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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군수가 적변을 겪던 이튿날 군민의 사상자를 조사하여 본즉 전망한 군사가
열세 명이요, 부상한 군사가 서른세명인데, 전망한 수에는 우병방이 가외에 더
잇고 부상한 수에는 죄병방이 한축 끼였었다. 좌병방은 어둔 밤에 목숨을 도망
하다가 돌부리에 채여 엎드러져서 팔 하나 분지른 것을 전장에서 부상한 양으로
군수를 속이었던 것이다.
읍내 백성은 군사로 뽑혀나간 사람 외에 사상이 하나도 없고 가사리 백성은
상한 사람이 열이고 죽은 사람이 열아홉인데, 죽은 사람 중에 사내가 박선달 삼
부자까지 여섯이고 젊은 여편네가 셋이고 그 나머지 열은 모두 세 살 안짝의 어
린아이였다. 죄없는 어린아이가 많이 죽은 것이 쇠도리깨 도적 곽오주의 행실로
드러났다. 군수는 군민의 사상을 자세히 조사한 뒤 곧 급족을 띄워서 포도청과
경기감영에 보하고 진관 주장인 인천부사에게까지 보하였다. 안성은 본래 수원
부 진관이었던 삼십여 년 전에 수원서 부모 죽인 강상 죄인이 난 까닭으로 부가
깎이어 군이 되고 진관은 인천으로 옮기게 되었었다. 안성군수의 보장이 서울
올라와서 조정에서 안성 적변을 알게 된 뒤, 이량이 위에 아뢰고 처분을 물어내
려서 조정 조처가 의외로 빨랐다. 포도청 종사관 하나가 부장과 군사들을 거느
리고 시급히 안성으로 내려오고 경기도 양성, 진위, 양지, 용인, 수원, 과천 등 여
러 고을에서 안성서 청석골로 가는 육로 길목을 지키고, 또 청홍도 아산, 당진,
서산, 해미, 결성, 남포 등 연해 각군에서 도적들이 수로로 도망하지 못하도록
떠나는 배를 기찰하였다.
안성군수는 곧 파직되고 대가 나기까지 진위현령이 겸관을 보게 되었다. 포도
군사들이 안성 와서 촌백성에게 행학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육로, 수로 길목에
서 관속들이 건뜻하면 행인들을 욕보이는데, 꺽정이의 수염 많은 것과 막봉이의
행보 잘못하는 것이 기찰하는 목표가 되어서 수염 좋은 사람과 걸음 변변치 못
한 사람에게 욕이 자심하고 말탄 양반, 소탄 양반도 군사들 눈에 거슬리면 욕들
을 당하였다. 허찬성의 손자요, 허승지의 아들인 양천 허교리가 음성땅에 왔다가
양천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용인읍내 근처에서 기찰하는 장교들에게 붙잡혀서 실
랑이를 당하였는데, 허교리가 말안장에 꽁무니를 벗겨서 말을 거북살스럽게 탄
것이 장교들 눈에 수상하게 보이어서 장교들이 말머리를 막고 내리라고 하니 허
교리는 화를 천둥같이 내고 호령질을 하였다. "이놈들, 눈깔이 멀었느냐? 내가
도둑놈으로 보인단 말이냐! " "누가 도둑놈이라구 합니까? 그저 잠깐만 내립시
오. " "너희가 하마하래서 하마할 사람이 아니다. 어서 저리 비켜라. " "안 내리
시면 길을 못 비켜 드리겠습니다. " 허교리가 마침내 할 수 없이 말께서 내려서
그 근처에 서처를 잡고 앉아서 용인현령에게 전갈하였더니, 현령이 허교리 대접
으로 장교들을 잡아들여다가 매 개씩 때린 뒤 허교리에게 내보내서 대죄들을 시
키었다. 허교리는 교가 대단한 사람인데 생외 처음으로 관속들에게 욕을 보고,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아니하여 대죄하러 온 장교들의 눈망울을 빼놓는다고 야단
야단 쳐서 장교들은 참말로 팔자에 없는 소경이나 애꾸가 되는 줄 알고 등골에
서 찬땀을 흘리었었다.
용인서 허교리가 당한 것보다 더 심한 일이 각처에서 비일비재로 있었으나 당
한 사람이 대개 만만한 상사람이거나 무세한 토반인 까닭에 당할 대로 당하고
말썽을 부리지 못하였을 뿐이었다.
