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오래된 정원>
2014년 2월 22일 포스팅
원작 : 오래된 정원
저자 : 황석영
영화 제작년도 : 2006년
감독 : 임상수
출연 : 염정아, 지진희
도발이(도망자)와 여선생(미술교사)의 6개월짜리 사랑.
“한선생. 실은 저 사회주의잡니다”
“아, 그러세요? 어서 씻기나 하세요, 사회주의자 아저씨”
한윤희(염정아)는 운동권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오현우(지진희)는 ‘시골구석에서 뭔 일 일어나길 기다리던 중’ 걸려든 멋진 남자였고, 혁명아(?)였던 것이다.
죽은 커뮤니스트 아버지(내 아버지를 닮은 스케치 초상)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오현우에게 투사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오현우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영화 속 지진희(내 외가 작은 형의 인상)는 자본주의적 미남이었고 게다가 감성 풍부한 시인이기도 하였다.
'갈뫼'
그곳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무릉도원이었을꺼나.
사랑은 무릉도원에 있었으되, 오현우의 외골 의식은 괴롭기만 하다.
광주의 기억과 분노, 흩어진 동지들, 그리고 자괴감.
“어이, 한윤희. 내 그 자식들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거야”
마당에 누운채 부당한 시대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오열하는 오현우.
그가 애처럽고 안타까운 한윤희는 그에게 몸을 얹고 함께 흐느낀다.
“현우씨, 여기 있을 때 만이라도 나만 생각해주면 안될까. 당신은 잡히지 않아. 버틸수 있어. 산 속 깊이 들어가자. 그러자, 우리."
그러나 오현우는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밤, 시골 버스에 오르는 오현우와 우산 아래에서 그를 배웅하는 한윤희.
그 때 두 사람은 몰랐겠지만 그건 영원한 이별이었다.
뿌옇게 습기찬 버스 유리차창 너머 서로의 모습을 멀리하면서 버스는 떠나간다.
한윤희는 짐짓 짜증 투로 중얼거린다. (염정아의 쿨한 캐릭터 연기)
“숨겨 줘. 재워 줘. 먹여 줘. 몸 줘... 왜 가니? 네가. 잘가라 이 바보야.”
서울서 동지들과 접선하는등 분주하게 뛰어다니던중 오현우는 결국 체포되고 만다.
무기징역.
감옥 밖의 한윤희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한윤희는 오현우의 코빼기도 볼수 없었다.
오현우의 직계가족이 아닐뿐더러 은닉죄가 적용되는 사건 연루자인지라, 면회는커녕 글월 한줄 나눌수 없는 두 사람.
오현우는 한윤희가 그토록 애태우고 있다는 것도,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조차도 알수가 없다.
꿈 속에서나 오현우를 만날 수 밖에 없는 한윤희.
갈뫼의 외딴집, 오현우가 들어선다.
어린 딸 은결이와 누워있던 한윤희, 벌떡 일어나면서 활짝 웃는다.
“은결아. 아부지야. 아부지.”
아, 이루어질수 없는 꿈.
오현우가 갇혀 있던 80년대, 격렬한 세월이었다.
한윤희는 오현우로 인하여 운동권 학생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틀리에를 회합장소로 내어주는등 그들과 교유하고 학생들은 그녀를 따른다.
의식화된, 이른바 운동권 조직이라는 것.
정세분석을 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지껄이는 그들의 입술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다.
전략적으로 누구 누구는 체포되기로하고 누구 누구는 도피하기로 하고 云云...
개별의 희생은 조직집단을 위하여 당연한 것.
그들이 타파코자 하는, 관료주의의 집단적 논리에 매몰된 입술들이다.
한윤희에게는 그들의 조직놀음이 우스꽝스럽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연하(年下)의 운동권 학생 영작이에게.
“시대가 아무리 거지같아도 우린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인생 길어, 역사는 더 길구. 우리 좀 겸손하자.”
한윤희는 오현우를 생각하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데, 정말 그들은 개별의 운명에 대하여는 겸손하지 아니하였다.
역사에 대한 예의는 형해화(形骸化)된 채로 있었을랑가 모르겠지만, 개별적 인간에 대한 예의는 조금도 있지 아니하였다.
영작이의 애인 미경이가 몸에 불을 붙인채 투신하여 죽고 영작이는 울면서 한윤희와 술을 마신다.
“그 순간 미경이는 얼마나 뜨겁고 외로웠겠니?”
한윤희는 브라우스의 단추를 끄른다.
“너 나 좋다며.. 나도 너 좋아. 지금 네가 할 일은 그냥 나랑 한번 하는거야.”
아, 그러했을 것이다.
한윤희는 완악한 시대를 향하여, 경직된 관념을 향하여 자신의 몸을 영작이에게 열어주는 것이다.
쌍방의 빙하를 녹이고자하는 연민으로.
나는 화악 염정아가 좋아져 버렸다.
고양이과(科) 눈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로 나는 염정아의 팬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영작이를 배웅하면서 (훗날의) 한윤희는 가상의 오현우에게 말한다.
