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헤르만 헤세]]
<사랑의상처> <픽토르의변신> <한스> <유년시절의...>
<사랑의 상처>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19 05:11
시란 무엇인가, 시인은 누구인가.
어느 평론가는 '시인은 사람이 눈물을 만들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양귀자는 어느 소설에선가 은유하기를 '마른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처럼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가 시인이라고 썼습니다.
흐음, 그러므로 시의 원류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 쪽인가 봅니다.
물산의 효용도 돈의 효용도 힘의 효용도 없는 슬픈 노래들.
그 슬픈 노래가 루저(Loser)로서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 마음을 적시면서 위로합니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이 흐느끼며 노래하듯, 기쁨은 이내 스러지지만 슬픔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픽토르의 변신>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20 05:04
변신.
로봇 장난감의 변신... 하리수의 성전환(트랜스젠더)... 하이드씨로 바뀌는 지킬박사의 변신...인간의 실존적 소외(疏外) 그레고르의 ‘변신’등..
변신(變身)도 가지가지.
[생성의 마법의 흐름은 끊임없이 그의 핏속을 흘렀으며, 그는 매시간 소생하는 창조에 영원히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사슴이 되었다. 그는 물고기가 되었다. 그는 인간과 뱀, 구름과 새가 되었다. 이런 모든 형상 속에서도 그는 완전하였고 일체였으며 달과 해를, 남자와 여자를 자신 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쌍동이 시냇물로 여러 마을들을 흘러내려갔으며, 쌍동이 별로서 밤하늘에 떠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픽토르의 변신'
이 짧은 소품에서 비롯된 가지를 뻗는 되도 못한 생각들.
또 잡설을 지껄인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주장자를 내리치며 노사(老師)가 일갈(一喝)한다.
사승(師僧)과 학승사이에 오리무중의 선문답이 오간다.
'픽토르의 변신'.
무문방의 화두(話頭)처럼 몽롱한채로 아름답다.
어느 입심 좋은 바라문이 들려주는 불성(佛性)에 관한 우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허지만 나처럼 저자거리 속물덩어리에게도 한조각 진지한 느낌이야 없으랴.
나무로, 암컷으로, 수컷으로, 새와 꽃으로 나비로 구름으로 물고기로 시냇물로...
변신을 인도하는 주체는 인식(認識)일까, 존재(存在)일까.
이윽고 존재와 인식에 갇힌 그 자아까지 초극한 해탈의 경지.
범아일여(梵我一如)에 이른 그 대자유(大自由)함.
‘싯다르타’(헤르만 헤세)를 다시 들여다 본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 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은 자기를 비우는 일. 자기 자신을 멸각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으흠, 아프락사스.
<돌멩이 하나,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제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어린애들은 모두 자기 내명에 이미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모두 자기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돌 모두 자기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삶과 세계를 오직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유일한 것, 변하지 않는 것, 고정된 것은 불완전함이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모든 사물은 그 내적 모순에 의하여 반드시 변화한다.
이 명제는 헤겔이나 마르크스 변증법 체계의 대전제이다.
유일과 불변과 영원은 결코 완전함도 평안함도 아니다..
이에 대하여 하등 논리나 변증법적 사유함 따위 있지 아니하여, 헤세의 정서는 포괄적 직관적이다.
보르헤스도 영원성에 대하여 말하였다. '사람을 당혹케하고 타락시키는 개념은 바로 '무한(영원)'이라고.
<영원무한하고 결코 변하지 않으며 오로지 단독자로서 존재하는> 어떤 절대적 존재 개념.
그는 누구일까.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이신가.
단독자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내가 존경하는 '우찌무라 간조'는 설명한다.
삼위일체의 교의(敎義)로서.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러나 단독(unit)은 아니다. 그는 세 페르소나 (persona) 로서 존재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란 이 삼위가 일치하는 분이다.>
우찌무라 간죠가 들려주는 삼위일체에 대한 성서적 근거, 철리적(哲理的) 논거는 생략하고...
