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돌석이가 하인으로 데리고 갔던 졸개는 벼룩을 몹시 타는 사람인데, 봉산서
자던 길가 방에 벼룩이 많아서 잠 못 자고 부스대기치던 끝에 고의 속에 든 벼
룩을 떨려고 밖에 나갔다가 마침 관치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들고 뛰었었
다. 배돌석이보다 하루 뒤져서 청석골로 돌아온 것을 두령을 버리고 동무를 버
리고 혼자 도망한 것이 용서치 못할 죄라고 꺽정이가 장하에서 물고를 내게 하였다.
배돌석이의 못 가게 된 것을 맹산서 기다릴 박유복이에게 기별하여 주자고 이
봉학이가 꺽정이에게 말하여 황천왕동이를 보내기로 되었는데, 길은 봉산을 피
하기 위하여 신계,곡산으로 작로하게 하였었다. 황천왕동이가 곡산서 양덕, 양덕
서 맹산으로 가는 중에 소삽한 산골길에 여러 차례 길을 잃고 헛고생을 무척 하
여 돌아올 때는 순천,은산,자산을 지나 평양으로 나와서 서관대로를 좇아 봉산을
지나왔다. 봉산읍에는 해진 뒤 캄캄한 때 들어가서 처가에서 자고, 밝는 날 어뜩
새벽 떠나나온 까닭에 남의 눈에 뜨일 사이가 없었다. 봉산 장교 하나와 사령
셋은 배돌석이에게 돌팔매를 맞고 또 방망이를 맞아서 모두 죽다 살아났고, 수
교는 배돌석이를 잡지 못하고 놓친 죄로 원님에게 소곤 오십도를 맞았고, 배돌
석이가 버리고 온 말 한 필과 서총대 무명 두 상자와 기타 행구는 다 속공되었
다고 황천왕동이가 그 장인 백이방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았었다. 여러 두령이
황천왕동이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수교놈 곤장 맞은 것 잘코사니요.”“그 따
위 놈은 대매에 때려죽여두 싸지.”“그까지 수교놈버덤 군수놈을 치도곤 한번
먹였으면 좋겠소.”“말 한 필, 무명 두 상자 뺏긴 것은 더 말할 것 없구 졸개
한 놈 죽은 것두 봉산군수의 탓이라구 말할 수 있지.”“그놈 한번 버릇을 못
가르친단 말이오?”이 사람 저 사람의 지껄이는 말을 꺽정이가 듣고 나서 서림
이를 돌아보며 “봉산군수 박응천과 신계현령 이흠례 두 놈은 가만 놔두면 우리
에게 많은 해를 끼칠 테니 어떻게 처치할 도리를 생각합시다.”하고 말하니 서
림이가 “녜.”대답하고 바로 꾀를 생각하느라고 눈을 까막까막하였다. “급치
않은 일이니 차차 생각해두 좋소.”“위선 박응천이부터 처치하지요.”“어떻게
처치하잔 말이오?”“가짜루 금부도사를 꾸며가지구 가서 잡아가지구 오면 어떻
겠습니까?”“좋지, 그럿지만 금부도사를 어떻게 꾸미나?”“두령 한 분이 두목
이나 졸개 서너 놈 데리구 서울 가서 한첨지의 아들과 상의해서 금부도사 행차
를 꾸며가지구 봉산으루 내려가면 되지 않겠습니까.”“금부도사와 금부 나쟁이
의 복색을 얻으러 서울까지 간단 말이오?”“도사나 나쟁이의 복색은 얻으러 갈
것이 없지만 주장두 지금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구 첫째 한첨지 집의 위조
마패를 한 벌 얻어서 역마를 잡아타구 내려가야 금부도사의 행차가 되지 않습니
까.”꺽정이가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그러면 누구를 금부도사루 만들면 좋
겠소?”하고 물었다. “도사 노릇을 잘못하면 발각이 나기 쉬우니까 이두령께서
도사루 가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서림이 말끝에 이봉학이가 고개를
외치고 “고양,파주 등지의 역사람들은 대개 다 내 얼굴을 알 테니까 나는 안
되겠소.”하고 말하였다. “낯익은 사람 보시거든 부채루 차면하시지요.”“역사
람은 고만두구 임진나루 사공들이 부채 차면했다구 나를 모르겠소.”“그러면
서울서 여기까지 다른 사람이 오구 여기서 봉산까지 이두령께서 가시지요.”“
가짜에 교대까지 하면 일이 너무 구차하지 않소.”“구차하지만 다른 두령의 갈
만한 분이 없지 않습니까.”“두령 중에 도사 노릇 잘할 사람이 없으면 두목이
나 졸개 중에서 물색해도 좋지 않소?”서림이가 자기 말로는 이봉학이를 누를
길이 없어서 꺽정이의 말을 자중하려고 “대장께서 결정해 말씀하셨으면 좋겠습
니다.”하고 꺽정이를 바라보았다. 꺽정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서종사 도사루
가보우.”하고 말하여 서림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서 “제가 어디 도사 노
릇을 잘할 수가 있습니까. 대장께서 가라시면 가긴 가겠습니다만, 혹 낭패가 되
더래두 제게 죄책은 내리지 마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봉산은 전에 선비가 없던 시골인데 장기순이란 학행 겸비한 선비가 평지돌출
로 처음 나서 봉산의 때를 씻었다. 그의 이름을 위에서까지 알고 특지로 참봉
초사를 시키었으나, 그는 환로에 나서지 않고 일평생 시골에 들어앉아서 제자를
많이 길러놓은 까닭에 이때 봉산은 황해도에서 선비 많기로 평산과 갈이 치게
되었었다. 봉산군수 박응천이 관가에 일없는 날, 장참봉 제자의 유수한 선비 사
오 인을 데리고 계유산 정림사에 나와서 봉산 십이경의 하나인 양익봉을 시제
삼아 풍월들을 짓는 중에 호장,이방,승발 삼공형이 함께 나와서 급한 공사가 있
다고 통인 시켜 말하여 군사가 앉았는 누마루 앞으로 삼공형을 불러들이었다.
