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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36)

카지모도 2023. 2. 1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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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이가 경기전 장원 퇴락한 곳을 봉심한 뒤에 경기전에서 가까운 내사정에

가서 한량들의 활쏘는 것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활 하나를 빌어가지고 전후

세 순을 쏘는데, 첫순은 자청하여 쏘고 둘째순은 활 임자의 청으로 쏘고 셋째순

은 여러 한량들에게 졸려서 쏘았다. 세 순이 다 같은 오중이라도 살을 꽂는 곳

은 다 각각 달랐다. 첫순네는 과녁 네 귀와 복판에 다섯 살을 벌려 꽂고, 둘째순

에는 무고위에 다섯 살을 일자로 꽂고, 셋째순에는 똥때까지 여섯 살을 과녁 복

판에 모아서 꽂았다. 봉학이로면 이쯤것은 자랑거리도 되지 못하건만 한량들은

귀신 같은 재주라고 놀라서 혀들을 내둘렀다. 한량들이 봉학이를 술대접하려고

술집으로 끄는 것을 봉학이가 오늘은 공사로 나온 길이라 술 먹고 있을 수 없다

고 사피하고 내사정에서 바로 감영으로 들어왔다. 봉학이의 봉심하고 온 사연을

감사가 들은 뒤에 봉심하고 바로 오는데 이리 늦었느냐?” 하고 물어서 내사정

에서 한량들이 활을 쏘기에 서너 순 쏘구 왔소이다. " 봉학이가 바로 말씀

하였더니 봉심 나간 사람이 한만히 활을 쏘고 있었단 말이냐? 사람이 지각이

그럴 수가 있느냐!” 꾸중이 내리었다. 봉학이가 비장 거행 두 달만에 처음으로

감사께 꾸중을 들었다. 그날 저녁 폐문 후에 봉학이가 다른 비장들과 같이 선화

당에 올라와서 감사께 저녁 문안하고 함께 물러가려고 할 때 감사가 봉학이는

좀 있거라. " 하고 말씀하여 봉학이가 미진한 꾸중을 들을 줄로 알고 속으로 걱

정스러웠더니 다른 비장들이 다 물러간 뒤에 이리 좀 가까이 들어서라. " 감사

의 말소리부터 우선 다정스럽게 들리었다. “네 처소로 수리하는 방이 내력 있

는 방인 것을 네 아느냐?” “대강 들어서 아옵니다. " “그방에 가서 거처하기

가 맘에 싫지 않으냐?” “싫을 것 없소이다. " “그렇겠지. " 감사가 빙그레 웃

으며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하인들은 그 방에 참말 귀신이 있는 것같이 말

하옵디다. " “그건 종작없는 하인들뿐이 아니다. 내가 부윤으로 있을 때 김감사

께도 그런 말씀을 들었다. 훌륭한 방을 사십여 년간 폐방하고 못 쓰다니 전라감

영의 수치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그 방을 쓰기 시작하여야 할 터인데 지금 그

방을 싫게 생각 않고 거처할 만큼 담기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생각에는 나

빼놓으면 너밖에 없을 것 같아서 네 처소를 그 방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 “

송하오이다. " “그 방 수리가 거의 다 되었다지?” “, 내일이면 문창호까지

다 끝난답니다. 일하는 것들이 해만 설핏하면 일을 못하는 까닭에 날짜가 의외

루 많이 걸렸소이다. " “내일 바로 처소를 옮기겠느냐?” “, 옮기겠소이다. "

그외에 네게 말을 일러둘 것이 있다. " 하고 감사가 말을 다시 고치어서

가 너를 애호하여 준다고 믿고 방자스러우면 죄책을 더 중하게 당할 것이니 각

별 조심해라. 네가 근본이 미천한 것만큼 남들이 업수이 여기기 쉬우나 남이야

업수이 여기든 말든 내 앞만 닦으면 고만이니 아모쪼록 뉘게든지 공손하게 더욱

이 다른 비장들과 의좋게 지내도록 해라. "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듯이 말을 일

러주었다. 감사의 말이 귓속에 박히는 것보다도 뼛속에 박히어서 봉학이는 눈물

까지 머금었다. “고만 물러가거라. " 감사의 명을 받고 봉학이가 비장청으로 물

러나올 때 나 빼놓으면 너 밖에 없다. " 감사의 말을 생각하고 곧 그 밤이라도

처소를 옮기고 싶은 맘이 있었다.