<만일 하나님이 단독자였다면 그는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어떤 분이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득한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라고 말하지만 아직 사랑할 피조물이 없을때 단독자 하나님은 무엇을 사랑했을까요? 당신 자신을 사랑하셨을까요?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열등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상호적입니다. 너라고 부를자가 있고 네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단독인 하나님을 창조 이전에 사유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런 하나님은 가능한 잠제세력을 내포한 '커다란 침묵'이라고 볼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그에게 저항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의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이 아니다. 그때 아직 사랑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볼 것 없을때의 시각, 접촉할 물체가 없을때의 힘, 사유 자체 바ㄲ에 사유할 사물이 없을때의 사유에 대하여 사유할수 없다”
이 때의 그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무극(無極)일 뿐입니다. 단독인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는 사유하려고 해도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독의 하나님, 홀로 영원히 고독한 하나님에게서는 기독교의 사랑이 비롯될수 없습니다. 그가 인류의 창조자일런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를 창조한 후에 그는 손을 떼고 그가 정한 자연법칙에 맡기고 그 자신 높은 보위에 머물며 그 발 아래 자신이 창조한 우주와 인류를 내려다 보며, 철학적인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하더라도 그의 영광을 버리고 더러운 세상으로 내려와 이를 구제하려는 열의를 가질수 없습니다. 단독의 하나님은 철학적인 은둔자와 같습니다. 그는 장엄한 군주일뿐 신성하여 가까이 갈수가 없는 분입니다.>
책 펼쳐 놓고 자판 두드리려니 손목 아파.. 맥락없는 잡설은 그만.
이담에 '몽매의 팡세'에서 지껄이기로...
<한스>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21 04:47
비유(比喩)인지 직유(直喩)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스'가 '예수'의 알레고리임이 분명해 보이지요?
"지치면 안돼. 지치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돼."
세속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강에 투신하여 죽은 또 한사람의 '한스'는 누구일까요.
'수레바퀴 밑에서'의 그 '한스 기벤라트'
그는 헤세 자신을 투사한 인물이라고 한다지요?
십자가의 예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옐리 옐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
가난하고 애통하는 심령들을 보듬어 안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
갈릴리 하늘이 푸르게 비추인 눈물 그렁한 눈망울을 가진 사람.
마른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은사시나무처럼.
불쌍한 것들과 더불어 울고 싶어하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메시아)이라는 영광의 면류관을 벗어 던지고 그냥 한없이 온유한 사람.
아래는 ‘헤르만 헤세 수채화’를 검색하다가, Juno님 블로그로부터 그림들과 글을 업어온 것입니다.
++++
<헤르만 헤세의 수채화>
- http://blog.daum.net/juno81776/873 -
40세가 되던 해부터 헤세는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헤세가 주로 그린 것은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스위스의 평온한 시골 풍경과 몬타뇰라 근교의 자연 풍경이었다. 헤세의 그림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다.
그가 그런 대상을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인간에 지치고 인간세계에 염증을 느낀 그가 인간을 화면에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묵묵히 다정하게 서있는 나무, 떠가는 구름, 파랗게 빛나는 호수를 그렸다.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의 황폐로부터, 나는 지금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로부터 탈출로를 발견했다. 물감과 페인트를 붓으로 칠하는 작업, 이 작업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이 예술 작업을 통해 나는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나와 나의 작은 수채화 물감들은 시와 먼 기억들, 내가 그렸던 꿈들을 그린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림에 있어서 단순한 아마추어임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글을 쓸때 펜으로, 그림을 그릴때 붓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 순간 나는 즐거움으로 견딜 수 없게 된다.>
<나는 단순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으며 내가 그 풍경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보는 풍경들은 아름답다.
