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고리키 <아르히프..어느가을날. 마카르츄드라. 이제르길리노파> (1,4,3,3,1)

카지모도 2019. 11. 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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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막심 고리키]]

<아르히프..> <어느가을날> <마카르츄드라> <이제르길리노파

 

 

<아르히프 노인과 뇨니카>

-막심 고리키 -

 

***동우***  

2013.06.21 05:36

 

반딧불의 무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열네살짜리 오라비 세이타를 부르는 네살짜리 세츠코.

"니짱니짱!"

세츠코는 굶주려 죽었고누이의 뼈를 담은 드로프스 통을 안은채 오라비 역시 역사의 기둥에 기대어 굶어 죽었다.

살았나 죽었나 벌레를 찔러보듯이역무원은 걸레 밀대로 소년의 몸뚱이를 쿡쿡 찔러 본다.

 

천지간(天地間홀로 남은 어린 영혼.

죽음만이 구원일 만큼 비참한 상태로 오롯하게 남겨진 어린 핏줄이 있다면.

그것이 조손(祖孫)이거나 오누이일 경우그 그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못견디게 마음이 쓰라리다. <이상하게도 아비(또는 어미)와 자식으로 상정하면 조손이나 오누이만큼은 마음이 괴롭지는 않다..)

 

막심 고리키(Maksim Gorky, 1868~1936)’ ‘아르히프 노인과 뇨니카

<뇨니카는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두려움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푸른 섬광에 비친 그 얼굴은 죽은 사람의 얼굴 같았고그 위에서 정처없이 움직이는 두 눈은 이미 정기를 잃고 있었다. "할아버지! ---빨리 가!" 할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그는 날카롭게 소리쳤다노인은 몸을 숙여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으로 그를 부둥켜 가슴에 꼭 껴안았다그리고는 그의 몸을 꽉 조이면서 갑자기 덫에 걸린 이리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그 소리에 반쯤 정신이 나간 뇨니카는 그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뜬 채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때 자신도 거지 꼬라지였을 고리키는 어디선가 저와 같은 조손(祖孫)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고리키에게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읽을 사람은 그렇게 읽으라.

나는 심금을 쥐어뜯는 쓰리디 쓰린서정적 리얼리즘으로 읽으련다.

 

 

<<<어느 가을날>>>

-막심 고리키 -

 

***동우***  

2013.06.08 05:06

 

막심 고리키(1868~1936) '어머니'는 책부족의 과제로 읽어 독후감을 쓴 바 있지만그의 여타 작품들은 별로 많이 읽지를 못하였는데 오늘 새벽에 그의 몇 단편을 읽었다.

참 좋았다.

'어머니'에게서 느껴졌던 사회주의적 상투성과 계몽주의가 만져지지 않아 고리키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다.

 

고통받는 한 소년의 영혼.

인류에 대한 사명감이나 혁명과 같은 거창한 구호가 외롭고 가여운 한 개별적 영혼을 위무(慰撫)할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천대받는 어느 몸파는 소녀의 알뜰한 키스(소년에게는 첫키스)와 따뜻한 젖가슴으로 품어주는 포옹...

 

'페슈코프라'는 본명 대신 스스로 '최대의 고통인(막심 고리키)'이라는 필명을 썼던 고리키의 초상(책날개에 실린 조그만 흑백사진)을 보면 정말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혁명의 표상 '닐로브나' (어머니의 주인공)보다 '어느 가을날만났을 저 '나타샤'가 훨씬 그의 숨결에 어울리는 듯 하다.

 

이 소설아름답고 애잔하여 내 가슴을 적신다.

 

***eunbee***  

2013.06.10 03:16

 

이렇게 따스한 소설이라니...

누군가에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 누군가가 내게 저런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그것이 너무 욕심내는 것이라면 '요나의 말'이라도 있었으면.

 

고리끼하면 '고리오 영감'만 생각이 나요.

이 단편 제목이 무언지 알려주시면(단편집이라면구해서 읽고 싶네요.

한국가면....

윗글이 너무 좋아서...

 

밖에는 비가 옵니다.

이고장에 축제의 날이 어제 오늘이던데비가 오니 맬짱 도루묵인가봐요.

테니스 결승중계보고 산책겸 시골장터(축제의 일환)구경삼아 나갔더니

모두 문닫고 철수해버렸네요.

 

어제부터 비가 옵니다오르던 기온은 다시 뚝ㅎㅎ

 

***eunbee***  

2013.06.10 04:34

 

'색칠하는 여자다 읽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검색해보니.

ㅎㅎㅎ고리오 영감을 고리끼라니..에구구~

3때 읽은 책을 이렇게 헷갈리니 원이눔의 까마귀고기.ㅋㅋ

선생님이 하도 읽으라고 추천해서 읽었던 고리오영감이구먼서두..

 

***동우***  

2013.06.12 06:00

 

고리키의 이 단편집은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근데 은비님차츰 내가 모두 올릴터이니 일부러 구하려 하지 마세요.

 

비오는 것 좋아하시잖아요?

축제의 날 시골장터구경 <맬짱도루묵이니비 내리는 창밖 멍 때리시면서 이쁜 상념에라도 젖으시구랴

 

고리끼..고리오.. 고골리..

고씨 돌림 세글자헤깔리지요ㅎㅎ

 

  

<마카르 츄드라>

-막심 고리키 -

 

***동우***  

2013.06.13 05:40

 

고리키의 '마카르 츄드라'.

아아서늘하게 아름답고 처절하게 뜨겁다.

