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화수분. 꺼삐딴리]] (1,4,3,3,1)

카지모도 2020. 1. 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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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화수분> <꺼삐딴리>

 

 

<화수분>

-전영택 作-

 

***<동우>***

2013. 01. 13

 

늘봄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의 ’화수분‘

'화수분'은 아무리 퍼써도 담아 둔 재물이 줄지 않는 보물단지를 말하지요.

 

1925년, 일제 식민지가 무르익어가는 시절.

궁핍한 어느 가족의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굶주림은 사람들을 어느 지점까지 절망과 천박함과 야만으로 추락시키는지.

아홉 살 짜리의 입에서 나오는 제 어미를 향한 쌍욕이 놀랍습니다.

 

<아홉 살 먹은 큰 계집애는 몸이 좀 뚱뚱하고 얼굴은 컴컴한데 이마는 어미 닮아서 좁고 볼은 아비 닮아서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르는 말은 하나도 듣는 법이 없다. 그 어미가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하여도 볼만 부어서 까딱없다. 도리어 어미를 욕한다. 꼭 서서 어미보고 눈을 부르대고 ‘조 꺽정이가 왜 야단야단이야.’하고 욕을 한다. 먹을 것이 생기면 자식 먹이고 남편 대접하고 자기는 늘 굶는 어미가 헛입 노릇이라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망할 계집년이 무얼 혼자만 처먹어?’하고 욕을 한다. 다만 자기 어미나 아비의 말을 아니 들을 뿐 아니라, 주인 마누라나 주인 나리가 무슨 말을 일러도 아니 듣는다. 먼 데 있는 것을 가까이 하려면 손수 붙들어 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비키게 하려면 붙들어다 치워야 한다.>

 

<다음에 작은 계집애는 돌을 지나 세 살을 먹은 것인데 눈이 커다랗고 입술이 삐죽 나오고 걸음은 겨우 빼뚤빼뚤 걷는다. 그러나 여태 말도 도무지 못하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붙들어 매여 끌려가는 돼지 소리같은 크고 흉한 소리를 내어 울어서 해를 보낸다. 울지 않는 때라고는 먹는 때와 자는 때 뿐이다. 그러나 먹기는 썩 잘 먹는다. 먹을 것이라도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죄다 빼앗아다가 두 다리 사이에 넣고 다리와 팔로 웅크리고 웅웅 소리를 내면서 혼자서 먹는다. 그렇게 심술 사나운 큰 계집애도 다 빼앗기고 졸연해서 얻어먹지 못한다. 이렇기 때문에 작은 것은 늘 어미 뒷잔등에 업혀 있다. 만일 내려놓아 버려두면 땅바닥을 벗은 몸으로 두 다리를 턱 내뻗치고 묶여 가는 돼지 소리로 동리가 요란하도록 냅다 지른다.>

 

극한적인 궁핍은 그렇다치고.

 

딸을 굶주림 밖으로 밀어 보내고 나서 통곡하는 아비.

그리고 한사코 만나서 함께 보듬은채로 얼어죽는 가시버시.

 

아, 낯 선 남녀가 만나 평생의 연이 이루어진 가시버시와 그리고 어디에선가 뚝 떨어져 세상의 근거없이(오로지 유전자의 근거로) 생겨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거의 한세기 흐른 작금. 그 의미는 이 소설보다 더 따순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가족.

감정따위로 경제따위로 해체되어서는 아니 될 그 관계.

윤리 도덕 이전에 자리 잡은 집단무의식..

영혼의 결속...

 

***eunbee***

2013. 01. 13

 

'화수분' 하니까 울엄마 생각나요.

엄니는 자주 날보고 이렇게 말씀 하셨죠.

"저~ 화수분단지는 들어앉아서 뭐하는 거니? 얼른 나와서 콩나물이라도 다듬어서 씻지 않구"

 

그래서 어린날부터 귀에 익게 된 '화수분'.

전영택님의 화수분은 어떤 것인지 내일 읽으러 와야지.ㅎㅎ

 

**

읽었더니... 참 슬픈 이야기.

내가 늘 하던 말,'부모가 가난하다는 것은 자식에게 죄악이다'

60년대 중 후반, 우리나라는 참으로 가난했지요.