하늘과 동물들, 사람과 그들의 인생들, 내가 본 풍경들은 아름답고 나는 그 풍경의 위엄에 압도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쓰는 문학도 한단계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이도 깊어짐을 내가 예술을 보는 안목도 깊어짐을 알 수 있다. 나의 글과 나의 그림이 바라보는 저 목표 지점에 강렬한 잠재성이 이를 그 지점에 절대적이며 숭고한 가치가 있다. 그림 그리기 없이, 나는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어떤 작업을 할때 긴장과 집중감을 느낀다. 글을 쓸때도 느끼는 그 긴장감과 집중감은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도 발견된다. 적당히 그리고 주의깊게 색채와 그 색채와 연결된 다른 색채를 발견하고 그 다음 그 색채를 칠하는 작업은 즐거운 일이다.>
<나무들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웃음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춤추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들이 때때로 운명처럼 전설처럼 내 앞에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 세계 바깥의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의 세계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면 그 사실들은 한결 더 다가온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면 미소를 짓는다. 나는 매일 똑바로 서서 몇 시간동안이나 테라스에 앉아서 정원에 앉아서 작은 탑 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나도 놀랄만큼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연필과 펜을 가지고 저녁 산의 먼 투명한 색채를 그리며 그것에 깃든 그림자를 스케치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피곤하다. 매우 피곤하다. 그리고 내가 낮에 그렸던 그림들을 저녁에 살펴 볼때면 내가 보았던 그 많던 아름다운 풍경을 내가 얼마나 그림속에 그려냈는지 살펴 보고 나면 나는 조금 슬픈 기분에 젖는다. 나는 그림을 통해 자연의 무결함, 자연의 순수함, 자연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운 삶속에서도 우리들의 믿음과 자유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나에게 마술도구이며 파우스트의 외투다. 그 도움으로 나는 벌써 수천번의 마술을 부렸고 어처구니 없는 현실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었다.>
++++
<유년시절의 성 프란체스코>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22 05:01
세속적 허영에 들떠 있었던 부잣집 도령 프란체스코.
그런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성 프란치스코', 오래 전 벅찬 가슴으로,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읽었다.
아마 그 무렵 내게는 한줌 경건의 순정함 있었으리라.
내 가난한 영혼의 스승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람바레네의 쉬바이처, 크레테의 카잔차키스, 무교회주의의 우찌무라 간조, 블레즈 파스칼, 존 웨슬리, 일제시대의 김교신, 몰로카이의 다미안 신부....
그 분들, 이제 늙어 척박한 가슴에 어떤 형해(形骸)로 남아있으런가.
가난과 복종과 순결로 일관하였던 축복받은 절대 고독인(孤獨人) 프란체스코.
하나님은 그를 태우는 불길이었다.
"하나님은 불길이라오. 그는 타고 있어요. 우리도 그와 함께 타오르고 있어요."
식탐이라는 내적 악마가 턱을 핥는다고 느껴지면 그는 자신의 음식에 재를 뿌렸다.
'나의 형제 나귀(자신의 육체)여. 나의 형제인 나귀여. 나를 용서하시오. 너무나 그대를 학대했소.'
포르치운쿨라의 작은 오두막.
"가난, 평화, 사랑- 그 밖에는 없어요. 형제들... 가난, 평화, 사랑. 내 옷을 벗겨주오. 형제들. 벗겨서 나를 땅에 뉘어주오. 나는 땅을, 땅은 나를 느낄수 있도록 뉘어 주시오.... 여러분은 이 인생이 정말 그렇게 달콤하다고 생각하나요? 영생의 믿음은 어딜 갔나요? 그렇게 얄팍한 것인가요? 바로 문 뒤에 서 있는 죽음의 형제여, 인류를 용서하시오. 사람들은 당신의 그 고상한 말 뜻을 이해 못하는군요. 그러니까 그들은 당신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릿광대, 하나님의 거렁뱅이.
프란치스코.
영혼이여.
너, 벌거벗어라. 그리고 춤을 추어라.
프란치스코처럼.
-독서 리뷰-
[[헤르만 헤세]]
<사랑의 폭풍> <난장이> <꿈에서꿈으로> <아이리스> <기우사>
<사랑의 폭풍>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23 04:26
열여덟 그 즈음, 소년과 청년의 경계는 분명치 않다.
슈투름 운트 드랑.
청춘은 질풍노도의 계절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소년의 가슴에 수렴되는 숲과 꽃술과 마을의 풍광, 헤세의 묘파는 아름답고나.
영글지 않은 청춘, 기복(起伏)이 심한 감정.
