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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1)

카지모도 2023. 2. 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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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꺽정이 집에서는 천왕동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궁금히들 여

기던 차인데 의외에 봉산 가서 혼인 정하고 온 이야기를 듣고 꺽정이는 "내 근

심 하나가 덜린 폭이다. " 하고 너털웃음을 웃고 백손 어머니는 "우리 천왕동이

도 장가를 들 날이 있네. " 하고 펄펄 뛰다시피 좋아하고 애기 어머니는 "봉산

꾀꼬리가 머리 곱게 빗구 황도령에게로 시집을 오면 양주 꾀꼬리가 서운하겠네.

" 하고 조롱할 말을 잊지 아니하였다. "양주 꾀꼬리는 누구요? " "양주 죄꼬리는

뒤껼 느티나무에서 울던 꾀꼬리지, 누구는 다 무어야. " "나는 양주 꾀꼬리두 사

람이라구. " 천왕동이와 애기 어머니가 실없은 말을 주고받을 때 꺽정이가 옆에

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구 대사 치를 의논이나 하지. " 하고 나무라듯 말

하여 두 사람의 실없은 말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새옷은 한 벌 해 입혀야지.

옷감을 변통해 와야겠구나, 요새 옷감은 무엇이 좋은가? " 하고 꺽정이가 말하는

끝에 유복이가 가지고 온 보따리를 갖다가 풀면서 애기 어머니를 보고 "이것이

옷감이 될까, 누님 좀 보시오. " 하고 말하여 애기 어머니는 "웬 옷감이야? " 하

고 보따리를 푸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유복이가 보따리에서 명주 세 필과 모시

세 필을 꺼내놓으니 백손 어머니가 우선 꺽정이를 바라보면서 "이것만 가지면

옷감 걱정 없겠소. " 하고 좋아하였다. 애기 어머니가 명주와 모시를 번갈아 들

고 보면서 "명지도 좋거니와 모시가 곱고 좋군. 황도령이 호사하네. " 하고 웃으

니 백손 어머니가 그 뒤를 받아서 "무명것만 입던 사람이 갑자기 명지옷 모시옷

을 입으면 몸이 부르트겠소. " 하고 웃었다. "모시는 다듬어서 홑두루마기를 짓

고 명지는 쟁쳐서 바지저고리를 지으면 좋겠는데 날짜가 급하니까 다 될는지 모

르겠네. " "형님이 밤 새어가며 하시면 되겠지요. " "나는 밤새고 자네는 잠자

고? " "나는 무얼 할 줄을 알아야 하지요. " "바지 솔기도 호지 못하나? " "할

줄 아는 일은 형님이 하라시는 대로 할 테니 염려 마시오. " "바느질을 얼마나

많이 할 텐가? " "나는 바늘을 들면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 낫살 먹을수록

점점 더하니 별일이야. " "듣기 싫어. 갑갑증이 나면 깃 달다가도 열두 번씩 일

어서고 별 짓 다 하지. " "깃 달다가 일어서면 옷 임자가 명 짧단 말은 형님이

나를 못 일어나게 하느라고 지어낸 말이지 무어야. 내가 다 알아요. " "잘 알았

네. 고만두게. 좌우간 혼인 일을 자네가 한댔자 내 입이 달아야 할 테니까 나 혼

자 하다시피 할 텐데 여러 가지 일을 언제

다 하나. " "우리 동생을 형님이 장가들여 주시는 셈치고 애를 좀 많이 쓰시구

려. " "애를 써도 될 것 같지 않으니까 말이지. " "그럼 어떻게 하오. 이웃집에

부주일 좀 해달라까. " "누구더러 일을 해달래, 그대루 집에서 하지. " 하고 꺽정

이가 소리를 지르니 백손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애기 어머니는 꺽정이보고 "여

게 동생,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집에 있는 생명지로 겹바지 저고리를 짓고 이

모시로는 진솔두루마기만 하나를 짓세. " 하고 의논성으로 말하였다. "맘대루 하

시구려. 그렇지만 무슨 무색이든지 무색을 들여야지 건색은 보기 싫소. 그러구

일이 바쁘거든 바지는 고만두구 무명으루 고의를 지어 입게 하시오. " "혼인에는

흩껍데기 고의를 안 입는 법이라네. " "그런 법을 내가 아우? 알아 하시우. " "

