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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3)

카지모도 2023. 3. 1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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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이는 도적들을 막을 힘이 없는 까닭에 하릴없이 보따리를 벗어놓았다. 물

건을 빼앗기는 것도 아깝거니와 헌옷가지라고 거짓 말한 것이 뒤가 나서 속으로

조급하였다. 속으로 조급할수록 겉으로는 더욱 태연한 체하고 도적들이 앉히는

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보따리 푸는 걸 보고 있었다. “피물 아닌가.” 한 도적이

겉에 싸인 수달피를 잡이 헤치니 “옥돌 보게.” 다른 도적이 속에 잇던 옥노리

개를 집어들었다. 도적들이 서림이를 돌아보며 “이것이 헌옷이냐?” “고따위

입에 발린 거짓말을 우리가 곧이들을 줄 알았느냐!” “너 같은 멀쩡한 놈은 성

하게 보내지 않을 테다.” “다리 마등갱이를 퉁겨줄 테다.” 하고 둘이 받고채

기로 역설하는데 서림이는 대꾸 한마디 않고 직수굿하고 있다가 도적들이 보따

리 속을 다 뒤져보고 거듬거듬 다시 쌀 때 “볼 것 다 보았거든 인제 도루 이리

내우.” 하고 씩씩하게 말하였다. “저놈 보게.” 하고 한 도적이 벌떡 일어나

쫓아와서 서림이의 언 뺨을 보기좋게 한번 우렸다. “내 말 좀 듣구 나서 손질

하우.” “이놈아, 말이 무슨 말이냐?” “그게 내 물건이 아니오.” “네 물건

이 아니니 도루 달란 말이냐? 시러베아들놈 다 보겠다.” “나는 변변치 못해서

뺏기구 가더래두 물건 임자는 만만치 않아서 안 찾구 고만두지 않으리다.” “

만만치 않은 놈이구 만만한 놈이구 다 오래라. 우리 청석골 와서 물건 찾아갈

놈은 세상에 아직 생겨나지두 않았다.” “물건 임자가 찾으러 올 때는 지금같

이 큰소리 못하리다.” “대체 물건 임자가 어떤 놈이냐?” “양주 장사 임꺽정

이가 물건 임자요.” 서림이 경기 감영에 있을 때 양주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가

장사로 소문이 나서 광주, 용인 근처의 좀도적들은 말할 것 없고 부평, 인천 등

지의 유명한 화적패들까지 꺽정이 이름만 듣고도 겁들을 낸다고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 들었던 까닭에 청석골 도적놈도 혹시 그럴까 하고 임꺽정이의 성명을 대

어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기고만장하던 도적이 입을 딱 벌리고 옆에 와서 수작

을 듣고 있던 다른 도적이 나서서 “양주 임장사의 물건을 댁은 어디서 가지고

가우?” 하고 물었다. 서림이 우연히 생각난 꾀가 바로 맞는 것을 빙그레 웃으

면서 “양주 임장사가 나와 연사간이오. 내가 평안도루 볼일 보러 갈때 물건 사

다 달란 부탁을 받았소.” 하고 수월하게 거짓말하였다. “댓은 어디 사우?” “

광주 사우.” “연사간이라니 임장사하고 어떻게 되우?” “임장사가 우리 사돈

의 사촌이오.” 서림에게 말 묻던 도적이 저의 동무를 돌아보며 “여보게, 사돈

의 사촌두 촌수를 따지나?” 하고 묻고 그 동무가 “촌수는 무슨 촌수야? 연사

간이지.” 하고 대답한 뒤 “어떻게 할라나?” “헛물켰지 별수 있나.” “동네

루 끌구 가세.” “두령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지. 임장사의 물건을 뺏을 수 있나.

” “그대루 보내더래두 가서 말씀이나 하구 보내세.” “아무리나 하세.” 두

도적이 서로 지껄이고 서림이를 보따리 지워 앞세웠다. 서림이가 내빼고 싶은

마음은 골돌하나 섣불리 내빼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이롭지 못할 줄 생각하고

도적들이 가자는 대로 쫓아서 탑고개 동네 어느 집 앞에 왔을 때 봉당에 섰는

목자 불량한 군들이 “저런, 괴나리 하나야?” “보따리가 속이나 단단한가?”

