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눈부신 전모 4 (4)

카지모도 2019. 11. 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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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눈부신 전모 4>

-전미선 -

  

 

<[], 저 순정하고 겸허한 자리>

-전민선-

 

어찌하여

저다지 고운가

하루를 이리저리 놀다

섭리를 펼치는 주홍 자리끼

창공을 날던 새들도

서둘러 제 자리를 뜨고

존재마다 물관을 닫는 저녁답

저마다의 부엌에서

정갈한 안식이 익는 소리

흰 무명저고리 활활 벗고

온전히 경배하는 저 순정한 몰[]

태초에 알몸의 정령

먼 등불 영원한 피안 그대는

하루치 황홀한 엽서[曄書]

 

 

<고작>

-전민선

 

다시 생각하자니

백 년만 그립자는 말 거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인 것이다

아무렴 고작백 년만 그립겠느뇨

이 생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지치지 않고

끝끝내 바라보는 사랑이라면

아니 만나지는

구 만리 아득 조차 아랑곳없이

기약 없는 불멸 기쁘게 살겠네

꿀꺽 삼킨

숱한 말들의 체기 다 잊은 체

그렁그렁 그리움 입속에 가둔 채 

 

숱한 말들의 체증...

그렁그렁 그리움 입속에 가둔채.

기약없는 불멸 기쁘게 살겠네.... 

 

 

<

-전민선-

 

무엇이든 헤집고 들어가서야

비로소 네 생애가 절정이고 찬란한 영광이라

 

정수리로 되우 맞아가며

절명조차 곧추서는 생애

모가지까지 콱 박혀

죽어야 살아지는 몰매의 일생

꼿꼿하게 살아서는

만세토록 못 나오실

가없는 순교의 이름 

 

 

 

<처사여처사여>

-전민선-

 

1

어미 노루처럼 겅중거리며

농사지어 보내주신 조선의 순한 양식 

아홉 번 덖은 연두 지극하게 차려 놓고

곡기를 끊던 아흐레 안부 성찬 위에 쓴다

난분분 눈발조차

먼 당신인 줄 알았노라고

첫 이슬까지 노릇하게 구워주신

향긋한 쑥 전도 무시로 그립다고 쓴다

 

2

조등 아래 뜬금없이

마주 앉은 덧없는 인연

무익한 왈가왈부 뒤늦게 참 쓸쓸하노라

상한 자존 더러 감춘 그렁그렁 자백이다

마음으로 먼저 세상을 사는

처사[處士]의 쓸쓸이란

일각이어도 호락호락 않거니

잘 빚어진 다완에

밥풀같은 부추꽃 배부르게 담아 놓고

처사여부디 사흘만 끙끙 앓고 일어나서

법문 한 줄 명약이려니 쩌렁쩌렁 독송하소서

 

담은 뜰 - 삼랑진 율동리 소재 茶家

 

 

<뜨거운 벼락>

-전민선-

 

서울역 플랫폼

기둥 뒤에 숨어서

손사랫짓 완강하다

먼 기적 소리 달려오자

날름 벼락을 하사하셨지

너도나도 귀때기 새파랬을 것이고

내 눈에 너만 보이고 네 눈에 나만 보이던

펄펄 끓는 한 날이었지 아마

무장 무장 뜨거운 한 날이었지 암.

 

 

<아름다운 문장 이었네>

-전민선-

 

도처 사월의 만발과

순정한 심사의 뼛속까지

구비구비 비경이었으나

파장소국 한 송이

그대만큼 아름다운 문장을 본 바가 없네

 

 

< >

-전민선-

 

갈 길 먼 빌미로 먼저 일어서자 고향의 오라비처럼 넌지시 따라나선 시인이 덥석 손을 잡으며 스윽 쥐여준 꼬깃한 마음 단박 궁지에 몰린 모호한 손 직관의 불기둥 하나가 훅 심사를 가른다어둑발 건널목 빨간불이 켜지고 이미 당한 난감을 냅다 건너 갈 수도 없는 요지부동 확확 뜨겁기도 하고

 

부득부득 손사래를 강경한 어조로 무어라 서너 말씀 하셨지마는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고 웅웅 술 한 잔 아니 받아먹은 저녁이 갑자기 불콰해져서 갈지자 걸음으로 도착한 지하철 궁둥이를 붙이고 축축하게 젖은 주먹을 펴자 따듯한 고봉밥 한 그릇 뚝딱 나온다 밥이다 밥

