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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부활 (52) -톨스토이-

52 넓은 복도를 되돌아서서(마침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감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연한 갈색 겉옷에 짧고 통이 널찍한 바지를 입고 죄수화를 신은 죄수들이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는 사이를 지나가며 네플류도프는 이상한 기분에 잠겼다. 여기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그들을 여기에 가둔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의혹, 또 이런 것을 태연하게 조사하고 다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이유 모를 수치심을 느꼈다. 어느 복도에서 누군가가 죄수화 소리를 내면서 감방 안으로 뛰어들어가자, 거기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네플류도프의 길을 막아서며 인사를 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나리, 제발 우리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나는 관리가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

<R/B> 부활 (51) -톨스토이-

51 "들여다봐도 좋습니까?" "좋고 말고요, 원하신다면." 부소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간수에게 뭔가를 묻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구멍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까만 턱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젊은 사나이가 셔츠 바람으로 재빨리 감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문 쪽에서 발소리가 나자 그 사나이는 힐끗 돌아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네플류도프는 다른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안에서도 역시 이쪽을 보고 있던 놀란 듯한 커다란 눈이 네플류도프의 눈과 마주치자 그는 곧 물러섰다. 네플류도프는 세 번째 감방에서 무척 키가 작은 사나이가 몸을 구부리고 겉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네 번째 감방에는 얼굴이 넓적하고 창백한 사나이가 머리를 푹 숙이고 무릎에..

<R/B> 부활 (50) -톨스토이-

50 그 날 네플류도프는 마슬레니코프의 저택에서 곧장 감옥으로 가서 낯익은 소장의 관사를 찾았다. 요전처럼 낡은 피아노 소리가 들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아니라 클레멘티(이탈리아의 작곡가)의 이었는데, 역시 몹시 힘차고 명확하고 빠른 템포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한 눈을 가린 하녀가 문을 열어 주더니 소장님이 집에 계시다면서 네플류도프를 조그마한 객실로 안내했다. 객실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털실로 짠 테이블보 위에는 한쪽이 누렇게 된 장밋빛의 종이갓을 씌운 커다란 램프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침울하고 쓸쓸한 얼굴을 한 소장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용무시죠?" 그는 제복 한가운데의 단추를 채우면서 말했다. "지금 막 부지사한테서 허가증을 받아 왔습니다." 네플류도프는 허가증을 ..

<R/B> 부활 (49) -톨스토이-

49 이튿날 아침 네플류도프는 눈을 뜨자 어제 었던 일을 하나하나 회상해 내고는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도 불고하고 그는 전보다 더 굳은 마음으로 일단 시작한 일을 끝까지 계속하리라 결심했다. 이러한 자신의 의무감을 의식하면서 그는 집을 나와 마슬레니코프한테로 마차를 몰았다. 그것은 마슬로바의 일 외에도 그녀에게서 청을 받은 메니쇼프 노파 모자에 대한 면허 허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밖에도 마슬로바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도 모를 보고두호프스카야의 면회에 대해서도 부탁해 볼 참이었다. 네플류도프는 마슬레니코프와 옛날 연대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 당시 마슬레니코프는 연대의 경리 장교였다. 그는 다시 없는 호인으로서, 연대와 황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고지식한 ..

<R/B> 부활 (48) -톨스토이-

48 '그렇다,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당연해.' 감옥을 나오면서 네플류도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야 비로소 자기 죄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자기 죄를 속죄할 생각을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모든 죄를 깨닫지 못하였으리라. 더구나 그녀도 자기가 받은 모든 악행을 느끼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무섭고도 분명하게 표면에 드러났다. 그는 이제야 이 여자의 영혼에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녀 역시 자기가 당한 일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 네플류도프는 자기 자신과 자기의 회오의 감정을 음미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두렵기만 했다. 그녀는 버린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는 이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R/B> 부활 (47) -톨스토이-

47 마슬로바를 데리고 온 간수는 테이블에서 물러나와 창턱에 앉았다. 네플류도프에게는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 면회 왔을 때 그녀에게 중요한 일, 즉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상 자기를 책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말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녀는 테이블 한쪽에 앉고, 네플류도프는 그 반대쪽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이 밝았기 때문에 네플류도프는 처음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얼굴과 눈, 입술 언저리의 잔주름, 그리고 부석부석한 눈을 똑똑히 바라볼 수가 있었다. 전보다 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창가에 앉은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을 기른 유대인인 듯한 간수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테이블 너머로 상체를 굽히고 그는 입을 ..