 

볼세비키(레닌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스탈린의 정치적 버팀목(소비엣의 환멸암살 당했다는 설도 있다지만)이었던 고리키.

이 소설을 바로 그 고리키가 썼다니. (1892년 발표한 이 소설은 그의 등단작이라고 한다)

어제 포스팅한 '어느 가을날'도 그렇지만 이 소설에 어디 한 조각 이념적 경향성(傾向性엿보이는가.

막심 고리키그는 '어머니'만으로서 규정되어서는 아니 될 대단한 작가로구나.

 

집시의 영혼은 바람과 같은 무애(無碍)의 자유로움인가.

미녀 랏다와 쾌남 로이코.

사랑이 내포한..... 이성에 마냥 사로잡힘으로서 누리는 고착성과 구속성이 전제된 행복.

그 사랑에 비수를 꽂는 또 하나의 사랑... 스스로의 심장을 찌름으로서 획득하는 자유함 (메리메(칼멘)나 조셉 콘라드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의 심장이 연상되기도...)

 

고리키의 '마카르 추드라'가 내 막연한 파토스에 불을 붙인다.

저와 같이 스스로 피흘리는 심장으로 꿈틀대는 자유.

어쭙잖게 꿈 꾸었을 내 추상의 자유.

 

***eunbee***  

2013.06.13 21:23

 

조금 전에 다 읽고는 몇줄을 썼는데어찌 된 일인지 날아가 버렸어요.

이 방에서 나는 가끔 그래요참 이상도 하지.ㅎㅎ

 

나는 저 소설을 읽으면서영화적 대사를 나는 원하는데이사람들 사랑은 마치 목소리 높여 어색하게 말하는 연극적 대사를 해대는 것 같아서(보드라운 사랑이 아니고거칠고 무서운 이기적 사랑그것도 사랑일까?) 맘에 안들었어요.ㅋㅋㅋ

내 한계가 그러니 동우님의 댓글에서 읽혀지는 저렇게서늘하게 아름답고 처절하게 뜨거울줄을 몰라 어리둥절해요.

나의 독서법이 이렇게 마냥 서툰가 싶어서...ㅠㅠ

 

또 이야기 해야겠네요.ㅋㅋ

우리 딸은 자기 대학1학년 영어시간에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시간에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덧붙여우리엄마는 늘 자신이 전생에 집시였다고 해요,라는 말을 했다면서왜 그랬을까하면서 웃더군요.ㅎㅎㅎ

나는 늘 내가 전생에 유럽의 집시라고 말했었지요이제와 알고보니 집시가 그리 좋은 처지도 역사도 이미지도 아니구먼.ㅋㅋㅋㅋ

 

체홉의 우수...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내 키트(내가 타던 승용차조차 없어서체홉의 '우수'를 읽고 싶어했었지요.

 

***동우***  

2013.06.15 03:53

 

이 소설의 사랑.

참 자연스럽지 않지요?

자유가 利己라면이기를 극복하지 못한 사랑...

사랑하는 상대의 가슴에 칼을 꽂을수 밖에 없는...

 

그래서 더 처연한 사랑의 모습으로 내 파토스에 절박하게 스며들었던가 보아요. ('칼멘'이나 '팔리아치' '폭풍의 언덕따위의 사랑을 향한 카오스적 맹목에서도 나는 그러하지만이 소설은 그와는 좀 색갈을 달리하여...)

 

은비님의 독법의 문제가 아니지요.

기질이나 취향의 문제이기도 할터이지만요는 은비님.

은비님보다 내 감정모체라는게 여태 성숙하지 않은 면이 있는 까닭도 있을거예요.

하하은비님.

체홉의 우수.

언제라도 요나가 되어 마구깐으로 오세요.

직수굿한 말 한마리 있을터이니

 

 

<이제르길리 노파>

-막심 고리키 -

 

***동우***  

2013.07.09 05:01

 

'막심 고리키' '이제르길리 노파'.

전에 포스팅한 '어느 가을날', '마카르 츄드라', '아르히프 노인과 뇨니카'와 함께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막심 고리키의 초기작입니다.

 

'단코'의 불타는 심장에서 고귀한 이념에 불타는 혁명적인 인간상을 엿볼수도 있겠습니다만.

나는 '막심 고리키'의 짙푸른 낭만주의를 보렵니다.

 

아름답습니다.

정념과 파탄으로 직조된 '팜므파탈'의 결에서도 어떤 원시적 건강한 자유를 구가하는 인간주의를 느낍니다.

 

<내가 세상일을 모르는 줄 아나천만에비록 두눈은 흐려졌지만나는 모든 걸 꿰뚫어볼 수 있다구요즘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단지 삶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야나는 흉내를 내는 데 한평생을 써 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 왔지흉내나 내면서 하루하루를 허송하다가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팔자를 원망하기 시작하지그런데 팔자라는 게 도대체 뭔가그건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야요즘도 숱한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옛날 사람들처럼 강한 사람은 볼 수가 없어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렸을까아름다운 사람들도 점점 줄어만 가고 있으니---.">

 

어느 세대에서나 늙은이들은 그런가 봅니다.

자신이 듣고 겪은 세월의 이야기는 죄 아름다운 신화이고 거쳐간 사람들은 죄 아름다운 사람들이고 영웅인가 보지요

 

사족.. 발칸 쪽 (슬라브 쪽도 다소..)의 민족성에는 어딘가 짚시적 분위기가 짙은듯보헤미아의 원류가 본시 그 쪽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