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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2부, 2) -톨스토이-

2 이튿날 아침 네플류도프는 9시에 잠을 깼다. 주인의 시중을 들고 있는 젊은 사무원은 그가 일어난 기척을 알아채고, 이제껏 그렇게 해본 적이 없을만큼 번쩍번쩍하게 닦아 놓은 구두와 차고 깨끗한 샘물을 떠가지고 들어와서 농부들이 벌써 모이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네플류도프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지를 농부들에게 분배하여 자기 재산을 없애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던 어제의 마음은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그는 간밤에 후회하던 일을 되새겨 보니 퍽 놀라웠다. 지금 눈앞에 닥쳐오고 있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무심결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창 밖으로는 민들레가 무성한 테스트 코트가 보였는데, 그 곳에는 관리인의 지시대로 농부들이 모여 있었다. 어젯밤 개구리가 요란하게 울어 대더니 날씨는 잔..

<R/B> 부활 (2부, 1) -톨스토이-

제 2 부 1 2주일 후에 대심원의 심리가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그때까지 페데르부르크로 가서, 만일 대심원에서 잘 안 될 경우에는 상소장을 작성해 준 변호사와 권고대로 황제한테 청원해 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말한 바와 같이 상소의 이유가 매우 허술해서 기각되는 경우 그만한 각오도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6월 초순 마슬로바를 포함한 징역수의 이송단이 출발하게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플류도프는 이미 굳게 결심한대로 마슬로바의 뒤를 쫓아 시베리아까지 따라갈 채비를 서두르기 위해서는, 먼저 영지의 여러 마을을 두루 살펴 정리를 해두어야 했다. 제일 먼저 네플류도프는 쿠즈민스코예 마을로 출발했다. 그 곳은 제일 가까운 데 있었을뿐더러, 흑토질의 광대한 영지로서 그..

<R/B> 부활 (58) -톨스토이-

58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저마다 일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선한 자, 악한 자, 영리한 자, 어리석은 자, 근면한 자, 태만한 자 등등의 사람이 있다는 것...그러나 사실 인간이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어떤 한 사람에 관해서,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다든가, 어리석을 때보다 영리할 때가 더 많다든가, 태만할 때보다 근면할 때가 더 많다든가, 또는 그 반대로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언제나, 저 사람은 선한 자 영리한 자이며, 이 사람은 악한 자 어리석은 자이다, 라는 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그릇된 짓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강과도 같은 것이어서, 물은 어느 강에서든 어디로 흘러가든 역시 같은 물이요, 또..

<R/B> 부활 (57) -톨스토이-

57 "자, 무슨 이야긴지 어디 해보게. 담배 피우겠나? 잠깐만 기다리게. 재투성이가 되면 안 되니까."하고 그는 재떨이를 가져왔다. "자, 무슨 이야기지?" "자네한테 두 가지 청이 있네." "아, 그래!" 마슬레니코프의 얼굴은 어둡고 침울해 보였다. 주인이 귓등을 긁어 줄 때의 흥분했던 강아지의 그런 모습은 말끔히 사라졌다. 객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말소리였다. "절대로, 절대로 믿지 않아요."하는 여자의 프랑스 말 목소리와 그 반대편에서 '보론초바 백작 부인과 빅토르 아프락신'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무엇인지 지껄여 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한쪽에서는 웃음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려왔다. 마슬레니코프는 객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네플류도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R/B> 부활 (56) -톨스토이-

56 이튿날 네플류도프는 변호사를 찾아가서 메니쇼프 모자 사건을 이야기하고 역시 그 변호를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변호사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일단 조사해 보고 난 뒤, 만일 네플류도프가 말한 것이 사실임이 증명되면 무보수로 그 변호를 맡겠노라고 선뜻 나섰다. 네플류도프는 또 사소한 부주의로 130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이것은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죄냐고 다그쳐 물었다. 변호사는 분명하게 정확한 대답을 하려는지 잠시 침묵했다. "누구의 잘못이냐고요? 아무도 죄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검사에게 물으면 지사의 과실이라고 할 것이고, 지사에게 물으면 검사의 책임이라고 말할 것이 뻔합니다. 결국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난 지금부터 곧장 마슬..

