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802

임꺽정 8권 (31)

남치근이 주인 없는 사랑에서 혼자 앉았다 누웠다 하며 주인을 기다리는데 오 래 되지 않는다던 주인이 너무 오래도록 오지 아니 하여 그대로 가려고까지 생 각할 때, 문간이 떠들썩하며 주인 대감이 사랑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우.” “얼른 말씀을 여쭙구 가봐야 겠습니다.” “조용히 할 말이라 지? 그럼 이방으루 들어오우.” 원계검이 옷도 갈아 입지 않고 바로 침방으로 남치근을 인도하였다. 단둘이 서로 대하여 앉은 뒤에 원계검이 먼저 “대체 무 슨 일이오?” 하고 물었다. “일전에 잡은 꺽정이의 처 셋 중에 원씨 성을 가진 기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기집이 제 말은 여염 사람이라고 하나 언어 동작이 재 상가 생장 같구 그 본집을 대는 말이 되숭대숭해서 수상하기에, 꺽정이의 도당 한 놈을 잡아내..

임꺽정 8권 (30)

노밤이가 달려드는 사령들을 잠깐 참으라고 손을 내젓고 곧 대청 위를 치어다 보며 “그저 물으시더라두 소인이 아는 것을 다 곧이곧대루 바루 아뢰겠소이다.” 하고 말햐여 뜰 아래의 사령이 그 말을 받아올리었다. “꺽정이의 기집이 어디서 사느냐?” “동소문 안 숭교방에서 사옵는데 집을 찾기가 거북합네다. 포교 하나만 주시면 소인이 같이 가서 들똘같이 잡아다 바 치겠소이다. 그 집에 있는 사람이 꺽정이 기집외에 늙은 할미 하나, 기집년아이 하나뿐이올시다. 셋을 한데 묶어두 사내 하나 폭이 못되오니까 포교 하나와 소 인과 둘이 가면 넉넉하외다.” 대청 위의 남치근이 뜰 위에 섰는 부장 하나를 앞으로 가까이 불러서 “포교 서넛더러 저놈을 앞세우구 나가서 꺽정이의 기집 과 그 집에 같이 있는 것들을 다 잡아오라구 해..

임꺽정 8권 (28)

나이 많은 포교가 노밤이의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여기가 자네 집 안방이 아니니 말대답을 조심해서 하게. ” 하고 타이르듯 말하니 “인제는 무슨 말을 묻든지 대답 안할 테요. ” 노밤이의 입술이 열닷 발이나 앞으로 나왔다. “대답을 안 하면 더 경치지 별수 있나. ” “무슨 물을 말이 더 있소? ” “있다마다. 인제 겨우 부리만 헌 셈인데. ” “사람을 기름을 내릴 작정이구려. ” “쓸데없는 소리 고만하구 물 을 말이나 좀 물어보세. 꺽정이 집종년을 아직두 데리구 사나? ” “그 집에서 나올 때 그년을 내버리구 나왔소. ” “그러면 지금은 홀아빈가? ”“그렇소. ” 부장청에 들어갔던 포교가 도로 나오더니 “부장 나리가 대장댁에 가서 지휘를 물어가지구 오실 테니 그 동안에 번난 사람들을..

임꺽정 8권 (29)

소흥이가 종종걸음을 쳐서 쫓아오는데 손에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어서 꺽정이는 무엇을 주러 오는 줄만 짐작하고 소흥이가 앞에 와서 선 뒤 “그것이 무엇인가? ” 하고 물으니 소흥이가 보퉁이를 내들어 보이면서 “이거요? 도망꾼이 봇짐이 에요.” 하고 말하였다. “도망꾼이 봇짐이라니?” “나도 선다님 따라서 도망할 라고 나왔세요.” “허허, 이 사람 보게.” “아무리 창황중이라도 어떻게 하란 말씀 한마디 없이 가신단 말씀이오? 그렇게 인정 없는 선다님을 쫓아오는 내가 실없은 년일는지 모르지요.” “집은 대체 어떻게 하구 나왔나?” “여기 섰지 말고 가면서 이야기하십시다.” “그 보퉁이는 이리 주게.” “선다님이 들고 가 실래요?” “속에 든 게 무엇이게 보기버덤 꽤 묵직해.” “되지 않은 패물이지 만 내버리고 ..

임꺽정 8권 (27)

노밤이가 소홍이 집에 와서 꺽정이를 보고 술값 줄 것을 저녁거리라고 말하고 달라다가 빈손으로 쫓겨나왔을 때, 골목 밖에서 기다리던 졸개가 쫓아와서 술값이 변통되었느냐고 물으니 노밤이는 고개를 가로 흔든 뒤 다른 데나 가보자고 남소문 안으로 같이 왔다. 한온이가 첩의 집에를 갔는지 사랑에 있지 아니하여 노밤이가 서사를 보고 “ 상제님 작은 댁에 가셨소? ” 하고 물으니 서사는 무엇에 골난 사람같이 “난 몰라. ” 대답하는 것이 퉁명스러웠다. 서사더러 말을 더 물어야 말만 귀양 보낼 줄 짐작하고 노밤이가 사랑에서 나와서 중문밖에 세워 두었던 졸개를 데리고 한 온이의 가장 사랑하는 작은첩의 집에 와서 문간에서 하님을 불렀다. 누가 왔나 보러 나온 계집아이년더러 “상제님 여기 기시냐? ” 하고 물은즉 계집아이년..

