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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49)

카지모도 2024. 4. 2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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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렇게 그게 요상타고. 어뜬 것은 한펭상을 부레 먹고 또 그거이 나

를 멕에 살리고잉, 어뜬 것은 그렇게 써 먹능 건 고사허고 달려 있도 안허냐고.

긍게 그 눈구녁허고는 무신 웬수 갚을 악연을 지었등게비지. 당최 그 몸뗑이에

는 달려 있고 싶도 안헌."

"아이고, 안 달린 것으로 웬수 다 갚었그만 그리여, 그런다먼."

"그렇게, 작고 크고, 잘 났고 못 났고 무신 원망을 말어야 히여. 그것다 지가

진 인옌이 모다 뫼아 갖꼬 사대육신 생게 났을 거잉게."

"사주 팔짜 낯바닥도 그렁 거이나 똑같겄그마잉."

"아이고오, 내 팔짜야아."

한숨을 쉬던 서운이 할미 곁에서 어린 서운이는 조작조작 걸어 다니며 놀고,

나이 젊은 서운이네는 시어미한테서 물려받은 방물 가방을 등에 지고 나섰다.

그 서운이도 어느덧 아홉 살이 되었다.

시어미가 다니던 길을 따라, 다니던 집을 찾아 다니고, 한 속처럼 그집에 필요

한 물건을 꿰어 알게 된 서운이네의 머리 정수리도 벌써 먼지를 뒤집어쓴 당나

귀 갈기처럼 빛이 바랬다.

서운이네는 가까이 매안으로부터 숲말, 밤두내, 수월, 덕평, 매내골, 풍촌, 어의

터, 황새터, 화정리, 계동을 고루고루 더터서 날짜를 가늠하여 돌았다.

단골이 된 집의 안방에 방물 보따리를 내려놓으면, 소식을 듣고 안사람들이

모여 오고, 혼기에 달한 처자를 둔 집에서는

"아무 만한 아무 것을 구해다 달라."

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한 집에 길게 머무를 수 없어 마을의 집집을 꼼꼼이 도

느라면 해가 저물기 일쑤였다. 여자가 사는 물건이란 한없이 섬세한 것이어서,

단추 한 개 사는 데 한나절 걸리는 것도 예사인, 아예 그럴 줄 알고 마음을 누

그럽게 먹어야 한다.

"단초 한 개가 그거이 단초 한 개만이 아닝 거이다. 첨에는 서 푼짜리 단초 한

개로 시작이 되지마는 거그서 고리가 걸리먼 삼십 년 단골이 되는 거잉게. 그러

고 그 한 사람만 나허고 걸리능 거이 아니여. 그 사램이 하늘서 떨어졌겄냐? 성

지(형제) 있고 친척 있고 동무 있고, 그 동무는 또 동무가 있고. 그 사람덜하고

다 연줄 연줄 거무줄맹이로 얽어지먼 그거이 대관절 몇 멩이냐. 나는 그 생각을

잊어 부린 일이 한번도 없었니라. 방물 짐 이고 댕김서. 그렇게로 시방 나 댕기

든 질을 니가 또 댕길 수 있는 거이고. 장사는 내일을 바야 히여."

시어미는 며느리 서운이네한테 방물 가방 속에 든 앵두 단추 한 개를 지어 들

며 말했었다. 저승꽃이 거멓게 번진 늙은 손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영락없이 앵

두 모양을 한 단추가 투명한 진홍으로 빨갛게 빛났다. 그것은 어린아이 조끼에

다는 단추였다.

"여그다 너를 걸어야 히여. 가문 좋고 문벌 존 사람은 거그다 저를 걸고, 재산

이 많은 사람은 또 거그다 저를 거는디, 이도 저도 아무것도 없는 너는, 여그다

이 단초 한 개에다 너를 걸어야 히여. 무신 교옹장 헌 넘의 껏, 체다보도 말어

라, 넘의 껏은 암만 좋아도 다 쇠용없는 일잉게로. 니 꺼이나 놓치지 말어."

시어미는 그 빨강 앵두 단추를 서운이네 눈앞으로 바짝 들이밀며 오금박듯 말

했었다.

"사램이 옷을 입는디. 옷고룸이나 단초가 없으면, 앞지락이 이렇게 벌어져 갖

꼬 미친년이나 농판맹이로 요러고 안 댕기냐? 다 벗어지게. 그런 중도 모르고

헐레벌레 기양 댕기먼 어뜨케 되야? 꾀 벗제잉. 망신허고, 동지 섣달에 그러고

댕기먼 얼어 죽고, 그거이 먼 짓이겄냐. 옷고룸 짬매고, 단초 장구고, 앞지락 못

벌어지게 붙들어 걸어야제. 근디 그거이 쉽들 안헝 거이다. 니 인생 미친년 안되

고, 꾀 안 벗을라먼, 요단초 한 개 수얼허게 보지 말어라. 이?"

한평생 동안 햇볕을 맞받고 다닌 시어미의 낯빛은 바짝 말라 물기 없이 검붉

은 대추색이었다.

서운이네는 먼 길을 나갔다가 해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캄캄한 밤길에, 쏟아

지는 별무리를 등에 받으며 재를 넘기도 했다. 달빛 같은 호사를 어찌 바라랴.

