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알퐁스 도데]]
<아를르의 여인>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어린 자고새의 놀람>
<아를르의 여인>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3.07.11 06:12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et, 1840~1897)의 '아를르의 여인'
'아를르'가 있는 남프랑스 '프로방스'는 '까비'의 고향 '모레 쉬르 루앙'보다는 훨씬 남쪽 지방이겠지요? <근데 까비가 누구냐굽쇼? 까비는 파리의 어느 댁 여왕같이 도도한 고양이 이름이랍니다.>
'아를르'하면 떠오르는 (눈에, 귀에, 가슴에..) 세 사람이 있습니다.
문학의 도데
음악의 비제
그림의 고흐.
'알퐁스 도데'는 남프랑스의 서정('별'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과 정념을 그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조르쥬 비제' (Georges Bizet, 1838~1875)는 도데의 이 소설을 바탕으로 모음곡(組曲) '아를르의 여인'이라는 음악을 작곡하였지요.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은 27곡이나 되는 대작(組曲-모음곡)인데 프로방스의 밝은 기분이 느껴지는, 누구라도 척 들으면 흥얼거릴만큼 귀에 익은 명곡입니다.
(지금 내 방에 흐르고 있어요.... 그런데 보다시피 도데의 소설은 매우 짧고 상당히 비극적이어서 음악의 초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듯 한데,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를르의 여인'이라는 다른 도데의 작품이 있나 싶어 검색해 보았는데 찾아지지 않네요.)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그의 궁핍한 화력(畵歷)중 '아를르 시대'라는 한 시대를 장식하며 프로방스 아를르의 밝은 햇살을 고흐는 화폭에 담았지요.
이 소설.
짧은 단락의 문장이지만 나는 그 행간에서 남프랑스의 짙은 신토불이적(?) 지방색을 물씬 느낍니다.
붉은 기와의 집..바람개비..활차..양잠실..여물창고..퐁비에이유의 축제.. 폭죽과 모닥불과 가지가지 색등(色燈)...
(비제의 음률로 '장'이 어머니와 함께 추는 '파랑돌 춤'을 상상하고, 샤또오뇌프 주(酒)는 칼바도스의 맛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바람둥이 아를르의 여인에게 홀라당 빠져 버린 프로방스의 미남 청년 '장'.
그리고 장의 부모 '에스떼브' 영감 내외.
부모는 그들도 겼었을 젊은 날 사랑의 그 열병(熱病)을 모를리가 있나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아들의 불행이 눈에 어른거리고, 한편 농경사회의 윤리와 법도가 있는 걸.
<"애한테 키스나 해주구려! 딱하고 가엾은 놈이야....">
직수굿이 상황과 처지에 순응하려는 '장'.
'장'은 건실한 청년이고 부모에게는 효자입니다.
그러나 이걸 어쩌겠어요?
아무리 끄려 하여도 꺼지지 않는 정염의 불꽃.
사랑의 맹목에 이미 눈이 멀어 버린걸.
어머니 또한 어쩌겠어요?
자식이 그 열병에 타 죽어가는 모습이 뻔히 보이는 걸.
<"그래, 좋아, 장! 끝내 그 여자가 갖고 싶으면 맞아 들여도 좋아.">
그러나 프로방스인에게 대대로 뿌리박힌 인식(意識)은 농경사회의 보수적인 전통과 윤리의식의 굴레를 벗어날수 없으니, 이것 또한 어쩌겠어요?
<부친은 치욕을 느껴 새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장은 고개를 흔들고 밖으로 뛰쳐 나가고 말았다.>
어쩌겠어요?
'장'의 '정념'이 선택할 길은 파멸일밖에.
어쩌겠어요, 어쩌겠어요?
죽지 못한 어미는 피범벅으로 죽은 아들을 껴안고 뼈가 깎이는 슬픈 소리로 울 밖에.
