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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6권 (27)

카지모도 2024. 10. 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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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구네는 한숨을 늦추며 중치 대신 늑막을 질렀다. 대가리 송곳맹이로 세우고

달라들어 밨자 놀랠 사람도 아니고, 무단히 잘못 건드러 노먼, 아닝게 아니라 일

은 저릴렀능게빈디, 이 마당에 머이 아숩다고 나 같은 년을 지 저테다 둘라고

허겄냐. 떨어낼라고 허겄제. 성가싱게. 그렁게 숨돌려. 너는 마느래가 아닝게로.

시앗 본 본마느래맹이로 길길이 뛰고 굴르고 허먼 니 손해여. 너는 시방 그럴

처지가 아닌 걸 너도 알어야여. 설웁지만 처지는 알어야여. 숨쥑여. 씨리나 애리

나 쉭이고 들으가. 야를 저트다 둬도 벨 손해는 없겄다, 아니 이문 볼 일이 많겄

다, 그런 생객이 들게 해야 여. 그러고 뒷날을 바. 알었제? 뒷날에 갚으먼 되야.

내일 안 죽응게. 모레도 안 죽응게. 오냐. 내 채곡채곡 싸 놨다가, 실에다 바늘로

뀌여서 줄줄이 달어 매놨다가 인자 그년한테 갚어 줄랑게. 내가 받은 설움에다

이자 쳐서 남싸게 갚어 줄랑게. 두고 바라. 우선은 일을 성사시키야제. 내가 한

귀영텡이 들어 주어야여. 까 쥑이고 잪지마는. 아이고, 이놈의 년놈을 기양. 성질

대로라면 한달음에 달려들어 쥐어뜯어 놓고 싶었지만, 그네는 분이 받치고 화가

날수록 음성의 꼬리를 차악 낮추며, 결코 흥분하거나 두서없이 날뛰지 않고, 허

둥대지도 않고, 조근조근 누비듯이 한 땀 한 땀 찰지게 말하는 사람인지라, 우선

숨을 돌렸다.

"긍게 시작은 되얐그만."

"시작잉가 끝잉가."

"먼 소리여, 시방? 인자부텀 정신 바짝 채리야겠그마는."

"달라들지 마시오. 나 아무 소리도 헤기 싫응게."

무릎 걸음으로 뽀짝 당겨 앉는 옹구네한테 춘복이는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고

비켜날 옹구네가 아니었다. 그럴수록 감치는 목소리로 살갑게 앵기며 그의 깍지

낀 무릎에 손을 얹어, 마치 무슨 손위 누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겁내지 말어. 잘될 거잉게에."

모가지 다잡아 암상으로 몰아세우는 대신, 눅눅한 손바닥을 제 손등위에 덮는

옹구네를 춘복이도 이번에는 가만 두었다.

"아이, 백지장도 맞들먼 낫다는디, 사람 하나 들어올리는 일을 혼자 헐 수 있당

가? 그것도 머 어디 예삿사램이여? 그 사램이. 금쪽 같고 구실 같어서 놓칠세라

깨질세라, 참, 샘현육각 나발 불고 나쟁이 사령 앞 세워서 호위를 허드래도 도독

맞으까 조마조마헌 사람을, 자개 혼잣손으로 어뜨케 들고 와? 거그서 여그가 어

디라고. 이 멀고 험헌 질을, 북망산만 헌허고 멀고, 문경 새재 까끄막만 무섭고

높은 거이간디? 매안으서 거멍굴 오는 질도 그리 쉽든 안헐 거이여. 자개 혼자

그 사람을 이고 메고 오기는 말여. 까딱허면 저 앞냇물이 황천 되고 이 뒷동산

이 북망산 되고 말 수도 있을 거이네이. 허나, 기왕지사 대장부가 칼을 한 번 뽑

았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제. 근디 그께잇 노무 호박 찔러서 머에다 쓸 거잉가

잉? 하루 저녁 밥상에 너물이나 무쳐 먹고는 그만이제. 무단히 칼만 아깝게. 아

까운 거이 다 머이여? 그 칼로 지 모가지 칠수도 있는디. 무섭제. 거 칼을 아무

나 뽑아? 저 죽을라고? 그렁게 지대로 쳐야여. 지대로. 기왕지사 칼을 뽑았응게로."

옹구네는 춘복이 손을 아귀에 힘주어 잡았다.

"죽냐 사냐여. 자개는 시방 호랭이 속눈섭을 뽑은 거이나 똑 마찬기지여, 오늘

밤으. 어쩌꼬. 혹시 꼬랑지를 붙들었다먼, 죽기 살기로 매달여 가다가 죽게 생겠

으먼 까짓 꺼 탁, 놔 부리고 말겄지만, 그러먼 죽근 않겄지만, 나둥그러지기사

좀 허드래도 말이여, 이건 호랭이 낯바닥 한복판에 그 눈구녁 딱 디리다보고 젤

로 짚은 디 백힌 솟눈섭, 젤로 곱고 아까운 놈을 착 뽑아 제캤이니."

