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숲 속의 죽음> <마을 카페> <욜의 죽음>
<숲 속의 죽음>
-셔우드 앤더슨 作-
***동우***
2014.10.01 04:36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 1876~1941)은 마크 트웨인 이후 미국 문학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라지요.
윌리엄 포크너, 헤밍웨이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가라는데, 여적 그를 읽지 못하였으니 내 독서력(讀書歷)이라는게 얼마나 실없는 것인지를 새삼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숲 속의 죽음 (Death in the Woods)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고달프기 그지없는 슬픈 일생을 살다가 어느 날 숲 속에서 얼어죽은 그라임즈 노파.
노파의 한평생은 사람과 짐승을 먹이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굶어 죽는다고? 그러나 짐승들을 먹여야 하고, 남자들도 먹여야 한다. 아무 쓸모는 없어도 어쩌면 팔릴지도 모르는 말도, 석달 동안이나 젖 한 방울 내지 않는 빈약하고 야윈 저 암소들도 먹여야 하지. 말들, 소들, 돼지들, 개들, 사람들도>
사람이건 짐승이건 무릇 목숨은 먹어야 삽니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 밥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밥을 위해서,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하다. -김훈->
노파는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거나 주접을 떨지 않았습니다.
열사의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오로지 묵묵하게 엄숙하였습니다.
노파의 죽음.
그 죽음의 묘사가 참으로 기묘하게 신비롭습니다. (이문열은 이 소설을 '죽음의 미학' 편으로 분류하였습디다.)
개들은 야성과 길들여진 습성 사이를 넘나듭니다.
그러나 굶주린 개들은 결코 노파의 몸뚱이에 이빨을 박지는 않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늑대가 아니다. 우리들은 개다. 인간의 종이다. 인간이여, 살아 계시라. 인간이 죽으면, 우리들은 다시 늑대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달빛을 받고서 노파 주위의 눈밭을 빙빙 원을 그리고 도는 개들.
무슨 숭고한 의식(儀式)을 치루는듯 합니다.
<"난 아무런 상처도 못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처녀입니다. 얼굴을 눈 속에 파묻고요.">
노파는 대리석같이 그렇게 희고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일에는 그 자체에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법이다... 나는 나이가 듦에 따라, 노파의 죽음에 대한 얘기 그 전부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 같이 생각되었다. -소설속 話者->
참으로 빼어난 소설입니다.
나는 가끔 봉래산이나 태종대의 숲속을 걷습니다만 늙어죽은 새(짐승이나)들의 시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새들은 숲 속 어디에서 죽는걸까요?
사람들 모르는 곳에 따로 죽는 장소가 있는건 아닐텐데, 숲길 걸을때마다 공연히 그게 나는 몹시 궁금하답니다.
***eunbee***
2014.10.01 22:13
오늘 새벽 3시 20분경에 일어나 어찌나 배가 고픈지
며느리가 냉장고에 넣어둔 며느리 특제 우거지국에 밥을 말아 아구아구 먹었어요.
먹고는 한숨 다시 자고 일어나 본문은 읽지 않고 동우님 덧붙임 글만 읽었어요.
그러면서 웃었지요.
먹어야 한다고, 먹여야 한다고, 짐승도 남자도 먹여야 한다는 말에 그냥 웃었어요.
읽어도 깊은 뜻을 알아채지 못하는 내가 읽지 않았으니.. 그냥 웃었어요.
내가 늘 식욕은 삶의 의욕이라고 말한터라(동우님에게 말하자니 내가 덧붙이는 한가지는 빼놓고 ㅎㅎ),
남자를 여자 보다 항상 더 많이 가여워하던 터라,
뭔가 공연스레 짐짓 넘겨잡고 웃었던....ㅎ
늘 배가 고프고, 늘 허기진 뱃구레와 마음숲... 나는 늘 그래요.허허~
이제 스마트폰 충전기도 새로 사왔겠다(파리에서 망가졌걸랑요) 침대에 누워 저 소설을 읽을 거예요.
뭔가 많이 기대되는 소설이네요.
파리, 잘 다녀왔어요. 동우님.
파리의 '밤 10시'라는 그 숫자가 쓰여진 바로 그 밤 10시 부근이네요.ㅎㅎㅎ
멋진 가을 만나세요. 동우님.
이렇게 귀국인사 드립니다.
***동우***
2014.10.02 04:59
은비님 귀환을 환영합니다.
며느님 솜씨의 특제 우거지 국에 말아먹는 밥.
프랑스 체류 동안 허기졌을 은비님의 입맛, 아구아구도 좋고 꾸역꾸역도 점잖을겝니다. ㅎ
남자가 여자보다 가엾다굽쇼?
왜 그럴까..
지난달 책부족 과제가 D.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이었어요.
도덕적이고 지적인 어머니, 그 어머니가 경멸하는 즉물적이고 무식한 광부 아버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여 연애도 실패하고 어머니가 죽자 절망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소설을 읽고서 그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했어요.
불쌍한 그 남자의 모습, 독후감(숙제)에서 차츰 지껄이겠습니다. ㅎ
프랑스 기분 털어버리시고.
분당의 가을은 어때요?
좋지요?
