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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이의 주장 이윤경이 전라감사로 승탁될 때 직함이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
수군절도사뿐이라 도내 병사, 수사는 휘하에 들지 아니하였는데 이듬해 봄에 나
라에서 순찰사 직함을 더 주어서 병수사 이하 제장을 전제하게 되었다. 주장의
권사 이하 제장을 전제하게 되었다. 주장의 권한이 커지면 비장의 기세가 오르
는 것은 정한 일이라 각 비장이 다 좋아하는 중에 특별히 병방비징인 중군은 자
기의 직함이 돋친 것같이 바로 의기가 양양하였다. 병방비장이 어깻바람이 나게
다니는 것을 예방비장은 눈 거칠게 보았던지 같이 앉았는 다른 비장들을 돌아보
고 “중군은 요새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 " 하고 말하여 “다 같은 중군
이라두 순찰사 영문 중군이 좋거든요. " “그 사람 자기 말이 요새는 밥맛을 모
른다든걸. " “밥두 안 먹구 어깨 으쓱거릴 기운이 어디서 나노. "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지껄일 때, 봉학이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장
난꾼인 형방비장이 말참례에 끌어넣으려고 “이번 순찰사 직함에 차함과 실함이
같이 난 것을 자네 아는가?” 라고 물으니 봉학이가 "몰라. " 하고 가볍게 대답
하였다. “자네 따위가 그걸 알겠나. 내가 가르쳐 줌세. 이번에 사또께서 순찰사
차함을 하시구 중군이 순찰사 실함을 했느니. " 하고 형방비방이 허허 웃는데 봉
학이와 다른 비장도 따라서 웃었다. 을묘년에 제주목사로서 방어사가 되어 출전
하고 전공으로 전라병사가 된 남치근이 새 순찰사의 약속을 받을 겸 치하하려고
감영에 올라왔을 때 기가 높은 중군이 같지 않은 일로 병영장교 하나를 결곤하
는데 남병사에게 품할 것을 잊었었다. 감영 중군이 병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병
사의 수하 장교를 결곤하였으니 병사 마음에 좋을 리가 없었다. 남병사가 말한
마디나 하려고 중군을 불렀는데 중군이 핑계하고 가지 아니하였다. 한번 불러
가지 않고 두번 불러 가지 아니하였더니 남병사가 화가 나서 병마절도사의 기구
로 잡아갈 거조를 차리며 일변 감사에게 전갈을 하였다. 감사가 남병사의 전갈
을 받고 곧 중군을 불러서 꾸짖어 보낸 뒤에 따로 쪽지 편지를 남병사에게 보내
었다. 남병사가 중군을 뜰아래 세우고 “감영 중군으로 내 수하의 장교를 치죄
못한다는 것은 아니되나 내 허락없이는 못할 일이고 감영 중군이 아무리 장한
사람이라도 내가 부르면 한번 와서 볼 것이지 종내 핑계하고 오지 않는 법이 어
디 있단 말이냐!” 하고 호령하였다. 성정이 엄하고 혹독하기로 유명한 남병사
손에 중군이 죽을 곤욕을 당할 것인데 감사의 쪽지 편지덕으로 호령 한바탕 듣
고 용서를 받았다. 한 달포 지난 뒤에 연해 각읍에서 왜선이 근해에 출몰한다고
보장이 뻔질 떠서 감사는 일변 각읍에 관자하여 인심이 소동되지 않도록 하라고
신칙하고, 일변 평소에 미타히 본 중군을 갈고 봉학이를 시켜 중군이 새로 나기
전 병방과 중군 일을 보게 하고 봉학이에게 군사 백 명을 뽑아주어서 연해 각읍
을 돌게 하였다. 봉학이의 행군할 준비가 다 되었을 때 감사가 봉학이에게 영을
내리었다. "갈 때는 금구, 태인, 정읍, 장서, 광주, 나주를 거쳐 영암에 가서 기일
간 두류하며 적정을 탐문하고, 영암서 해남, 강진, 장흥, 보성, 낙안, 순천을 차례
로 돌고, 올 때는 순천서 곡성, 남원, 임실을 지나오되 왕래에 군사를 단속하여
민간에 작폐가 없게 하고 군량 이외에 지방관원에게 침책이 없게 하라. 만일 적
병과 접전하게 되거든 형편을 따라 병사, 수사나 또는 각 진관 도호부사의 지휘
