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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22) -톨스토이-

22 "무서운 일이야!" 네플류도프는 서류 가방을 다 챙긴 변호사 파나린과 같이 대기실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명백한 사실을 형식에 얽매여서 기각하다니, 무서운 일이야!" "이 사건은 이미 원심에서 실패한 것입니다."하고 변호사가 말했다. "게다가 셀레닌까지 기각에 찬성하다니, 정말 무섭고 무서운 일이야!"하고 네플류도프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되풀이했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황제한테 청원해 봅시다. 여기 계시는 동안에 직접 제출하십시오. 제가 써 드릴 테니까요." 그 때 법의에 여러 개의 훈장을 단 왜소한 체구의 볼리프가 대기실로 들어와서 네플류도프 곁으로 왔다. 그는 네플류도프가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왔다. "이런 데서 자넬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그..

<R/B> 부활 (2부, 21) -톨스토이-

21 볼리프는 심의원들이 회의실 테이블 앞에 앉자마자, 무척 유창한 말투로 원판결이 폐기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의장은 평소에도 워낙 심술궂은 위인이었지만, 오늘은 가뜩이나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법정에서 사건을 들으면서 재빨리 자기 의견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지금 볼리프가 하는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오래 전부터 바라고 있던 자리에 자기를 앞질러서 빌랴노프가 임명된 데 대해서 어제 자기 비망록에 써놓은 글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장 니키틴은 재직 중에 자기가 접촉해 온 칙임관급 이상의 여러 고관에 대한 비평을 기록해 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제 적어 둔 한 ..

<R/B> 부활 (2부, 20) -톨스토이-

20 이튿날 마슬로바의 사건 심리가 있을 예정이었으므로 네플류도프는 대심원으로 갔다. 그는 벌써 몇 대의 마차가 멈춰 있는 대심원 건물의 장엄한 문 앞에서 변호사와 만났다. 장엄한 본관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가자, 구석구석까지 죄다 알고 있는 변호사는 재판법 제정 연대가 새겨져 있는 왼쪽 문으로 갔다. 기다란 첫 번째 방에서 외투를 벗고, 심의원 전원이 모였다는 것과 맨 마지막 의원이 방금 들어갔다는 것을 수위로부터 듣자 파나린은 하얀 와이셔츠의 가슴팍이 보이는 연미복에 넥타이를 맨 채 유쾌하고 자신있는 태도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방 오른쪽에는 큼직한 옷장과 테이블이 있고 왼쪽에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었는데, 마침 이 때 가방을 겨드랑이에 낀, 제복을 입은 의젓한 관리가 내려왔다. 이 방에서 먼저..

<R/B> 부활 (2부, 19) -톨스토이-

19 페레르부르크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인물은, 수많은 훈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통 때는 단춧구멍에다 백십자 훈장 외에는 아무것도 달지 않는 독일계 남작 출신의 노장군이었다. 숱한 세월에 걸쳐 많은 공적을 세웠으나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망령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카프카스에 근무하고 있을 때, 그 곳에서 특별히 그를 예찬해 주는 이 십자 훈장을 탔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그가 머리를 짧게 깎고 군복을 입고 총검으로 무장된 러시아 농민을 지휘해서 자기네들의 자유와 집과 가족을 지키려던 천 명이 넘는 삶들을 학살한 공로로 받은 훈장과 제복에 달 장식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 몇 군데에서 더 근무했지만, 지금은 늙고 쇠약했기 때문에 훌륭한 저택과 수당과 현재의 명예로운 지..

<R/B> 부활 (2부, 18) -톨스토이-

18 이튿날 네플류도프가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하인이 모스크바에서 온 변호사의 명함을 가져왔다. 변호사는 자기 용무도 겸해서 만일 마슬로바의 사건이 곧 가까운 시일 안에 심리가 된다면, 대심원의 심리에도 출석하겠노라고 온 것이었다. 네플류도프가 친 전보는 그와 엇갈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 가지 타입의 심의원이 전부 모임 세이군요."하고 그는 말했다. "볼리프는 페테르부르크 형의 관리고, 스보코로드니코프는 학자형의 법률학자이며 베는 실제형의 법률가입니다. "어쨌든 이 사람이 그 중에서 제일 수완가죠." 변호사는 말했다. "어쨌든 이 사람이 제일 믿음직합니다. 그런데 청원 위원회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실은 이제부터 보로비요프 남작을 방문할 참입니다. 어젠 만나지 못했습니다."..

