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이제하 <대산 1, 유자약전 1> (1,4,3,3,1)

카지모도 2019. 11. 16. 20:18
728x90

 

-독서 리뷰-

 

<대산>

-이제하 -

 

***동우***  

2013.08.17 05:04

 

예전이제하 (李祭夏, 1937~ ) '유자약전'을 읽었을때 나는 그의 난해함에 반하였다.

그는 또한 화가.

노래도 작사 작곡하여 직접 부르기도 했다. (조영남의 노래로 알려진 모란 동백’)

 

칸딘스키 마티스 몬드리안 뉴먼 플록 클레등등... 그들의 도상기호(圖上記號)를 죄 해독해야만 그 그림이 좋던가어디?

색채와 형태와 질감과 리듬이 어우러진 화폭에서 직관되는 카오스적 아름다움.

소설도 그러한 경우 부지기수다.

 

'대산'은 큰산(大山)을 의미하는지 산을 마주한다는 (對山의미인지.. 

강금자, B시인헨리 주라는 등장인물은 지방문화계(속물주의 문화..)의 속성과 지화백이라는 인물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필연적인 장치인지..

소설의 주제를말하자면 민중미술 어쩌구하는 쪽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유한한 숙명을 가진 그림재료 파스텔로 오직 만을 그리는 화가지철우.

.

그림에 나타난 산의 조화와 생명감이란 산이 포용한 온갖 것들의 우아하고 색채적인 그 디테일의 집합인가산이라는 덩어리의 거대한 포름인가. (이를테면 그런 것이 B씨가 논하는 로코코적 지성과 바로크적 감성을 말함일런지.)

 

<철우의 ''은 누가 보러오는가물론 시민들이다철우의 ''은 누가 가져가는가시의 유지들이다. "좋오습니다." 열 명이 오고 스무 명이 낯짝을 내밀어 봤자유지들의 인사는 한결 같다유지가 손으로 지적한 그 만산홍엽은어김없이 내심으로 당신이 점찍어 놓았던 바로 그것이다그들의 신축 가옥 내실이거나 탁 트인 아파트 거실 벽에 한두 점씩 걸려 낙조에 물들고 있던 당신의 ''들의 그 창창한 면면들이 그 증좌이리라.>

 

먹물짜리거나 돈쟁이거나 힘있는 자들의 심미안(審美眼)에는 허풍과 위선이 깃들어 있음을 나 또한 알고 있다. (흐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 따위에게도 없지 않은 그것이기는 한데...)

 

'가져가가기 위한 것' '남기 위한 것'의 그림, '팔기 위한 것' '팔지 못할 종류'의 그림.

 

<몇 백년도 못 가는 재료의 수명을 처음부터 받아들이고그 화려하면서도 담백한 파스텔의 물기 없는 색감이 보는 이의 마음에만 오로지 늘어붙어 견디기를 당신은 바랐을지도 모른다.>

 

홍대 조소과를 나온 화가이며 기타를 치면서 자작시로 노래 콘서트도 여는 작가 '이제하'.

우물안에서 꼼지락거리는 나보다 자그만치 10년이나 연배의 예술가나와는 늙음 자체가 다르다.

 

그림을 볼줄 모르는 자의 자조섞인 웃음... ㅎㅎㅎ.

 

***teapot***  

2013.08.17 14:06

 

제 마음이 어수선한지 글이 어려운지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요~ㅠㅠ

 

***동우***  

2013.08.18 04:22

 

하하티팟님.

난들 알리요?

티팟님 마음이 어수선하게 아니라이 소설 자체가 어수선합니다그려

 

***teapot***  

2013.08.19 01:46

 

이러셔서 제가 동우님을 좋아한다니까요~ㅋㅋ

'난들 알리요?' 라는 말씀 진짜 모르셔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저 민망하지 않게 하려고 그러시는거죠?

같이 어수선하다 하시며 위로 해 주시네요~

모르는 것 모른다고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좀 부끄럽기는 하구만요....

 

***동우***  

2013.08.19 05:37

 

난들 알리오..는 정말이라오.