지금부터라도 곧 일을 시작해야지. " 하고 애기 어머니가 백손 어머니를 돌아보

며 "여보게, 명지 모시 다 가지구 오게. " 말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꺽정이가 "

잠깐만 더 앉으시우. " 하고 붙들었다. "관례는 일간 곧 해야 할 텐데 관례보임

은 어떻게 하우? " "혼인옷두 급한데 관례보임을 어떻게 하나. 집에 빨아놓은

옷이나 갈아입게 하지. " "내 옷 새루 지은 것이 있지요. 그걸 줄여 입히면 어떻

겠소? “ "해놓은 옷플 뜯어 줄이기가 여간일 아니야. 그러고 위요로 가자면 새

옷 한벌 입어야지. " "내가 위요루 가더래두 새옷은 입어 무어하우. 의관을 갖추

지 못할 사람이 추레하게 입었다구 행세가 더 깎일 거 있소. " "참말로 위요는

다른 사람을 보냈으면 좋겠네, 위요 상객으로 가서 소인을 개올리긴 창피하겠어.

" "여느때는 창피하지 않소? " 하고 유복이가 말깃을 다니 "여느때보다도 더 창

피하단 말이지. " 하고 애기 어머니가 대꾸하였다. 꺽정이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너 좀 위요루 가거라. " 하고 말하니 유복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언니가 가라시면 가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혼행에 인마두 여기서는 얻

기가 어려운데 청석골서 얻어줄 수 있겠니? ” "인마는 고사하구 함과 함속까지

라두 청석골서 얻어을 수 있소. “ "함과 함속을 누가 빌려주나? " "송도 가서

사오지두 못해요. " "그거야 될 수 있니? ” "언니 말이면 늙은이 내외두 싫단

말 않을 게요. " "폐를 끼쳐볼까. " "폐가 무슨 폐요. 내가 가서 얻어가지구 오리

다. " "그러면 네가 먼저 가서 얻어놓구 기다려라. 여기서 열흘날쯤 가두룩 하마.

" "그렇게 해두 좋겠지요. 그럼 가는 내일 도루 가겠소. " 이튿날 유복이는 청석

골로 돌아갔다.

천왕동이가 팔일에 성관하고 십일일에 청석골로 오고 십이일에 청석골을 떠나

서 십사일에 봉산을 대어왔다. 청석골 올 때는 꺽정이와 처남 매부 단둘이 걸어

왔고, 봉산 올 때는 유복이와 신랑 위요 둘이 다 말을 타고 견마잡이 두 사람

외에 함질 복수 한 사림까지 따로 데리고 왔다. 신부집에서 치워놓은 사처에 들

어서 밤에 봉치를 보내는데 백이방이 등롱도 한 쌍 얻어주었거니와 홰꾼을 십여

명 나눠주어서 홰싸움까지 있었다.

그 동안 이방의 집에는 혼인 준비에 안팎이 들썩들썩하였다. 밖에서는 재료를

얻어들인다, 제구를 빌어온다 심부름꾼들이 뻔질 들락날락하고 안에서는 혼인

바느질을 한다, 잔치 음식을 만든다 부조 일꾼들이 종일 버걱버걱하였다. 이방

상주의 기구도 있으려니와 이부자리 같은 대무한 것은 미리미리 준비가 있었던

까닭에 촉박한 날짜에 별로 미비한 것이 없이 다 되었다. 신랑편에서 쓸 혼구까

지도 낭패가 없도록 다 얻어놓았다. 이방이 신랑 타고 온 말이 절따마인 것을

보고 와서 부리나케 백따마까지 구해 보내면서 사모관대만은 빌어 들일 생각도

먹지 아니하였다. 이방의 안해는 신랑을 한번 사모관대 시켜보고 싶어서 이방에

게 청까지 하였으나 상사람은 혼인 때 사모관대를 못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이방

은 자기네 입는 단령을 입히기로 작정하고 자기의 새 단령 한 벌을 보내는데 술

띠만은 자기에 거먹빛 대신에 초록빛을 보내게 하였다.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사월 보름날 혼인날이다. 아침 뒤에 초례 때를 맞추어

