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왕동이가 옥에서 돌아왔을 때 꺽정이는 멍하니 안방에 앉아 있었다. “형
님을 잡으러 한떼가 나왔다더니 안 왔습디까?” “지금 막들 왔다갔다.” “형
님을 가만두구 갔으니 웬일이오?” “초상 상제라구 인정 쓰구 간 모양이다.”
“나는 옥에 가서 보구 왔소.” “병들이나 없다더냐?” “누님이 장독이 나서
말 아니구 팔삭동이가 다 죽어갑디다.” “옥사쟁이가 말썽부리지 않더냐?” “
그까지 자식이 말썽부리면 소용 있소. 한옆으루 떠다밀구서 애기 어머니하구 이
야기했소.” “우리 누님은 장독이 안 났다더냐?” “애기 어머니는 괜찮은갑디
다. 형님더러 관가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오라구 말하랍디다.” “지금 좀 가보
구 올까.” “나하구 같이 갑시다. 내가 가서 옥쇄쟁이를 붙들구 실랑이할께 그
틈에 형님 애기 어머니하구 이야기하우.” “그럼 같이 가자.” 꺽정이는 천왕동
이를 데리고 옥에 있는 식구들을 보러 왔다.
옥이라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옥문에 열고 안에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앞
에 있는 창살 틈으로 갇힌 사람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옥쇄
장이란 것이 열의 아홉은 심청이 고약하여 옥 앞에 사람이 얼씬을 못하게 쫓는
까닭에 옥에 갇힌 사람을 보러 오자면 옥쇄장이의 인정을 사려고 코아래 진상을
갖다 드리는 것이 의전례 있는 일이었다. 꺽정이가 천왕동이를 앞세우고 옥 앞
으로 들어올 때 옥쇄장이가 보고 마주나오며 “네가 아까 나를 떠다박질르던 놈
아니냐!”하고 천왕동이를 노려보았다. “여보게, 자네에게 사과하려 왔네.” “
뉘게다가 하게를 던지느냐, 이놈아. 내가 언제 네놈더러 사과하러 오라더냐.”
“내가 아까 잘못했네. 용서하게.” “네가 아까 와서 행패한 것이 벌써 관가에
입문됐다. 경칠 테니 두구 봐라.” “나중 경칠 것은 어쨌든지 지금 잠깐 나 좀
보게” “누가 네놈을 보구 싶다느냐.” “그러지 말구 조용히 좀 보세그려.”
“날 왜 보자느냐?” “볼일이 있으니까 보자지.” “볼일이 무어냐?” “잠깐
만 저 뒤루 들어가세.” 천왕동이가 옥쇄장이의 손을 끄니 “뒤에 들어가서 볼
일이 무어냐?” 옥쇄장이는 황천왕동이의 품이 불룩한 것을 유심히 보면서 못이
기는 체하고 끌려갔다.
꺽정이가 옥 앞에 와서 창살을 붙들고 어둔 속을 들여다보며 “누님 어디 있
소?”하고 물으니 안에서 “아이구 형님.”하고 팔삭동이가 소리를 질렀다. “
오, 너냐?” 꺽정이는 동생을 살펴보는데 “아버지 나두 여기 있소.” 백손이가
아비를 알은체하였다. “오, 백손이냐?” 꺽정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백손이와
팔삭동이가 둘이 다 머리에 칼을 쓰고 발에 착고를 차고 앉아 있었다. “아주머
니하구 너의 어머니는 어디들 있느냐?” “다음 칸에들 있소.” 꺽정이가 다음
칸 앞에 와서 서니 “동생 왔나?”하는 것은 애기 어머니의 목소리요 “인제 왔
소?”하는 것은 백손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꺽정이가 안침을 들여다보며 “큰
병들이나 없소?”하고 물으니 애기 어머니가 “나는 매를 안 맞아서 괜찮지만
백손 어머니는 장독이 났어.”하고 대답하였다. “어떻게든지 할 테니 염려들 마
우.” “그런데 아버지가 대단하시다지?” “아버지 돌아가셨소.” 애기 어머니
가 아이구 하고 울음을 내놓으니 백손 어머니도 따라서 아이구 소리를 내었다.