찬란함과 참혹함과 애정과 미움이 교차적으로 엄습하는 바깥세상과 환희와 절망과 격정과 불안이 뒤섞인 카오스의 마음밭.
현실에 대한 불만과 탈출욕구.
더듬어 보건대 사춘기무렵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내면은 사뭇 다를 듯 싶다.
어렸을적 나는 계집애같다는 비웃음을 자주 들었는데, 참혹한 모욕감으로 얼굴 빨개져서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그 꼴이 또 얼마나 계집애 같았을까. (지금이라고 배짱 튼튼한 남자다울까마는.)
그러나 요즘의 트렌드, 여자같은 남자라고 썩 부끄러워 하는것 같지 않다.
초식성이니, 마자콘, 토짱보야..라고 불리더라도 예사로울뿐더러 여성스런 남자를 좋아하는 여성도 제법 되는듯 싶다.
예전에는 마초다워야 한다는건 머스매들에겐 하나의 강박이었고, 그게 참 힘들기도 하였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저 소년 역시.
<산책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남자란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도둑이나 기사, 인도사람과 같은 기분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 강에 간다고 할지라도 어부처럼 뗏목을 타거나 물방앗간을 만드는 사람의 기분으로 가야 한다. 들판에 간다면 나비나 도마뱀을 잡으러 가야 한다. 산책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점잖은 어른들의 권태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가엾어라. 사랑마저 마초다워야 하다니.
<나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완성된 행복과 사랑을 얻고 싶지 않았다.>
베르타의 달콤한 입술.
소년에게는 광포하게 울부짖는 폭풍이었을게다.
퐁풍 속에다 그냥 맡겨 버릴것을.
<나의 감각은 온통 취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사랑의 폭풍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나는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이 대사는 고향을 떠난 소년이 몇살쯤 읊은 것일까.
으흠, 한 시절의 질풍노도.
청춘이여.
장미와 폭풍의 나날이여.
어른이 되기 위하여 소년은 떠났다.
이제 많은 세월 지나 어른이 되었을까?
저 소년은 모르겠으되,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였다.
늙었을 뿐이다.
++++
['헤르만 헤세의 '게르트루트' 中에서]
이런 밤이면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내 가슴은 젊어지고
추억의 아련한 심연에서
내 젊은 시절 뜨거운 행복 솟아올라
내 얼굴 바투 들여다보고
깜짝놀라 도로 달아난다
가만 있거라. 가만 있거라. 내 가슴이여!
핏속에서 격정이
뜨겁고 세차게 들끓어
옛길을 따라 걷더라도
네 길은 이제
청춘으로 통하지 않는다.
++++
<난장이>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09.24 04:37
이런 류의 떠도는 얘기가 있었을까요.
그렇더라도 헤세의 이야기를 꾸미는 솜씨는 빼어납니다.
슬픈 동화, 난장이 필리포.
‘힘’을 가진 자가 어리석거나 심통스럽거나 탐욕스럽거나 포악한 자라면, 그것 자체로써 이미 비극이올시다.
언제나 부당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우매한 자의 심술에 짓밟히는 현자, 필리포의 비애.
슬픈 복수입니다.
으흠, 저 복수가 마냥 통쾌하지는 않군요.
당시 번성을 누렸던 국제도시 베네치아, 귀족들의 럭셔리한 일상.
한편으로, 그 삶의 자리를 엿봅니다.
연이은 헤르만 헤세의 짧은 단편들 다소 식상하지나 않으실런지...
헤세는 한 파수 쉬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윤흥길'의 것을 올립지요.
<꿈에서 꿈으로>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4.10.27 05:12
불면은 나와 참으로 친숙하다.
젊어서는 수면제 '아티반'이 없으면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서른 좀 넘어 단호하게 끊었지만 입면시간(入眠時間)은 남의 몇배나 되었고, 수면의 품질도 형편이 없었다.
꿈 꿈 꿈- 수면 무대에서 난만(爛漫)한 바라이어티 쑈우가 벌어지는 것이다.
아니, 무대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초현실주의의 영화다.