죽지 못한 아비는 한사코 죽은 아들의 옷을 걸치고 속으로 피눈물 흘릴 밖에.
***송현***
2013.07.11 08:38
안타깝고 애통하고 어찌할수 없기에 영원한 살아있는 문학이 되었나 봅니다
아들을 둔 어미로 시공을 초월한 이 순간도 애가 탑니다
향일화 해바라기가 남불 아를르의 꽃이 보이고
가난한 고호도
***동우***
2013.07.12 06:03
알퐁스 도데의 '아를르의 여인'
송현님은 아를르의 해바라기가 보이시는군요.
눈으로는 고흐를 좇고 귀로는 비제의 음악도 한번 들어보시지요.ㅎ
***eunbee***
2013.07.11 23:20
무겁거나 징징거리지 않고 써내려가면서도
저리도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
알퐁스 도데.
그의 천진스러울만큼 순수하고 맑음을 여기서 또 느끼네요.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다니...
그 사랑이 어떤 것이었기에.
갑자기 이런 노래 생각나요.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빛과 그리고 그림자.ㅎㅎㅎ
질풍노도, 무모함... 그것도 아름다움이네요.ㅋ
***동우***
2013.07.12 06:11
징징거리지 않는다...
언제나 은비님의 언어는 적실하면서도 새콤합니다.
그래요, 정말.
똘마니들은 너스레 똥폼 요란하지만(나처럼.ㅎ) 보스에게는 똥폼이 없지요.
고수(高手)는 징징거리거나 중언부언하지 않아요.
대체로 남성들은 팜므파탈적 색감에 약한가 보아요.ㅎ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면서..
아, 패티김.
그녀의 매력적인 피아니시모.. 최고의 가창력.
***저녁산책***
2013.07.14 00:03
아를르의 여인이 이리 팜프파탈인 줄을 몰랐네요.
동우님, 저 재빠르게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을 깔아놓고 읽었더니.. 환상입니다.
도데의 글이 이리도 단촐하면서도 맑고 깨끗한데..한없이 슬프군요.ㅜㅜ
아..사랑이 뭐길래요....
별거 일수도 ..별거 아닐수도..
***동우***
2013.07.14 05:28
저녁산책님
<도데의 글이 이리도 단촐하면서도 맑고 깨끗한데..한없이 슬프군요.>
그런데, 저녁산책님은 비제의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팜므파탈이나 깊은 슬픔 별로 느껴집디까?
프로방스의 무도 '파랑돌'춤.
<성 엘로와 만세! 모두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파랑돌을 춤춘다.>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에도 '파랑돌'이라는 곡이 있더군요.
타악기의 화려함, 그 음악에 마추어 춤추다가는 정말 지쳐 쓰러질것 같아요.
사랑이 뭐길래.
빠졌을 적에는 別거... 지나면 별거 아닌 걸.
'장'이 내게 눈 흘깁니다. ㅎ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5.09.06 04:28
휴일, '알퐁스 도데' ( Alphonse Daudet, 1840~1897)의 동화 한편.
도데가 말년에 썼다는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La legende de l’homme a la cervelle d’)입니다.
'알퐁스 도데'는 젊었을적 매독에 걸려 말년에는 매독균이 척수까지 옮아 심한 고생을 하였답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수은중독으로 나중에는 모르핀에 의존하여 살았다지요.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신이 내게 벌을 주었다"고 말하였답니다.
그 무럽 썼다는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동화인지 소설인지, 가장 소중한 것을 가치없는 것에다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교훈일 법 한데.
뇌속의 황금, 그 은유하는바가 인간이 지닌 어떤 정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인지,
황금의 낭비는 재능의 낭비나 감정의 낭비를 말하는 것인지,(그런데 두뇌는 쓸수록 좋아지는게 아닌가...)
혹은 친구나 마누라를 잘 만나라는 교훈일런지도 모르겠네요만, 알퐁스 도데 말년의 어떤 회한 같은게 느껴집니다.
