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천명관 (1,4,3,3)

카지모도 2019. 9. 26. 07:10
728x90

 

-독서 리뷰-

 

 

[[천명관]]

 

<고령화 가족>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고래>

 

 

***동우***

2011년 1월 12일

 

책부족 여러분이 탄복하였다는 '천명관 (1964~ )‘

나도 요 며칠새 벼르던 천명관을 읽었다.

향편님이 선물하여 준 ‘고령화가족’을 먼저 읽었고 다음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 가장 먼저 출판되었다는 ‘고래’를 가장 나중에 읽었다.

한마디로, 천명관의 소설은 무슨 사변(思辨)따위를 헤프게 풀어놓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여, 李箱선생이 묘사하였듯 책장은 딕셔너리 잘도 넘어갔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作-

 

어느 막장가족의 얘기다.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 늙은 어머니의 연립주택에 꾸깃꾸깃 비집고 들어와 개기는 추레한 가족들.

두 아들은 쉰 어름의 중늙은이들인데, 큰아들 오함마(오한모)는 한때 잘 나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찌그러진 늙다리 깡패이고.

일인칭 화자(話者)인 작은 아들 ‘나’는 가족중 유일한 먹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딱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 퇴락한 영화감독이다.

그나마 ‘나’가 만든 그 영화는 작품성도 말아먹었을뿐 아니라 제작자까지도 파산시켜 버렸다.

그리고 서너번의 이혼경력을 자랑하며 술집을 경영하는 바람둥이 중년의 딸과 그녀의 싸가지없는 고교생 딸까지.

캐릭터도 영화적이었고 플롯도 영화적이었고 그들이 벌이는 활극도 지극히 영화적이었다.

해프닝과 가벼운 반전이 연속되는 빠른 전개, 후딱후딱 넘어가는 책장.

두어시간 만에 나는 장편소설 한편을 해치웠다.

책장을 덮고나니 마음에는 문득 따뜻한 온기가 고여 있었다.

그들 가족, 외피는 막장이었지만 근본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소설가로 제법 성공한 지금도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는 천명관.

논리로써 냉철한 이지적 스타일의 작가는 아니겠지만 그의 재능은 대단하게 느껴졌다.

 

소설종장의 글.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作-

 

십여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충분히 즐거운 책읽기였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프랑스혁명사’ 또는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는 추리소설적인 반전(反轉)이 있는 긴장감도 좋았고 ‘?홀’의 그로테스크한 소스라침도 재미로웠다.

천명관은 방외(方外)문학인으로 평가받는 작가라는데 ‘세일링’과 ‘비행기’에서는 방내문학(方內文學?)의 내공이 넘쳐났다.

작가의 장기(長技)인 기발한 상상력보다, 오소독스한 문학적 방법론에 정통한 작품들이었다.

천명관은 탄탄한 개연성의 플룻과 충실한 리얼리티를 갖춘 소설도 얼마든지 쓸수 있는 작가.

들은 풍월로 천명관에 대하여 영상적 상상력만 넘쳐나는 천방지축 어쩌구하는 선입관이 내게 형성되었음직 한데.

틀렸다.

천명관은 적어도 소설가로서의 기본을 갖춘 작가였다.

 

단편소설 ‘세일링’의 종장.

갑갑함과 불안과 실의와 참담에 잠겨있는 소시민의 삶.

그 시야에 홀연 펼쳐지는 광경, 도심(都心)의 안개 속에 떠올라 천천히 항행하는 우람한 한 척의 배.

영상적 상상력으로 구현된 그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하였다.

 

작가 자신 젊은날의 자전(自傳)일 듯 싶은 ‘이십세’

음악다방과 디제이박스와 엘피앨범들..

작가보다 한참 연배인 내게도 엄습하는 리얼리틱한 페이소스.