이튿날 봉학이가 방을 옮기려고 할 때 예방비장이 와서 보고 방을 아직 옮

기지 말게. " 하고 말리었다. “왜 옮기지 말라시오?” “사또 처분이 내리기까

지 기다려보게. " “어젯밤에 사또 분부를 물었으니까 오늘 곧 옮길 테요. " “

사또께서 오늘 옮기라시든가?” “옮기라십디다. " “알 수 없는 일일세. " “

에 알 수 없단 말이오?” “나는 어제 사또께 꾸중을 들었네. " “무슨 꾸중을

들었소?” “자네 처소 까닭에 꾸중을 들었어. " “사람을 은사주검시키려구 하

니 꾸중 들어 싸지요. " “은사주검을 시키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 방에

가면 죽는단 말을 내 귀루두 몇 번 들었소. " 예방비장은 봉학이의 말을 듣고 얼

굴이 붉어졌다. 예방비장이 봉학이를 미워하는 까닭에 귀신방으로 처소를 옮기

게 하려고 은근히 애를 썼지만 죽이려고까지 미워하는 것이 아니던 터에

방을 봉학이 주자고 한 것이 무슨 뜻인가?” 감사의 날카로운 말에 가슴이 찔리

어서 거심이 좋지 못한 것을 깨닫고 뉘우친 뒤라 그 방이 맘에 뜨아하거든 옮

기지 말구 고만두게. 내가 사또께 다시 품해봄세. " 하고 정답게 말하는데 봉학

이는 예방비장의 눈치를 살펴보며 아니 고만두시우. " 하고 손까지 내저었다.

봉학이와 벗하는 형방비장이 마침 옆에서 듣다가 내 생각엔 좋은 수가 하나

있구먼. " 하고 말하니 봉학이가 무슨 좋은 수?” 하고 형방비장을 돌아보았

. “북문 밖에 용한 장님이 있다네. 그자를 불러다가 옥추경이나 한번 읽히구

방을 옮겨들게. " “실없는 소리 고만두게. " “이 사람 자네는 모르네. 귀신 쫓

는 데는 옥추경이 제일이라네. " “옥추경이구 금추경이구 고만두어, 이 사람아.

" “그러다가 기생귀신이 참말 나오면 어떻게 할 텐가?” “수청들이지 걱정인

. " “자네가 나하구 한방 쓰느라구 기생 수청을 못 들여서 성화가 났네그려.

" “자네는 기생을 쇠배 싫어하니까. " “까마귀가 오디를 싫다기가 쉽지 사내자

식이 누가 기생을 싫다겠나. 그렇지만 기생귀신까지 수청들이구 싶어하는 사람

은 자네 하나뿐일 걸세. " “실없는 조롱은 고만두구 참말 수청기생이나 하나 골

라주게. " “가만있게. 내가 기생 독차지한 뒤에 이야기하세. " “동관 대접으루

수노에게 분부 한번 해주면 어떤가. " “그건 어렵지 않지만 죽은 기생 산 기생

이 서루 시새워서 쌈질을 하게 되면 자네가 틈에 끼여서 죽지두 못하구 살지두

못할 테니 걱정 아닌가. " 형방비장의 웃음의 소리에 봉학이와 예방비장이 다같

이 웃었다. 봉학이가 방을 옮긴 뒤에 바로 선화당에 올라와서 감사께 처소 옮긴

것을 아뢰니 감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었다. 봉학이가 물러가란 명령을 기다

리고 섰을 때 감사가 통인의 방을 향하고 이리 오너라. " 하고 사람을 부르니

대답 소리가 나며 곧 통인 하나가 방에서 나왔다. 감사가 통인에게 다락 구석

에 세워둔 환도를 이리 내오너라. " 분부하고 나서 봉학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환도 한 자루를 줄 테니 갖다가 머리맡에 걸어두어라. " “활을 머리맡에

걸어놓았소이다. " “검기가 벽사를 한다기에 환도를 갖다 걸란 말이다. " “

감하오이다. " 통인이 감사의 분부를 좇아서 환도를 봉학이에게 갖다 주니 봉학

이는 두 손으로 받아들고 감사의 앉은 자리를 향하여 허리를 굽히었다.