옹구네는 춘복이 얼굴이 마치 호랑이 낯바닥이나 되는 것처럼 제 얼굴을 바싹

가까이 다가대고, 눈동자를 춘복이의 동공 한가운데 정지시켜 뛔뚫어지도록 노

려보았다. 그리고 두 손가락으로 족집게를 만들어 정말로 그의 놀란 속눈썹 하

나를 뽑으러 하였다. 그네의 손톱이 날카롭게 일어섰다. 칼침 같았다. 휙.

"왜 이러요?"

춘복이가 홱 얼굴을 비키며 옹구네 손 등을 쳐 밀어냈다. 옹구네는 손을 내렸다.

"그렇다 그 말이여. 자개는 다 아는 장난 시늉에도 요렇게 고슴도치 갈기를 세우

는디, 속눈썹 뽑힌 호랭이가 그 담에는 어쩌겄능가. 눈에다 불을 씨고 뎀비겄제.

시뻘건 아가리 쩌억 벌림서, 대박에 잡어먹을라고 안허겄어? 집채뎅이 같은 그

호랭이 네 발톱을 어뜨케 당히여? 도망도 못 가제. 어디로 도망가. 그 낯바닥 앞

으서. 그 발톱이 도망가는 뒤꼭지 촤악 찢어 내릴 거인디? 할퀴어서."

춘복이는 다만 듣고만 있었다. 여전히 깍지 낀 무릎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꺾

어 그림자 일룽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렁게 헐 수 없어. 맞닥띠려 죽을 작정허고 한판 붙어야제. 니가 죽냐 내가 죽

냐. 사람 기운 무선 거이네이? 전에 전에 그랬다대. 내가 에레서 들었는디, 천

년 묵은 지네허고, 거그 지네가 살고 있는지 몰르고는 그 집에 하룻밤 묵고 갈

라든 선비허고 한밤중에 쌈이 났는디, 그렁게 그 지네가 선비를 잡어먹을라고

그랬겄지맹, 지네는 독이 있잖이여? 천 년이나 묵었응게 오죽헐 거여? 그 천 개

나 만 개나 되는 발로 선비를 친친 감고는 아가리에서 독을 뿜어 내는디, 꽁꽁

묶인 선비가 죽기를 한허고 온몸에 독을 피워 지네 아가리에 맞대고 뿜었다대.

사램이 머 무신 독이나 있어? 그런디 그게 아니래. 사람 독이 이 세상에서 젤로

무섭디야. 그 선비가 새파랗게 독이 올라 지네한테 맹독을 뿜었는디 종당에는

그 지네가 죽어 부렀대. 사람 독에 쐬여서. 그렁게 호랭이 무서랄 거 없어. 딱

맞보고. 정신채리고. 내 독을 써야 여. 눈꾸녁 비딱허는 날에는 죽응게로."

옹구네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어도 같이 살어. 나랑."

목소리가 어금니에 물렸다.

"자개가 헐 일 있고 내가 헐 일이 있응게, 인자 찬찬히 첨부텀 다 말을 해 바.

내가 들어야 알고, 알어야 모사를 허제. 저질러만 노먼 멋 히여? 성사를 시기얄

것 아니라고?"

그 말 끝에 비로소 춘복이는 쉬엄쉬엄 한 숨을 섞어가며, 오류골댁 살구나무 아

래 사립문간에서 강실이를 본 순간부터, 대나무숲 마른 댓잎자리 부서지며 서걱

이던 이야기까지를 밀어냈던 것이다. 옹구네는 이야기 중간에

"오오."

"그래서?"

"그래 갖꼬?"

라고만 한 마디씩 박아 넣을 뿐 제 말은 보태지 않았다. 그러나 춘복이 말은 숨

소리 한낱도 놓치지 않고 새겨들었다. 그 말들은 쇠고챙이로 살을 뚫어 찢으며

그네의 중치에 박혔다. 모질어라. 저 말허는 것 좀 바. 하이고오, 이런 노무 인생

이 다 있구나. 내가 암만 속은 따로 두고 전후 개려 이 말 저 말 딛기 좋게 했

다손 치드라도, 지가 데꼬 자든 지집 앉혀 놓고, 눈도 한나 깜박 한허고, 미안허

단 말 한 토막도 없이, 이러고오 저러고오 허는 것 좀 바라. 니가, 내가 마느래

라도 그러리야. 마느래 아닌 년은 더럽고 설웁구나. 야속한 쓰라림이 가슴 찢긴

곳으로 스며들어 옹구네는 아픔을 참노라고 숨을 멈추었다. 문서가 없다고 심정

도 없겄냐. 이 매정헌 노무 인간아. 그날, 기우는 보름달에 긴 그림자를 시름없

이 끌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옹구네는, 분이 머리꼭지까지 받치는 대신 가슴 밑

바닥이 체구멍처럼 허전하게 빠지는 것을 느끼었다. 숨을 쉬어도 체에다 물 붓

는 것같이 허방으로 다 새어 버리고, 밥을 먹어도 안 먹은 것마냥 허기가 졌다.

걸음에도 맥이 없었다. 그것이 정월 대보름 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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