“급한 공사가 무엇이냐?”군수의 묻는 말을 “서울서 금부도사가 내려왔소이
다.”호장이 대답하였다. “금부도사가 내려왔어?”군수는 호장의 말을 한번 뇌
고 나서 “무슨 일루 내려왔다드냐?”“무슨 일인지는 알 길이 없사오나 금부도
사가 객사에 와 앉아서 안전께 전교 받자오러 나옵시라구 성화같이 재촉하옵디
다.”“내게 전교가 내렸다. 무슨 일일까?”군수는 혼잣말로 말하는데 이방이 섰
던 자리에서 한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소인이 나졸 하나를 붙들구 넌지시 까
닭을 물어보온즉 서울서 역적고변이 생겨서 여러 사람이 잡혔솝는데 안전 성함
이 죄인 초사에 났다구 하옵디다.”하고 소리를 낮추어서 나직나직 말하였다. “
도사가 나졸을 몇이나 데리구 왔드냐?”“나졸이 둘이옵구 나쟁이가 하나옵디
다.”“도사가 무얼 타구 왔드냐?”“역마 타구 왔습디다.”“그 역마가 분명히
검수역에서 온 것이드냐?”이방이 대답을 못하고 호장을 돌아보고 또 승발을 돌
아보았다. 승발이 나서서 “말두 소인이 잘 아는 말이옵구 경마 들구 온 역졸두
소인의 잘 아는 역졸이옵디다.”이방 대신 대답하였다. “도사의 성이 무어라드
냐?”삼공형이 다 대답을 못하여 군수는 혀를 차고 “십 리 밖에 쫓아나오는 것
들이 그만 것두 알아보지 않구 나왔단 말이냐?”꾸짖은 뒤 선비들을 돌아보며
“나는 곧 읍으루 들어가야겠소. 아직 잘 알 수는 없으나 여러분과 다시 만나지
못하구 작별하게 되기가 쉽겠소.”하고 말하니 선비들은 “성주의 불행은 곧 봉
산 일군의 불행이올시다.”“청천백일 같으신 성주를 초사에 올린 놈이 어떤 놈
인지 그놈은 봉산 일군 대소 인민의 원수올시다.”“민들두 곧 성주뒤에 따라들
어가서 다시 보입겠습니다.”“성주께서 이런 소조를 당하신 줄 알면 민들이 집
에 있다가두 전지도지해서 들어가 뵈올 터인데 한자리에 뫼시구 있다가 집으로
흩어져 갈 수가 있습니까.”이런 말을 제각기 한마디씩 지껄이었다.
박응천이 정림사에서 읍으로 들어오는데 떠들지 않고 조용히 오고 객사로 가
지 않고 동헌으로 왔다. 삼공형들이 줄달음으로 원님의 교군 뒤를 쫓아오는 중
에 이방만 객사 길목에서 뒤떨어져서 객사를 들러왔다. “도사의 성씨는 서씨라
구 하옵구 도사는 봉명한 사람을 오래 지체시킨다구 화가 천둥같이 났다구 하옵
디다.” 이방의 말하는 것을 군수가 듣고 곧 옆에 섰던 통인더러 문무백관의 성
명들 적어 꽂는 첩책을 가져오라고 하여 의금부 관원을 찾아보니 경력 다섯에
서가 성이 하나 있을 뿐이고 도사 다섯은 모두 타성들이었다. 박응천이 의심이
없지 않던 중에 이것을 보고 확실히 깨달은 바가 있어 군노,사령,장교 몇십 명을
떠들지 말고 시급히 모아서 대령하라고 이방에게 분부하였다.
