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쉬어빠진 회색으로 재를 뒤집어쓴 것처럼 된 이날 이때까지 그네는 세
상 누구로부터 공대를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거꾸로 달금이네는, 아무리 상민한테라도 말을 놓지 못한다.
그러니 매안 문중 어른들한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어린 아이들한테
라도 그네는 반드시 말을 바쳐서 했다. 그것이 법이었다.
마님, 아씨, 새아씨, 작은아씨, 애기씨 하고 평생 동안 양반의 부인과 따님들에
게 바쳐 부른 그 호칭들은, 달금이네 그 자신은 언제 지나가는 미친년한테라도
들어 본 일이 없었으며, 언감생심 그 말들을 넘본 일도 없었다.
매안에 올라가 고기를 내놓은 집에서는 셈만 하고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쓰일 소용에 따라서, 정성껏 썰고, 뜨고, 저미고, 다지는 일까지 다 해 주었다.
"아씨들이 이런 일 허시면 쓰간디요? 손 베린디."
달금이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라먼 먹지도 말어야지. 이빨로 도구질을 어뜨케 허능고? 귀찮허고 천해
서."
달금이네 하는 일을 보고 언젠가 거멍굴 옹구네가 오금 박는 소리를 한 일도
있었지만, 달금이네는 엷은 미소를 머금는 듯 마는 듯.
"그렁 거 뇌꼴시럽고 서러우먼 이런 일 못허고 사네잉. 그렁 거잉갑다 허고 살
어야제. 또 법도가 그렇고. 어쩌겄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는디. 날 쩍에야
사람으로 난 것을 같을랑가 모르겄지만, 앞앞이 사는 시상이 다른 것을 어쩌."
"시상?"
"조상 공덱이 그거뿐이라 우리 조상은 대대로 소만 잡고 괴기 장시만 했는디
자손한티다가 멀 물려줄 거이 있겄능가. 벌그런 괴기 뎅이나 일펭상으 주무르는
거빼끼."
"그렇게 사람은 뼈다구를 잘 타고나야 하여."
"그것도 맘대로 못허는 일이고."
"아 머 매안 양반들은 거 가 낳고 자퍼서 맘 먹고 났간디? 어쩌다 봉게 씨가
글로 떨어징 거이제."
"다 전상으 진 인연이 있어서 그러겄지 머, 나는 먼 죄를 져도 졌고. 몰라서
그렇제, 안 그러고야 누구는 왜 어디가 나고 누구는 또 어디가 나고 그려? 해필
이먼."
"아이고, 그 속을 누가 알어? 이놈으 시상 어쩌능가 보게 꼭 한 번 꺼꿀로 되
야서 대그빡으로 걸어댕기는 것을 보먼 쓰겄는디. 아니 무신 놈으 시상이, 감
나무도 해갈이를 허니라고 한 해 많이 열먼 한 해는 몇 개 안 열고 그러능 거인
디 말여. 사램이란 것은, 왜, 여는 낭구는 가쟁이가 찢어지게 그쪽으로만 열리고,
없는 낭구는 말러 죽고 말제, 떠런 땡감 한 개 못 달고. 제 당대에만 그러고 만
다먼 또 몰라. 무신 웬수를 졌다고 그 존 팔짜를 대 물리고, 대 물리고. 몇 백
년, 몇 천 년을 그러고 가능가 모리겄어."
"참말로."
그러나, 팔자 타령을 하면 무엇하랴.
어제 살아온 세상도 아니요, 하루 이틀 살아갈 세상도 아니었다. 그저 속으로
바라느니 고기라도 좀 많이 팔려서 남모르는 돈이나 좀 늘어났으면 싶을 뿐이었
다.
"아이, 일년 가야 꼬드라진 말괴기 한 점 못 먹음서도 성짜 빤듯헌 양반 허능
거이 낫을랑가아, 괄시받는 백정것이라도 한 펭상으 괴기 하나는 여한없이 많이
먹고 사능 거이 낫을랑가아."
옹구네는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달금이네는 무슨 대답이 얼른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잡는 짐승이나 별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으면서 사람 시늉 한번 제대
로 해보지 못하는, 서럽고 원통한 처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행세하는 대갓집의
씨종을 살고 말지 이 노릇은 못하겠다, 싶은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마는, 허구
한 날 배를 곯고 누렇게 뜬 빈 속으로 앉아 있어야만 된다면 그 또한 과연 어떨
는지.