하고 물어서 서림이를 데리고 오는 도적 하나가 “속은 단단하구두 빈탕이라네.

” 대답하고 방 앞에 가서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피물이니 옥이니 임장사니

여러 말을 하더니 “그놈을 이리 끌어오너라!” 하는 우렁찬 말소리가 방안에서

울려나왔다.

서림이가 방문 앞으로 끌려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

하나가 아랫목 자리에 앉아서 늙은 사람 서넛과 같이 술을 먹는데 그 젊은 사람

이 도적의 두목인 것은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늙은 사람들은 삐끔삐금 밖

을 내다보아도 두목만은 사발술을 들이키며 내다보지 않더니 사발을 상에 놓고

안주를 입에 넣고 한동안 있다가 고개를 밖으로 돌이키며 “네 말이 양주 임장

사의 사돈이란다니 그 아들은 아직 장가를 안 들었는데 어떻게 되는 사돈이냐?

” 하고 묻는 말이 곧 호령이었다. 그 두목이 꺽정이의 집안을 잘 아는 것 같아

서 서림이가 꺽정이를 팔기가 떨떠름하였으나 졸개 도적에게 한 말을 갑자기 달

리 꾸미기 어려워서 “임장사가 우리 사돈의 사촌이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더

니 젊은 두목은 어이없는 듯이 웃으면서 “옳지, 임꺽정이가 네 사돈의 사촌이

야? 그런데 임꺽정이는 사촌이 없는걸.” 하고 예사 언성으로 말하였다. “의심

쩍거든 임꺽정이에게 물어보시오.” 서림이가 말하는 것을 젊은 두목은 듣는 체

만 체하고 졸개들을 바라보며 “얼른 끌구 가서 집어치워라. 그러구 보따리는

들여오너라.” 하고 분부하니 졸개 도적들 중의 두 놈이 앞으로 나와서 양편에

서 서림이를 내끌었다. 서림이가 화색이 박두한 것을 깨닫고 “잠깐만 참아 주.

” 일변 졸개들에게 사정하며 “말씀 한마디마 더 들어줍시오.” 일변 두목에게

애걸하였다. “무슨 말이냐?” “제가 물건을 여기 두구 양주 가서 임꺽정이를

데리구 올 테니 제 말이 거짓말인가 참말인가 물어보십시오.” “양주를 갔다오

겠다?” 두목은 오겠다란 말에 특별히 힘을 주어서 뇌더니 “고만둬라.” 하고

손을 내저었다. 서림이가 졸개 도적들에게 끌리어 나오다가 도망해볼 생각으로

별안간 두 팔을 뿌리치니 한 도적은 손을 놓치고 한 도적은 매어달리며 “이리

좀 오게.” 하고 소리질러서 봉당에 있던 도적 서너 놈이 쫓아나왔다. “이놈이

뿌리치구 내뺄라구 하네.”

매어달린 도적이 말하는 것을 여러 도적들이 듣고 서림이를 중간에 넣고 주먹

질, 발길질로 초주검을 시켜놓았다. 여러 도적들이 다 죽어가는 서림이를 뒷결박

지워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죽이러 나갈 때 탑고개 동네 사는 사람 대여섯

이 나와서 구경들 하였다. 그 중의 젊은 사람 하나가 서림이의 얼굴을 바라보더

니 가까이 와서 이모저모 뜯어보다가 도적 하나를 보고 “이 사람이 어디 사람

인가?” 하고 물으니 그 도적이 “광주 사람이라우.” 하고 대답하였다. “광주

사람이여?” 하고 그 사내가 눈감은 서림이에게 와서 “성명이 무어요? 성명이

무어요?” “광주 서형방 아니시오?” 하고 물으며 서림이의 몸을 흔들었다. 그

사내의 묻는 말을 서림이가 알아들었던지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그

사내가 곧 도적들을 돌아보며 “여보게, 이 사람이 우리 집의 은인일세. 내가 가

서 말하구 나올테니 잠깐만 참아 주게.” 부탁하고 바로 두령 있는 집으로 뛰어

갔다.