군수와 같이 절에 갔던 선비들이 관가로 들어왔다. 선비 하나가 “성주께서
바루 객사루 행차하신 줄 알구 민들은 객사에를 갔었습니다.”하고 말하니 군수
는 “그랬소.”한마디로 대답하고 “거기들 앉으시우.”하고 말하여 선비들이 동
헌 윗간에 자리잡고 앉을 때, 이방이 한편 어깨를 처뜨리고 썰썰 기어들어와서
댓돌 아래 엎드리는 것을 군수가 댓돌 위에 올라서라고 분부하여 이방이 내다보
는 원님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한 삼십 명 모아서 삼문 밖에 대령시켰소
이다.”하고 아뢰었다. “좌우병방은 다 어디 있느냐?”“삼문 밖에 있소이다.”
“그러면 좌우병방을 시켜 삼십 명을 거느리구 빨리 객사에 가서 도사일행을 잡
아오게 해라.”이방은 이때가지 도사를 가짜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도사를 잡아
오란 원님의 분부를 듣고 비로소 개도가 되어서 “도사가 분명 적당인 줄 아셔
기시오니까?”하고 묻지 않아도 좋은 말을 묻다가 “잔소리 말구 빨리 나가 분
부대루 거행해라! 만일 도사를 잡아오지 못하면 좌우병방은 고사하구 너부터 중
책을 당할 테니 그리알아라.”호령기 있는 군수 말에 황겁하여 “녜.”대답하고
곧 밖으로 나갔다.
윗간에 앉았는 선비들은 군수의 처사를 해이하게 여겨서 말없이 서로 돌아보
는 중에 말을 못 참는 사람 하나가 군수를 보고 “여느 조관두 아니요, 지중한
어명을 받아가지구 나온 조관을 잡는 법두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지금 객사
에 왔다는 것이 진정한 금부도사면 내가 잡으러 보낼리가 있소.”하고 군수는
웃었다. “진정한 금부도사가 아니면 무어오니까?”“대담무쌍한 적당이 나를
속이러 온 것 같소.”“적당인 줄을 어떻게 아십니까?”“요전에 왔던 적당이
양반 행세를 하구 왔더라니 양반 행세하는 놈들이 조관 행세는 못할 리 있소.”
“적당이 어떻게 역마를 잡아타구 올까요.”“글쎄,그런 지금 알 수가 없으나 적
당이 아마 마패를 위조해 가진 것 같소.”“어명을 받아가지구 왔다면 어보 찍
힌 문자가 있겠지요?”“그런 것이 없소. 우리와 같은 일개 수령을 압상할 때는
말할 것두 없구 증왕 대신을 지낸 죄인에게 사약할 때두 전교를 쪽지에 적어가
지구 갈 뿐이오.”“그러면 금부도사가 그 쪽지에 적은 것을 죄인에게 내줍니
까?”“죄인이 보여달라면 보여주기두 하겠지만, 그까지 쪽지 보나 안보나 마찬
가지니 보여 달랄 까닭 있소? 도사가 말루 옮기는 전교를 듣구 고만이지.”“막
중한 전교가 도사의 입에 달린 셈이니 소홀하기 짝이 없구먼요.”“그래서 기묘
년에 조정암 선생이 능주서 후명을 받으실 때 상소를 하려구까지 하셨답디다.”
군수가 선비들을 데리고 여러 가지 수작을 하는 중에 이방과 좌우병방이 같이
들어와서 계하에 굴복들 하였다. “어떻게 했느냐, 잡아왔느냐?”군수 묻는 말에
“도사 일행이 잡으러 가기 전에 벌써 먼저 도망질을 쳤습디다.”이방이 대답하
니 군수는 화를 내며 “무어야! 너희 놈들이 놓치구 와서 하는 소리지!”호령을
내놓았다. “소인이 이애들하구 같이 객사에를 갔었소이다. 도사 일행이 어디 가
구 없솝기에 객사 앞에 섰는 백성들더러 물어보온즉 나졸 하나가 관가 근처까지
왔다 가서 도사를 보구 몇 마디 말을 지껄이더니 도사가 바루 나쟁이,나졸,역졸
다 불러놓구 큰소리루 하는 말이 봉산군수가 전교를 받지 않으니까 내가 밤 도
와 서울루 올라가서 위에 아뢰구 별반 조치를 할밖에 없다, 이틀 밤 하루 낮 동
안에 서울을 득달하두룩 빨리 가자 하구 곧 역마를 타구 풍우같이 몰아갔다구
하옵디다. 소인들이 객사에 갔을 때 벌써 십리길이나 갔으리라구들 하옵기에 하
릴없이 그대로 돌아와서 대죄를 하옵니다.”군수가 이방의 발명하는 말을 듣고
한동안 쓴입맛을 다시다가 “다들 나가거라!”이방과 좌우병방을 호령으로 퇴출
시킨 뒤 선비들을 보고 “오늘 절에를 안 갔더면 일찍 서둘러서 적당을 잡는 겐
데 분하게 되었소.”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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