시간과 장소와 형태의 비약과 전환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헤르만 헤세도 불면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통증이 풀 속의 꽃들처럼 무성하게 자라나는 밤을 지새우기도 몹시 고역스럽다."
헤세가 말하는 통증이 바로 꿈이 아니었을까.
++++
-헤세의 시-
“뒤숭숭하고 어수선하게 토막 난 꿈에서 깨어나
한밤중에 대나무가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쉬게 두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게 두지 않고
그것이 나를 마구 뒤흔든다.
영원한 곳을 향해 여행을 가라고,
뛰쳐나가라고. 날아가라고.”
++++
이 소설은 헤세가 어느 날의 꿈이었을런지.
사유깊은 이의 꿈이었으므로 어떤 정신분석적 통찰의 직관이 배어있지 않을까...
나도 한때는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도 열독하였었고, 꿈을 적어 놓은 노트가 꽤 있는데.
얼마 전 다시 펴보니 무슨 의미있어 분석운운할 자료는 아니된다고 느꼈다.
내 꿈은 대부분 개꿈.
꿈의 노트, 없애버릴 참이다.
***eunbee***
2014.11.01 23:55
동우님,
책부족으로 나를 유혹하시겠다는 말씀 감사해요. 유혹씩이나..ㅎㅎㅎ
기존회원들과는 매우 오래되었고, 그동안의 탄탄한 관계로 이어져가는 귀한 모임에
이방인 같은 나를 불러들이고 싶으시다니 나로서는 기쁘고 듣기 좋은 말씀이에요.
그러나 어제부터 곰곰 생각해 본 결론은 동우님과 기존회원님들의 리뷰를 읽는 것으로
내 공부를 삼을까해요. 그간의 기록들을(책부족 카테고리의 글) 어제 오늘 대강 다시 읽었다우.
전에도 읽은 적 있지만, 읽어도 잊는 까마귀 고기 주식자이니...ㅎ
동우님의 모임에 함께 하는 것보다
늘 멀리서 동우님을 바라보며 지내는 것이 내게는 더 어울린답니다.
동우님의 권유에 답하지 못해 유감이지만,
아, 지금 EBS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방영하고 있네요.
자녀에게 넘겨지는 세 권의 일기...
11월,
계절도 깊어가네요.
날이 더할수록 쓸쓸함은 짙어지겠지요.
늘 건강하세요. 동우님!
***동우***
2014.11.02 05:27
은비님의 독서역량, 뉘보다 뛰어남을 모르는 내가 아는터이고, 은비님과 친숙한 민욱아빠님도 계시고 하여 은비님을 꼭 끌어드리고 싶었다우.
짧은 이야기님, 노루님등 은비님의 수준있는 지기들 차츰 끌어들이면 책부족 위상 몇배 드높아질거라는 상상도 해가면서...ㅎ
그래요, 은비님.
꼭 책부족이라고 해야만 읽게 되는 책이우? 어디.
혹여 책부족 고른 책 함께 읽고 싶으신 것 있으시면 읽고서 여태처럼 은비님 독후느낌 올리시고, 그 느낌 나누면 그게 책부족이지, 무어..
이번 달 (11월)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그런대로 독특하게 읽히는것 같습니다.
은비님께 슬몃 권해보지만, 썩 재미있거나 확 파묻히는 책은 아닙디다.
'의식의 흐름'이라나 무어라나, 그런게 대체로 그러하지 않아요? ㅎ
다음달 책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생각있으시면 함께 읽어보아요.
***eunbee***
2014.11.02 08:59
ㅎㅎㅎㅎ~~~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읽었어요.
발표 나자 바로 사다가.
***동우***
2014.11.03 03:41
그러실줄 알았지요, 더구나 프랑스 소설가.
노벨상 뿐이리오.
문학이고 영화고 공연이고.. 얼리 어답터. 은비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스포일러 하기 없기.
12월 내 읽은 연후에.
은비님의 숙제.
오늘 '오일의 마중' 보려 하는데.
어찌 될런지.
