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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24)

카지모도 2023. 1. 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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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가 유복이와 형제를 맺은 뒤로 거의 한 장도막 한 번씩 청석골 산속을 들

어다니는데 처음에 오주 오는 것을 진덥지 않게 알던 오가의 식구들도 강가의

풍파를 같이 치른 뒤부터 모두 한집안 식구같이 정다워져서 오주가 올 때쯤 되

면 유복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오가의 식구들이 음식까지 유렴하여 놓고 기다

리었다. 새해 된 뒤에는 오주가 정초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을 먹고 가고

또 보름 전에 와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고 유복이가 양주 꺽정이 집에 가서 칠팔

일 있다 오는 동안에 한 번 와서 다녀갔었다. 그때 와서 말이 계집 하나 생기게

되었으니 생기거든 데리고 오마 하고 갔는데 그 뒤 벌써 두 장도막이 지나도록

다시 오지 아니하렸다. 유복이가 날마다 식전이면 "오늘은 이 자식이 오려나. "

하고 종일 고대하고 저녁때면 "이거 웬일일까. 오늘두 아니 오네. " 하고 성사삼

아 말하였다. 유복이가 몇몇번 개래동으로 찾아가려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게.

" "오늘 내일간 올 겔세. " 오가의 말을 듣고 그만두고 그만두고 하여 사오 일

지낸 끝이다.

이날도 한나절까지 오주 오기을 기다리다가 유복이가 오가를 보고 "이 자식

이 무슨 병이 난 거요. 그렇기에 이렇게 오래 안 오지. 내가 아무래두 개래동을

가보구 와야 속이 시원하겠소. " 하고 말하니 오가는 "가보려거든 가보게만 내

생각엔 병나서 못 오는 게 아니구 노총각 녀석이 계집맛에 반해서 헤나지 못하

는 것 같애. " 하고 웃었다. "그렇기만 하면 좋겠소. " “그럼 내 말이 틀리나 두

구 보게, 차부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나. " "장사는 병이 나지 말란 법

어디 있소? 하여튼 내가 가보구 오리다. "

유복이가 해 질 무렵에나 온다고 가더니 보리밥 한 솥 짓기가 못 되어서 오는

데 뒤에 오주가 따라왔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오가가 먼저 보고 나서서 유복

이를 보고 "길에서 만났네그려. 큰길까지두 채 못 나갔지? “ 하고 말한 뒤에 곧

오주를 향하여 "어째 그렇게 오래 아니 왔나. 어디 앓았나? ” 하고 물었다. "앓

기는 왜? “ "그럼 왜 아니 왔나? 자네 말투루 계집이 생겼나? ” "생겼어. " "

내 말이 어떤가. 맞지 않았나? “ 하고 오가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웃으니 유복

이는 오주에게 "네가 여편네에게 반해서 안 온다구 말씀하더라. 참말 반했니? ”

하고 말하며 웃었다. 안방에 들어앉았던 식구들이 어느 틈에 마루 끝에 나섰다.

"어서 올라들 와요. " 하고 오가의 마누라가 재촉하여 유복이와 오가가 오주를

중간에 끼고 마루로 올라왔다. 오가의 마누라와 유복이의 안해가 분분히 오주를

향하여 치하 인사를 마친 뒤에 여러 사람이 모두 안방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

으며부터 여러 사람이 오주의 장가 든 이야기를 듣고자 하여 구변 없는 오주가

과부 차지하게 된 곡절을 뒤죽 박죽 이야기하고 또 오가에게 졸려서 첫날밤 광

경까지 대강 이야기하였다. "지금은 찬 샘물에 뛰어들어갈 염려가 없겠니? “ 유

복이 묻는 말에 "이젠 그런 염려 없소. " 대답하고 "얼른 좀 만나보았으면 좋겠

어요. " 유복이 안해 말에 "그러지 않아두 같이 오려구 했더니 오기 싫다구 합디

다. " 대답하고 "소문난 과부면 얼굴이 이쁘겠소? ” 오가 마누라 말에 "이쁘구

말구. 튼튼했더면 더 좋을 뻔했소. " 대답하느라고 오주가 이 사람 돌아보고 저

사람 돌아보고 할 때 이때까지 싱글싱글 웃고만 있던 오가가 "여게, 오주? “ 하

고 불러놓고 "자네는 지금 여편네 맛이 단 줄루 알 테지만 그것이 본맛이 아닐

세, 여편네는 오미 구존한 것일세. 내 말할께 들어보려나. 혼인 갓해서 여편네는

달기가 꿀이지. 그렇지만 차차 살림 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여편네가 장아찌

무쪽같이 짭잘해지네. 그 대신 단맛은 가시지. 이 짭잘한 맛이 조금만 쇠면

여편네는 시금털털 개살구루 변하느니. 맛이 시어질 고비부터 가끔 매운 맛이

나는데 고추 당추 맵다 하나 여편네 매운 맛을 당하겠나. 그러나 이 매운

맛이 없어지게 되면 쓰기만 하니. " 하고 오가가 너덜거리는데 오가의 마누라

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었다.