 

<“당시 스무살치고 록 밴드를 꿈꾸어보지 않은 젊은이가 있었을까? 내 주변에는 없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중의 하나였지만 내가 가진 재능은 너무나 평범했으며 음악을 해서 성공을 한다는건 나에게 너무 먼 꿈이었다. ...사실 스무살 나이엔 아무것도 절실한 게 없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빛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욕망이 구체화된 나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그저 무지와 암흑의 카오스에 갇혀 있는 어설픈 가능태일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당시 내게 필요한 것은 심심함을 달래줄 만화책과 담뱃값, 그리고 아무 데고 내키는 대로 쏘다닐수 있는 자전거. 그 외에 또 뭐가 있었을까? 훗날, 그때 누군가 좋은책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더라면 내 인생이 좀더 나아졌을까? 허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만난 수많은 스승들 가운데 그런 스승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이 가르쳐준 거라곤 그저 ‘대학 못 가면 사람 노릇 못 한다’는 무시무시한 명제뿐이었다.”>

 

<“언제나 무리를 그리워하며 떠돌았지만 한 번도 온전히 무리에 속하지 못했던 내 유랑과 方外의 운명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래서 부족의 구성원에게 의당 픨요한 기율과 위계, 명예심과 연대의식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채 언제나 어정쩡한 포즈로 사파(私波)와 이교(異敎)의 문앞을 기웃대며 보낸 시간들이 결국 내 인생의 이력이 되었다면 그 또한 지나친 자의식일까?>

 

 

<고래>

-천명관 作-

 

낯선 정서가 담긴, 흥미진진한 대하(大河)의 로망이었다.

50여 페이지를 후다닥 읽고서 서울서 내려 온 향편님을 만났는데, 내 입에서는 ‘고래’에 대한 상찬(賞讚)이 가득차 버렸다.

변사(辯士)의 유장한 가락으로 소설의 벽두부터 몰아치는 사설에, 나는 50여 페이지만 읽고서도 지레 압도 당하였던 모양이다.

향편님을 만나고 그 다음 날, 느닷없는 요통으로 침대에 누워 종일 책을 잡고 있었는데 다음 페이지의 궁금증이 가려워서 순식간에 두터운 장편 한권을 해치워 버렸다.

 

‘고래’

상상력이 직조한 컨텐츠의 힘과 작가의 입담.

전설, 야사, 골계집, 기담, 무협지, 고금소총, 미야모토무사시, 야쿠자이야기, 만화, 성서등을 버무려 직조한 아라베스크.

귀곡산장의 음산한 곡성이 들리는가하면 짜자짜잔 기병대의 나팔소리도 들리고 빅터레코드 상표인 충견(忠犬)의 모습도 보인다.

비약은 비약을 부르고, 아이러니는 또다른 아이러니를 잉태하고, 진지와 농담, 긴장과 이완은 동전의 양면으로 반짝인다.

애상(哀傷)도 서려있고 강개(慷慨)도 서려있고, 불과 물과 흙이라는 의미심장한 메타포도 있었다.

박민규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바 있지만, ‘고래’는 우리 소설에서 여태 볼수 없었던 생김새의 소설이었다.

참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천명관이라는 신예(당시)작가의 역작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고래’는 오로지 상찬(賞讚)만이 가득한 소설인가,는 유보하려 한다.

뒤로 갈수록 차츰차츰.

상투적인 상상력, 이야기의 진부함, 시나브로 힘이 빠지는 입담.

재미로서는 ‘벽초’의 ‘임꺽정’에는 미치지 못하고,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에스프리’에 이르기에는....

천명관은 우리시대 빼어난, 유니크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을테지만 말이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홀랜드 오퍼스 (1,4,3,3)  (0) 2019.09.26
울음 헤픈 사내 (1,4,3,3)  (0) 2019.09.26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전,후 (1,4,3,3)  (0) 2019.09.25
2010년 1월 단상 (1,4,3,3)  (0) 2019.09.25
오일의 마중 (1,4,3,3)  (0) 201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