<R/B> 부활 (55) -톨스토이-

55 소장이 일어서서 면회 시간이 끝났으니 돌아가 달라고 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네플류도프는 베라 예프레모브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 쪽으로 갔는데 그 때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분, 시간이 됐습니다. 시간이 됐어요!"하고 소장은 조바심 때문에 안절부절하면서 되풀이했다. 하지만 소장의 말은 방 안에 있는 죄수들을 흥분시켰을 뿐 누구 하나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일어선 채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대로 앉아서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고, 특히 폐를 앓는 청년과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젊은 아들은 줄곧 종잇조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나 얼굴이..

<R/B> 부활 (54) -톨스토이-

54 짧은 머리에 얼굴빛이 노랗고, 여윈데다가 몸집이 작은 베라 예프레모브나 보고두호프스캬야가 뒷문에서 커다란 눈을 반짝이면서 들어왔다. "이렇게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다. "절 알아보시겠어요? 앉으세요." "이런 데서 만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기뻐요. 어찌나 기쁜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예요." 베라 예프레모브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듯 선량하고 둥근 큰 눈으로 놀란 듯이 네플류도프를 바라보면서 추레하고 구겨지고 더러운 상의의 깃 밖으로 내민 몹시 가느다랗고 힘줄투성이인 누런 목을 설레설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네플류도프는 그녀가 수감된 내력을 물었다. 그녀는 몹시 생기차게 자기가 감옥에 갇히게 된 경위를 띄엄띄엄 낯선 말로 이야기..

<R/B> 부활 (53) -톨스토이-

53 사무실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칠이 벗겨지고 불룩 튀어나온 망가진 아주 큰 난로가 있고 두 개의 더러운 창문이 나와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죄수의 키를 재는 데 사용하는 시꺼먼 야드 자가 있었고 다른 한쪽 구석에는 고문하는 데는 어디나 있게 마련인 커다란 예수의 상이 '그분'의 가르침을 조롱하듯이 걸려 있었다. 첫 방에는 간수가 몇 명 서 있었다. 다른 한 방에는 스무 명 가량의 남녀가 한 무리 또는 두 사람씩 짝이 되어 구석에 앉아서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창 옆에는 필기용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소장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네플류도프에게 옆에 있는 의자를 권했다. 네플류도프는 앉아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중 제일 먼저 그의 주의를 ..

<R/B> 부활 (52) -톨스토이-

52 넓은 복도를 되돌아서서(마침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감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연한 갈색 겉옷에 짧고 통이 널찍한 바지를 입고 죄수화를 신은 죄수들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를 지나가며 네플류도프는 이상한 기분에 잠겼다.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그들을 여기에 가둔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의혹, 또 이런 것을 태연하게 조사하고 다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유 모를 수치심을 느꼈다. 어느 복도에서 누군가가 죄수화 소리를 내면서 감방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거기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네플류도프의 길을 막아서며 인사를 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나리, 제발 우리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나는 관리가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

<R/B> 부활 (51) -톨스토이-

51 "들여다봐도 좋습니까?" "좋고 말고요, 원하신다면." 부소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간수에게 뭔가를 묻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구멍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까만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젊은 사나이가 셔츠 바람으로 재빨리 감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나자 그 사나이는 힐끗 돌아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다른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안에서도 역시 이쪽을 보고 있던 놀란 듯한 커다란 눈이 네플류도프의 눈과 마주치자 그는 곧 물러섰다. 네플류도프는 세 번째 감방에서 무척 키가 작은 사나이가 몸을 구부리고 겉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네 번째 감방에는 얼굴이 넓적하고 창백한 사나이가 머리를 푹 숙이고 무릎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