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댁은 더듬더듬 말했었다. 문중에서는, 박씨부인의 탈상이 있고는 바로 재
취를 맞이할 절차로 분주했다고 한다. 종부 없는 종가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청암부인의 시부는 쉽게 재취를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한 풀 꺾인 듯한, 힘 없는 모습으로 서안 앞에 앉아 있거나, 기껏 멀리
출입한다고 해도 그저 삼계석문 옆 정자 구로정 정도밖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
는 누구와 별로 말도 나누는 것 같지 않았고, 말을 나눈다 하여도 의례적인 몇
마디가 고작이었다. 그런 날이 하루 가고 이틀 가며 어느 결에 한 삭 두 삭 지
나고, 어언 해가 바뀌었으나, 그의 침중함은 더욱 깊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누가
보아도, 빛이 가시어 안색이 창백한 얼굴과 육덕이 깎인 그의 어깨는 점점 각이
지기 시작하였다. 헌출한 몸에 혈색 또한 남다르게 밝아서 풍신이 좋던 그가, 일
생 바짝 마른 몸으로 지내게 된 것은 그때부터라고 보아야 했다. 애석하게도 일
찍이 별세한 선친을 대신하여 숙항들이 서둘러 그의 재취가 진행되고 있을 때,
그는 자기 종항 중의 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발이 찬 사람이었네. 손도 찼지. 그래도 내 맘에는 발이 더 찼던 것같구만, 아
마, 손은 아무래도 좀 움직이고 발은 가만히 두어서 그랬던가... . 속에 있는 말
이라고 입 밖에 잘 내는 사람도 아닌데, 발이 시리다고는 몇 번 하데, 나는 몸이
다순 사람이라, 손으로 두 발을 감싸서 한참을 녹여 주면, 부끄러워 말은 못허고
얼굴만 숙이고는, 그만허시지요, 인제 다수어요, 그것이 전부라... .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지. 잠결에 깨서 돌아보니 이 사람이 저쪽 끄트머리 자리에 등을 돌리
고 누웠어. 잔뜩 오그리고 돌아누워 있길래, 어디가 불편한가 걱정이 돼서 깨웠
지 않았겠나. 그 사람이 그때 허는 말이, 날도 차운데, 행여라도 잠결에 자개 손
발이 나한테 닿을까봐 그랬다는 게야. 허, 참. 그 사람이 가고 나서는, 이따금씩
그때 생각이 나. 무심한 사람. 얼은 손발로 얼마나 먼길을 그렇게 웅크리며 가고
있는고... . 나한테 찬 기운 안 끼칠라고 그렇게 서둘러 갔는가."
그러면서 한숨 끝에
"이렇게 앉었다가도 문득, 손 안에 잡히던 발이 서늘하게 전해져 오네. 그럼
그냥 전신이 식어드는 것 같어서."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재취의 여인을 맞아들였다. 청주한문의 따
님이었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모색도 아니고 사람의 성품 또한 무던하였다. 비
록 가문 있는 집안의 종손이라고 하나 재취의 자리임이 꺼려지지 않는 것도 아
니었을텐데, 그런 내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선대에 물려받은 농토가 어느결
에 삼사백 석이 줄어들어 조금씩 알게 모르게 살림에 표가 나고 있었는데도, 그
다지 큰 근심을 하지 않았다. 초취의 박씨와 사별한 후, 특별히 무슨 실책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푼돈처럼 농토가 새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사
이에 몇 백 석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문중에서는, 시부의 실심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웬만하면 자식도 하나 낳지 못하고 가 버린 여인에게 그
다지도 마음을 기울여 실심을 하겠느냐고 했다가도, 사람의 정이란 다 각각 양
색이 다른 것이니 그 속을 누가 알겠느냐고, 모이기만 하면 목소리를 낮추어 수
군수군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한씨부인은 그런 일들에 거의 괘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담담한 기색으로 안방에서 대청으로, 대청에서 장독대로 오가면서
집안일을 살피었다. 천성이 그러한가. 무슨 일에든지 속을 끊이는 법이 없었다.
시부가 몇 날 며칠을 사랑채에서 지내며 밤낮으로 서책에만 골몰하여도, 그저
범연한 일로 여기었다. 보름을 그리하여도, 그런대로 한 달이 지나가도 낯색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심정을 다스리려 애쓰는 기색이 드러나는 것
도 아니었다. 그네는 건강도 좋은 편이어서, 까다로움 없이 수북수북 밥그릇을
비우고, 한가로운 시간이면 침선도 멀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던한 그네의 성
품 때문이었던지, 한씨가 재취로 들어온 지 구 년이 막 넘어설 무렵에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게 되었다. 장남 준의와 차남 병의였다. 연전에 한씨부인이 장남 준
의를 낳았을 때, 문중에서는 물론이지만, 시부 자신이 크게 기뻐했었다. 그는 정
말로 얼마 만에 파안대소하였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기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대종가의 종손이 튼실하게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찬 시부가 부인 한씨를 눈에 띄게 아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한씨는 예나 다름없이 수굿한 모습으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차남 병의를
낳았다.