막연하게 느껴지는 바는 없지 않지만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게 명확하게 무엇인지 나 또한 꼭 집어 낼수 없어요.

그림 그리시는 티팟님이니 아시오리다만,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추상화 표현주의 그림들 티팟님에게 무슨 그림인지 설명하라면 하시겠어요?

그저 좋은 느낌이름다운 느낌으로 족하지 않나요?

텍스트로서 이해 가능한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도 좋지만 그런 느낌의 문학도 좋은 것이지요.

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을 좋아하는데이를테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 희곡이 슬프고 허무하고 연민스러운지 왜 좋은지 나는 모른답니다.

으흠조만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포스팅하렵니다.

 

거듭티팟님.

추호라도 부끄러워 하실 일 아니랍니다. 

 

 

 

 

 

-독서 리뷰-

 

<유자약전(劉子略傳)>

-이제하 -

 

***동우***

2015.08.28. 05:30

 

황석영선정 한국명단편 101

이제하 (李祭夏, 1937~ ) '유자약전(劉子略傳)

 

모차르트.

<'그 사람이야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그 사람 밖에 없어요!'>

 

과연 예술이 세상을 살리는가.

그렇다 치자.

그렇다고 하나의 삶 자체가 온통 예술로서 이루어져야 한다는게 가당한가.

그러하니 참을수 없는 존재의 삶을 참을수 없어 죽어버릴수 밖에 없는가. (자살하는 예술가중에는 아마 화가가 가장 많을듯 싶다.)

 

전위(前衛)는 기성을 데포르마숑한다.

그 어그러짐은 전위자(前衛者)의 시력 0.1짜리 순결한 안구(眼球)가 필터링하는 절망이거나 조롱이거나 도피일터이다.

 

<언제까지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도시에서 도망치지 못할 줄 아느냐이런 변소 같은 도시에서 이런 똥 같은 도시에서 티비 앞에서극장 속에서싸구려 주간지 틈에서멍청해서 도매금에 넘어가기 전에 개가 되어 팔려가기 전에 제주도든 울릉도든 탐라국이든 숨쉴 땅을 뚫을 구멍을 발붙일 장소를 그런 나라를 찾아내지 못할 줄 아느냐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계집애 밑구멍 같은 지옥에 처박혀만 있을 줄 아느냐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내장으로부터 어지럽게 끓어올라와 절망해나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절망하지만 그러나 ''(소설속 화자)는 속물이다.

의 고리타분한 페니스우월주의는 유자(劉子앞에서는 결국 꼬리를 내린다.

풍당도시인도 필경은 속물이다.

상관한테 대들다 배트를 오십 대나 맞고도 훨훨 날아다니는 놈아무리 그의 시와 용기에 대해 그의 자부와 믿음에 대해 그리고 그의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해 모든 청춘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해 씨부려싸도

 

<"지섭씨"라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더니 그녀는 갑자기 뛰어일어나 내 가슴을 잡아뜯고 쾅쾅 두들기고 드디어 거기 매달려 훌쩍거리고 울기 시작했다. "저것이 근대화예요저것이 오 개년 계획내 것 내가 해결했습니다 하는 저것이">

 

무어다다이즘쉬르레알리즘 어쩌구?

뭬라구누벨바그니 아방가르드가 어쨌다구앙가주망이 어떻다구

서구 사조의 아류들사이비들.

그들도 죄 속물이다.

요요(寥寥)한 자연에 잠긴채 먹물 찍어 산수(山水)를 치는 바람먹고 구름똥 싸는 신선.

그들도 속물이다.

 

오리지널은 오고 가리지날은 가라.

나야말로 (소설 속 '말고속속들이 속물이다.

