다시 올까 주저하는 중에 건 넌방에 혼자 들어 엎드렸던 노밤이가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주머 니 ..

임꺽정 7권 (20)

"그런데 어째 나이 이십이 되두룩 여위지 못했을까?" "처음에 용인 이승지 영감 의 손자하고 혼인을 정했다가 신랑감이 툭 죽어버려서 까막과부가 되고 그 다 음에 다시 함춘동 황참의 영감의 아들하고 혼인을 정했는데 황참의 영감 상사가 나서 지금 대삼년하는 중이라오." "까막과부에 대삼년에 참말 팔자 험한 색시로 군." "그뿐만이면 오히려도 좋지만 아직 두 번이 더 남았다오." "무에 두 번이 더 남았단 말인가?" "색시의 팔자가 어떻게 험한지 세 번 과부 된 뒤에라야 잘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오. 개가를 큰 험절로 치는 양반의 댁 따님으로 세 번씩 과 부 될 수 있소. 그러니까 까막과부로 팔자 때움을 하는 모양인데 세 번 과부가 팔자에 매였다면 아직두 두 번이 더 남지 않았소." "원판서 내외가 기막히겠네..

임꺽정 7권 (19)

꺽정이가 건넌방 문을 듣고 한온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산리뭇골에 사람을 보내봤나?” 하고 물으니 한온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 사람을 보내지 않구 제가 갔다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화재 난 데 가 보 았나?” “선생님 큰일을 내셨습니다. 세력이 충천하는 윤원형이 집 사람이 십 여 명씩 죽었으니 뒤가 조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이 감쪽같이 되었으니 까 뒷염려 없을 줄 아네.” “글쎄요, 일이 앞으루 어떻게 벌어질는지 아직은 모 르겠습니다.” “이번에 일을 저지른 건 내 본의두 아닐세.” “그놈들의 뒤를 밟아서 쫓으러 가셨다더니 어떻게 집에다가 몰아놓구 태죽이셨습니까?” 꺽정이 가 여러 사람을 집에 몰아넣은 것부터 대강대강 이야기 하는 중에 방문이 열리 며 순이 할머니의 얼굴이 나..

임꺽정 7권 (18)

이 동안에 차지의 옷자락이 불에 타는라고 연기가 나는데 꺽정이가 불을 끄지 않고 도리어 이불폭, 이불솜 남은 것을 불위에 던져서 얼마 안 있다가 불꽃이 일어났 다. 연기가 방안에 자욱할 때 꺽정이는 마루로 나오고 연기가 방안에서 쏟아져 나올 때 꺽정이는 마당으로 내려오고 또 검은 연기속에 붉은 불길이 넘실 할때 꺽정이는 밖으로 나왔다. 산림골 사람들이 과부 모녀 사는 외딴집에서 불이 난 것을 알고 동이, 자배기 들을 들고 쫓아와서 우선 우물을 들여다보니 둥천에 섰 던 그리 작지도 않은 향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거꾸로 우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이 향나무를 누가 뽑아서 처밖았을까.” “이것을 뉘 장사루 뽑는단 말인 가?” “글쎄 이거 별일 아닌가.” “잔소리 말구 얼른 물들 퍼내게.” “박샌네 과댁 모녀가..

임꺽정 7권 (17)

“나이 많다구 파의한다던가? ” “아니오. 내일이라도 곧 주단거래하고 속히 택일 해서 성례하자고까지 말이 됐소. ” “그럼 다 됐네. 고만 가세. ” “내 말씀 좀 들 으시우. 나하고 색시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색시는 방 한구석에 돌아앉았 드니 내가 간다고 일어설 때 얼른 바로 앉으면서 어머니, 저 할머니더러 좀 기 셔 줍시사고 하세요. 아까 쫓겨간 사람이 무슨 흉계를 꾸며가지고 다시 올른지 누가 알아요 하고 말하겠지. 내가 색시말을 들어보려고 이 늙은이가 안 가고 있 은들 무슨 소용 있어. 하고 말하니까 색시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말대답을 안합 디다. 색시가 사람이 얼마나 슬금하우. ” “그런 염려두 바이없지 않지만 나더 러 들마루에 쭈그리구 앉아 있으란 말인가? ” “색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

임꺽정 7권 (16)

4 남소문안패와 연락 있는 매파들이 꺽정이의 재물 많은 것과 계집 좋아하는 줄 을 알고 꺽정이 거처하는 처소에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되어서 여럿 이 드나들게 되었는데 서로들 시새워 가며 이쁜 과부가 있소, 음전한 처자가 있 소, 첩을 얻으시오, 첩장가를 드시오 천거도 하고 인권도 하였다. 여러 매파 중 에 순이 할머니라는 나이 한 육십 된 늙은이가 있는데 사람이 상없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늙은이의 말은 꺽정이가 가장 많이 귀담아 들어주었다. 어느 날 낮에 꺽정이가 마침 혼자 앉았을 때 순이 할머니가 와서 “오늘은 조용합니다그려.”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언제는 조용치 않든가? ” “나는 올 때마다 사람이 있습디다. ” “사람 없는 때 할 말이 있나? ” “꼭 사람 없는 데 할 말이 있 다는 ..

임꺽정 7권 (15)

“그 털보놈이 대체 왠놈일까?”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어디 가서 데려온 게지. 우리에게 앙갚음하려구.” “남소문 안 젊은 오입쟁이 녀석이 수상 한 놈의 자식이라든데 그 털보두 역시 수상한 놈이 아닐까?” “포도청에서 도 둑놈이라구 잡아다가 치도곤으로 패주어 내보냈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방구 의 팔목이 당장에 나을 테지.” “여보게 장래 대장, 자네가 춘부영감께 말씀을 잘 여쭤서 해볼 수 없겠나?” 장래 대장이란 이포장 아들의 별명이다. “무어라 구 말씀을 여쭙나? 기생방에서 망신했단 말이 들쳐나면 아버지와 형님네게 잔소 리나 듣게 되지. 아버지는 노인이시라 잔소리하실 연세나 되셨지만 형님네 잔소 리란 사람이 머리가 실 지경일세. 밤에 놀러다니지 말구 무경을 읽어라, 손이 뜨 면 못쓰니 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