 

 

<여전한 송 여사>

-전민선-

 

느이 아버지 젊어 도라꾸 잘라 엎어 놓고 맥주 만들던 시절 니가 사장하고 니가 공장장 하라고 주먹구구 서열을 살던 그 시절 느이 아버지가 주머니마다 불룩 돈을 넣고 나가서 금 두 냥 손목에 턱 채워주셨는디 금 두 냥을 턱 걸고 나가면 사방 골목이 다 뻔적했었지 그 양반 가오가 손목에만 채워줬겄니 손구락에도 금가락지 한 냥 끼워주고 거들먹거리게 했지 밤이면 쩍 벌어진 손구락이 아파 연신 주무르며 잠을 청해도 이상도 하지 그 다음 날이면 하나도 안 아프더라니께 손구락이

 

송 여사 변치도 않는 사설[辭說이태쯤 듣고 살다가 생신을 즈음하여 집 한 칸도 지상에 없는 딸년 허세가 도졌으니 금가락지 필두로 결국 작고하신 서른 살 청춘의 아버지까지 참여를 시켜야 간신히 멈추어지는 여전한 사설 지겨워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효심이 절로 나버린 것이 렸다 육십갑자 가차우니 그런 것인지 이태 전 작고하신 아버지 묵언 유지를 받들고저 그런 것인지 나도 모르지마는

 

여튼 도적질은 안 했으나 골백번 고심한 뒤에 송 여사 안중[眼中]도 안중[眼中]이지마는 날마다 더 그리워지는 송 여사 만져보기 고사하고 세상 천지 다 두리번 거려도 눈에 아니 보이는 거짓말 같은 이별이 다시 도래하면 나 죽는 날까지 얼얼할 회한 무서워 가당찮은 허세를 행했으리 그리하여 한 냥을 손목에 채워드렸으나 뻔쩍은 커녕 조악하고 우세스럽기 그지없으니

 

입을 귀에 걸어도 시원찮을 송 여사 감흥은커녕 기특한 딸년 잠시 잊고 느이 아버지가 해주신 팔찌를 손목에 찼더니 척하고 팔이 늘어졌었는데 라며 설핏 중언부언이라 에라 이왕지사 회환 없자고 한 짓이니 삼수갑산을 가보자며 닷 돈짜리 가락지 하나를 더 해드렸으매 송 여사 사설[辭說그만 멈추었노라 쓰면 그 아니 좋을까 마는 얘느이 이모는 요새 왕사탕만 한 진주를 끼고 다니더라고 새 사설 여전하여 불끈 주둥이가 나올 법도 하건만 공연히 공손해지는 음전한 이 개과천선은.

 

 

++++

 

***동우***        

2016.01.01 03:18

 

새해 벽두詩集 '앤솔로지'에 실린 전민선 시인의 시 몇편 올립니다.

전시인이 모처럼 발표한 시편들입니다.

날더러 오래비니 멘토니 해쌓면서도 시 보여주기 인색하여 드문드문 시 몇편 내비치는 그녀인지라나로서는 참으로 반갑습니다.

노모와 부군의 병수발로 경황없는 나날일텐데 이만한 시닦음 여간 쉽지 않음을 알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나름의 감평(感評몇마디 끄적거립니다.

시인의 시심(詩心)에 깊이없는 실례임을 무릅쓰고.

 

<'(), 저 순정하고 겸허한 자리'>

몇시간전 저물어 가뭇 사라져 버린, '(), 저 순정하고 겸허한 자리'

섭리를 펼치는 주홍 자리끼는 서녘 하늘에 드리운 진하디 진한 놀인가요.

하루치 황홀한 '曄書'(葉書가 아니라 빛날 , '曄書라는군입쇼)...

시인의 저물녘은 나처럼 방자하지 않고얼마나 음전한지요.

 

<고작>

목에 가시처럼 걸린 숱한 말들의 체증...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운거랍니다.

그렁그렁 그리움 입속에 가둔채.

기약없는 불멸로 기쁘게 살겠네....

 

<>

무엇에 무엇을 꽝꽝 박아 한치 꿈쩍 못할 접착의 관계이리까.

효녀 시인그녀가 끔찍하게 보듬는 인연들은 견고하게 찬란합니다.

한살이의 관계들이 제가끔 순교일런가요.