“누님 고만 그치시구 나보구 할 말이 있거든 말이나 얼른 하시우.” “물건 출
처하구 촛궤의 글씨 긁은 것만 잘 발명하면 무사할 것 같애. 나는 작년 올 설에
서울서 왔다구 대답했으니 외착나지 않게 말하게. 애기년이 내가 대답하는 걸
다 들었는데 말하든가?” “아직 못 들었소.” “그렇지, 그 년이 정신이 없었을
거야.” 백손이가 큰소리로 “아재 아재.”하고 팔삭동이를 부르는 소리가 나더
니 나중에 “아버지, 아재가 죽었소.”하고 소리를 질러서 꺽정이가 다시 팔삭동
이 숙질 있는 데로 왔다. “죽다가 숨이 막혔느냐?” “아까 아버지 보구 소리
한번 지르더니 고만 정신을 못 차리구 고꾸라졌소.” “숨은 있니?” “숨이 있
는지 없는지 모르겠소.” “큰일났구나. 물을 좀 먹여봐라.” “물이 여기 어디
있소?” “가만 있거라.” 꺽정이가 옥쇄장이를 보려고 옥 뒤에 돌아와서 보니
황천왕동이가 옥쇄장이를 붙들고 서로 이놈저놈 욕질하고 있었다.
옥쇄장이가 처음에 황천왕동이게 끌려갈 때는 속으로 은근히 무엇을 줄까 하
고 바랐는데 급기 옥 뒤에 들어가서는 한껏 하는 말이 “오늘 밤에 틈이 있거든
나하구 같이 술 먹으러 가세.”하는 시쁘장스러운 소리라 옥쇄장이가 사람이 부
처님의 중간토막이라도 골이 안 날 수 없었다. “이놈아, 누가 너더러 술 달라더
냐?” “이놈 저놈 한 하구는 말 못하나.” “백정놈더러 놈이라구 못하면 누구
더러 놈이라구 하랴.” “나는 백정두 아닐세. 황해도 봉산서 군관 다니시든 어
른이야.” “백정놈의 붙이루 의관하구 다니며 거짓말하구 그것만두 귀양갈 죄
다.” 황천왕동이가 불룩한 품에서 뚤뚤 뭉친 때 묻은 수건을 꺼내더니 ‘너 줄
물건 아니니 봐라.’ 하듯이 옥쇄장이 눈앞에 훌훌 털어서 얼굴을 씻고 다시 뚤
뚤 뭉쳐 품에 집어넣었다. “한 놈은 날 붙잡구 실랑이하구 한 놈은 갇힌 연놈
들하구 짬짬이하구 너의 놈 꾀 다 알았다.”하고 옥쇄장이가 급히 돌쳐서 나가
려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쫓아와서 “내 말 좀 듣구 가게.”하고 손을 꽉 잡았다.
“손 놔라, 못 놓겠느냐?” “글쎄 잠깐 내 말 좀 듣게.” “이놈아, 말이 무슨
말이냐?” “관가에 들어간 물건이 있지, 그 물건을 찾아 내오거든 자네를 좀
노놔주두룩 내가 말함세.” “이놈이 누구를 놀리나.” “놀리는 게 무언가. 참
말일세. 만일 그 물건을 못 찾아내게 된다면 내가 소매동냥을 해서라두 자네의
수구를 갚을 테니 갇힌 사람들을 좀 잘 봐주게.” “무엇이 어째! 갇힌 연놈을
잘 봐달라구? 오냐, 잘 봐주마. 저승 가는데 활개들을 치구 가두룩 잘 봐주마.”
“지금 한 말 한번 다시 해봐라. 네놈이 만일 갇힌 사람 몸에 털끝만치라두 손
을 대면 네놈의 배때기에 칼이 들어갈 테니 그리 알아라.” “이놈이 누굴 얼르
나. 경칠 놈 같으니.” “이놈아, 누가 경을 치나 두구 보려느냐.”
옥쇄장이와 황천왕동이가 서로 욕질들 하는 중에 꺽정이가 들어와서 옥쇄장이
를 보고 “갇힌 아이 하나가 방금 죽어가니 물 한 모금만 갖다 먹여주우.”하고
청하였다. “내가 너희들의 심부름꾼인 줄 아느냐?” “심부름꾼 아니면 사람
죽는 걸 가만두구 볼 테요.” “제 명 짤러서 뒤어지는 걸 내가 알 배 있느냐.”