“재는 지금 잘 나가는 인권변호사랍니다.”
그 후 한윤희는 암에 걸렸고, 수신(受信)을 기대하지 않는 많은 편지를 썼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죽었다.
오현우, 18년의 징역살이.
한윤희가 아이를 낳고 자신을 그리워하다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는채. (요즘 홍애님이 번역 연재하는 서승님의 옥중 19년과 오버랩되는)
감옥속의 오현우는 이념적 투쟁이 아닌 생존적 투쟁으로서 그 긴 세월을 죽인다.
먹거리로 항거하다가 독방에 갇혀, 입에 재갈이 풀리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 개처럼 부르짖는다.
“먹는 거 하나로 치사하게! 내가 왜 그러냐구? 지겨워서 그래요. 지겨워서!”
머리카락이 허옇게 센 중늙은이가 되어 출감하는 오현우.
20여년, 변해버린 세상은 낯설기 그지없다.
광주로 내려가 옛 동지들을 만나는 오현우.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가.
남아있는 동지는 변질되었고, 깃발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하였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그 맹세 어디로 갔는가.
이념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이기적인 개별들이 그를 맞을 뿐이다.
오현우의 가슴에는 한윤희를 향한 사랑만이 남았다.
갈뫼의 빈집에 찾아갔지만 거기 그녀가 있을리 없다.
한윤희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취들.
수신을 기대하지 않고 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들과 노트의 글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자신을 그린 그녀의 그림들 (그녀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오현우의 사진 한장만을 오현우의 어머니로 부터 얻어 가지고 있었을 뿐 그에 대한 것들은 무엇 하나 가지고 있는게 없었다)
아, 그리고 한윤희의 가장 뚜렷한 자취, 은결이가 있었다.
눈내리는 날, 인파 가득한 도심의 거리에서 은결이와 상면하는 오현우.
헤어지면서 은결이는 아버지의 친구라고 자신을 밝힌 오현우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자주 봐요, 아버지."
은결이는 오현우와 통화할 적부터 이미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최신 신상품(?)처럼 신선하고, 딱 부러지게 똑똑하고 이쁜 은결이. (이은성이라는 배우..서태지와 결혼하였다지)
인파 속에는 부녀의 대면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윤희가 있었다.
오현우가 딸과 헤어져 인파 속을 걸으면서 중얼거린다.
"이제 헛게 다 보이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나윤선의 노래->
청년시절의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
그리고 머리를 박박 민(말기 암으로) 한윤희 자신과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소년 오현우.
한윤희가 그린 그림은 세월을 그린 그림이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세월과의 화해(和解).
그림 위로 나윤선의 노래가 엔딩크레딧과 함께 흐른다
광주의 오월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내 눈에는 차지 않는 영화들이었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빼고서는.
(광주에 대하여 역사의식 박약한) 내게는 그러하였다.
과장과 왜곡이 심하였고, 시대적 무게에 과도하게 힘들어하는 듯한 영상들이었다.
도무지 영화적으로 곰삭은 맛이 내게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래된 정원'은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아니었다.
아름답고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쿨하고 세련된 연애영화였다는 편이 옳지 싶다. (광주와 1880년대의 그 시대가 서사의 유기적인 배경이고, 오현우와 한윤희의 사랑과 병치(竝置)하여 시대상황을 그리고는 있지만)
시대에 대하여 '오래된 정원'의 영상은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는다.
그 시선은 따뜻하고 차분하고 관대하였다.
생각건대, 광주의 오월 이후 방북과 망명과 투옥등 파란의 세월을 관통한 원작자 황석영의 시각 또한 그러하였을 것이다.
한때 이명박지지니 철회니 어쩌구 말도 많았지만 존경하는 작가여, 추호도 눈치보지 말라.
역사를 저들만 겪고 저들만 짊어진양 오만 폼을 잡는 저 독선적 의식(意識)들에게.
시대에 따라 인식과 개념은 변하는 것이지만, 당신은 온 몸으로 시대를 겪었으며 인간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꿋꿋하고 진지하였다.
나와 같은 쫌팽이의 삶보다 몇백배 의미있는 세월을 당신은 살았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으로 당신의 작품 속에 구현되어 있음을 나는 느낄수 있노라.
오래된 정원 '갈뫼'.
그곳은 사랑이 꿈꾸는 엘도라도.
옛과 지금이 공존하는 곳이다.
시간이 시간을 용서하고 세월과 세월이 화해하는 곳이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나로서는 상당히 좋게 본 영화였습니다.
곧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 올리려 합니다.
그 때 다시 지껄이기로 하고 오늘 아침에는 이만.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부전선 이상없다 (1,4,3,3) (0) | 2019.09.25 |
---|---|
오래된 정원 1,2,3,4 (1,4,3,3) (0) | 2019.09.25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1,4,3,3) (0) | 2019.09.25 |
똥파리 전,후 (1,4,3,3) (1) | 2019.09.25 |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1.2 (1,4,3,3) (0) | 2019.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