봉학이의 새 방은 아래윗간 사이를 장지로 막은 이칸 마루방인데 아랫간은 골

방이 뒤로 붙어 쌍창이 났을 뿐이나 윗간에는 앞쌍창 외에 뒤되창이 더 있고 아

랫간은 짚을 깐 위에 멍석을 깔고 멍석 깐 위에 기직자리를 깔아서 화롯불을 피

우고 낮에 앉고 이부자리 펴고 밤에 잘 만하나, 윗간은 마루청 위에 바로 기직

자리를 깔아서 밑에서 나는 찬바람을 막을 뿐이고 아랫간에는 등 뒤 벽장 위에

횃대가 걸리고 머리맡 벽 위에 감사가 준 환도가 걸리고, 또 발채 골방문 옆에

활과 전동이 걸리었으나 윗간에는 군데군데 대못이 박히었을 뿐이고 아랫간에는

방구석에 탁자가 놓이고 탁자 앞에 재판이 놓이고 재판 위에 촛대와 화로와 요

강이 늘어 놓였으나 윗간에는 아무것도 놓인 것이 없었다. 아랫간은 자뭇 아늑

한 맛이 있고 윗간은 밤낮 썰렁한 뿐 아니라 같은 방에 장지 사이 하나가 딴세상

같이 달랐다. 봉학이가 처소를 옮기던 날 통인 아이가 낮에는 와서 서행을 하여

도 해 진 뒤에는 뫼시고 있을 수 없다고 사정하여 봉학이가 해 진 뒤에는 다른

처소로 가라고 허락한 까닭에 봉학이는 귀신방에서 혼자 자게 되었다. 선화당에

서 퇴등령이 내린 지 벌써 오래다. 봉학이는 감사께 저녁 문안을 여쭙고 와서

촛불을 밝혀 놓고 혼자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원양으로 귀양온 것 같은 생각은

없지 아니하나 무서운 생각은 꼬물도 없었다. 귀신이나 도깨비를 이야기만 많이

듣고 눈으로 한번도 본 일이 없어서 궁금한 마음에 기생귀신이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리었다.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리는 중에 뒤꼍 대숲에서 우수수 소리가

나며 무슨 발짝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인제 나오는가 보다. "봉학이가 혼자 말

하며 장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이 지나도 아무 기척이 없고 장지 틈으

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촛불만 흔들었다. 불후리를 돌려서 바람을 가리려고 봉학

이가 앞으로 나앉을 즈음에 윗간에서 창문이 덜커덕하였다. 봉학이가 벌떡 일어

나서 장지를 밀어젖히고 내다보니 앞쌍창과 뒤되창이 다 닫힌 채 있었다. 문풍

지가 바람에 떠는 소리를 듣고 봉학이가 바람인 게다. " 생각하면서도 귀신이

방구석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우두머니 방구석을 바라보고 섰다가 장

지를 도로 닫고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 뒤에는 대숲에 바람소리와 문풍지 떠는

소리 외에 이따금 골방에서 쥐소리가 날 뿐이었다. “에이, 자야겠다. " 봉학이가

혼자 말하고 골방에서 이부자리를 꺼내는데 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이부자리

를 펴놓은 뒤에 쥐를 잡으려고 봉학이가 재판 뒤와 탁자 밑을 골고루 살펴보았

으나 쥐가 어디 가서 숨어 있는지 골방으로 도로 들어갔는지 다시 눈에 뜨지 아

니하였다. 봉학이가 화로의 숯불을 다독거려 묻은 뒤에 이불 속에 드러누워서

촛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캄캄한 속에 한동안 눈을 뜨고 있다가 잠이 들기 시

작하여 어슴푸레 잠이 들었을 때 누가 이불 위를 더듬는 것 같아서 잠이 도로

깨었다. 아래에서 살살 기어오는 것이 있는 듯하여 슬며시 손을 빼가지고 있다

가 가슴께로 올라올 때 이불 위를 덮쳐 누르니 찍소리 하며 손 사이로 빠져 나

가는 것이 쥐였다. 봉학이는 불을 켜고 잡으려다가 귀찮은 생각이 나서 그만 두

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잠이 들었을 때 쥐가 또 이불 위로 올라와서 손을 이불

밖에 내놓고 기다리다가 꽉 움켜잡으니 이번에는 찍 소리 대신에 아야 소리가

나고 손에 잡힌 것이 쥐가 아니요, 보드라운 계집의 손이었다. 봉학이가 깜짝 놀

라서 살펴보니 이쁜 기생 하나가 옆에 와서 앉았는데 얼굴이 전에 많이 본 것같

이 눈에 익었다. “네가 추월이냐?” “나리는 추월이만 아시오?” “그럼 네가 누구냐?”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물으시오?”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자는 방에 어째 들어왔느냐?”

나리가 혼자 주무시기 고적하실 듯하기에 들어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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