이때 꺽정이 이하 청석골 두령들은 달골 구석에 가만히 있었던가. 그럴 리가
만무한 것은 누구나 다 짐작할 일이다. 꺽정이의 칠형제가 칠장사에서 결의하고
돌아오던 이튿날 낮에는 회정할 계책을 정하여 준비하고 밤에는 불상 장인이 송
장을 죽산 관문 앞에 갖다 놓았었다. 꺽정이가 북전교개서 송장을 옆에 끼고 올
때 송장이 주체궂은 데서 어째 우연히 관문 앞에 갖다 버릴 생각이 났다가 봉삭
이의 말을 듣고 고만두고 온 것을 서림이가 이야기로 듣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부추겨서 구경 갖다놓게 되었는데 목을 매서 두벌 죽음시킨 송장을 가지고간 사
람은 꺽정이요, 현감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사람은 서림이요, 또 편지 매인 화살
을 홍산 문설주에 쏘아 꽂은 사람은 이봉학이었다. 꺽정이와 봉학이가 죽산읍에
갔다 온 뒤 얼마 아니 있다가 날이 새었는데, 이날 새벽에 이봉학이와 배돌석이
와 곽오주가 한패로 먼저 길을 떠났다. 봉학이는 유신현 사는 윤선전이라고 가
칭할 작정으로 관인 복색을 차리고 말을 타고, 돌석이는 갓쓴 하인으로 길양식
자루를 걸머지고 말 뒤를 따르고, 오주는 말구종으로 벙거지 쓰고 흑의 입고 선
전 나으리의 활과 전동을 엇메고 견마를 잡았었다.
봉학이 일행이 달골을 떠난 것은 안성서 파옥한 뒤 사흘 되던 날이라 안성 소
문이 인근 읍에 퍼져서 행인에 대한 기찰이 바이 없지 않았으나, 그다지 까다롭
지 않아서 충주 윤선전의 행차로 서울까지 잘 오고 서울서 한온이를 만나서 임
진나루에는 벌써 포도군관이 내려갔단 말을 듣고 연천, 삭녕 등지로 길을 돌아
서 청석골까지 무사히 들어왔다. 박서방의 부녀와 능통이의 내권을 데리고 먼저
떠난 작은 두목 일행은 나흘 앞서 들어와 있고 달골서는 뒤에 떠나고 서울서는
한날 떠난 황천왕동이는 이틀 전에 들어와 있었다.
천왕동이는 장교 복색에 위조 장패를 차고 가짜 공문을 가지고 죽산서 감영으
로 올라간다고 서울까지 오고 서울 와서는 한온이의 도움을 받아서 정원사령으
로 복색을 고치고 평안감사에게 가는 도승지의 위조 서간을 가지고 기찰이 까다
로운 임진나루를 무사히 건너왔었다.
봉학이 일행이 떠나고 또 천왕동이가 떠난 뒤에 박유복이와 서림이가 한패로
떠났는데, 유복이는 가짜 상제가 되어서 상옷을 입고 서림이는 가짜 지관이 되
어서 쇠를 차고 구산하러 다니는 것같이 차리었었다. 달골서 떠나서 양지 구봉
산 줄기와 용인 보개산 줄기를 밟아왔을 때 연로에 인심이 소동되고 기찰이 심
하여지는 것을 보고 서울길을 피하고 안산으로 작로하여, 안산 오자산과 인천
소래산 줄기를 밟아나와서 인천 미라원 적당의 연신 있던 사람을 찾아서 만나가
지고 배를 주선해 달라고 청하여 풍덕 조강까지 배를 타고 와서 청석골로 돌아
왔었다. 다른 두령들은 이와 같이 다 먼저 청석골로 돌아오고 꺽정이는 막봉이
를 치료시켜 가지고 오려고 능통이만 데리고 달골에 떨어져 있게 되었는데, 다
른 두령 중에서 한둘이라도 꺽정이와 같이 떨어지지 못한 것은 꺽정이의 말을
꺾을 사람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서울서 내려온 포도군사들이 화적들의 들고 난
방향을 대중잡고 며칠 동안 안성서 가사면, 북좌면, 대문면 등 각 면을 수탐한
뒤 바로 죽산땅에 들어와 서면 각동을 수탐하되 가가호호 적간하다시피 하였다.
