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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4)

카지모도 2023. 3. 15.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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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이가 막봉이를 향하고 공손히 절하는데 엎드리고 일어나는 것을 작은 손

가가 거들어주었다. 막봉이가 서림이의 절하는 것은 본 체 만 체하고 작은 손가

를 바라보면서 “그대루 보내지, 왜 데리구 왔어 보따리를 찾아 달라든가?” 하

고 물으니 작은 손가가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오. 사례하러 오셨소. 아주머

니하구 나하구 집으루 가시자구 말하니까 두령께 와서 죽이지 않은 은혜를 사례

하구 가신다구해서 아주머니만 먼저 집으루 가시게 하구 나는 이리 뫼시구 왔

소.” 하고 대답하였다.

“사례는 고만둬두 좋지.” 막봉이 말끝에 “죽게 된 건 내 잘못이구, 살려주

신 건 두령의 은덕입니다. 나를 낳아준 이두 부모요, 나를 살려준 이두 부모라니

두령은 곧 나의 부모신데 내가 정신을 차리구서야 먼저 와서 보입지 않을 길이

있습니까.”

서림이가 나직나직 말하는데 말소리는 약하나 말하는 것은 똑똑하였다. 막봉

이가 머리를 몇번 끄덕끄덕하도 “보아하니 몸이 괴로운 모양이니 어서 저 사람

을 따라가서 편히 쉬우.” 하고 말한 뒤 작은 손가가 “인제 고만 가십시다.”

하고 서림이를 다시 부축하고 나갔다.

서림이는 손가의 집에 와서 후대를 받으며 수일 조리하는 동안에 작은 손가에

게서 청석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늙은 두령 하나와 젊은 두령 넷이 위에 있

고 그 아래 두목과 졸개가 사오십 명이 있어서 송도의 포도군사들이 근처에 와

서 어른대지 못하고 사방 십리 안에 있는 동네들은 모두 청석골에 매어 지내는

데 그 중에 탑고개와 양짓말과 구룡동 같은 동네는 젊은 두령들이 겨끔내기로

나와서 돌아 들어가기도 하고 간혹 묵어가기도 한다고 하였다. 서림이가 청석골

이야기를 꼬치꼬치 파물어 보는 중에 평양서 올 진상 물건을 적당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 나서 작은 손가더러 “나를 적굴에 좀 데리구 갈 수 있소?” 하고 물

으니 작은 손가는 고개를 외치며 “구경 못 가십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구

경가자는 것이 아니오.” “그럼 입당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두령들이 허락

한다면 입당해두 좋소.” “상주 같으신 분이 적당에 입당하실 리가 있나요? 실

없은 말씀이지.” “실없은 말이 아니오. 나두 오늘날 신세가 헐수할수 없이 되

었소.” 하고 서림이가 경기도서 포흠 지고 죽을 뻔한 일과 평안도서 작죄하고

도망한 일을 대충대충 이야기하였다. “참말 입당하시렵니까?” “두번 다질 것

없소.” “내가 먼저 두령들에게루 청을 들여보내 보지우.” “내가 폐백을 가지

구 가서 입당할 테니, 청할 때 미리 귀띔해 두시우.” “무슨 폐백인가요?” “

열 몫에 나누면 장자 열이 날 만한 큰 재물이 내 뒤에 있소.”“참말씀입니까?

” “거짓말 아니니 염려 마우.” “그 재물이 어디 있습니까?” “청석골 두령

들이 내 말만 들으면 그 재물이 어디 있든지 곧 청석골루 굴러들어올 게요.”

“실상 까놓구 말씀이지 내가 청석골 작은 두목의 한 사람인데 늙은 오두령부

터 다섯 두령이 다 나를 믿습니다. 내가 힘써 천거하면 입당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 듣기 전에 나두 다 짐작했소.” “청을 들려보내 본다구 말씀한 건 내가

먼저 한번 갔다오려구한 것인데 뒤에 큰 재물을 가지구 오신 줄 알면 두령들두

좋아할거니까 바루 나하구 같이 가십시다.”

“큰 재물을 잡아오자면 하루라두 일찍 준비하는 것이 좋으니까 가기가 늦지

않거든 오늘이라두 같이 가십시다.” “지금이라두 가기는 늦을 것 없지만 산길

을 걷기가 아직 어렵지 않으시까요?” “염려 없소. 오늘 갑시다.”

겨울해가 한낮이 훨씬 기운 때 서림이 작은 손가를 앞세우고 탑고개 동네서

나섰다.

산길을 잡아든 뒤로 큰고개, 작은고개를 패어 넘는데 기어오를 비탈이며 뛰어

건널 구렁에서 서림이는 현기가 나서 손가에게 손 붙들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

었다. 적굴은 아직 보이지 않고 해는 얼마 남지 아니하였을 때 서림이가 앞서

가는 손가를 불러세우고 “앞으루 몇 리나 남았는지 어둡기 전에 들어가겠소?”