서 신랑이 사처에서 떠났는데 사처가 이방의 집에서 끔찍이 가깝건만 길호사로

봉산읍내 장거리를 빙 한번 돌아왔다. 신랑이 문앞에 와서 전안을 마치고 팔밀

이의 뒤를 따라 들어좌서 초례청에 올라설 때 독좌상 옆에 계집아이의 앉고 섰

던 수탉이 한 번 꼬끼오 하고 울었다. 사람에게 붙들려서 날개도 못 치고 우는

것이지만 꼬끼오 소리가 제법 컸다. 마루에 섰는 이방은 유복이를 보고 길조라

고 좋아하고 안방에 있는 여러 여편네들은 이방의 안해를 둘러싸고 희한한 일이

라고 치하들 하였다. 신랑과 신부가 마주 섰다. 신랑의 복색은 이방의 의견을 좇

아서 초립을 쓰고 단령을 입고 발에 갖신을 신었고, 신부의 치장은 양반의 집

본을 떠서 화관을 쓰이고 원삼을 입히고 얼굴을 미선으로 가리어 주었다. 신부

의 사배와 신랑의 재배로 교배를 마치었다. 신랑 신부를 마주 앉히고 신부를 절

시키던 여편네 하나가 청실홍실 늘인 표주박으로 술을 돌리는데 갖은 덕담을 다

하면서 이편 저편으로 세 번씩 왔다 갔다 하였다. 초례가 이로써 끝이 났다. 신

방인 건넌방에 먼저 신랑을 들여앉히고 다음에 신부를 데리고 와서 방합례를 시

키었다. 신부를 잠간 앉혔다가 다시 데려 내간 뒤에 신랑은 옷을 갈아입혀

서 데려내왔다. 이방이 아랫목에 앉아서 싱글벙글하면서 "내게부터 절 한번 해

라. " 하고 말하여 사위의 처음 절을 받고 나서 "이는 네 처당숙이구 이는 네 처

외삼촌이구 또 이는 가만 있거라. 내게 십촌, 네게 처 열한촌 숙항 되는 이다.

절 한번씩 해라. " "저기 앉으신 한호장, 박형방, 이병방, 최공방이 다 네게는 어

른이니 차례루 절하구 뵈어라. " 하고 사람을 일일이 가리키며 절을 시키었다.

천왕동이가 허리가 아프도록 꾸벅꾸벅 절인사를 마치고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

과 모조리 입인사를 하였는데 사람이 많아서 누가 누구인지를 잘 역량 할 수가

없었다.

점심 장국을 먹은 뒤에 유복이는 사처로 돌아가고 천왕동이는 신방에서 팔밀

이하던 젊은 사람과 같이 이야기하며 반 나절을 보내었다. 저녁이 되어서 저녁

밥을 먹고 밤이 들어서 밤참을 먹은 뒤에 천왕동이는 꽃 같은 색시와 즐거운 첫

날밤을 같이 지내는데 신방 방문 밖에는 밤중까지 엿보는 사람들이 붙어섰었다.

노총각인 신랑과 과년한 신부가 같이 자는 방을 신방이라고 엿보는 것부터 실없

은 사람의 일이거니, 더구나 엿본 광경을 누가 말로 옮기며 붓으로 적을 것이랴.

옛사람들이 단산에 봉황이 넘놀고 녹수에 원앙이 희동한다고 적은 것도 벌써 온

당치 않은 붓장난이라고 할 것이다.

천왕동이가 백이방의 집 사위가 된 뒤에 이방 내외의 간청을 받고 꺽정이 내

외의 허락을 얻어서 데릴사위로 처가살이를 하게 작정이 되었다. 신부례 일체로

새 내외가 한번 같이 양주를 갔다왔다. 사위 사랑 장모라 천왕동이가 이방 안해

에게 사랑받는 것은 말할 것고 없고 이방과도 옹서간에 의가 좋았다. 이방이 별

로 볼 일 없을 때는 집에 들어앉아서 천왕동이와 장기를 두었다. 천왕동이는 장기

두라면 열일을 제치는 사람이고, 이방은 장기 두는 것도 싫지 않거니와 사위를 눈

앞에 보는 것이 더욱 대견하여서 밤낮 없이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가 많았다.