 

<여기(餘技삼아 한두 시간씩 한 사나흘만 화필을 잡아본 사람이면 국산 영화거나 어용문학상 수상 소설에 나오는 화가처럼 그런 식으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곧 감득(感得)하게 된다그런데서는 그것이 상징적인 수법이든 무슨 개지랄의 수법이든 캔버스와 화가는 일체가 되어 피투성이 몰골로 뒹굴고 심각하게 폼까지 재는 것이지만 실제의 화가는 캔버스에 오줌을 깔기고는 배꼽을 깐 채 샌드위치거나 자장면을 맥 빠지게 먹고 있을 따름이며내일 죽는다는 예정이 구두 뒷굽처럼 확실해도 우선 대변부터 보고 보는 것이다그런데서는 화가가 투우처럼 맹렬하게 캔버스를 주시하는 것이지만 실제의 화가는 화포(畵布)를 얼른 비켜간다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망을 쳤으면 쳤지 공간을 대상으로는 하지 않는다시인이 시를농부가 밭을마누라가 남편을정객이 독재를치질이 항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화가는 고통하지 않고 고통을 깔고 앉을 따름이며그가 싸우는 대상은 공간이거나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캔버스 앞에 재빨리 커튼처럼 내리드리워지는 어떤 무기력감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화가는 화포 앞에서 곧 돌아서며 남의 다리를 긁으며 벼룩을 잡으며 수음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그린다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돌발하는 교통사고다설사 그 화가가 어리석어빠져 일곱 낮 일곱 밤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캔버스만 어루만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림은 거기에는 없다그것은 분뇨 수거차 속에 있고 맹장 속에 콩팥처럼 끼어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다설사 그 일곱 낮 일곱 밤의 도로(徒勞)가 비상하는 손가락 하나를 비상하는 손가락 꼭 그것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 속물은 유자가 생기를 더해갈수록 점점 의기소침하고 맥 빠지고 허약해져간다.

유자가 죽었다.

''는 질식하지 않는다.

예술과 함께 미치지도 못한다.

세상과 함께 얼씨구 돌아가며 미칠 뿐이다.

 

<줄이 끊어져 무거운 상자가 떨어져가듯이급속도로 그 속으로 떨어져간 유자의 병에 대해그리고 나를 포함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그 모든 인간들에 대해나는 기억조차 하기가 싫다의사는 진단하고 당사자는 죽을 따름이다그리고 병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른다질식하지 않으려면 함께 미쳐야만 하는 그런 쪽으로 온갖 인간들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회전한다.> 

 

++++

(인터넷 얼마나 고마운지옛날에 소설에 등장하는 화가들에게서 유자의 단서를 찾으려고 화집을 일일히 뒤적거렸지만 골동품 화집에서는 태반을 찾지 못하였었는데인터넷에서 본문에 나오는 그림들 찾아 글과 함께 올립니다.)

++++

 

<그녀가 괴상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후의 일이지만그러니까 유자가 코를 골고 있는 것은 수면 속으로 가라앉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며칠 동안이나 골똘히 꾼 꿈을 발판으로 수면을 향하여 떠오르려고 부심하는 상태인 것이다이것은 그녀에 대한 지나친 윤색일는지 모른다여자가 꾸는 꿈들을 정리하고 그것을 체계화할 능력이 있다고 나는 믿어본 적이 없다천성적으로 그것들과는 반대의 동물이 여자며고작 곗돈 계산이 지적 능력의 극점이며여자가 위대하게 인정을 받는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인 것이다온갖 종류의 역사가 웅변으로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더구나 조형의 세계에서는 몇 손가락밖에 안 되는 여류작가들-'로랑쌩' (Marie Laurencin - 프랑스 화가, 1883~1956. 피카소를 통해 시인 아뽈리네르와 만나 그와 5년간 연애한 것으로 유명)이거나 다 '씰바 (da Silva, Viera, 포르투칼의 추상화가.1908~1992, 밀집 건물형의 추상 포름으로 유명)거나 피니 (Leonol Fini. 1908~ . 아르헨티나의 초현실주의 화가환상적인 나부들을 많이 그리고 있다)거나 최근의 마리쏠(Escobar Marisol, 프랑스의 여류 조각가. 1930~ . 독특한 목재인형으로 유명)이거나 그들의 작품이-미술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여류들의 작품페니스우월주의의 선입견 작용하는 바 있을까.