<아이리스>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8.10.15 23:28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의 '아이리스(Iris)'
한편의 詩라거나, 환상적 동화라고 해야할런지.
이유(離乳) 전의 기억인지, 아득한 곳에서 비롯된 집단무의식인지.
시시때때로 아련한 시원(始原)을 향한 복귀욕망이 내게도 없지 않습니다.
아이리스...
그런데 <아이리스>라는 어휘의 하나의 심볼, 그 문으로 들어가는 그 주문(呪文)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내 잡설은 진부합니다.
소설 말미에 검색하여 업어 온 이 작품에 대한 훌륭한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누가 쓰신 건지...)
헤세의 시 한편
++++
<고독으로 가는 길>
-헤르만 헤세-
세계가 너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지난날 네가 사랑하던
모든 기쁨이 다 타 버리고
그 재 속에서 암흑이 위협한다.
더 강력한 손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너는
네 속으로 가라앉아서
추위에 얼며 죽은 세계 위에 선다.
너의 뒤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여운이
아이들의 소리와 은은한 사랑의 노래가
흐느끼며 울려 온다.
고독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어렵다.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꿈의 샘도 말라 있다.
그러나 믿으라.
네 길의 끝자리에 고향이 있으리라.
죽음과 부활이
그리고 무덤과 영원한 어머니가.
++++
<기우사>
-헤르만 헤세 作-
***동우***
2015.11.02 04:25
1945년에서야 비로소 히틀러 제3제국의 광기는 스러졌습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는 '유리알 유희'로 그 다음 해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카스탈리엔'이라는 미래왕국에서 유리알 명인이 되는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
카스텔리엔은 정신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유리알 명인'은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거나 맘모니즘과 헤도니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일테지요.
유리알 명인은 그러니까 우리 시대 그리운 사람의 이름 격입니다그려.
'기우사(祈雨師)'는 '유리알 유희'에 부록처럼 딸린 '요제프 크네히트 세편의 전기' 중 한편입니다.
'유리알 유희'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만, 그러나 독립된 형식의 소설입니다.
자연과의 교감, 우주와의 합일, 모둠살이의 지혜, 진리와 지성, 인간과 관계에 대한 성찰, 자기희생, 자기투척...
인간을 고양(高揚)하여 집단(인류)을 구원하는 것은 소수 개별적 정신의 숭고함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시나브로 가을도 저뭅니다.
좋은 한주의 시작을.
***동우***
2015.11.04 05:37
또 규제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모리의 마지막 수업'이 신고대상이 되어.
12월2일까지 daum에 내 아이디로는 접근조차 되지 않는군요.(헤르만 헤세의 '기우사' 예약분은 올라가는데.)
++++
<신고대상>
[//blog.daum.net/hun0207/13292541] [ 모리의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규제안내>
규제 서비스 : 블로그, 메일
규제일자 : 2015. 11. 02
해제일자 : 2015. 12. 02
<최근 아이디 규제 내역>
2015.11.02 .. 일시중지 ...... 권리침해신고 (저작권)
2015.10.12 .. 서비스제한 ... 권리침해신고 (저작권)
2015.08.21 .. 경고 ............ 권리침해신고 (저작권)
2015.08.10 .. 경고 ............ 권리침해신고 (저작권)
2015.07.15 .. 안내 ............ 권리침해신고 (저작권)
++++
규제가 누적되면 이제 어떤 징벌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모골이 송연합니다. (앞으로는 리딩북 포스팅후 일주일 지나면 제깍 중략(中略)해버려야 겠어요.)
일단 네이버에다 딴살림 차렸습니다. (12월 2일이 지나면 본문과 댓글등 모두 이곳으로 카피해 오기로하고)
10년 이상 동고동락한 조강지처 daum을 버릴수도 없고...(daum이 나를 내치는건가..ㅎ)
http://blog.naver.com/sanghun0207
***신이***
2015.11.04 06:18
이를 어째요, 동우님.
힘내십시오, 응원합니다.
***진맘***
2015.11.04 06:27
정말 안타깝습니다.
좋은 작품을 소개하여 작품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하여주시는 동우님.