***eunbee***
2015.09.06 06:07
동우님,
멀리 동녘엔 별 하나
참으로 오랜만에 보게된 별입니다.
새벽기도 갈 때, 내집 현관문을 열고 바라보던 저 별(서향집에 살 적)
이제 동향집 이곳에서 그때의 기분에 잠겨 그 별을 바라봅니다.
머리를 드니 사위어가는 어여쁜 달도 있네요.
이 아침, 한껏 아름답습니다.
차 우려두고, 알퐁스 도데 읽습니다.
첫 부분의 구절들이 좋아서 기대 잔뜩했는데.. ㅋㅋ
동우님의 멋진 주말, 더불어 내게도 좀 더 어여쁜 주말이....
***동우***
2015.09.07 04:54
동화인지 소설인지... 나도 싱거웠어요.
알퐁스 도데다운 긴축미가 좀 풀어진 느낌. ㅎ
시방, 내 책상 위에도 마리아쥬 프레르 그 신비한 향기가 넘실거리고 있다우.
어제 일요일 새벽에는 제법 빗소리 구성지더니, 날이 밝자 비는 오지않고 가끔 푸른 자락 내비치는 하늘..
가을비 우산 속에 은비님과 상상의 데이트 하렷더니. 하
<어린 자고새의 놀람>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5.07.09. 06:05
사냥꾼의 총에 맞아 언 땅위에 죽어 널부러진 암컷 물오리를 떠나지 못하고 하늘을 빙빙 돌며 울부짖다가 저마저 총에 맞아 땅에 떨어지는 숫컷 물오리.
모파상의 단편 '사냥'에서 나는 인간의 사냥습성을 구석기시대의 회억(回憶), 집단무의식이라고 하였다.
알퐁스 도데의 이 소설을 읽고서 그를 정정(訂正)한다.
먹거리를 얻기 위한 행위의 정당성, 사냥은 구석기와는 상관없이 문명화된 인간이 고안한 잔인한 도락일 뿐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할수 없다.
사냥은 차라리 전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평화시에 공연히 사람을 죽일수 없으니 대신 동물을 죽이는 것이다.
사냥은 문명이 배태(胚胎)한 야만적 의식(意識)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가 사냥을 호연지기 운운하는가?
정정당당한 호쾌함은 커녕 오히려 사냥은 비겁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일락(逸樂)이다,
생각해보라.
사냥처럼 무력(無力)하기 짝이 없는 적(敵)을 상대로 한 불공평하고 무자비한 살상이 어디 있나.
오로지 살고자 하는 본능 하나만을 무기로하여 저항하는 적(敵)을 상대하는 사냥꾼의 막강한 전력(戰力)을 보라.
무리를 지어 조직과 전략과 총과 사냥개까지 동원하여 공격하는 전쟁.
핵과 칼의 싸움이다.
이처럼 비대칭적 전력이 어디 있는가.
알퐁스 도데의 '어린 자고새의 놀람'
자고새가 되어 사냥총 화연(火煙) 짙은 숲 속을 기어다니는 기분이다.
나는 사냥을 할 능력(경제도 재주도)도 없거니와 설령 여건이 되었더라도 절대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동물의 고기를 좋아한다.
네발짐승 두발짐승을 막론하고 육고기는 물론, 밥상에 생선이 없으면 되우 허전한 사람이다.
보신탕도 먹을줄 안다.
그 먹거리들, 사냥이 아닌 도살(屠殺)로 얻어진 고기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위무컨대 사냥과 도살은 다르다.
도락(道樂)과 섭생(攝生)이 다르듯이.
그런데, 소가 되어 소의 슬픈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인류는 식인의 습성에서 벗어났듯이 언젠가는 육식의 습성에서도 벗어날 것이라는데,
흐음, 모르겠다.
나의 식성이야말로 구석기 입맛의 회억일시 분명하렷다마는.