꼿꼿하게 살아서는 만세토록 못 나오실 가없는 순교의 이름.

한마디 절창.

'이랍니다.

 

<처사여처사여>

시인이 부르는 저 처사님이 혹여 그녀의 가장 친한 벗 강희님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거리 사업 접고 삼랑진 전원에다 도자기한복등 우리 것 공방차려 자족(自足)의 삶을 영위하시는.

그런데 더 바쁘시고 여념없으셔 처사의 유유자적은 아니실터인데...

아홉번 덖은 '연두'언어로 흠향하는 각별한 차맛이올시다.

 

<뜨거운 벼락>

시인의 첫사랑은 저리도 벼락같은 뜨거움이었구나.

내 눈에 너만 보이고 네 눈에 나만 보이던 펄펄 끓는 한 날벼락처럼 급습한 첫키스.

가히 '키스 오브 파이어', 얼마나 뜨거웠을까.

시인이 잘 쓰는 전라도 사투리 무장무장..

필경 무지무지 뜨거운 날이었을터..

 

<아름다운 문장 이었네>

구비구비 4월 그 찬란한 꽃들의 비경 속소국 한송이.

그 절색을 한 소절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렵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 곱수다레..

 

< >

시인의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라비같은 어떤 시인께서 누이같은 시인에게 꼬깃꼬깃 손에 쥐어준 것.. 가다가 밥사먹으라는 배춧잎 한장이었을까.

시의 허기뚝딱 나오는 시밥 한 그릇..

 

<여전한 송 여사>

한 집안의 맏딸나는 시인처럼의 효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연전 여윈 아버지께도 그렇거니와지금은 병석의 파파노모를 수발하는 그 끔찍한 정성은.

부군께서도 심각한 와병중이신지라서울 춘천 평택을 오가면서 두루 베푸는 그녀의 노고는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닐겁니다.

"입을 귀에 걸어도 시원찮을 송 여사 감흥은커녕 기특한 딸년 잠시 잊고 느이 아버지가 해주신 팔찌를 손목에 찼더니 척하고 팔이 늘어졌었는데 라며 설핏 중언부언이라 에라 이왕지사 회환 없자고 한 짓이니 삼수갑산을 가보자며 닷 돈짜리 가락지 하나를 더 해드렸으매 송 여사 사설[辭說그만 멈추었노라 쓰면 그 아니 좋을까 마는 얘느이 이모는 요새 왕사탕만 한 진주를 끼고 다니더라고 새 사설 여전하여 불끈 주둥이가 나올 법도 하건만 공연히 공손해지는 음전한 이 개과천선은."

개과천선이라니천성이 효녀 심청이신 분이.

이 시는 빼어난 꽁트라 해도 손색이 없을듯 합니다.

 

전민선 시인님.

객 쩍은 잡설바로 좀 잡아 주시우.

 

2016 년 새해입니다.

벗님들좀있다 하늘 향해 심호흡 한번 하십시다.

섭리께서 풀어 놓으셨을지니대기에 서려있는 새벽서기(瑞氣폐부 깊숙히 들이마십시다.

모쪼록 밝고 맑은 하루를 여십시오.

 

***설레임***  

2016.01.01 12:05

 

존경하는 동우님께 새해첫날 인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동우님의 글월에 오늘도 내일도 뿌듯함을 많이 받아가는 사람.

친구분 시도 그렇고 동우님의 감평도 그렇고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더욱 설레이고 아름답습니다.

동우님.

병신년사랑하는 가족들과 더불어 모두모두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가득 채워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우***  

2016.01.02 04:58

 

언제부터인가 설레임님 블로그 적조하여 새해인사도 못드렸습니다. (설레임님의 전번을 모르니 메시지로도...오키나와 가신 홍애님께는 스마트 폰 메시지 드렸는데 로밍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다가 나도 새해덕담 눕힙니다

병신년 한해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의 일취월장을 기원합니다.

설레임님 댁내 두루 평안하시고.

더불어블로그에 가끔 근황도 올려주시기를 앙망...

 

***길손***

2016.01.01 17:53

 

전민선 시인을 동우님 댁에서 몇번 접한 길손입니다.

여전한 송여사.

해학 넘치고... 시인의 기교가 돋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노모에 대한 사랑가슴이 짠합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도 그러하셨지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닌데 나이드시면서 점점 어린아이처럼 샘도 많아지고 투정도 심해지시고.. 그예 치매가 오더군요.