하고 물으니 “인제 저 등갱이 하나만 넘으면 고만입니다.” 하고 손가는 건너

편에 있는 산장등을 가리켰다. 서림이 다리가 아파서 손가보다 훨씬 뒤떨어져 장

등으로 올라오는데 장등 위에 난데없는 장정 두엇이 나타나서 먼저 올라간 손가

와 한참 무엇을 지껄이더니 장정들은 어디로 들어가고 손가만 혼자 서서 서림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신 모양입니다그려.” “좀 쉬어갑시

다.” “그러십시오.” “지금 나왔던 망꾼들은 어디 갔소?” “망꾼인 줄을 어

떻게 아셨습니까?” “눈치가 빠르지 못하기루서니 그것쯤이야 짐작 못하겠소.

” 손가가 눈 덮인 돌 하나를 찾아가서 손으로 눈을 쓸어버리며 “이리 오십시

오.” 하고 서림이를 불렀다. 서림이가 돌 위에와 앉아서 쉬는 동안에 장등 아래

에 저녁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장등 앞에 나와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골

안에 집이 많이 들어 앉았는데, 조금조금 한 초가들은 말말고 크고 작은 외가만

도 여닐곱 채나 되었다. “탑고개보다 크구려.” 하고 서림이가 손가를 돌아보

니 손가는 서림이 옆으로 나서면서 “배포가 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집들

이 깨끗한 게 모두 새집 같구려.” “새집들입니다. 전에는 저 안침에 있는 묵

은 기와집 한 채뿐이었는데 올 봄부터 여름 가을 내처 역사를 했습니다.” “목

수 미장이 같은 장색들은 난데서 불러다 쓰우?” “저 묵은 기와집 사랑채 세울

때는 난데 장색을 불러다 썼지만 졸개들이 많이 모인 뒤루는 졸개 중에 목수가

없나요, 미장이가 없나요, 대장쟁이 기와쟁이 갖은 장색이 다 있어서 가을에 도

회청 지을 때는 난데 장색 하나두 쓰지 않았습니다.”

“한복판에 있는 그중 큰 기와집이 도회청이오?” “녜, 원채가 도회청이구

좌우 옆채는 길두령하구 배두령하구 각각 한 채씩 씁니다.” “오두령이란 이는

저 묵은집에 있소?” “녜, 그 집에 박두령하구 같이 있습니다.” “작은 기와집

들은 사람 거처하는 집이 아니오?” “녜, 곳간들입니다. 군기 두는 군기고두 있

구, 군량 두는 군량고두 있구.” “초가는 모두 졸개들의 집이구려.” “녜, 두목

과 졸개의 살림하는 초막들입니다.” “졸개들 중에 처자 데리구 살림하는 사람

이 많소?” “처자 있는 사람이 반이 못 될 겝니다.” “길두령 배두령은 도회

청 여패에 있구, 오두령 박두령은 묵은 집에 있으면, 쇠도리깨 쓴다는 곽두령은

어느 집에 있소?” “곽두령의 처소는 뒷고개 넘어가서 외따루 있습니다.” “

파수 보러 나가 있소?” “아니오. 그 두령은 우는 어린애하구 비각이라, 말하자

면 어린애피접 가 있는 셈입니다.” “어린애 울음소리를 들으면 미친다니까 피

접두 용혹무괴요.” “지금은 전에 대면 나은 셈이라는데 그래두 어린애 울음소

리를 들으면 잠두 못 자구 밥두 못 먹는답니다.” “그래 혼자 가서 끓여먹구

있소?” “아니오. 수청 드는 아이놈두 있구 심부름하는 졸개들두 있지요. 그러

구 조석은 오두령댁에서 날라다 먹는답니다.”

눈 위의 찬바람이 앞으로 안기어서 서림이가 “어, 칩다.” 하고 몸을 오므려

들이니 손가가 “치운 데 섰느니 아래루 내려갑시다.”

말하고 곧 서림이와 같이 장등에서 내려왔다. 청석골 적굴의 대소사는 다섯

두령이 같이 의논하여 결처하되 늙은 오가가 연치, 이력, 언변으로 괴수격이 되어

서 의논을 조종하고 결처를 좌우하는 일이 많았다. 서림이가 손가에게서 내막

이야기를 듣고 먼저 오가를 가서 보자고 말하여 손가는 그 말을 좇아서 도회청

을 들르지 않고 지나가다가 도회청 길목에서 길막봉이가 박유복이와 같이 나오

는 것을 만났다. 손가가 유복이와 막봉이에게 인사하는 중에 서림이는 막봉이

앞에 나가서 하정배하듯이 허리를 굽히고 “지금 보이러 오는 길입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하였다. 막봉이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이 사람이 요전 보따

리 임자요.”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자 유복이는 서림이를 본체만체하고 “생소

한 사람을 어째 데리구 왔나?” 하고 손가를 바라보았다.

손가가 서림이를 한옆에 갖다 세우고 와서 박유복이와 길막봉이를 보고 서림

이 뒤에 큰 재물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두령들이 자기 말만 들어주면

한 달 안에 청석골루 가져온다구 장담합디다.” “그 장담이 허풍인지 누가 아

나? 그 말이 나는 어째 곧이 들리지 않는데.” “한 달 동안 속는 셈 잡으면 되

지 않소.” 막봉이와 손가의 수작하는 말을 유복이는 듣고 있다가 손가더러 “

자네 말두 유리하니까 어디 의논해 보세.” 하고 말하였다. “지금 어디루 가시

는 길입니까?” “집으루 가는 길일세.” “길두령두 같이 가십니까?” “같이

가네.” “나두 저 사람 데리구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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