<R/B> 부활 (46) -톨스토이-

46 네플류도프는 벌써 오랫동안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있는 벨을 눌러 당직 간수에게 검사의 허가증을 내보였다. "누구를 면회하러 오셨습니까?" "여죄수를 마슬로바를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소장님이 바쁘시니까요." "사무실에 계십니까?" 네플류도프는 물었다. "아니, 여기 면회실에 계십니다."하고 간수는 대답했으나, 네플류도프는 간수의 얼굴에서 당황해 하는 빛을 보았다. "왜요, 오늘은 면회일이 아니잖습니까?"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요." "어제 뵐 수 있습니까?" 이제 곧 나오실 겁니다. 그 때 말씀해 보십시오. 조금 기다려 보세요." 이 때 옆문에서 얼굴에 번들번들 윤기가 흐르고 담배 연기가 밴 수염과 금줄이 번쩍이는 군복을 입은 상사가 나오더니 ..

<R/B> 부활 (45) -톨스토이-

45 감옥에서는 여느 때처럼 감수들의 호각 소리가 목도에 요란하게 울려퍼지자, 복도와 감방 문이 철커덩 열리며, 맨발로 걷는 소리와 신발 뒤축을 끄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변기통 담당 죄수들이 역겨운 냄새를 피우면서 복도를 지나갔다. 남자 죄수와 여죄수들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점호를 받으려고 복도로 나왔다. 점호가 끝나자 더운 차를 가지러 갔다. 이 날은 두 사람의 죄수가 태형을 받게 되어 있었으므로 차 마시는 동안 어느 감방에서나 그 화제로 야단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바실리예프라는 이름의 어느 정도 공부도 한 젊은 점원이었는데 질투 끝에 자기의 정부를 죽인 사내였다. 그는 쾌활하고 도량이 넓은 사내로서 간수들에게 조금도 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옥 친구들은 그를 좋아했다. 그는 감옥의 규칙..

<R/B> 부활 (44) -톨스토이-

44 네플류도프는 자기의 외적 생활 양식을 바꾸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커다란 자기의 집을 세주고 하인들을 내보낸 다음, 여관으로 옮겨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그라페나 페트로브나는 겨울까지는 생활 양식을 바꾼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며, 여름철에는 집을 세들 사람도 없고, 또 어디서 생활을 하든지 가구와 도구는 있어야 한다고 우겨댔다. 그래서 외적 생활을 변경하려던 네플류도프의 모든 노력은(그의 대학생과 같이 검소한 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수포로 돌아가 아무런 결과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전과 똑같이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 안에서 모직물이나 모피류의 일광 소독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문지기나 그의 조수 코르네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일을 도왔다. 처음에는 아직껏 아무도 사용해..

<R/B> 부활 (43) -톨스토이-

43 네플류도프는 이 첫 면회 때부터 카추샤가 자기를 보고 그녀에게 봉사하려는 자기의 결심과 참회의 말을 듣고 나면 반드시 기뻐하고 감동하여 다시 그 옛날의 카추샤로 되돌아가 주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옛날의 카추샤는 존재하지 않고, 지금은 타락한 마슬로바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기겁을 했다. 이 사실을 그를 놀라게 했고 무섭게 했다. 그를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마슬로바가 자기의 처지, 이를테며 죄수로서의 처지가 아니라(그 점에 있어서는 그녀도 부끄러워했다.) 매춘부로서의 처지가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에 만족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인간이란 누구든지 전심으로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