 

{{{아래 로랑쎙과 씰바와 피니와 마리쏠과 로랑쌩의 그림들}}}

 

<십오 평 공간 속에서는 유자가 비틀거리고 있다국립의대 해부실에서 해골뼈다귀의 표본을 한 점 그 옆에 갖다놓지 않으면 유자는 콩 먹은 오뚝이처럼 줄곧 엉엉 울며 흔들리고만 있을 것이다해골의 머리를 떼서 유자의 손에 얹어준다유자가 조용해지며 미소 짓는다개가 들어와 해골의 다리뼈다귀 하나를 물어간다조각가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스위스의 조각가. 1901~1966. 작품에 철사를 사용하여 새장 같은 공간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가 투덜거리면서 개 뒤를 따라가고 있다.>

 

자고메티에 유자의 모습이 있을까

 

{{{아래 자코메티의 그림들}}}

 

<존스(Jasper Johns, 1930~ . 미국액션페인팅 이후의 속칭 ‘네오다다라 불리는 오브제 예술의 거장로버트 라우션버그와 쌍벽을 이룬다.)를 처음 보였을 때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내가 보인 것은 그가 그린 수매의 아메리카 국기들 중에서 오렌지빛 공간의 상단에 선열하게 부각시켜놓은 국기다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고심참담한 붓자국을 따라 그녀는 두리번두리번 눈길을 가져가기는 했으나 곧 멍청한 얼굴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재스퍼 존스라고 대단한 놈이야.”그녀의 무감각에 화가 치밀어올라나는 서툰 해설을 첨가해보았다. “양키 부르주아적인 거창한 동력과 그 획일성에 반발하는 그림이야이건 하긴 추악한 사회에선 아무리 멍청한 바보라도 애국자가 되지 않을 수 없지 그러면서도 국민들은 이런 그림을 사랑하고 애낀다 바로 그런 점이 아메리카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야어딘가 좀 으스대는 듯하지그림이?”>

 

집단을 향한 재스퍼 존스의 시니컬한 웃음유자도 웃었다.

 

{{{아래 존스의 그림들}}}

 

<“이건 어때?”하고 고르키(Arshile Gorky, 1809~1848. 아르메니아 태생의 미국 화가쉬르계의 추상적 포름이 특징적인 화풍자살.)를 나는 펼쳤다. “그림 땜에 순교당한 양반이야존스가 사회에 반발을 했다면 이 양반은 인간관계에 반발한 거지인간과 인간 사이의 그 추악한 관계를 바로잡고 재구성해보려고 발버둥치다 쓰러졌어이층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거든독종이야?” “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다시 바람맞은 얼굴이다.>

 

{{{아래 고르키의 그림들}}}

 

유자헤어진 남편과의 관계는 추악하지 아니하다.

사투리가 섞인 갱상도 문둥이들의 대화가 나는 귀엽고 아름답다.

유자의 절망은 추악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바는 없었을 것이다.

아닙니더 왼쪽 발입니더.”그러고는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왼쪽 발입니더.”다시 한참 있다 또, “왼쪽 발입니더.”

유자가 죽고 2년후(1969년도인간은 달에 착륙했는데 뉘 알겠는가암스트롱이 어떤 발을 달거죽에 먼저 딛었는지

 

<자동차로 자살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미국액션페인팅의 선구자자동차로 자살.)을 보여도 멕시코의 피비린내 나는 현대회화를 보여도불란서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도 그녀는 무반응이었다.>

 

멕시코의 피비린내나는 현대회화아마 프리다 갈로도 들어있었지 싶다.

 

{{{아래 잭슨 플록의 그림들}}}

 

<“이놈아 이건 어때?”하고 기진맥진해져서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쉬르계의 영국 화가시공간에 괴멸되는 인간의 모습을 쇼킹한 필법으로 그리고 있다.)의 도깨비 같은 인물화를 그녀의 코앞에 나는 들이댔다. “이건 자네가 그런 꼴로 멍청해서 허물허물 허물어져가는 걸 그린 거야어때 재미있지?” “이러지 말아요.” 어 하고 낮게 코를 불고 반벙어리 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화집을 밀쳐냈다. “이 그림은 재미있어요.”그녀는 무너져가는 인물의 코 부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가 얼른 뗐다. “마치 허물어져가는 듯해요.”>

 

베이컨의 그림유자가 자신의 얼굴을 본 것은 아닐듯 싶다.