천왕동이가 가끔 곡경을 당하는 것은 이방이 사위를 이인으로 여기는 까닭인데

이방이 의심나는 일을 물을 때에 천왕동이가 "나는 모르겠습니다. " 하고 대답하

면 이방은 "네가 모를 리가 있나? "

하고 모른단 말을 믿지 않아서 천왕동이는 해혹시킬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 내

아에서 구리수저 세 벌을 잃고 야단이 난 때 이방이 천왕동이를 보고 이야기하

고 나서 "그게 뮈 짓이냐? 너는 알겠지. " 하고 물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 "네가 알아두 말을 하기 싫다면 모를까, 어째 내게다가 모른다구 말을 하니? "

"정말을 거짓말루 아시니까 말씀을 할 수가 없세요. " "정말이래야 정말루 알지.

" "저렇게 말씀할 때는 속이 다 답답합디다. " "내 속이 답답하다. " "글쎄 제가

점쟁이에요? 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안단 말씀입니까? " "궤 속 물건은 어떻게

알아냈니? " "제가 무슨 재주루 그걸 알아냈겠어요. " "알아냈으니까 재주 아니

냐? " "이때껏 제가 알아낸 줄로만 아십니다그려. 참말 딱하시오. " 천왕동이는

마침내 장모가 객주에 와서 가르쳐 준 것을 토설하여 이방은 듣고 어이가 없어

한동안 벌린 입을 닫히지 못하였다. "첫날 취재는 어떻게 된 것이냐? " "그건 제

가 눈치루 알았지요. " "눈치루 그렇게 용하게 알 수가 있나? " 이방이 손가락으

로 말한 뜻을 천왕동이에게 물어보니 천왕동이의 말하는 뜻이 자기의 뜻과 틀려

도 여간 틀리지 아니하여 다시 어이가 없는 중에 일곱을 셋으로 짐작한 것을 생

각하니 어이가 없다 못하여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구 보면 내가 취재 본

보람은 없다마는 그것두 막비연분이지. ” 하고 이방은 마음을 눙치고 말았다.

그 뒤로는 천왕동이가 곡경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천왕동이가 처가살이한지 그

럭저럭 두어 달 된 때 하루는 이방이 천왕동이를 보고 "집에서 노느니 무슨 구

실을 다녀볼 생각이 없느냐?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무슨 구실이든지 다니

게 해주시면 다니겠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지금 통인이 하나 궐이 났는데

넣어주면 다닐 테냐? “ ”다닐 테요. 넣어주시오. " 며칠 뒤에 천왕동이는 통인

으로 뽑히어서 다시 상투를 풀어내려서 머리를 땋고 통인 복색으로 관가에 들어

가서 현신을 하였다. 새로 통인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통방의 허참을 치르는 법

이다. 각골 통방의 허참이란 것은 마치 선전관청의 허참과 같은데 더 좀 무식스

러웠다. 원이 내아에 들어간 틈에 수통인이 상좌에 앉아서 다른 통인들에게 눈

짓하여 여러 통인이 천왕동이에게 달려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천왕동이가 처음

에는 "왜 이래 왜 이래! " 하고 별로 항거하지 않다가 방망이질을 당하게 되며

천왕동이는 분이 나서 수통인 이하 여러 통인을 치고 차고 하여 통방에 큰 야료

를 꾸며냈다. 야료가 너무 커서 원의 귀에 들어갔다. 원이 동헌에 앉아서 천왕동

이와 여러 통인을 잡아내어 낱낱이 치죄한 뒤에 이방을 불러들여서 "네 사위가

통인보다도 장교감이니 장교를 박도록 해라. " 하고 분부하여 천왕동이는 통인

행공 이틀 만에 장교로 옮아서 통방을 나가게 되었다. 털벙거지 남철릭에 복색

이 우선 천왕동이 마음에 들고 또 이방 상주로도 올라서지 못하는 동헌마루에를

올라 서는 것이 천왕동이 마음에 좋아서 장교 행공을 착실히 잘하였다. 이리하

여 천왕동이는 장인 장모에게 귀염을 받고 안해에게 사랑을 받으며 봉산서 장교

를 다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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