그럴 양이면 무엇이 좋아서 양반을 하려 할 것이며, 또 양반은 무슨 힘으로,
굶고 앉아서도 카랑카랑하게 호령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들이, 얼른 가닥
이 잡히지 않는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왜 그런 말을 허능고니, 그래도 달금이네는 칼일 헝게로 머 꼭 챙
게 먹자고 앙 그려도, 아 팔고 남은 부시레기만 줏어 먹어도 다 못 먹잖이여, 빽
다구는 고아 먹고, 껍데기는 쫄여 먹고, 저 뱃속으 답북 들었는 그 창시는 다 멋
히여? 지져 먹고, 끓여 먹고. 참, 꼬랑지도 먹제잉?"
"하이고오, 먹을 것 많아서 오지겄네에. 왜 볶아는 안 먹는당가?"
그 말끝에 달금이네는 옹구네 말 속뜻을 알고는, 옹배기에 걷어 담던 내장 한
칼을 베어 냈다.
어느 때는 고기가 쉽게 팔려 금방 광주리가 가벼워지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팔리는 것은 좀 더디지만 다행히 날이 추워 고기 상할 걱정이 덜한데, 더운 여
름 같은 때.
"여름 소는 풀을 먹고 가을 소는 여물을 먹는데, 풀 먹은 소는 고기에 독한 기
운이 있고 맛이 없다."
고 하여 잘 팔리지도 않는데다가 날은 더워 고기가 상하려고 하면, 달금이네는
다 못 판 고기 광주리를 들고 근심바우 아래로 갔다.
사시 사철을 두고 거기 그렇게 웅크린 모습으로 이마를 무겁게 수그린 근심바
우는, 바위 살 속까지 얼어서 쪼개지는 엄동 설한에도, 온몸이 다 타 부슬부슬
껍질이 부스러지는 오뉴월 뙤약볕에도, 단 한 걸음 어찌하지 못하고, 근심으로
패인 검은 가슴속을 시름없이 들여다보면서 한데 나앉아 있었다.
"아이고오, 내 신세야아. 어찌 그리 너 허고 앉었는 거이 똑 나맹이냐. 너는 대
체 먼 근심이 그렇게 많허냐."
달금이네는 타령조로 한숨을 쉬고 바위한테 말을 건네면서, 이미 화덕같이 뜨
겁게 달구어진 근심바우 무릎 위에 얇게 썬 고깃덩어리를 널어 말리곤 했다.
검은 바위에 벌겋게 널린 고기 무더기는, 작은 산 모롱이 하나를 돌고도 얼마
를 더 들어가야 하는 매안에서야 보일 리가 천만 없었지만, 고리배미 마을에서
는 멀리 희미하게 붉은 치마를 씌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리배미는 거멍굴에서 남쪽으로 한 식경쯤 걸어가는 곳에 있는 마을인데, 눈
앞에는 들판이라 아무것도 거치는 것이 없어서 그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달금이네는 고기 광주리를 이고, 이 고리배미로도 갔다. 그리고 고리배미로 들
어가는 어귀에서, 지게 작대기 끝에 갈라진 알구지같이 두 길로 나뉘어진 다른
쪽 길로도 갔다.
그것은 비얌골로 가는 길이었다.
바위에 빨래처럼 널려 있던 고기가 뙤약볕에 바싹 마르면 이제는 그것을 잘게
여러 조각이 나게 두드려 깬다. 그리고는 다시 몽글게 바수어 가루를 주머니 주
머니에 나누어 담아 여러 개를 만들었다.
이 고기가루는 확독에 갈아 낸 쌀가루를 섞어 죽을 끓여 먹으면, 다시 없는
맛이 났다.
노인이 계신 집이나 환자가 있는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밥맛 잃은 사람들
과 별미 찾는 사람들이 반가워할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대강 마무리져질 때쯤이면 택주는 으레 남원 장날 우시장으
로 나갔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소 한 마리를 몰고 거멍굴로 돌아왔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택주는, 일이 끝나면 근심바우 발치의 개울물에 피
묻은 손과 칼, 도끼들을 담그고 꼼꼼이 오래오래 씻어 냈다.
