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원은 뒤로 나자빠질 뻔하였다. 그 놀라는 모양을 말끄러미 보더니 비오리는
병의 전말이 짐작 간다는 듯 고개를 혼자 주억거렸다.
"너 베락 맞을래?"
"그른 말 했으먼 베락을 맞을 거이고 안 그러먼 안 맞겄지맹."
"사람 일을 그렇게 경망시럽게 말허는 것 아니다. 암만 농담이라도. 농담 끝에
살인난단 말. 듣도 못했냐?"
"아 누가 농담을 헌당가요?"
"그러먼 거 먼 소리여?"
"몰라서 묻는다요? 금방 자개가 다 말해 놓곤."
"내가 무슨 말을 해?"
"이이고오, 의원님. 입으로 허는 말만 말잉기요? 눈짓도 말이고. 낯색도 말이고,
목청도 말이고, 손짓 발짓 몸짓에다 제절로 풍겨지는 탯거리도 다 말 아니요?
내가 머 청맹과니 봉사간대 지 눈구녁으로 본 말도 못 알어들으께미? 아 의원님
은 머 누가 아푸다고 따악 와서 앉이먼, 살피고, 눈뚜껑도 뒤집어 보고, 입도 아
아 벌려 보고 안 그러요? 그런 것 나보돔 더 잘 아실 거인디 무단히 나를 갖꼬
머라제. 참말로 말을 안헐라먼 아조 깜쪽같이 딴 얼굴로 시치미 딱 띠든지. 그러
도 못해 놓고 나보고만 머래야. 머라기를."
진의원은 할 말이 없었다. 니가 술장사 몇 년 만에, 말허고 눈치만 늘었구나.
"오다 봉게 저어그 정그정에 새술막이 생겼드구마는 너는 갠찮어냐? 여그서 거
그는 한참잉게 상관없지?"
"주모가 이쁘답디다. 빡빡 얽어 갖꼬."
'빡빡'을 파내듯이 힘주어 말하는 비오리 새촘한 눈꼬리가 우스워, 진의원은 그
만 실소를 하고 만다.
"아앗따아, 웃을 지도 아네요잉? 여그는 머 웬수진 디 칼 꼽으로 왔간디 ㅁ 삼년
수삼 년 만에 옴서, 들이당짱에 어금니 까악 물고 말도 잘 안허고 장승맹이로
버티고 앉어만 있드니, 인자 웃소예? 원, 나, 내가 무신 죽을 죄 진지 알었네 기
양. 그런디 나는 죄 진 일 없잉게. 머잉가 일이 나도 머 큰일이 났능갑다 했제.
오금이 안 떨어지게 낯색이 살벌허등만 어찌 그리 귀허게 웃었응게 비싼 돈 내
시오. 웃은 값."
"내야지."
"돈말고 말로 내시오."
"말이라니, 무슨 말?"
"돈보다 싼 말은 아니제."
"머이여?"
"그래, 맥 짚어 봉게로 애기 섰습디여? 얼매나 되 등가요?"
"그런일은 없어."
"없으먼 다행이고오, 있을라먼 있을 수도 있고."
"있을라먼 있을 수도 있다니?"
"왜 자개 말은 밀봉해서 애끼고 넘의 말은 공으로 들을하고 그러요?"
"무슨 씨잘데기 없는 소리를 어디서 얻어들었겄지. 넘들이 쓰다 쓰다 내부리고
가는 말, 빈 껍데기."
"알속잉가 빈 껍데깅가, 그 속은 암도 모를랑가?"
이미 대답을 말로 들을 필요가 없을 만큼 확연히 변하연 진의원의 안색을 볼모
로 잡고, 비오리는 빙글빙글 말의 주변을 돌았다.
"애기가 섰다먼 날짜끄장 내가 짚을 수도 있지마는 또 지천 들으께미 더는 못허
겄소."
비오리는 이제 그만 말 을 걷어 들이려는 시늉을 하였다.
"머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여? 대관절."
"맥 나왔지요?"
진의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의원도 아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똑같은 경우에 또 빠지다니. 진의원은 자괴감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효원도, 비오리도, 자기보다 먼저, 당사자인 강실이나 그 부모인 오류
골댁과 기응보다 먼저, 이 일을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던가.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는가. 효원과 비오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릎 맞대고 앉을 일이
없는데, 매안의 원뜸 제일 높은 곳에 덩실하니 솟은 골기와 지붕 아래 깊숙이
들어앉은 새아씨도 알고, 고리배미 솔밭 삼거리 세갈래로 갈라진 난장 길목 주
막의 주모도 아는 일이라면,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어쩐가 이것이
"헌데, 누구냐?"
"춘복이 아시오?"
진의원은 내가 오늘 밤에 죽을라는가, 싶었다. 사람이 하룻밤에 이토록 여러 번
을 한 가지 일로, 이마빡 돌기둥에 들이받는 것보다 더 꽈당, 꽈당, 아찔하게 놀
라는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는 도시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춘, 춘복이라니?"
"아 저 거멍굴에 농막 사는 떠꺼머리 춘보깅 말이요."
"아니......야, 야, 너 시방 바른 말, 지 정신 갖꼬 허는 소리냐?"