 

{{{아래 베이컨의 그림들}}}

 

<아하하고 나는 비로소 그녀의 뒤에 만만치 않은 실력자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찔끔했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어?”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도 십 년 이상의 시대를 앞지르지 못해쎄잔 때라면 또 모르지만모두들 겨우 당대의 꽁무니만 쫓으면서허덕이며 죽어가고 있어” 그림에 대해 그녀가 내게 얘기라도 한 것은 대개 이런 정도가 고작이다그후에 내가 다시 그림이야기를 하자고 그녀를 쿡쿡 찌르자, “섹스 다음에는 명상의 시대가 와요사두면 한밑천 될 그림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죠라는 말을 했다. “이중섭 말인가?” “이중섭은 벌써 값이 오르고 있죠. N씨하고또 그 누구더라말을 잘 그리는 사람” “C도 좋지.” “C씨는 좋지만 어떤 것은 무나까따(무나까따 시꼬오棟方志攻, 1903~1975.  현대 일본의 대표적 판화가로서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향토 정취와 불교적 몽환의 세계를 주제로 즐겨 다룬다.)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아요.” “무나까따는 어떻게 알아?” “아버지가……

시골에는 값진 화가들이 무더기로 묻혀 숨어 있어대개 자유당 때 거센 정치압력에 짓눌려 머리가 조금씩 돌아버린 사람들이지태반이 그림을 중단하고는 있지만…… 젊은 전위화가들은 어때패기만만하지 않은가” “외국 꽁무니를 쫓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누가 조금만 밀어주면 토박이 진짜가 그들한테서 나온단 말야”>

 

10년은 커녕자본의 삶에서는 며칠만 앞서더라도 대박을 터뜨릴텐데.

세상을 예측한다는건 갈수록 어렵다.

 

{{{아래 무나까따의 그림들}}}

 

<모노크롬(단색주의)에 대해서그리고 인간의 손가락의 효용에 대해 새삼 왈가왈부할 것까지도 없다폰따나(Lucio Fontana, 1899~1968. 아르헨티나의 추상화가캔버스를 절단 혹은 구멍을 뚫는 테크닉으로 유명하다.)거나 이브 클라인(Yves Klein, 1928~1965. 프랑스 화가대담한 실험적 작품으로 유명한데 '몬도가네'란 영화에서 예의 ‘인체 프린트라는 제작과정을 보였다.)이거나 거슬러 올라가서 앙리 미쇼(Henri Michaux, 1899~1984.  벨기에의 시인이자 화가초현실풍의 그의 환상적 시세계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었다메스칼린 복용 실험 데생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거나 로스코(Mark Rothko, 1903~1994. 소련 태생의 미국 화가황막한 우상조의 장방형 추상 포름자살.)거나 쌤 프랜씨스(Sam Francis. 1923~1994. 미국 추상화가청결한 점적의 기법.)거나-비록 그들이 화포 위에 몇 가지 채색을 더 가미해보건 정규의 브러시나 그 대신의 송곳나이프 등으로 캔버스를 찢어발겨보건 간에-동양적인 정신의 어떤 정밀감(精密感)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쳐 온 그 모든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어떤 하나의 소실점(消失鮎)을 향해 자신의 전부를 집중시키고그것으로 자신의 소멸을 면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말하자면 그녀는 창호지로 대변되는 어떤 세계부자건 가난뱅이건 그것으로 문을 해단 모든 가가호호들을 대변해 그들이 창호지를 통해 내다보고 두려워하는 바깥세계 혹은 내세에다 무당처럼 부적을 써 붙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기법의 면에서는 그녀의 이런 방법은 멋과 풍류와 낭랑한 소일을 드높이 구가하는 동양화의 모필(毛筆)을 철저하게 묵살하고 있다그녀는 모필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인가를 지레짐작하고몸을 도사리고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생살에 꽂힌 나이프를 잡아당기듯 그녀는 물감 범벅이 된 빽빽한 손가락을 힘들게 창호지 위로 끌어당겼다.>

 

정신의 정밀감

창호지와 캔버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와 흑백 스탠다드 화면..