그런 동우님의 선한 의도는 원작자에게도 득이 됐으면 됐지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네이버에다 리딩북을 계속 올려주시는 동우님의 열정.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힘 내십시오, 동우님.
***동우***
2015.11.06 00:24
언제나 힘을 주시는 진맘님.
거듭 고맙습니다.
한달 동안 브로그는 물론 메일이고 무어고 내 아니디로는 다음의 모든 사이트에는 접근할수 없습니다.
진맘님.
경제가 관계되는 사안인데,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남의 글을 무단으로 가져다 올리는 것은 법적으로 결코 옳지 않은 것일겝니다.
손해배상 야기까지도 생각지 않을수 없어, 앞으로는 전문을 싣더라도 일주일 후에는 삭제하거나 대폭 中略하여 원작 저작권 침해의 여지를 없애려 합니다.
다음, 10년 이상 정들었던 곳인데 여기서 내쳐지면 블로그의 자료들은 어찌하나 하는 걱정도...
힘 내겠습니다. 진맘님.
진맘님 뿐 아니라 블친님들께 거듭 말씀 드립니다.
메일은 물론 친구공개 블로그나 카페('길상 우리옷' 한곳), 비밀 댓글은 12월 2일까지는 내게 까막눈입니다.
유의하여 주시기를.
***野草***
2015.11.04 13:28
이런 안타까운 일이.
그래도 동우님.
파이팅 하세요!
***동우***
2015.11.06 00:33
고맙습니다. 야초님.
저작권 문제.
이상한 쪽으로 오용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잘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모리의 마지막 수업'이 걸릴줄은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소스가 미국의 출판사였을런지)
앞으로 나의 리딩북의 본문은 1주일간 유지로 마음 먹었답니다.
야초님 블로그도 친구 공개로 변환하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12월 2일까지 나는 야초님댁 들여다볼수도 없을테지만 말입니다.ㅎ
***eunbee***
2015.11.06 22:26
기우사, 헷세의 체취가 언듯언듯, 이 일천한 내게도 맡아지는 이 소설
상 중은 술술 잼나게 읽었구요. 하편 페이지는 슬프더라구요.
동우님의 '규제 건'때문에 마음이 좀 바스스~ 흔들리며 읽느라 두어 번 들어와서
읽기 마쳤습니다.
좋은 소설 고마웠어요.
잠자기 전
친정집 대문에 살며시 들어오는 기분으로 따스하게 들어왔다 갑니다.
난 이곳이 좋아요.ㅎ
***동우***
2015.11.07 04:28
은비님이나 나나 daum에 터잡은지 10년이 훌쩍 넘었지요.
네이버에 딴 살림 차렸지만, 기능에도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남의 집 문간방살이하듯 어딘가 불편합니다.
다음이 아무래도 편안한 느낌이지요.
은비님에게는 친정집..
내게는 조강지처처럼.
daum, 요즘 심통으로 하늘같은 남편을 내치고 있지만. ㅎ
***射光***
2015.11.09 20:25
동우님....
또 다시 규제에 걸리셨군요.
제가 블로그를 공개설정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신고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공개설정으로 불로그를 운영했을 때....
오며 가며 들렀던 사람이 제가 올린 음악을 신고했다더군요....ㅎㅎ
그래도 동우님....
건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동우***
2015.11.12 23:31
고맙습니다, 사광님의 격려.
그렇지만 우리, 신고하는 사람들 투덜거리지 말기로 합시다.
세상을 가지런히 유지하는데 필연적인 공중의 어떤 약속(법률)일지니. ㅎ
한번 더 규제에 걸리면 다음에서는 영구추방이라니까, 나는 바짝 긴장합니다.
앞으로는 리딩북 본문은 삭제나 생략이나 비공개로 하던지... (친구 공개로 설정하면 괜찮을런지..)
다음은 10여년 이상 쌓인 첫사랑이고 조강지처인데, 영구제명이라면 그간 축적된 내 자료들은?
자료들 백업에 대하여는 어떤 시스템적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는 생각... 수많은 블로거들이 포털에 위임한 소중한 디지털 자료들...