임꺽정 8권 (26)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가 꺽정이 앉은 자리에서 모를 꺾어 나란히 앉은 뒤 소 흥이가 두 사람을 향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한 팔을 짚고 고개를 다소곳하고 “ 안녕들 합시오?”하고 도거리로 인사하는데 이봉학이는 초면이므로 “나는 이선 달이란 사람일세.” 황천왕동이는 남소문 안에서 한번 만나본 일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구면이지.”하고 각각 인사 대답들 하였다. 인사들이 끝나자마자, 꺽정 이가 소흥이를 보고 “내가 이사람들하구 소풍하러 남산에를 올라갔다가 갑자기 술두 먹구 싶구 자네두 보구 싶어서 산에서 곧장 자네 집으루 내려왔네. 저녁 전에 술 한 차례 주겠나? 그러구 저 아랫방에 있는 군들은 내 수족 같은 사람인 데 이왕 데리구 나선 길이기에 그대루 같이 왔네. 지금 술잔 먹여서 보내두 좋 구 이따 저녁까지 ..

임꺽정 8권 (25)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상목 열 필을 소홍이의 집 바깥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지워가지고 남성밑골을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노밤이가 몸을 뒤흔들며 들어 오더니 성큼 마루 위로 올라와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절을 꾸벅꾸벅 세 번 하였 다. “너 어떻게 알구 왔느냐?” 꺽정이 묻는 말에 노밤이는 “선다님 오신 것 을 저야 모를 수가 있습니까.”대답한 뒤 곧 이어서 “선다님께서 서울 오셨으 면 오셨다구 제게 기별을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선다님두 야숙하십니다.”말 하고 외눈을 희번덕거리었다. “남소문 안을 다녀왔느냐?” “동소문 안을 다녀왔습니다.” “엇먹지 말구 정당히 묻는 말이나 대답해라.” “엇먹다니 천만의 말씀을 다하십니다. 남소문 안 놈들이 고약들 해서 저는 다시 안 갈랍니다.” “남소문 안에서 알면..

임꺽정 8권 (24)

꺽정이는 그날 봉산읍에서 단참에 검수역말을 와서 말을 여물 먹이느라고 지 체한 뒤 다시 쉬지 않고 빨리 왔는데, 서흥강을 건널 때 해가 꼬박 다 졌었다. 그러나 달이 밝아서 달빛을 띠고 서흥읍에 들어와서 자고 가려다가 앞길을 더 좀 줄이려고 용천역 와서 숙소하고, 이튿날 평산읍을 지날 때 봉산서와 같이 본 색을 알리려다가 친한 이방에게 말썽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대로 지나 김암역말 와서 중화하고 해 다 진 뒤에 청석골을 들어왔다. 말이 걸음을 잘하여 삼백 리 넘는 길을 이틀에 쉽사리 온 것이었다. 꺽정이가 박유복이를 데리고 떠나갈 때 이봉학이더러 자기가 다녀온 뒤 광복 산으로 가라고 이르고 또 자기없는 동안이라도 사랑을 쓰라고 허락한 까닭에, 여러 두령들이 전과 다름없이 매일 저녁 꺽정이 사랑에 모이는데 ..

임꺽정 8권 (23)

유도사가 군수의 말을 바꿔 타고 혼자 달려오는데 길을 몰라서 마산 가는 길 로 얼마를 오다가 길가의 농군에게 물어서 길 잘못 든 줄을 알고 길을 자세히 배워가지고 오느라고 지체도 많이 하고 길도 많이 돌았건만, 휴류성에 올 때 뒤 에 떨어졌던 일행과 어금버금 같이 왔다. 휴류성은 신라 적에 쌓았다는 옛성이 라 석축이 태반이나 무너졌었다. 성자리를 대강 둘러보고 신룡담으로 향하려고 할 때 군수가 유도사더러 “이번에는 빨리 달리지 말고 천천히 걸려보게.” 취 재보듯 말하는 것이 유도사 마음에 아니꼬웠으나, 말을 빌릴 욕심에 군수의 말 대로 천천히 걸리었다. 빨리 가려고 애쓰는 말을 빨리 가지 못하게 제어하는데 수단이 익숙하여 순하지 않은 말이 순한 말같이 잘 복종하였다. “자네 말타는 것이 법수가 있네. 내..

임꺽정 8권 (22)

부사가 망건은 안 쓰고 탕건 위에 갓만 쓰고 웃옷까지 입고도 처네를 두르고 앉아 있다가 손들이 방안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비로소 통인들의 부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서흥부사 김연은 환진갑 다 지난 노인이라 술이 취한 것 같은 불그레한 얼굴에 은실을 늘인 것 같은 흰 수염이 서로 비치어서 풍신이 좋았다. 무과 출신의 일개 수령이로되 풍신은 훌륭한 노재 상과 같았다. 박참봉은 그 풍신 대접으로라도 절 한번 하고 싶었으나, 유도사 하 는 대로 따라 그대로 앉아서 입인사를 하였다. “노형 연기가 올해 몇이시오?” “내 나인 몇 살 안됩니다. 갓 마흔입니다.” “저 노형은?” “서른아홉입니다. ” “나는 올에 예순일곱이오.” 부사가 하인에게 물어본 나이들을 다시 묻고 또 자기의 나이를 분명히 말하는 속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