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타고난 기를 죽이지 않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가, 건춘문을 지키
는 갑사로부터 시작하여, 세조의 특채로 병조정랑이 되었다가, 세조 14년 무자년
에 문과 급제 장원을 하였다. 문과 급제후, 그의 벼슬은 자꾸 올라가 병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성종 24년 팔월에는 예조판서, 대사헌을 지낸 명신
성현과 더불어 악학궤범을 편찬, 완성하였다.
이렇게 조정에 굳은 기반을 가진 기성 세력 훈구파의 한 사람이었던 무령군 유
자광은 영남 출신인 사림파들과 항상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결국 연산군 4년에
는 무오사화를 일으키어 사림파를 한 손으로 쓸어 무참하게 죽이니, 조야에 적
이 많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일신으로만 본다면, 이일로 감히 누가 그 뜻을 어
기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위세를 떨치게 되어 큰 권력을 누리었다. 그가 나중
에 대간, 홍문관, 예문관의 탄핵을 받고, 훈작을 빼앗긴 채, 유배되어 쓸쓸한 적
소에서 처량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는 임서방도, 둘러앉은 사람 누구도, 아무도 하
지 않았다.
종의 자식이, 비첩 소생으로서, 감히 목숨이랄 수도 없는 천대와 멸시 속에서 거
스를 수 없는 신분의 폭포를 거슬러 뚫고 위로 치솟아, 혼자의 힘으로 등룡을
하고 하늘을 얻어, 조선 영웅 나라 고관이 다 모인 조정의 권좌 꼭대기에서 얼
자 출신이라고 탄핵도 많이 받았지만 끝내 다 이겨내고, 정승 판서로서 종횡무
진으로 한세상을 주무르며, 세조, 예조, 성종, 연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임금들을
모시어, 십 년을 두고 홀로 재상 노릇을 하였단다, 는 그 이야기만이 이들에게는
오직 꿈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우례도 그렁게, 유자광이를 나야 히여. 암먼. 그리 못헐 거 머 있어? 아니 꼭 그
렇게 되야야지. 임서방. 자네 막손이 만나그던 이런 이애기 꼭 일러 주소. 딸내
미한테 가서 말허라고. 유자광이를 나라고."
그러던 것이 벌써 십오륙 년 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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