사광님.
가을... 일본 가을의 현란함과 고즈넉함.
건필하겠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홍애자몽***
2015.11.10 15:26
세상에나!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다음에서 글이 며칠 안 올라오길래 편찮으신가 걱정을 했습니다.
모쪼록 힘 내십시오.
오랜 내 벗 동우님.
***동우***
2015.11.12 23:41
홍애자몽님. (홍애도 자몽도 내 정다운 사람들인데 언제 합일? ㅎㅎ)
하하, 아픈거 아닙니다. 그리 되었어요.
12월2일 해금이랍니다.
조교수님의 남양군도.
남태평양 그 파라다이스의 내막을 한눈에 개관하는 책, 정말 많은걸 알게 하고 느끼게 하는...
이 책이 남양군도에 관한 조교수님 연구의 시작이라니 앞으로의 결과물은 독보적인 것이 되리다..
네이버에 블로그 하나 개설하였지만 똑 남의 집 곁방살이 하는 기분인지라, 남양군도 벌써 완독하였는데 그 독후감은 이 곳에다 쓰려고 미루고 있답니다.ㅎ
참, 동경서 귀국하신 멜론님과 서울의 송현님 부산 내려오셔서 저녁시간 잠시 쐬주잔 나누었습니다.
옛친구, 10여년 만의 해후였지요.
***와비***
2015.11.27 12:34
한글로 된 소설을 읽기가 쉽지 않던 중 이렇게 귀한 블로그를 이제야 찾았네..했었는데..안타깝습니다. 네이버 어디에 계신지 알려 주시면..ㅠㅠ
***동우***
2015.12.04 04:39
와비님.
예제서 업어다 올리는 소설들, 귀하다 하시니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네이버는 접었습니다.
이곳에서 계속 애독하여 주십시오.
정말 반갑습니다, 와비님.
***꼬비에뚜***
2015.12.08 17:53
고약한 일이 또 있으셨군요. 저작권 위배 사례를 필터링하는 식의 무슨 기능은 없는 걸로 아는데 말씀하신대로 누군가가 신고를 자꾸 하는 모양입니다. 특정 출판사일 수도 있구요. 저처럼 카페를 만들어서 옮기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daum에 말입니다. 회원제가 이런 경우에는 유리하니까요.
(질문 하나) 헤르만 헤세 <기우사>는 원제목이 무엇인지요?
***동우***
2015.12.09 00:18
꼬비에뚜님.
매일 한번씩은 눈밝혀 꼬비에뚜님 댁을 살펴보고 있답니다.
맛있는 먹거리 새롭게 올라온것 있나하고. ㅎ
全文은 친구공개로 하였으니 일단 괜찮지 싶은데...
기우사는 '유리알 유희' 의 한편이지만, 독립된 작품..
'기우사 제사장'... 원제가 무엇일런지..
필요하시면 전문을 보내드릴께요.
***꼬비에뚜***
2015.12.10 11:21
<유리알 유희> 작품의 일부군요. 전문을 좀 부탁드립니다.
koviet2@naver.com
<유리알 유희> 전문도 혹시 가지고 계신가요?
***동우***
2015.12.12 00:16
마침 유리알 유희 전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우사 제사장도 포함된)
올제 클래식으로 부터 얻은 것이지요.
아래한글 파일,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동우***
2015.12.13 04:04
꼬비에뚜님.
유리알 유희, koviet2@naver.com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꼬비에뚜***
2015.12.14 14:14
잘 받았습니다. 상당히 난해하군요. 읽고 있는 작품들이 있어서 정독은 좀 뒤로 물려야겟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홉 (귀여운 여인,사모님,주교,공포) (1,4,3,3) (0) | 2019.12.18 |
---|---|
이윤기 1.2 (1,4,3,3,1) (0) | 2019.12.15 |
헤르만 헤세 <크눌프. 시인 등...> (1,4,3,3,1) (0) | 2019.12.13 |
채만식 1.2 (1,4,3,3,1) (0) | 2019.12.13 |
로맹 가리 3.4 (1,4,3,3,1) (0) | 2019.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