-독서 리뷰-
[[알퐁스 도데]]
<스갱 아저씨의 염소> <두 여인숙> <프랑스의 요정>
<스갱 아저씨의 염소>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5.07.11. 05:24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
<“우-우우-!” 늑대가 울었어요. “돌아와! 돌아와!” 스갱 아저씨의 나팔이 애타게 울었어요.>
산 속에서는 늑대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골짜기 아래에서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스갱 아저씨의 나팔소리가 들립니다.
스갱 아저씨가 손짓하는 집에는 안전과 풍족함이 있지만 자기를 잡아맨 줄과 말뚝과 울타리가 있습니다.
산 속에는 늑대에 잡아먹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대신 자유의 기쁨이 있습니다.
블랑게뜨는 산 속의 자유를 선택합니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날이 저물자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두 눈과 짧고 똑바로 선 두 귀가 보였습니다.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늑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염소가 늑대의 손아귀를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처음에 블랑께뜨는 차라리 이대로 빨리 잡아먹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자신의 뿔로 힘닿는 데까지 늑대와 싸우리라 결심을 한 것입니다.
막다른 곤경에 처했을때에는 구차하게 요모조모 재어가면서 살길을 도모하지 말고 단호하고 과감하여라...
쥐도 이왕 죽을 값에 막다른 골목에서는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결단력없고 용기없는 내게 필요한 경구라고 생각하고 옮겨 적어 놓았던.
옛날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메모해 두었던 칠언절구가 있습니다.
得樹攀枝未足貴 懸崖撒手丈夫兒 (득수반지미족귀 현애철수장부아)
뜻인즉슨, 낭떠러지 나무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간힘 쓰지말고 가지에서 손을 탁 놓아라, 그게 대장부일지니...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나 부끄럽게도 백범 어른의 저 경구는 그저 관념론이었을 뿐, 심각하게 맞닥뜨린 곤경에서 나는 늘 구질구질하였고 구차하게 연명하였습니다.
나와 달리 용감한 블랑게뜨..
블랑게뜨는 밤새도록 싸우다 장렬하게 눅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느낀건대, 알퐁스 도데는 능란한 알레고리스트 (allegorist)로군요.
세속의 풍요를 마다한채 가난한 시인의 길을 선택한 피에르 그렝그와르 아저씨.
알퐁스 도데는 블랑게뜨를 빗대어, 반어적(反語的)으로 시인이 선택한 자유로운 영혼의 위대함을 찬양하려는 모양이지요.
그러나 백범일지에서 칠언절구를 베껴 놓듯 젊었다면 어땠을런지 모르겠지만, 늙은 나는 블랑게뜨가 그저 무모해 보입니다.
블랑게뜨 용기의 가치는 자신의 죽음에 가름할 뿐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니미니에게 블랑게뜨와 같은 용기를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유에 대한 관념, 그 알레고리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념과 실천.
<그의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은 그의 실천이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의 실천이성은 그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고종석 '해피 패밀리'->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이 다르고 실천이성과 실천 또한 같지 아니합니다. ㅎ
<두 여인숙>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5.07.12. 04:48
알퐁스 도데의 두 여인숙
곰같은 여자와 여우같은 여자에 대한, 참으로 적실한 소설입니다.
금성으로부터 온 종족(여성)에 대하여, 화성으로부터 온 우리 동족(남성) 제위(諸位)께서는 아래 가설에 동의하시려는지?
<여우같은 여자랑은 살아도 곰같은 여자랑은 못산다>는 명제 말입니다.
애교를 부리고 내숭도 떨고 밀당에도 능한 여자.. '아'와 '어'의 느낌을 다르게 구사하는 여자.. 배겟머리 송사가 달콤한 여자.. 구사하는 포즈를 침대와 거실에서 다르게 구사할 줄 아는 여자... 꾸밀줄 아는 여자.. 로코코한 여자... 장식적인 여자..