“이놈 심보 좋다. 어디 보자.” 꺽정이가 옥쇄장이를 떠밀어 자빠지자, 바로 다
리를 잡아 꺼꾸로 치켜들었다. “물을 갖다 먹일 테냐 어쩔 테냐! 말해라.” 옥
쇄장이의 고개가 끄덕끄덕하는 것을 꺽정이가 내려다보고 “내 동생이 죽기 전
에 네가 죽지 않을라거든 물을 갖다 먹여라.”하고 다리를 내려놓았다. 꺽정이와
천왕동이는 옥쇄장이를 끌고 옥 앞으로 나와서 곧 물을 가지러 보낸 뒤에 꺽정
이가 창살 앞에 와 서서 백손이더러 말을 물었다. “좀 피어났느냐?” “아무리
보아두 아주 죽은 것 같소.” “손발이 어떠냐?” “발은 만져보지 못해서 모르
지만 손은 얼음장 같소.” “코밑에 손을 대어보았느냐.” “더운 김은 없어지고
찬 김이 나우.” “젖가슴은 뛰느냐?” “가만 있소. 만져봅시다. 제미 칼에 걸
려서 맘대루 만져볼 수두 없네. 아이구 살이 차디차우. 조금두 뛰지 않소.” “
아이구 그러면 아주 죽었구나. 여보 누님, 팔삭동이가 죽었다우.” 꺽정이는 옥
앞에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애기 어머니는 옥 안에서 “아이구 불쌍해라.
얼뜬 위인이 죽음까지 얼뜨게 했네. 아이구 불쌍해라.” 넋두리하면서 울었다.
옥쇄장이가 저의 집에를 몇 고팽이 왔다갔다 할 동안이 지나도 오지 아니하여
황천왕동이가 괴이쩍게 생각하며 “형님, 고만 집으루 갑시다.”하고 꺽정이를
붙들어 일으킬 때 홀저에 아우성 소리가 들리며 창칼 가진 관속 한 패가 옥 앞
으로 쫓아들어왔다. 천왕동이가 꺽정이의 옷을 잡아당기며 “형님, 얼른 피합시
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어떻게 할 테요?” “
잡혀가지.” “형님이 잡혀가면 뒷일은 어떻게 하우?” “원님보구 사정해서 내
가 나오게 되면 좋구 만일 나오지 못하구 갇히거든 네가 이별장에게 가서 말하
구 벳자를 얻어다가 아버지를 묶어놓구 팔삭동이두 찾아내다가 묶어놔라.” “
형님이 마저 잡혀가게 된다면 나는 청석골패를 끌구 와서 파옥하겠소.” “장사
지낸 뒤에는 나 혼자서라두 어떻게 할 테니 내 말대루만 속해 해다우.” 꺽정이
와 천왕동이가 몇 마디 수작하는 중에 수교가 장교 사령 이십여 명을 영솔하고
가까이 들어왔다. 꺽정이가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잠깐 거기들 서서 내 말
좀 들으우.”하고 큰소리를 지르니 칼 들고 앞장선 수교부터 발을 멈추며 “네
가 파옥하러 왔다지?”하고 호령하였다. “파옥이라니 파옥하러 왔다면 옥문을
가만두었겠소? 옥문 좀 보구 말하우.” “옥사쟁이는 어째서 때려눕혔느냐?”
“옥사쟁이를 누가 때렸단 말이오. 우리는 때린 일 없소.” “때린 일 없는 것은
관가에 들어가서 발명하구 줄을 곱게 받아라.” “어차피 원님께 들어가서 사정
할 말씀이 있으니까 내가 갈텐데 여기 섰는 처남은 저의 누이를 잠깐 보러 온
사람이니 잡지 말구 보내우.” “안 된다.” “안 되어? 그러면 내가 먼저 처남
을 보내구 나중 다시 이야기 하겠소.” “이놈아, 힘꼴 쓴다구 흰소리 마라.”
“꺽정이 여기 섰으니 칼루 칠 사람이 있거든 쳐보구 창으루 찌를 사람이 있거
든 찔러 보우.” 수교가 뒤를 볼아보며 눈짓하더니 장교와 사령들이 일시에 좌
우로 갈라서서 꺽정이와 천왕동이의 앞을 막고 들어오며 아우성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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