 

{{{아래 폰따나클라인앙리 미쇼로스코프란시스의 그림들}}}

 

<“거야라고 내가 말했다. “엄청난 차이가 있을 건 틀림없지 않습니까그렇지 않으면 모사꾼들이 굶어 죽게 되지 않아요원화보다 복제가 더 나은 화가들도 있는 것 같아요미로(Joan Miro. 에스빠냐의 화가·도예가. 1893~1983. 단순한 형태와 밝은 색채의 조화를 통해 동화적 시정을 일으키는 환상적이고 독자적인 조형으로 유명하다)나 클레(Paul Klee.  스위스 태생의 독일 화가. 1879~1940.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요소를 절충하여 시적인 환상과 서정성이 풍부한 추상화를 주로 그렸다.) 같은 화가들은 어때요그런지 어떤지”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소리를 지르고는 제풀에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래 미로클레의 그림들}}}

 

<드디어 그녀가 절망해서비명을 지르는 날이 왔다굴러다니던 외국잡지 나부랭이를 무심코 들추던 그녀는 얀 포스(Jan Voss)의 그림 한 장을 붙들고, “이 망할 자식이……하면서 머리를 움켜쌌다작품에 관한 한 유자에게는 거짓이 없다그녀는 잡지를 팽개쳤다가 다시 들고 보고다시 팽개쳤다가 또 주워들었다. “이 망할 양반이…… 나보다 먼저 그려버렸어……” 말은 그렇게 쉽게 내뱉었으나 그녀의 절망감은 치명적인 듯했다그녀는 초점 잃은 눈을 다시 잡지로 가져갔으나그것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얀 포스는 1936년 생의 독일의 젊은 화가로 팝아트(pop art: 현재 구미에서 성행하고 있는 예술운동. ‘대중문화’ ‘대중예술’ 이라는 뜻이고 팝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나왔다회화에서는 대칭으로 같이 발전하고 있는 오프(op)가 추상이라면 이것은 구상 계통이다코믹 스트립초현실신환상 등 경향도 기법도 다양하다.) 계열의 신진이다만화풍의 터치로 동화조(童話調)의 이야기를 화면에 깔면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단절된 의식을 점철풍자하는 것이 특징적인 화풍인데 그녀가 들고 본 것은 <순간의 환희>라는 1964년도 작품이다손가락만한 익살스런 인물들이 화면에 쫙 깔려 있다대부분이 그리다 만 듯한 그런 인물그리긴 그려도 어떻게 뒤죽박죽이 돼버린 인물들뿐이다기린인지 돼지인지도 모를 동물이 있고발이 셋 달린 여자가 있고제자리걸음만 치는 소년사타구니가 종()처럼 변한 뚱보자빠져 웃는 말코가 엿가락처럼 늘어난 그런 사람도 있다서툰 윤무를 추는 눈곱만한 아이들도 보이고통조림 따개에 휘말린 여자를 요리하는 나이프와 포크도 보인다그러고는 허리가 끊어진 그 모든 자잘한 의식들이 보는 사람의 코를 간질이고 내장의 기쁨을 쿡쿡 찌른다.  “어째서 이 작가가 네 그림과 같다는 거지?” “나는 이 사람 껍데기일 따름예요.” “그렇지 않아이 작자가 네 껍데기라면 또 몰라도동양과 서양을 구별도 하지 못해?” “나는하고 바닥을 내려다본 채 그녀가 말했다. “이런 것을 가두려고만 했어요.” “그런 것이 동양이야네 식으로 얘기하면 모든 그림들이 다 똑같아.” “그렇지 않아요라고 성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똑같지 않아요.”>

 

이 대목 이해가 어렵구나.

얀 포스 그림 어디서 유자를 느낄수 있을까.

그림을 볼줄 모르니..

 

{{{아래 얀 포스의 그림들}}}

 

화가 이제하가 그리고 싶은 유자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공간에 유자를 넣어야 그녀의 천진하고 순결함이 가장 슬픈 빛을 발할 것인가.