"참으로 사람의 복이란 심성을 닮는구나."
"그렇게 어질고 무던하더니만, 아슬아슬 손 귀한 집에 떡두꺼비 금쪽같은 아들
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낳아 주다니. 이대로라면 셋을 못낳을까?"
"열이면 어때? 스물이면 마다하리. 이제 종갓댁 운세도 점차 피어나려나 보네.
십오륙 년을 두고 가라앉기만 하더니, 이제서야 조상의 음덕 양광이 비치려는
가."
그러한 칭송들이 화사하였다. 종가는 단순히 큰집이라는, 대대로 맏이의 집안
이라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중의 기쁨은 그만큼 컸던 것
이다. 제사 때에 첫 번으로 신위에게 술을 드리는 초헌은 말할 것도 없이 언제
나 종손이 먼저 드린다. 제사에서의 위치도, 문중의 원로 어른인 문장은 좌중에
끼어서 있지만 종손은 맨 앞자리 한가운데 혼자 앉는다. 종회도, 문중에서 항렬
과 나이가 제일 위에 있는 문장의 집에서가 아니라, 종손의 집안 종가에서 열게
되며, 종중의 모든 기록 문서는 반드시 종가에 보관하여 대대로 전하게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종회에서의 자리도, 종손이 문장보다 상좌에 앉는 것이다. 비록 종
손이 이제 이십도 채 못된 홍안의 소년이라 할지라도, 백발의 수염을 늘이운 문
장보다 윗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종손은 종중의 기둥일세. 우리들은 가지야. 종손은 대대손손 바른 핏줄을 보
전하여 우리 가문을 이어가야 하느니."
문장은 어린 종손에게 몇 번이고 이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장 또한 지극한
심정으로 받들고 존경하였다. 그는 종손을 소중하게 보호하여 지켜 주고, 또한
어른으로서 문중을 지도해 주는 크나큰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가
의 번성은 일문의 뿌리가 깊고도 탄탄하게 뻗어나가는 것과 같고, 문중의 창성
은 일문의 줄기와 가지가 울창 무성하게 우거지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손을 귀하게 아껴 존중하고, 또한 문장을 받들어 존경하였으니, 그
두 사람의 존재야말로 문중의 다른 대소가에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며, 구심점이
되는 구체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장은 종손부 한씨의 부덕을 치하하
였다. 그리고 종가가 번창하는 이 분명한 조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축하였다.
그것이 어디 비단 문장 한 사람에게만 그러하였으랴. 어느샌지 모르게 남의 손
으로 넘어가 버린 종가의 농토가 이제 겨우 삼백 몇 십 석밖에 남지 않은데다
가, 해마다 불어나던 위답 위전 등의 종토마저도 위태위태하게 관리되고 있는
금석에, 비로소 한숨이 트인 셈이니 문중의 사람들도 덩달아 마음이 놓이는 것
이었다. 그러나, 호사에는 다마라고 하였던가. 어찌 그리 선인들이 남긴 말에는
틀림이 없는 것일까. 여러 사람에게 무던하였고, 본인 자신도 늘 마음을 평정하
게 가지던 그 심덕으로 보나, 잔병 치레 한 번 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 그네
는 병의를 출산한 지 두 달 만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산욕열이었다.
"세상이 고르지 못한가... 사람이 같은 일을 두 번씩 겪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것이 웬일일까요?"
"그러게나 말이야. 박복한 양반... 인제서야 겨우 마음 좀 돌려서 다숩게 지내
려는가 싶었드니만 무슨 신수가 그렇게 사나우신고."
"도무지 요사할 사람 같지가 않든데. 그렇게 후덕하고 한가로운 부인의 성품
어디에 그런 단명을 타고났던가."
"누가 아니랍니까. 그래도 천만의 다행으로 아들을 둘이나 남기고 갔으니 불행
중에 다행한 일이올시다."
"다행이나마나, 이제야 핏덩어리. 짜박짜박 걷는 애기에다 젖 먹는 갓난 것 형
제 일도 보통 일이 아니네."
"저 사람의 성품으로 삼취를 허겄는가. 재취도 그토록이나 안하려던 게 바로
엊그제 아니라고? 허나, 사람이 작배허지 않고 혼자서는 지낼 수 없는 법, 그 일
만 해도 한 짐거리 근심이네."