나 또는 조력을 받으라. " 봉학이가 감사의 영을 받은 뒤에 군사를 거느리고 곧
전주를 떠나서 영암 삼백이십 리를 나흘 만에 왔다. 지난해 여름 난리에 영암
성중은 병화를 면한 까닭에 인가가 조밀하나 성 밖은 사방이 다 초목만 무성하
여 병화의 자취가 눈에 새로웠다. 봉학이가 남방어사진이 패진하던 북문 밖을
나와 볼 때 자연 감창한 맘이 없지 못하여 전망사졸을 한번 제 지내 주려고 생각
하고 영암군수에게 말하였더니 군수가 두말 않고 찬동하고 여러 가지로 힘을 빌
려주었다. 제단은 북문 밖에 모으고 제물은 주과로 차리고 또 제일은 택일하였
다. 택일한 날 석후에 봉학이가 부하 군사와 본군 공형을 데리고 북문 밖에 나
와서 제사를 지내는데 선비들도 십여 명이 나와서 참사하였다. 위패 앞에 제물
을 벌여놓은 뒤에 봉학이가 분향하고 좌수가 축문을 읽고 다 함께 곡하는데 봉
학이만은 진정으로 우는 울음을 한동안 그치지 아니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새삼
스럽게 처량한 빛이 얼굴에 떠돌았었다. 봉학이가 사오 일 동안 영암서 두류하
며 사방으로 탐문하여도 적선이 해상에 출몰한다는 소식뿐이라 해남으로 내려가
려고 제사지낸 이튿날 군사들에게 길 떠날 준비를 시키고 군수에게 작별하러 들
어갔더니, 장흥 득량도 근방에 적선 두세 척이 나타났다고 장흥서 기별온 것을
군수가 말하여 주었다. 봉학이가 즉시 나와서 행군하여 떠나는데 해남으로 안
가고 바로 장흥으로 내려왔다. 장흥은 지난해 적변에 부사 한온이 출전하였다가
전망하고 다시 해남현감이던 변협이 요행히 해남을 보전한 공으로 부사가 되어
온 곳이다. 변부사가 득량의 적선 소식을 듣고 해적이 만일 침범하면 성이나 잃
지 않고 지키려고 성 지킬 도리만 생각하나, 병력이 오히려 약한 것을 근심하고
있던 차에 명궁으로 소문난 이봉학이가 물고 뽑은 듯한 군사 백 명을 거느리고
오니 변부사의 기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봉학이가 장흥 입성하던 날
저녁때 왜적이 하륙하였단 소문이 나며 온 성중이 곧 술렁술렁하였다. 봉학이가
부사를 보고 왜적이 들어오기 전에 나가서 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하여 보았으
나, 부사는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옳다고 고집하여 할 수 없이 그대로 고만두고
이튿날 식전에 부사를 만나서 자기의 부하만 데리고 나가서 적병의 형세를
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군사들 아침을 든든히 먹여가지고 포구로 끌고 나가는데
길에서 성 안으로 피란들어오는 피란꾼들을 많이 만났다. 피란꾼들의 말을
들으니 왜적들이 삼삼오오로 떼를 지어 포구 근반 촌가로 돌아다니며
노략질을 낭자히 하는 모양이라 봉학이가 군사를 급히 몰고 쫓아가서 각촌
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이 봉학이의 군사를 보고 거지반 다 배로 도망하
는데 나중에 이십여 명 한 떼가 관군을 넘보고 도망 않고 접전하다가 봉학이 활
에 헛나가는 살이 없어서 반 넘어 살을 맞아 죽고 그 나머지는 목숨들을 도망하
였다. 봉학이가 군사를 몰고 왜선 매인 해변까지 쫓아나갔으나 왜선이 벌써 해
상으로 떠나가서 가는 배 뒤만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굴렀다. 봉학이가 적의 머
리 벤 것은 변부사에게 맡기고 장흥서 떠나는데 길은 강진, 해남을 빼놓고 바로
보성으로 가는 것이 편하나 감사의 영이 중하여 강진 지나 해남까지 갔다가 되
쳐올 작정하고 강진으로 향하였다. 삼십 리 강진읍에 와서 군사를 머물러 두고
필마로 병영에 나가서 남병사께 문후하였다. 남병사가 감영에 왔을 때 봉학이는