 

<네 명의 발가벗은 똑같은 유자가 길을 가고 있다길은 옛 산수화 속에 있는 그런 길거기서 이어진 길고풍한 병풍 속에서 잡아뽑아낸 그런 길인데 드디어 그 위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그것마저 햇빛에 바래져서부유스름한 황톳빛으로 탈색된 그런 길이다....맨 앞의 유자는 알몸뚱이의 등에 정체불명의 상자를 메고 있다두번째 유자는 흰 기()를 손에 쥐고 있다세번째 유자는 그물을 어깨에 메었다네번째 유자는 검은 박쥐우산을 받쳐 쓰고 있다네 명의 유자는 그것만 똑같이 발달한튀어나온 엉덩이를 흔들면서 종종걸음을 친다베이지색의 크고 둥근 달이 천천히 떠오른다.>

 

작가로서의 이제하는 어쩌면 유자를 통하여 이상(李箱)을 천착하고 싶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오감도(烏瞰圖)>

-이상-

 

시제1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 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제2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시제3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 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이나싸움하지 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시제4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진단 0:1   26.10.1931   以上 책임의사 이상

 

시제9

총구(銃口)

매일같이열풍이불더니드디어내허리에큼직한손이와닿는다.황홀한지문골짜기로내땀내가스며드자마자쏘아라.쏘으리로다.나는내소화기관에묵직한총신을느끼고내다물은입에매끈매끈한총구를느낀다.그러더니나는총쏘으드키눈을감으며한방총탄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어배앝었더냐.

 

시제10

나비

찢어진벽지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그것은유계(幽界)에낙역되는비밀한통화구다.어느날거울가운데의수염에죽어가는나비를본다.날개축처어진나비는입김에어리는가난한이슬을먹는다.통화구를손바닥으로꼭막으면서내가죽으면앉았다일어서드키나비도날라가리라.이런말이결코밖으로새어나가지는않게한다.

 

시제11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메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흡사한내해골이다.가지났던팔은배암과같이내팔로기어들기전에내팔이혹움직였던들홍수를막은백지는찢어졌으리라.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사수한다.

 

시제12

때묻은빨래조각이한뭉덩이공중으로날라떨어진다.그것은흰비둘기의떼다.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전쟁이끝나고평화가왔다는선전이다.한무더기비둘기의떼가깃에묻은때를씻는다.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망이로흰비둘기의떼를때려죽이는불결한전쟁이시작된다.공기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묻으면흰비둘기의떼는또한번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시제13

내팔이면도칼을든채로끊어져떨어졌다.자세히보면무엇에몹시위협당하는것처럼새파랗다.이렇게하여읽어버린내두개팔을나는촉()대세움으로내방안에장식하여놓았다.팔은죽어서도오히려나에게겁을내이는것만같다.나는이런얇다란예의를화초분보다도사랑스레여긴다.

 

시제14

고성앞풀밭이있고풀밭위에나는내모자를벗어놓았다.성위에서나는내기억에꽤무거운돌을매어달아서는내힘과거리껏팔매질쳤다.포물선을역행하는역사의슬픈울음소리.문득성밑내모자곁에한 사람의걸인이장승과같이서있는것을내려다보았다.걸인은성밑에서오히려내위에있다.혹은종합된역사의망령인가.공중을향하여놓인내모자의깊이는절박한하늘을부른다.별안간걸인은표표한 풍채를허리굽혀한개의돌을내모자속에치뜨려넣는다.나는벌써기절하였다.심장이두개골속으로 옮겨가는지도가보인다.싸늘한손이내이마에닿는다.내이마에는싸늘한속자국이낙인되어언제까지지워지지않는다.

 

시제15

1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 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2

죄를품고식은침상에서잤다.확실한내꿈에나는결석하였고의족을담은군용장화가내꿈의백지를더렵혀놓았다.

3

나는거울있는실내로몰래들어간다.나는거울에서해방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침울한얼굴로 동시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

4

내가결석한나의꿈.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네게가리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

5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6

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

 

{{{아래 이제하의 그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