그 사내는 곽오주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길막봉이를 끌어오던 작은 손가니, 지

금 탑고개 동네에 나와서는 풍헌 노릇하고 청석골 적굴에 들어가서는 작은 두목

노릇하는 사람이다. 작은 손가가 두령이 있는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와서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길두령 나 좀 보시우.” 하고 소리질렸다. 이날 탑고개에 나와

있던 두령은 길막봉이다. 작은 손가가 전 같으면 막봉이 하고 이름을 불렀을 터

이지만, 청속골 적굴 칭호대로 두령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때 청석골에는 팔

로모산지배가 많이 모여들어서 도당이 사오십 명이나 되는데 졸개 위에 두목이

있고 두목 위에 두령이 있어서 등분이 엄절하였다. 막봉이가 방문을 열치고 내

다보니 손가가 가쁜 숨을 돌리면서 “그 사람을 살려주어야겠소.” 하고 방문

앞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이 누구야?” “지금 죽이는 사람이오.” “왜?” “

그 사람이 우리 형님의 은인이오.” “그 사람이 누군데?” “광주에서 형방 다

니던 서림이란 사람이오.” “서림이? 서림이 성명은 나두 들은 법하군.” “우

리 형님이 광주 분원서 살인옥사에 걸렸을 때 빼놓아 준 사람이오.” “옳지, 그

때 성명을 들었었군. 지금 그자가 큰 죄는 없지만 하두 가짓말을 하니까 밉살스

러워서 죽이라구 했어.” “그 사람을 살려주면 집의 아주머니부터 좋아하실 거

요.” 서림이를 놓아주란 말이 막봉이 입에서 떨어지기 전에 막봉이의 누님이요,

작은 손가의 형수인 여편네가 쫓아와서 먼저 시동생을 보고 “지금 끌려나간 사

람이 광주 서형방이오?” 하고 묻고 그 다음에 친동생을 보고 “셔형방은 우리

집 은인이니 우리 인정 좀 보아주게.” 하고 청하니 막봉이는 두말 않고 “그러

우.” 하고 쾌히 허락하였다. 막봉이가 졸개들을 불러들여서 “아까 집어치우란

사람을 그대로 놓아보내라.” 하고 이른 뒤에 작은 손가는 바로 형수와 함께 졸

개들 뒤를 따라나가고 막봉이는 다시 방문을 닫히고 늙은이들과 같이 술을 먹었

다. 늙은이 하나가 첨속으로 “거짓말쟁이가 덕택에 살아갑니다그려.” 하고 말

하니 막봉이는 싱그레 웃으며 “큰죄 없으니까 누님 생색을 내주었소.” 하고

말하였다. “누님이 진 은혜를 갚아 드리는 것이 여간 잘하시는 일인가요.” “

그까진 일에 잘하구 못하구가 어디 있소.” “큰 손서방이 살인한 일이 있나요?

” “그 변변치 않은 위인이 살인할 주제나 되우?" "전에는 똑똑하던 사람이 곽

두령 쇠도리깨에 골통이 터진 뒤루 천치가 되었다먼요.” “전에두 사람이 순하

기만 하지 변변치는 못했소.” “그런데 어떻게 살인옥사 같은 데 관련이 되었

던가요?” “광주 분원서 사기 구울 때 사기막에서 싸움 끝에 살인이 났는데 싸

움 말린다구 덤볐다가 살인죄의 종범으루 붙들려갔더라우.” “싸움 말리다가

그런 봉변한 사람이 탑거리두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애매하게 귀양까지 갔다

왔지요.” “우리 매형이란 사람두 잘못하면 귀양가게 되는 것을 서가란 자가

힘을 써서 무사히 놓여나왔다우.” “손서방 집에서 은인이라구 할 만하구먼요.

” 그 늙은이가 말을 그친 뒤에 여러 늙은이들이 끼리끼리 지껄이기 시작하여

“거짓말쟁이가 보따리 물건을 찾지 못해서 아까웁겠네.” “무슨 경화에 물건

을 찾을 생각 하겠나. 목숨 부지한 것두 천만 뜻밖이지.” “자네 집에 가지 않

으려나?” “나는 좀더 있다가 가겠네.” 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는 중에 홀저

에 방문 밖에 신발소리들이나고 뒤미처 방문이 열리며 작은 손가가 서림이를 부

축하고 들어오는데, 여러 늙은이들은 고사하고 막봉이까지 보따리를 찾으러온

줄로 의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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