포도군사들이 노루목서 집을 뒤졌다, 참나무정이서 사람을 쳤다, 소문이 빗발
치듯 달골로 들어오니 꺽정이나 막봉이보다 능통이가 간을 졸이고 능통이보다
동네 사는 졸개들이 바늘방석에 앉은 것같이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졸개들이 능
통이를 보면 “잘못하면 몰사죽음하지 않겠습니까? ” “어떻게 하실랍니까? ”
“이대루 앉아 배기실랍니까? ” “무슨 좋은 도리가 있습니까? ” 하고 부산하
게 물어서 능통이는 이루 대답하기가 성가시었다. 능통이가 전 같으면 묻는 것
들을 윽박질러서 묻지 못하게도 하였겠지만, 위급한 즈음에 졸개들이 변심할까
염려하여 “걱정 마라. 아무 염려 없다. ” “일이 만일 급할 것 같으면 내가 어
련히 먼저 서둘겠느냐? ” 이런 말로 일일이 대답하여 안심들을 시키었다. 졸개
들이 능통이의 말을 듣고 안심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작 능통이는 안심할래야
안심할 수 없어서 꺽정이를 조용히 보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 하고
물으니 “글쎄,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나는 별루 생각한 것이 없네. ” 하고 꺽
정이가 대답하였다. 꺽정이는 그 동안 능통이와 친숙하여 외자하게 하도록 되었
던 것이다. “아무 도리 없이 앉았다가 포도군사들이 별안간 들이닥치면 어떻게
합니까? ” “아따, 포도군사가 오면 몇천 명이 오겠나 몇 백명이 오겠나. 겁낼
것 없네. ” “포도군사들 뒤에 몇천 명, 몇백 명의 대군이 들이밀는지 누가 압
니까? ” “몇천 명, 몇백 명의 대군이 지금 안성, 죽산에 둔치구 있다든가. ”
“나라에서 하려면 팔도 군사를 안성, 죽산으루 다 모아들일 수두 있지요. ” “
팔도 군사가 다 모여들수룩 우리는 여기 가만히 있나. 어디루 뛰지. ” “삼십육
계 줄행랑이 제일이라더니 포도군사들두 오기 전에 뛰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
" "어디 좋은 데가 있나? ” “특별히 좋은 데는 없지만 여기 버덤 안전할 듯한
데를 생각해보지요. ” “특별히 좋은 데가 없으면 급할 때 뛸 작정하구, 아직
여기 있어 보세. 섣불리 자리를 옮기다가 되려 해를 볼는지 누가 아는가? ” “
우리는 급할 때 뛸 작정하드래두 동네 아이들은 미리 다른 데루 보내야겠습니
다. ” “메주고개루 보낼라나? ” “모두 몰아서 청석골루 보내면 어떻겠습니
까? ” “지금 청석골루 몰려가기가 어렵지 않겠나. ” “우선 메주고개구 어디
구 다른 데루 보냈다가 나중에 청석골로 모이라지요. ” “그건 좋겠지. 고양 혜
음령 근처에두 보내둘 만한 데가 있네. ” “그럼 동네 아이들은 곧 헤쳐 보내
겠습니다. ” “아무리나 생각대루 하게. ” “불상장이의 무명을 동네 아이들에
게 노놔주어두 좋겠습니까? ” “내게 남은 것두 다 갖다가 함께 노놔주게. ”
능통이가 꺽정이와 의논을 마치고 나와서 곧 동네를 모이게 하였다. 동네랐자
이십 호도 못 되는 집이 한 도국 안에 모여있는 까닭에 그중 한복판에 있는 능
통이 집에서 소리를 조금만 크게 질러도 온동네를 모을 수 있었다. 동네 사는
졸개들이 능통이 집 바깥마당에 모인 뒤에 능통이가 나서서 동네가 무사하기 어
려운 형편을 대강 말하고 나서 동네를 비워버리고 우선 다른 데 가서 피신들 하
고 나중에 청석골로 모이라고 말을 이르니, 졸개들 중에 살던 데를 버리고 가기
가 섭섭하여 한숨을 짓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능통이가 이것을 보고 졸개들에
게 일일이 소원을 물어서 청석골로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소동이 진정된 뒤
에 다시 달골로 와서 살아도 좋다고 말하고 청석골로 갈 사람이나 달골로 다시
올 사람이나 차별 없이 똑같이 무명들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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