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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27)

카지모도 2024. 8. 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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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에서도 나름대로 건질 것은 있으나 역사를 거꾸로 더듬어 유추해

보면 전혀 다른 면이 확연히 잡힌다. 우선 무왕이 누구인가 보자. 그는 백제 제

이십구대 법왕의 아들이요 제삼십대 의자왕의 아버지인데. 그의 아버지 법왕 시

대에 백제는 그 당시 삼국 가운데 가장 강성한 나라였어. 그래서 법왕 시절에

영토 확장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지. 그래서 자연히 신라 변방을 많이 치게

되었는데 신라로서는 괴로운 일이지. 이때 백제 법왕은 후손에 왕통을 이을 적

자가 없었다. 무왕은 서손이었어. 그러니까 법왕이 마한족의 여인을 비로 맞이하

여 낳은 아들이 백제 무왕이었지. 물론 어려서야 아직 무왕이 아니지만. 그는 서

자였기 때문에 그때 사비성에 살지 않고 자기 어머니인 마한족이 살던 이리 익

산 옆 금마성에 어머니하고 같이 있다가 적자가 병들어 죽고 난 뒤에 그 후계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이 왕자가 곧 무왕으로 즉위를 했는데 무왕이 서손 왕자 시

절로 있을 때 아까도 말했지만 백제 법왕 때가 굉장히 강성한 나라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부치는 신라에서 유화정책을 쓰기 위해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인 선화공주를 백제 법왕의 서자인 무왕한테 정략적으로 시집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본다. 나는 그러니까 마동이 연못가 오막살이에서 홀어머니와 단둘이 마

를 캐먹고 살던 초라한 마장수라고 삼국유사에 씌어진 이야기는 무왕에게 늘 위

협 당하고 변방을 점령당하다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멸한 통일신라

이후에 신라인의 시각을 근간으로 하여 고려에까지 전해진 것이므로 잘못된 것

이라는 게지. 오히려 당시 정황으로 보아 무왕과 진평왕에 대한 묘사는 반대로

뒤바뀌어야 할 것 같어."

강호의 말에 강태도 동조했다.

"나도 항상 그게 이상해요. 신라의 선화공주는 천하 절색에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돼 있고. 백제 무왕은 연못가 오막살이 홀어미 자식이라. 초라하게 마나 팔

고 다니는 촌무지랭이처럼 그렸잖아."

"그래도 그 어머니가 연못 속의 용과 교합했다는 말은 임금과 통정했다는 상

징적인 표현일 거야. 용이 곧 왕이니까. 또 홀로 된 어머니라든가. 이게 후궁이

라는 비유고."

강모는 유심히 듣고만 있다.

"헌데 그렇게 격차를 두어 묘사한단 말이에요?"

"백제 무왕뿐만 아니라 백제에 관련된 모든 부분이 그렇게 비하 편향돼 있지."

"그 이유는 오로지 백제가 망하여 모든 사료는 멸실되고 남은 기록이라는 것

은 다시 말해 적국인 신라와 신라를 바친 고려의 손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야.

왜곡 굴절된 것이지."

강태는 강호와 말할 때 형이라고 깍듯이 경어를 쓰지는 않는다. 강호도 그것

을 나무라지 않는다. 곁에서 보는 사람 또한 그러는 강태가 버릇없다기보다 강

호형과 아주 친근한 사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것이 강태의 묘한 힘이었

다.

"결국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에 옛 백제 영토 사람들은 등용하지 말라고

못박은 항목을 받든 고려 사가들이 백제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서 견훤이라든

지 무왕 의자왕 들을 포함한 백제 사람들을 호색한이나 탐관오리. 무지랭이로

마음놓고 마구 폄하해서 쓴 거지."

"사실, 무왕이 마동이었을 적에 신라의 서라벌로 몰래 들어가서 코흘리개 아이

들한테 마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선화공주가 자기와 놀아났다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겁한 구애 방법이에요? 사내답지 못하고."

"그래. 하지만 그런 소문 끝에 공주를 쫓아내서 마동방과 혼인하는 것은 우리

가 현실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지. 논란할 꺼리가 될 수 없는거다.

왕실이 장난이며 공주가 인형이냐? 역사는 개인의 일기장이 아닌데. 이토록 왜

곡되어 비판도 없이 수용된다. 정사는 아니지만 이것들은 백성의 의식에 침윤해

서 가공의 영상을 만들어내니. 거짓말이 굳어져 사실로 믿어지는 것과 같지. 그

러니까 백제 무왕을 희화시켜 손상된 신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편법이었

다고나 할까. 결국 거꾸로 읽으면 정답이 보여 특히나 백제와 신라. 백제와 고

려. 그리고 후백제와 고려의 관계는."

"두 사람 인연이야 둘만이 알겠지만."

강모가 한 마디 곁들였다.

집안의 자손인 청년들이 무릎을 맞대고 모여 앉아 담론하던 이헌의 사랑채도

새해를 맞이하였으나 웬일인지 전처럼 활기롭지는 못하다. 그것은 시절의 탓이

리라. 그래도 역시 명절은 명절인지라 다른 때보다는 분주하여 안팎의 세배객들

로 모처럼 동계댁은 화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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