<R/B> 부활 (2부, 17) -톨스토이-

17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집에서는 7시 반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식사는 네플류도프가 일찍이 보지 못한 색다른 방식으로 행해졌다. 요리를 식탁 위에 차려 놓으면 하인들은 곧 물러가 버리므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요리를 날라다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자들은 부인들에게 쓸데없는 수고를 끼치지 않으려고, 또 여자들보다 힘이 센 남성으로서의 남성다운 모든 수고를 도맡아 하면서, 부인들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기도 하고 자기네들도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백작 부인은 접시 하나가 비게 되면 벨을 눌렀다. 그러면 하인들은 소리도 없이 들어와 재빨리 치우고 다른 접시와 바꾸어 놓고 나서 요리를 날라왔다. 요리도 퍽 맛이 좋았지만, 술도 손색이 없었다. 밝고 넓은 부엌에서는 프..

<R/B> 부활 (2부, 16) -톨스토이-

16 마리에트와 환한 미소를 생각하면서 네플류도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주위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또다시 그 생활에 휩쓸려 들어갈 뻔했군.' 그는 자기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어야할 때마다 항상 일어나는 자기 분열과 의혹을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헛걸음치지 않으려고 어디를 먼저 가고 어디를 나중에 가야 하나를 생각한 끝에 네플류도프는 먼저 대심원으로 가기로 했다. 대심원에서 사무실로 안내된 그는, 장엄한 실내에서 단정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많은 관리들을 볼 수 있었다. 마슬로바의 상소장은 수리가 되었으며, 이모부가 편지를 써 준 대심원 의원 볼리프에게 심리, 보고되도록 회부되었다고 관리들이 네플류도프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심원 회의는 이번 주에 있을 예정인데, 마슬로바의 사건은..

<R/B> 부활 (2부, 15) -톨스토이-

15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전 국무장관이었으며, 매우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의 젊은 시절부터 신념은 다름이 아니라 마치 새가 벌레를 먹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 다니는 것이 천성인 것처럼 그 자신도 고급 요리사가 만든 고급 요리로 배를 채우고, 몸에 잘 맞는 값진 옷을 입고, 기분 좋고 빠른 준마를 타고 다니는 것이 천성에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국고에서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받을수록 좋았고, 훈장도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을 포함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며, 남녀 누구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 같은 기본적인 신념에..

<R/B> 부활 (2부, 14) -톨스토이-

14 네플류도프는 페레르부르크에 세 가지 용무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마슬로바에 관한 대심원 상소였으며, 다음은 청원위원회에 제출해야 할 페도샤비류코바의 사건이었고, 마지막의 하나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에게서 의뢰받은, 슈스토바의 석방을 헌병대 본부 또는 제 3부에 신청하는 일과, 그리고 역시 베라 보고두호프스카야에게 서면으로 의뢰받은 요새 감옥에 있는 청년에 대한 그 어머니의 면회를 신청하는 일이었다. 이 마지막 두 건을 그는 제 3의 용건으로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용건은 복음서를 읽고 해설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헤어져 카프카스 지방을 유형된 분리파 신도들의 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을 위해서 보다도 자가 자신을 위해서 가능한 한 전력을 다해 명백히 밝히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R/B> 부활 (2부, 13) -톨스토이-

13 오늘은 마슬로바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가 하는 생각과, 그녀의 마음속에서나 옥중에 있는 다른 죄수들 전체 속에 존재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그 어떤 비밀을 생각하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네플류도프는 정문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나온 간수에게 마슬로바에 관해서 물었다. 간수는 잠깐 조사해 봤더니 마슬로바는 지금 병원에 있다고 대답했다. 네플류도프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의 수위는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노인으로서 곧 그를 안으로 들여 보내고, 누구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은 다음 소아과 병실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온몸에 소독약 냄새가 밴 젊은 의사가 복도에 있는 네플류도프에게 오면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딱딱하게 물었다. 이 의사는 죄수들에게 관대하게 대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