거듭 환영합니다. 은비님.
<마을 카페>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作-
***동우***
2016.04.12 04:08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 (Sait Faik Abasıyanık, 1906~1954)
'터키의 '체홉' 터키의 '고골'이라고 불리우는 대단한 터키 작가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처음 읽습니다. <꼬비에뚜님 댁에서 업어온겁니다>
'마을 카페' (Mahalle Kahvesi)
담담한 필치로 소묘(素描)한, 어느 겨울저물녘 한적한 시골 마을카페의 안과 밖의 풍경화입니다.
카페 창밖으로 바라보는 밤이 스며드는 겨울정원.
몰아치는 북서풍, 분분하게 춤을 추는 진눈깨비.
눈이 그득 덮여있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버드나무와 덩굴나무.
시나브로 밤의 보랏빛으로 젖어가는 하얀 설경.
카페에 전등이 밝혀지면 바깥의 눈 빛깔은 바래지고 맙니다.
이제 밖의 풍경은 스러지고 카페 안의 풍경이 살아납니다.
그리하여 독자는 작가의 스케치로 이 소설의 서사를 읽게 됩니다.
슬픈 사연.
마부 캬밀의 아들은 누이까지도 타락의 길로 빠뜨린, 무척이나 방탕했던 녀석이었던가 봅니다.
아버지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차마 집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거지 꼴을 하고 카페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얼음짱처럼 차갑습니다.
그는 결국 아버지 임종을 포기하고 겨울 바람 속으로 뛰쳐나가버립니다.
아마도 카페 주인이 젊은이의 누나를 거두어 데리고 사는가 보지요.
거리, 시장, 지하철이나 버스깐, 술집, 도회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모습들과 귓가에 들리는 대화의 편린들..
뭇 한살이의 무수한 애환(哀歡)들.
김훈의 말처럼.
모든 풍경은 상처입니다.
풍경은 타인(내 밖의)의 것이로되 연민은 내 안의 것이므로.
소설가는 우리에게 풍경과 상처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입니다.
소설은 우리에게 똘레랑스를, 데모크라시를 가르쳐 줍니다.
나의 풍경을 이해하고 연민하기, 리딩북 역시 늙은 내 문학의 효용일 터입니다.
터키의 유명한 혁명시인 '나짐 히크메트 (Nazim Hikmet, 1902~1963)는 '사이트 파이크'에 대하여 이렇게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이자 탁월한 시인" 이라고.
이 소설, 나 역시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나는 '나짐 히크메트'의 詩 '진정한 여행'을 자주 뇌까리지요.
++++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아래는 내 친구 왕성규 시의 일절입니다,
++++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
그림자 한결 더 깊어져야 밤이 오리니.
아아, 벗들이여.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습니다
-왕성규-
++++
<욜의 추억>
-윌리엄 트레버 作-
***동우***
2016.04.16 04:33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1928~ )는 현대 단편소설의 대가이지요.
체홉과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작가라고 평가받는다는군요.
이 소설을 벗들과 함께 읽을수 있어, 주말의 내 마음 따뜻합니다.
텍스트를 카피해 온 꼬비에뚜님 댁에 고마움을.
'욜의 추억' (Memories of Youghal)
몇개의 심플한 선(線)으로 스케치한 담묵(淡墨)의 수채화입니다.
인생의 페이소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의 외로움 나약함 여림 쓸쓸함 아름다움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욜에는 두 번 다시 안 갔어요.” 남자는 미스 티처가 미스 그림쇼의 질문에 대답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에요. 불행한 기억들이죠.”... “욜은 아담하고 멋진 해변 휴양지예요. 하지만 그곳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몸서리가 쳐져요.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불운 때문이죠.>
지저분한 행색으로 입에서는 위스키 냄새 풀풀 풍기는 흥신소직원(탐정)이라는 중년의 퀼런.
처음 보는 늙은 독신녀 미스 티처에게 어린 시절 고향(욜)에서의 불행하였던 과거를 주절거립니다.
으흠, 생전 처음 보는데도 그런 얼굴이 있습니다.
괜히 기대고 싶은.
무슨 얘기를 해도 다소곳이 들어줄것 같은.
어린시절 곁에 그런 얼굴이 있었더라면 자신의 삶이 어딘가 달라졌을것 같은.
그 자취 기억에 없더라도 어머니같은 누나같은 형같은.
<"등대 근처에 가게가 하나 있어. 예전에 무지개 토피 사탕을 팔던 가게야. 너나 나 같은 여자라면 그 가게에서 외로움을 피해 도망쳐 나온 아이를 봤을지도 몰라.”>
저런 마음들.
다른 이의 외로움이 저릿하게 전달되어오는 마음, 심장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파지는 마음, 괜히 불쌍하여 쓸어안고 함께 울고싶어지는 마음...
소소하지만 따뜻한 그런 마음들 있어, 세상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그러구러 견디게 하는 것일테지요.
어머니 형 누이같이, 아그네스 티처같이.. 그런 마음 그리웁고 뉘한테는 그런 마음 되고 싶은 마음 한조각 있답니다.
퀼런보다 몸이 늙고 퀼런보다 마음이 추레한 내게도. ㅎ
좋은 주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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