여우같은 여자.
당근(ㅎㅎ) 나도 '그런 여자가 좋더라' 입니다.
노래제목처럼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었지만(과거 완료형) 말입니다. ㅎ
하하, 가볍게 지껄였습니다만 좀 더.
"산다는건 아름다운 거짓, 죽음은 고통스러운 진실'
아까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 라디오의 인문학 산책인가 (파이돈에 대한)하는 프로에서 들었던 말인데 이 말이 데포르마숑되어 꿈속에까지 난만하게 틈입하였습니다.
삶.. 아름다운 거짓이라... 아름다운.. 거짓... (금성과 화성을 오가는 내 꿈 속 우주적 대하 드라마는 얘기하지 않을랍니다.ㅎ)
곰곰 생각해보는바, 삶은 레토릭입니다.
영웅호걸은 물론 장삼이사, 우리의 삶이 그러합니다.
무문방 들어앉아 용맹정진하는 스님도, 가난과 복종과 순결의 사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도, 성삼문도, 아인슈타인도, 물론 아베일족도 그러합니다.
간구와 기도도 그러하고.. 음악과 미슬과 문학 무릇 예술장르도 그러합니다.
냉철한 과학적 논거에도 레토릭은 용해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를테면 레토릭의 파악 파괴 도약의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레토릭이라는 장식적 더께를 거두어내고 어느 뉘라 순수한 뼈대를 파악하여 그것을 부여잡고 한목숨 살아낼까요?
뼈대가 미지(未知)인데 피조물 뉘라 그 근원을 파악하고 만져보았을랑가요.
그 뼈대 추상의 오브젝트를 요리조리(종교 예술 과학 양심 도덕률 이성..) 장식함으로 스스로의 화장을 위무 납득해가면서 한 세상 사는게 한살이일런지..
신이 개입하지 않는 우리 삶은 임의적 장식일수 밖에 없다는 필연적 귀납을 우리는 짐짓 외면합니다.
장식이 거짓이라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살다 죽는 죽음도, 그런 목숨을 허여(許與)한 神조차도 진실이지 않습니다.
어쩄거나
나는 곰보다는 여우가 좋다는 얘기입니다. ㅎ
알퐁스 도데의 '두 여인숙'
곰이나 여우 따위보다 더 깊은, 관계와 상실에 대한 페이소스가 스며 있습니다.
그에 대하여 나는 짐짓 모른척 할랍니다.
<“도리 있나요? 남자들이란 다 그런 걸요. 우는 모습을 좋아하는 자는 없어요. 그런데 저는 딸들을 잃은 뒤로는 언제나 눈물만 흘리고 있거든요. 더구나 아무도 왕래가 없는 큰 집은 정말 쓸쓸하답니다. 그러니 가엾은 호세는 심정이 참기 어렵게 답답해질 땐 건너 편 집으로 가서 술을 들지요. 그이는 목소리가 매우 좋아서 그 아를르 여자가 노래를 시킨답니다. 쉿! 그이가 또 시작했어요.” 여인은 몸을 떨며 손을 앞으로 모았다. 굵은 눈물 방울이 여인을 더욱 측은하게 만들었다. 여인은 창 앞에서 남편 호세가 아를르 여자에게 들려 주는 노랫소리를 황홀한 듯이 듣고 있었다.>
<프랑스의 요정>
-알퐁스 도데 作-
***동우***
2015.07.14. 04:56
알퐁스 도데의 프랑스의 요정
파리라는 도시.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이루어진 계획도시 파리.
못을 메우고 숲을 쓸어버리고 철도가 놓이고 터널을 뚫고 메트로가 달리고..
<연극을 통해 우리를 조롱했어요. 우리의 마법은 속임수로 꾸며지고, 우리의 기적은 희롱되었어요. 보기에 흉측한 숱한 얼굴들이 장식된 꽃불의 달빛 속에서, 우리의 전용품 격인 장밋빛 옷을 걸치고 날개 달린 수레를 타고 있는 몰골을 수없이 대하다보니, 사람들은 우리 생각을 할 때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도시개발 때문에 죄 죽어버렸나요?