고기기름에 범벅이 된 피는 씻어도 씻어도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노랑내를
풍기며 연장과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들판에 어스름이 내려앉고, 근심바우는 더욱 검은 빛으로 어둠 속에 잠겨 들
어가는데, 천민 중의 천민이라 상투도 법으로 못 틀게 하여, 쑥대강이 봉두난발
로 쭈그리고 앉아 묵묵히 피를 씻어 내는 쇠백정 택주의 손등에 무심한 달이 푸
른 빛으로 떠오르는 때도 있었다.
노비, 승려, 백정, 무당, 광대, 상여꾼, 기생, 공장, 여덟 가지 종류의 팔천 천민
을 나라에서 정하여 구분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이 백정과 무당이다.
이 세상에서 짐승말고는 노비보다 더 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백정인지
라, 일반 양인들과는 같이 섞여 살지도 못하고 성문 바깥 멀찌감치 물러나 저희
들끼리 모여 사니, 다른 사람들한테 '성 아랫것'이라는 비칭 낮춤말을 들었다.
그것은 부성 고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부 반촌의 마을에는 말을 꺼낼
것도 없고, 민촌이라 할지라도 그 마을 안에 버젓이 섞여 살 수는 없었다.
안에는 그만두고 언저리도 안되었다.
그래서, 매안을 바라보고 그 서슬 아래 살 것이면서도 그쪽으로는 감히 허리
들고 들고 지나갈 엄두조차 못 내고는 산 모롱이 하나를 꺾어서 한참이나 내려
와 돌아앉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리라.
그래도 민촌 고리배미까지는, 그보다는 좀 가까웠고, 길도 조옥 나있어 가기도
쉬웠으며, 서로 아득하게나마 바라보이기라도 하였다.
옛날에는 백정들이,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떼지어 떠돌아 다니면서 패악
한 짓을 많이 했었던가.
택주의 저 먼 몇 대 할아비 때 일인데, 방방 곡곡 흩어진 백정들을 조정에서
한꺼번에 모조리 조사하여, 서울과 각 지방에 골고루 나누어 배치를 했다고 한
다. 한 번만 그러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그렇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부를 작성했다.
각 고을에서는 백정의 거처를 한곳에 정해 주어 못박아 두고는, 그 사는 모양
을 엄격하게 감독하니, 어디로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고 일반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갈 수도 없이, 외딴 곳 이만큼에 떨어져 엎드려서 대대로 살아온 것이다. 사
람들의 마을은 멀었다.
하기는, 제 몸 제 살에서 나는 피도, 피는 끔찍하고, 살아 꼼지락거리는 목숨
은 개미 한 마리라도 무단히 죽여서는 안되는 것인데, 이 세상에 아직 나기도
전부터, 아비와, 아비의 아비가 오직 도살로 평생을 보내고 피 냄새에 살 가죽이
깊이 절어 버린, 그 아들은 또 어찌 그 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으며, 누구
라서 그런 무리를 어여삐 여기리.
우리나 우리끼리 비비고 살 뿐.
그래서 백정들 사이에서는 근친혼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거멍굴의 근심바우 아래 맨 처음 자리를 잡은 할아비는, 산천 경개 명당 산수
를 보고 이곳에 기둥을 박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무슨 연고가 있어 이곳으로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살라."
고 나라에서 말뚝을 박아 놓으니 여기서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택주네 붙이들이 오물오물 모여 앉은 대여섯 집 옆이 금생이네 '성냥간'이었
다. 대장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누구는 '불무간'이라고도 했다.
본래 짐승 잡는 일에 쓰이는 칼이나 도끼는 그 날이 조금만 무디어져도 안된
다. 늘 새파랗게 잘 들어야만 한다. 그런데 가죽을 벗기고, 그 큰 짐승의 고기를
다 썰고, 가르고, 발라 내느라면 아무리 잘 들던 칼도 대나무 잣대처럼 되고 만
다. 거기다가 뼈를 자르고 쪼는 일이며 온갖 자질구레한 일에 쓰이는 연장들은
이빨이 빠지거나 망가지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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