"나이나 좀 지긋헙니까... 이제서야 막 서른 안팎에 두 번씩이나 그런 흉사를
당허다니요, 참. 인생 초장에."
"모친 한 분만이라도 생존하여 계시다면 정황이 이렇게나 적막 강산같지는 않
을 것이네."
"사람 사는 집이란, 여자가 있어야 안팎으로 훈김이 어리는 법인데."
시부의 조항과 숙항의 어른들이 마주앉기만 하면 어두운 얼굴로 음성을 낮추
어 염려하고 의논하는 것은 그 일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시부는 초취 박씨를 잃
었을 때보다 태연해 보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저 사람이 왜 저러까... ."
"아예 넋을 놓아 버리고 만 것은 아닌가 모르겄네."
"심기가 허애서 금방이라도 쓰러질까 싶으드니마는 저렇게 침착한 것을 보니
외려 더 맘이 쓰이지 않는가."
한씨부인 시신에 염습을 하려고, 자단향을 물에 끊이고 있을 때, 그 향기가 무
겁고 눅눅하게 집안을 누르는데, 시부는 눈을 지긋이 감고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한씨부인의 두발을 감기고 빗질을 한 뒤, 목건으로 물기
를 닦아 낸 끝에 낙발 몇 오라기가 떨어졌다. 염습을 하던 부인은, 낙발을 한 오
라기도 떨어뜨리지 않고 종이에 싸서 작은 명주 주머니에 담아 넣었다. 사람이
죽으면 머리카락에도 힘이 빠지는가, 낙발을 줍던 부인은 스러질 듯 잡히던 그
감촉을 훗날에도 이야기하였다. 낙발을 담은 명주 주머니는 각각 그 옆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세필로, 속에 들어 있는 것의 내용을 써 두었다. 그
날 밤, 시부는 병풍 뒤에 홑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망처 한씨부인 곁에 홀로 앉
아 밤을 세웠다. 그는,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홑이불을 벗기고, 이미 풀숱
으로 코가 막혀 있고, 충이로 하얗게 귀가 막혀 있는 한씨를 하염없이 내려다보
았다. 망실 한씨는 머리결도 보이지 않게 검은 헝겊으로 감아서 싸놓았는데, 골
무만한 낙발 주머니가 그 옆에 있었다. ... 내 언제, 한 번이라도 이 머리를 생전
에 다정하게 쓸어 준 일이 있었던가. 아침 저녁마다 참빗으로 물기를 발라서 빗
어내리던 이 머릿결을, 지나가는 손길로라도 어루만져 본 기억이 그에게는 떠오
르지 않았다. ... 이제는... 머리를 빗을 일도 없으리라. 시부는, 망실의 낙발 주머
니를 어루만져 보았다. 밤톨만한 주머니는 그러나 헐렁하였다. 그것이 또한 시부
의 마음을 내려앉게 하였다. 그 손 옆에 힘없이 놓인 오낭, 손톱 발톱을 깎아 넣
은 작은 주머니를 보는 순간, 시부는, 이 여인이, 박씨로 착각되었다. 가슴이 써
늘하게 식어내리며 찬 기운이 한복판에 얼음처럼 섬뜩하게 끼쳐들었다. 시부는
그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곡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게 나무
토막처럼 우두커니 앉아서 밤을 새울 뿐이었다. 그리고는, 한씨부인 영위 앞에
조석으로 상식을 올릴 때,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이, 진설된 찬수마다 일일이
젓가락을 대 주었다. 그런 모습은 침착하고 정성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문상을
받으면서도, 어린 두 아들 형제를 대하면서도, 집안의 남노여비를 거느리면서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사람같지 않게 조용하였다. 사람들은 일변 그의 불행이
근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러한 시부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놓았던 것이 사실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시부는 사실상 거의 반이나 넋을 잃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기었건만, 그는 속이 삭아 버려
텅 빈 고목처럼, 겉모습만 그렇게 의연한 척 남아 있는 셈이었다. 그나마 누가
밀기만 하면, 푸석 무너져 쓰러질 것 같았으나 상당한 날이 지나도록 그것은 밖
으로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저 얼핏 보기에는, 원래 말수가 적었던 사람이 그나
마 줄어들어, 누구와 말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만이 좀 달라진 것같이 보였다. 그
것도 아직 나이 젊고, 거기다 남자이니, 당분간만 지나면 괜찮아지리라고 생각들
을 하였다. 어찌 되었든, 덩그만 고가에는 노복과 계집종에 행랑것들을 제하면,
어린아이의 유모와 더불어, 위로는 시부가 단 한 사람의 어른이요, 아래로는 젖
먹이 두 아들이 가족의 전부였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참으로 난감한 정경이 아
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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