그 가난한 집안의 애들을 가르치다 보면 저런 말 나와요.ㅠㅠ

 

***동우***

2013. 01. 14

 

소설속 이름들 때문에 이 가족의 비극성은 더 아이러니컬합니다. (더불어 핏줄사랑과 그 염원...이라는 가족간 결속감이라는 것도..)

'화수분'.. '귀동이'..

 

은비님.

집에 불이 나 발을 동동 구르는 가족, 물끄러미 불구경하고 있던 父子거지.

아버지 거지 왈.

"얘야, 저런 꼴 안당하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니, 다 애비 잘만난 덕인줄 알거라."ㅎ

 

 

<꺼삐딴 리>

-전광용 作-

 

***동우***

2013. 03. 04

 

‘전광용(全光鏞, 1919~1988)’의 ‘꺼삐딴 리’

 

'조제프 푸세' ('스테판 츠바이크'著 '조지프 푸세,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라는 사람을 아시는지.

황제 나폴레옹은 대신으로 그를 중용하였지만, 나중 귀양지에서 이렇게 토로하였다.

"나는 완전무결한 배신자를 꼭 하나 알고 있다. 그것은 푸셰”라고.

 

전형적인 흑막적 인간의 대표주자로서 인구에 회자되는 역사적 인물, 조제프 푸세.

승직(僧職)에 있었지만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자 금새 자유주의자로 변신하였다. (국민공회 의원으로 언제나 다수파 편에 선다)

처음에는 온건파였다가 루이 16세의 처형을 주장(대세가 그러하여) 급진파가 된다.

비기독교화를 주창하여 리용에서 반혁명파 2000명을 처형해서 '리용의 학살자'란 이름을 얻었다.

빠리로 돌아와 로베스피에르 추방을 주도하였고, 총재 정부때는 경찰장관에 오른다.

1799년 나폴레옹의 구테타 때에는 동지를 버리고 나폴레옹의 편에 서서 훗날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는데 한 몫을 한다.

쉰 무렵 억만장자로 은퇴하여 삐까번쩍한 생활을 즐긴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때에는 다시 경찰장관이 되지만, 나폴레옹의 몰락을 직감한 그는 나폴레옹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 루이 18세의 왕정복고에 또 한 몫을 하여 거기서도 대신의 자리를 유지한다.

말년에 루이 16세를 처형한 급진파라는 전력때문에 추방되기는 하였지만, 그의 정치적 생애는 변신과 배신으로 일관된 삶이었다.

신앙인에서 종교박해자로, 사유재산 규탄자에서 축재의 귀재로, 학살자로, 비밀경찰두목으로, 공화파에서 왕당파로..

극좌와 극우를 오간 사나이,

철두철미 파충류적 인간 조제프 푸세.

 

한국의 조제프 푸세, 꺼삐딴 리.

 

'꺼삐딴 리' (켚틴 리, 'captain Lee'의 러시아어 '까비딴'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는 전광용의 196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지조나 신념은 커녕 시류에 편승한 재빠른 변신술의 귀재. (이 소설후, 꺼삐딴 리는 이제 변학도나 연산군처럼 상징화로 굳어진 이름이다.

풍자적 어투의 소설이지만, 6,70년대 무렵 이른바 '좌파'쪽으로 부터 '우파'의 정체성을 공격하던 주제로서 중요한 소설이었지 싶다.

 

그러나 말이다.

꺼삐딴 리, 이인국 박사.

마냥 이기주의 기회주의로서만 미꾸라지처럼 시대를 살아낸 부정적인 인물로서만 매도해 버리면 그만일까.

 

정의관념 미약한(?), 나로서는 그를 이해 못할 바 없다.

다시 읽어보니 이인국 박사는 범상한 우리 이웃, 장삼이사중 하나로다.

한 소시민으로서 세상을 살아 낸 방법론이 지사적(志士的)인게 못되었다고 그 삶의 자리를 마냥 폄하고 훼해야 하는게 무조건적으루다 옳은 것이냐.

내 보기에 꺼삐딴 리는 전형적인 쁘띠 부르주아의 행색이다.

거기 어찌 '조제프 푸세'를 갖다 댄단 말인가.