"나는 안헐라먼 말제 헛소리는 안허요."
"그러먼, 그러먼 춘복이허고 오류골댁에 작은아씨가 정분이 났단 말이냐? 너 머
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여?"
"못 믿겄으면 춘복이한테 물어 봇시오. 에러울 것도 없제. 들으먼 펄쩍이나 뛰겄
그만. 하도 좋아서 청천 하늘에 대그빡 찧까 싶소예."
"아니 그러먼, 그 댁에 작은아씨가 춘복이를 그렇게 비장이 바싹 말러 온몸에 피
가 다 바트게 상사를 했드란 말이냐?"
"상사병은 딴 디서 났고."
"딴 디?"
"아먼요."
"어딘디?"
"숨 조께 쉬시요예. 숨이 가양 빽다구맹이로 목에가 걸렸네."
"말해 봐라."
"대실서방님이라요."
"누구?"
"상사도 기양 상사가 아니라, 일난 상사랍디다."
진의원은, 아악, 벌린 입을 이제 다물 기운도 없었다. 그냥 벌어지게 벌린 채, 암
만해도 내가 오늘 밤에 무엇에 씌였는가, 식은땀이 쫘악, 배어났다. 사람이 너무
갑자기 여러 차례 큰 중격을 받으면 우선 정신이 흩어지고, 몸에 기운도 따라
흩어지니, 그는 정신과 기운을 지금 너무 많이 써 버려 맥을 못 건질 만큼 허해
지는 것이었다. 그런 진의원의 뒷머리에 사람들 얼굴이 거미줄같이 얽힌다. 펀뜻
아까 원뜸의 대문간에서 본 효원의 모습이 칼날처럼 스친다. 그것은 어둡고 푸
른 칼날이었다. 효원은 진의원이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안서방네를 데불고
안채로 들어왔다. 건넌방에 함께 들어간 안서방네 얼굴이 온통 푸릇푸릇 멍든
것 같았다. 질린 것이다. 그런 안서방네를 지그시 바라보던 효원은 두 사람 사이
에서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소리로, 그러나 확실한 예감을 가진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부터, 지금 이 밤으로부터, 단 한시도 놓치지 말고 작은댁을 지켜야 하네.
그 애기씨 걸음이 사립문 밖 단 한 발짝이라도 나오면 안돼. 절대로 어디 혼자
가시게 하지 말어."
"예."
"방죽이나 뒷산 고목 근처에 행여라도 걸음허는가, 유심히 살피고. 안서방네 혼
자 그러기는 어려울 것인즉 콩심이랑 키녜, 접댁이 다들 알어듣게 일러서, 모두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영념해야 해. 순간에 큰일나니. 큰일나면 돌이키기 어려
워. 저렇게 허약한데다가, 어찌 됐든 태중에, 일을 저지르면 그대로 변을 당허지.
그 애기씨 죽고 사는 것이 안서방네 손에 달렸네. 알겠지? 아이들한테는 아무
내색 비치지 말고, 다만, 작은아씨가 저렇게 몸이 편찮으시니 어디 혼자 다니시
면 위태로워 그런다, 라고만 하고."
"예."
"낮보다 밤이 더 걱정이지만, 낮에도 방심하면 놓쳐."
"예."
나이 수굿하게 늙어 고비를 넘긴 안서방네는 젊고 어린 새아씨 앞에 진심으로
부복하며 충정을 약조한다. 아아, 상전은 다르시다. 세상과 사람을 어찌 대해야
하는 것인지를, 이만큼 보여 주신다. 안서방네 이마에 공경이 어린다.
"사람의 목숨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매."
진창에 뒹굴어도 할 수 없다. 그 목숨과 더불어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보
다 산 사람을 우선 살게 해야 한다. 죄가 아무리 크고 벌이 아무리 무거워도, 목
숨보다 크고 무겁지는 않으리니. 그 모든 것은 일단 산 다음에 겪고 받을 몫의
절차일 뿐. 내 너를 증오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미루리라, 효원은 강실이의 목숨
이 제 목을 감고 엉겨드는 것을 느낀다. 네가 왜 나한테 얹히느냐. 효원은 숨이
막혀 그 또아리를 풀어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렁이처럼 감긴다. 떼어낼 수
가 없다. 이미 강실이는 남이 아니었다. 더욱이나 종시매 강실이는 철재의 당고
모로서, 아버지의 사촌누이. 무슨 일을 당하여, 물에 빠져 죽거나, 목을 매어 자
결하면, 이 좁은 매안골 항아리 안에서 끝날 일이 아니고, 천지가 좁다 하며 독
한 소문 흉악하게, 휩쓸고 다닐 터이니. 저 아이 아버지가 상피붙어, 제 종매를
죽게 했다아. 죄 없는 어린 아들, 창창한 앞날에 손가락질 기얹어서, 얼굴도 못
들게 할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집안에 벌어지면, 그 가문의 명예를
건지기 어려운 법. 철재를 살리려면 강실이를 살려야 한다. 집안을 보호해야 한
다. 내 심중 같은 것은, 나 혼자 묶어야 한다. 효원은 밤이 깊어 이슥하도록 안
서방네를 나가라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다만 마주앉아만 있었다. 이마를 골똘
히 수그린 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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