별빛마저 두꺼운 구름 뒤에 숨어 버린 그믐밤의 지질리는 먹장 어둠 속을 허휘

허휘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할 수 없이 아는 집의 방

귀퉁이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다음 마을로 가곤 하였다.

그런 밤이면, 쪼그랑망태가 다 된 서운이 할미는 새우처럼 마른 등을 잔뜩 꼬

부린 채로, 칭얼거리는 손녀 서운이를 보듬고 잠이 들었다 깼다하며, 수숫대 울

바자를 쓸고 가는 바람 소리에 늙은 귀를 기울였다.

온갖 잡살뱅이 물건을 저마다 등에 지고 팔러 다니는 도부꾼들은 서운이네말

고도 이 마을 저 마을마다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은 나랏님도 상투를 자른 지 오래라 하고, 보도 듣도 못하던 철갑차가 철

도 위를 바람같이 시커멓게 내닫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

다 하는 양반들은 으레 그런 일을 안하는 것으로 알아, 장날에도 몸소 장에 나

가는 법이 없었으니.

웬만한 것들은 눈썰미 야물고 매운 하인들이 재바르게 다니면서 충직하게 심

부름을 하였다.

이처럼 사랑에서도 안 가는 장에를 안에서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이 다 무엇인가, 기껏 샘길이나 문중의 집안 마실 정도가 출입의 전

부일 것이다. 그러니 마을을 벗어나 어디 바깥에 나가는 일은 좀체로 없었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하인한테 시켜서 사 오는 소소한 물건들말고도 언제나

필요한 것은 많았고, 또 정작 중요한 일을 당하여 사야 하는 물건들은, 하인이

알아서 사 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럴 때 도부장수들은 요긴하게 이용되었다.

만일 집안에 당혼한 자녀가 있어 각종 혼수를 준비해야 할 때는 황아장수를 찾

았다.

장날이면 장에 벌린 황아전에서 비단을 팔고, 다른 날에는 청, 홍, 황, 색색깔

의 비단을 등에 지고 마을로 돌아다니는 이들은, 남자인 경우, 오래 다녀 단골이

된 집에 이르러서도 결코 덜퍽 안채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내외의 법이 엄중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랑채로 찾아가, 지고 온 비단을 내려 펼쳐 보였다.

또 멀리 해변과 섬에서, 말린 미역이나 멸치, 김, 톳, 마른 새우와 홍합, 자반

조기, 그리고 민어포, 상어포, 피문어 들을 둥덩산같이 수북하게 인 건어물장수

들이 때 맞추어 찾아들기도 한다. 그들은, 지난번 들렀을 때 주문받은 마른 전복

이나 해삼을 내놓고, 특별히 혼인에 쓰려고 부탁한 참문어를 잊지 않고 챙겨 오

기도 하였다.

문어 쌈지라고 하는 문어 대가리가 사람의 머리만씩이나 한 참문어는, 거기

달린 다리들이 모두 한 발이 넘는 길이인데, 보통 때는 좀체로 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지만, 혼인의 초례청에서야 이보다 더 화려한 장식은 다시 없어서, 미

리 주문을 하는 것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공들여 오리고, 집안에서 아주 솜씨가 좋은 어른이 모셔지

기도 하는 이 문어발 오리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려 놓은 문어발에서는 온갖 형용 정교하고 아름다운 국화송이, 매화

송이가 참으로 제 줄기에서 금방 핀 것처럼 피어났다.

그러나 역시 가장 화려한 것은 봉황 오림이다. 금방 천공으로 상서롭게 솟구

치며 날아오른 듯한 꼬리를 휘황한 깃털로 장식한 봉황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에 거북의 등과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두루 갖추고, 봉은 수컷, 황은

암컷으로 초례청에 마주서니, 그 화려한 자태는 봉황이 뿜어 낸다는 오색에 오

음의 소리가 그대로 곧 보이고 들릴 것만 같았다.

큰 물건을 팔아야 이문이 많이 남는지라, 방물장수, 도부꾼, 황아장수, 행상들

은 크고 문벌 좋은 마을 쪽으로 자주 길을 잡곤 하였다.

그러나 도레도레 제 근처를 맴도는 것은, 엿 목판을 앞에다 메고 큼지막한 가

위를 철걱 철걱 두드리는 엿장수, 흰 무리, 시루떡, 콩떡, 찰떡, 인절미, 무지개떡,

배피떡을 번갈아 머리에 이고 나타나는 떡장수들이었다.

고리배미 떡장수는 곤지어미였는데, 엿장수는 배암골 쪽에서 왔다.

엿장수만이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많이 들어왔으니, 그 중에는 체장수, 상고는

사람, 테 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얼마큼 있다가는 소금장수가 이 마을을 찾아오

기도 하였다.

그들을 맨 먼저 맞이하는 것은 마을 초입에, 성성한 바람 소리를 내며 검푸른

구름머리를 이루고 있는 솔밭, 적송 숲이었다.

한결같이 행색이 남루하고 찌들어 보이는 이 장사꾼들은, 세 갈래로 갈라진

마을의 어귀에서 동네 쪽으로 들어서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솔밭의 모정에서

한숨을 돌리며 일단 다리를 쉬었다. 그리고 곰방담배를 꺼내 물거나, 여름 같으

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솔바람 소리를 듣기

도 하였다.

물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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