 

내게도 창씨개명한 의사 할아버지가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

육체라는 유물론에는 이념 따위 없다.

삶의 자리, 먹고사니즘에 있어 떳떳한 당위로움 없지 아니하다.

 

또 다른 인물이 떠오른다.

'이범선' '오발탄'의 주인공 '철호' (모레쯤 오발탄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읽어 주시기를.)

 

家長, 먹고사니즘으로서의 인간.

이인국과 철호중 누가 당위로운가.

 

지사들께서는 나를 욕하라. ㅎ

 

***teapot***

2013. 03. 04

 

오발탄 기대합니다.

캡튼 리와 철호가 서로 자리 다툼을 한다면 우리 모두도 별 다르지 않을 듯 한데요....

 

***동우***

2013. 03. 05

 

티팟님.

오늘 아침 읽은 오발탄은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자본주의의 그늘,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같은 것은 그닥 만져지지 않고, 1950년대 편만한 빈궁만이 만져지더군요.

 

그 당시만 하여도 남한보다는 훨씬 잘 살았었던 북한.

작금, 굶주리는 북한에 대하여 공연히 푸념이나 늘어 놓았습니다.

코멘트에다가. ㅎ

 

***홍애(虹厓)***

2013. 03. 04

 

이삿짐 무게가 모두 돈으로 환산 되고 있어서 읽겠다고 생각한 책들 대부분 덜어내고 있는 요즘.

동우님 블로그 보면서 아하 이거구나 합니다.

한글 고플 때 동우님 방에서 놀아도 되겠구나 하고요

 

지금은 사방이 한글책이니 화면 위의 글자란 눈 아프다는 핑계로 멀리 하고 있지만서도

주위가 모두 외국말인 곳에 가서는 맛 좋은 글읽기 될 것입니다. ㅎㅎ

 

그래서 오늘은 눈팅만 ㅎㅎ

 

***동우***

2013. 03. 05

 

홍애님.

일년여 일본체류.

살림살이 짐도 어지간 할 터인데, 조교수님 연구자료도 한 짐이라면서요? (SNS에서 들었던가.)

당초, 책부족으로 계획하셨던 책들... 대폭 양보하실 밖에.

 

하하, 내 어줍잖은 '리딩 북' 포스팅, 제법 읽어 주시는 분들 있다오. (댓글은 달지 않더라도)

어제는 '계수나무님'이 자신의 블로그에다 '리딩북' 읽는 진지함에 대하여 포스팅하신걸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이제 홍애님까지 일본땅에서 한글 고플 적에 맛좋은 글읽기로 점 찍으신다니.

덕분에 내 블로그 더 신바람 나게 생겼습니다그려.ㅎ

 

어제 3월 4일 홍애님 내외분 출국날자로 알고 있었는데, 두루 엿보니 좀 순연되는가 보아요.

 

그런데 출간된 홍애님 저서, 검색되지 않아요.

서점에는 언제쯤 깔리려는지?

 

***저녁산책***

2013. 03. 06

 

꺼삐딴 리. 제목은 들어보았는데..처음으로 읽어보았네요.

좋게 말하면 '까멜레온'인가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으로 위장하는..'

'셍존'보다 더한 가치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점에서 충분히 이해 되는 캐릭터입니다.

 

저도 이런 말을 하고 보니 충분히 '속물'이지요...

 

***동우***

2013. 03. 08

 

'꺼삐딴 리'는 카멜레온처럼 지조나 주체성없이 시류에 아부하여 변신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하나의 관용어가 되어 버렸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닥 이해 못할바도 없지요? 저녁산책님도 역시.

 

저녁산책님.

'志士가 필요없는 현대'라는 말(비슷한 의미...)을 어디선가 들은적 있습니다.

지사적 개념 (애국이건 도덕이건 윤리건..)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부분을 폄훼하는 말일테지요.

 

우리가 손익계산적 타산과 그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세태에 몸담고 있어 저 이인국박사의 이기주의 가족주의적 행태가 저 푸세처럼 그닥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것일까요? ㅎ

 

하하, 저녁산책님.

저녁산책님이 속물이라면 나는 더욱 충분히 속물이지요.

본시 삶이란 속물적인 것, 그런걸로는 부끄러워 하지 않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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