프랑스의 요정들.
나라를 아우르는 시였고 신앙이었고 천진스러움과 청춘의 대변이었던 프랑스의 요정들은.
<‘오, 여러분들, 모두 태워버립시다. 태워버립시다, 태워버려!>
과학을 표방하여 요정들을 희화화(戱畵化)한 것도 모자라 도시빈민(都市貧民)으로 만들어 씨를 말려버리는 파리는 불 타 없어져야 합니다.
코르니유 영감님의 풍차에는 사라진 가치들에 대하여 수동적 애상이 있다면 프랑스의 요정에는 새로운 것들을 향한 소극적 저항의 슬픔이 있습니다.
개발독재 시절, 영자는 서울로 와 식모가 되고 공순이가 되고 버스차장이 되었다가 종장에는 외팔이 창녀가 되어 몸을 팝니다.
++++
<서울 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워 돌아오리란
앵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
프랑스 땅 늙은 요정 멜뤼진.
<그 밑으로 햇볕에 그을고 초췌한 표면의 튼 자국과 주름살투성이의 처참한 얼굴이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주름살투성이의 얼굴 한가운데에 교활해 보이는 검고 조그만 두 눈이, 낡은 벽 틈으로 주위를 살피는 도마뱀의 눈처럼 불안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국 땅의 늙은 요정 '영자'도 저리 처연한 모습일까요.
<그 뒤로 우리는 만사가 끝장 나 버렸어요. 우린 오로지 사람들의 믿음에만 의지해 살고 있었으므로 그 믿음을 잃게 되면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거나 다름없이 되었지요.>
그 옛날, 너댓살 짜리 내 아이들 손을 잡고 부산시민회관에서 공연한 아동뮤지컬 '피터팬'을 보았지요.
무대 위에서는 팅커벨이 기진하여 쓰러졌습니다.
피터팬(윤복희 였던가)은 객석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요정이 있다는 걸 믿으면 팅커벨은 살아난답니다. 어린이 여러분!! 요정을 믿나요?"
병아리 같은 목소리로 화답하는 대합창.
"믿어요!!"
요즘 산타크로스의 선물을 믿는 아이들 있나요?
팅커벨이고 산타크로스고 죄 부모자식간 기쁨으로 위장된 '눈가리고 아웅' 코드의 거짓 동심이었을겁니다.
작금에 이르러, 18세기 프랑스의 멜리쥔이나 1970년대의 영자를 뉘라 믿겠어요?
저 요정들은 진부합니다.
21세기 아이들은 새로운 종족인걸요.
그렇지만.
천민자본주의가 물화(物化)된 대한민국의 도시들.
경제와 공학의 손길만 있을뿐, 도시철학을 궁구하는 기척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세대 60% 이상의 거주형태가 아파트인 것이 프랑스인에게는 그리도 이상한 모양입디다.
그나마 아파트들은 지은지 30년도 아니 된 것들.
20년만 지나면 죄 갈아엎고 새로이 짓자는 재건축 재개발로 들썩거립니다.
그 부박(浮薄)한 연조로 도시에 생태 인문학적 숨결이 깃들기를 기대할수 없지요.
내 친구는 파리에 가면 백년도 넘은 따님의 아파트에 묵습니다.
창밖으로는 즐비한 지붕과 굴뚝이 보인다고 합디다.
메리쥔이 불태우고자 했던 그 파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고백합니다.
내가 얼마나 첨단설비 가득한 효율적이고 주거환경 쾌적한 새끈한 아파트를 열망하는지.
입지와 규모등, 돈 되는 아파트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나는 위선자입니다.
책과는 상관없이, 늘 옆길로 샙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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