송여사께서는 저리 명징한 정신을 가지고 계시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익명으로 들락거리는 독자새해 전민선 시인님과 동우님의 만복을 기원합니다.

 

***동우***  

2016.01.02 05:02

 

반갑습니다길손님.

전민선 시인의 '여전한 송여사다시 읽어보고 다시 느낍니다.

시인의 해학적 어투 속에 스며있는 노모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애틋한 슬픔을.

아니늙고 병들고..생자필멸 회자정리.. 인간사 관계들의 아름다운 슬픔을...

길손님도 병신년 새해만복이 가득하시기를.

 

***어리***  

2016.01.06 16:23

 

길손님 에 읽히운 것이 기쁘고도 부끄럽고 합니다~

직접 호명은 아니지마는 그냥 빗겨 설 수도 없어..잠시 친한 척 하오니 혜량하소서..

새해소망하시는 일 다 이루시는 대운의 한 해 되시구요~~반갑고고맙습니다

 

***길손***

2016.01.09 15:43

 

전시인님.

동우님과 함께 뵙고 싶으신 분.

새해덕담.

참으로 고맙습니다.

 

열패감으로 신음할때마다 문학의 힘의 고마움을 절감합니다.

언젠가 뵈올 기회 있을런지 기약없습니다마는.

 

새해 두분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어리***  

2016.01.06 16:14

 

어디 당신을 일러..오라비멘토만 들이 댔을까요이 허무맹랑한 갈짓자 영혼이...^^

아버지를 영영 잃고 회개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에게 참 잘하는 딸년되어 늙어 갑니다오라비 앞에서 늙어 간다는 말은 필경 망언이지마는 오늘은 그냥 직진하겠습니다

고급진 수련을 마친..세상의 시들이 하찬란하여 나는 이제 그만 시 쓰는 일은 별 흥미를^^못누립니다.

다만 사람 노릇 하자고 십여년전 뭉쳐진 인연들과 한 해 한 권 동인지나 만들어 가며 미치도록 사모한 문학의 사역을.... 연명중이지요....시는 안쓰고 살아도....딸년 노릇 잘 하다가 헤여져야 하고 이제는 여편네 노릇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구역꾸역 아이들 눈치도 보아 가며 따듯한 밥 해대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시방 유치원 방학한 하린이 데리고 있습니다딸노릇애들 어미 노릇그보다 더 쎈 것이 할미 노릇이더라구요.. 할미노릇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 드리고도 싶습니다..^^

죽기까지 뜨겁게 살자고 다짐한 병신년입니다올해 환갑이라고~어느새 환갑이라고.

참말로 바라기는 이토록 반지레한 성소나 들락거리며 이후의 생을 분주하게 살았으면 싶습니다.... 미주왈고주왈 하면서리..

 

***어리***  

2016.01.06 16:31

 

오라버니~

오라버니의 감평.

제 속을 들락거린 듯 하여 더 작아집니다요~~

객쩍은 잡썰이라니요~~헤쳐 읽으신 그대로.. 별반 어긋남이 없습니다

제 손을 덥썩 잡은 시인의 쉽지 않은 마음다시 겨울을 살면서 아직 따듯합니다

그 마음을...어디 밥 한 공기에 견주겠는지요..오히려 송구한 마음만 오롯하게 남았습니다

살면서..내가 먼저 그 양반 손을 슬그머니 취하는 날..있기만을 소망합니다

전북 장수 출신 그 시인 남녀가 유별하다며 손을 빼면 어쩌나 은근 유추도 해보고..^^

 

***동우***  

2016.01.07 04:45

 

어리님도 어느새 환갑.

그래도 추호도 서글픈 어조없이 죽기까지 뜨겁게 살자고 다짐 하시는 어리님이 대견합니다그려.

 

하하하린이 할미노릇이 더 쎕디까?

딸노릇어미노릇아내노릇보다.

 

할비노릇하는 나도 어느 구석 알듯도 합니다만.

 

새해도 한주일 후딱 지나갔군요.

어쨌거나 엿장수는 엿을 팔고 가수는 노래하고 시인은 시를 써얍지요.

노모와 부군 경황중삶에 대한 더 깊은 시어도 영글수 있으리다.

 

두 분 병수발 여념없으시지만모쪼록 힘 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