잠깐 승안만 하였지 뫼시고 담화한 일이 없는 까닭에 이날 비로소 지난일을 말
하고 사죄하니 남병사가 석연치는 못하나 구일 부하로 대접하여 하룻밤을 붙들
어 묵히기까지 하였다. 봉학이가 이튿날 읍에 돌아와서 현감을 만나러 동헌에
들어가니 현감이 책방을 데리고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을 한옆에 밀쳐놓고 봉학
이를 맞아들였다. 난리 소문으로 민심이 소란한 때 현감이 한가히 바둑 두고 있
는 것이 마음에 괘씸하여 봉학이는 자리에 앉으며 곧 “보아하니 바둑을 좋아하
십니다그려. " 하고 빈정거리듯 말하였다. “바둑을 둘 줄 아시오?” “넷 놓구
따먹을 줄은 알지요. " “한번 두시려오?” “싫소. " “바둑이란 맘공부가 되는
것이오. " “바둑 가지구 도적두 막을 수 있소?” “도적은 활 쏘는 사람이 막을
테지요. " “아무 걱정이 없으십니다그려. " “병사가 가까이 기신데 무슨 걱정
이 있겠소?”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두 병사또가 하실 일일까요. " “강진 일경
은 민심이 안연하니 염려 마시오. " “어제 병영에서 들으니까 가리포 백성들은
요새 밤잠을 못 잡디다. " “그럴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육십 리 밖에 앉아서
첨사의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수야 있소. " “그렇겠소. " 봉학이가 현감하고 더
말하다가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고만 사처루 나가겠소. " “내일 떠나시겠
소?” “녜, 떠나지요. "“해남으로 가시겟소?” “가리포 한번 가보구 해남으루
가겠소. " “가리포서 해남으루 가실라면 뱃길루 가시겠소그려. "현감의 눈치가
강진읍으로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이라 봉학이는 짓궂이 “아니오. 길이
있는데 배를 탈 까닭이 있소. 이리 다시 오지요. " 하고 말하였다. 이튿날 봉학이
가 군사를 끌고 가리포로 내려오니 때마침 적선 사오 척이 가리포 앞바다에 들
어와서 첨사가 수영과 병영으로 보장을 띄우고 성문을 닫고 있는 중이었다. 봉
학이가 입성하여 군사들 요기를 시키자마자 왜적이 하륙하여 성을 치러 들어왔
다. 봉학이는 조금만 늦게 왔더면 첨사와 앞뒤로 왜적을 칠 수가 있었는데 일찍
와서 일이 틀어졌다고 후회하여 말하나 첨사는 수하의 군사만으로는 주회 삼 마
장밖에 안 되는 작은 성도 지키기가 넉넉치 못하던 터에 봉학이의 군사가 마침
맞게 왔다고 천우신조같이 여기었다. 첨사가 봉학이와 더불어 성 지킬 방법을
의논할 때 봉학이가 앞으로 들어오는 왜적을 자기에게 맡기라고 말하여 봉학이
는 성 앞문을 지키고 첨사는 성 뒷문을 지키게 되었다. 봉학이가 자기 부하 백
명 중의 사수 이십여 명을 성 위에 벌려세우고 사람 하나에 화살 이십여 개씩
나누어 주고 자기는 다른 군사들 틈에 걸상 놓고 걸터앉아서 화살 백 개를 옆에
놓았다. 봉학이의 가지고 온 화살은 수가 많지 못하나 성중에 있는 화살이 많아
서 얼마든지 더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봉학이는 화살을 아끼어서 적이 가까이
들어오기 전에는 활을 쏘지 말라고 사수에게 명령하여 성 밖에 왜적이 새까맣게
몰려들어오며 불질을 탕탕 하는데 성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같이 조용하고 깃발
만 바람에 나부끼었다. 왜적의 아우성 소리가 성 밑에서 나는 것같이 가까워졌
을 때 성 위에서 북소리가 나며 화살이 성 밖으로 날아 나가는데 화살이 북소리
와 함께 그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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