오주가 오래간만에 올 뿐 아니라 장가 들고 처음 왔다고 오가는 그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말을 일러서 특별히 안주 장만하여 술대접을 하였다. 술상이

들어와서 순배가 도는 사이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고 "내가 이번에 양주 가서 술

을 많이 먹구 왔다. " 하고 말하니 오주가 "형님 술에 많이 먹으면 얼마나 먹었

겠소. " 하고 웃었다. "사람 셋이 사흘 안에 술 한 독을 다 들냈으니 무던히 먹

지 않았니. " "형님이 혼자 다 먹었다면 무던할까, 게다가 형님은 제일 적게 먹

었겠지. " "적게 먹은 게 다 무어냐. 아마 제일 많이 적었을 게다. 꺽정이 언니는

술이 고래지만 친환 핑계하구 몸을 사리구, 천왕동이는 술이 나만 못하니까 내

가 자연 많이 먹게 될 것 아니냐. " "나두 장 꺽정이란 이가 보구 싶은데 형님

왜 날 안데리구가우. 이 담갈때는 꼭 같이 갑시다. " 유복이가 대답하기 전에 오

가가 말참례하고 나섰다. "양주 술을 먹어보구 싶은가? “ "양주 술은 별난 술이

오? ” "술 먹은 이야기 끝에 양주를 가구 싶다니 말일세. " "왜 내가 전엔 가구

싶단 말 아니했나? 지난번 형님 갈 때두 내가 알았더면 따라갔을 텐데. " "아닌

게아니라 꺽정이 봉학이 말은 박서방에게 하두 귀따갑게 들어서 나두 보구 싶

어. 이 담 자네들 갈 때에 나두 한몫 보세. " 오가의 말끝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

고 "꺽정이 언니가 너 잘 있느냐구 묻더라. " 하고 안부를 전하였다. "내가 보구

싶어한단 말두 했소? “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네 말이 많이 났었으니까. "

"형님, 대체 꺽정이란 이가 내 맘에 들겠소 어떻겠소? 나는 보구 싶어두 보구 나

서 맘에 안 들까봐 걱정이오. " "그건 만나봐야 알지. 그렇지만 맘에 들구 안 들

구 그 앞에선 고개가 절루 숙을게다. " "형님의 형님이니까 고개 좀 숙여줘두 좋

지 뭐. " "그가 이번에 나하구 같이 오려구 하다가 그 아버지 병이 더쳐서 병이

조금 낫는 걸 보구 한번 놀러온다구 했다. " "언제쯤 온다구 했소? ” "오게 되

면 그믐 초생 온다구 했다. " "두어 장도막만 더 있으면 오겠구려. 오거든 곧 내

게 알려주우. " "오기만 하면 알려주다뿐이냐. " "그가 여기 길을 알까? “ "탑고

개서 들어오는 길을 자세히 말하구 목표까지 다 가르쳐 주었으니까 오려면 찾아

을 수 있겠지. " 유복이가 오주와 수작하던 것을 그치고 오가를 돌아보며 "이번

술 해넣을 때는 좀 나우 해넣는 것이 좋지 않겠소? ” 하고 말하니 "자네의 약

삭빠른 장모가 자네 말을 기다리겠나. 벌써 며칠 전에 청주 술밑까지 해넣었다

네. " 하고 오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오지 아니하면 낭패로구려. " "무슨 낭패

? 우리가 두구 먹지. " 두 사람씩 서로 수작하는 중에도 가끔 세 사람이 함께 어

울려 말할 때가 없지 않았지만, 술기운들이 돈 뒤에는 세 사람이 서로 앞을 다

투어가며 지껄이어서 방안이 떠들썩하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술상이 끝이 났

다. 전 같으면 오주가 저녁까지 눌러 먹을 것인데 저녁을 먹지 않고 간다고 일

어서니 "이왕 늦었는데 저녁 먹구 가려무나. " 하고 유복이는 붙들고 "집에 가서

두 내외 재미있게 같이 먹게. " 하고 오가는 조롱하였다. 오가의 마누라가 "여보

게 박서방, 나 좀 보게. " 하고 유복이를 밖으로 불러내서 몇 마디 소곤소곤 말

하더니 유복이가 빙그레 웃으며 방으로 들어와서 "저녁은 안 먹드래두 잠간 더

앉았거라. " 하고 오주에게 말하였다. "왜 그러우? “ "우리 장모가 너를 주어

보낼 게 있다신다. " "무어요? ” "네가 새 살림에 장건건이두 군조러울 것이라구

간장 된장을 좀 준다신다. " "그거 참 고맙소. "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의 인정도

인정이려니와 유복이의 뜻을 살펴서 간장 장군과 된장 동이 이외에도 조금

조금한 살림제구까지 주어서 오주는 한 짐 꿈어지고 돌아왔다.

정첨지가 부모 산에 소나무를 가꾸기 겸 숯을 묻으려고 소나무 사이에 선 참

나무를 작벌시키었다. 정첨지 아들은 발매터에 나오는 것이 아비의 눈가림이라

공연히 빙빙 돌다가 꾀죄로 빠져 들어 가고 정첨지는 아들과 달라서 소나무 다

치지 않게 해라, 우죽 허실 안 되게 해라, 잔소리가 심하지만 칠십 넘은 늙은이

라 줄곧 서서 돌아다니지 못하므로 오주가 저의 일을 해가며 틈틈이 남의 일까

지 간검하느라고 분주하였다. 저녁때가 되어서 다른 일꾼들이 일을 마치고 각기

돌아간 뒤에도 오주는 떨어져서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까닭에 해 진 뒤에야 돌

아오게 되었다. 발매 시작되던 이튿날 저녁때 오주가 발매터에서 돌아와 보니

유복이가 정첨지 집 머슴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형님 오셨구려. 언제 오셨소?

“ ”온 제 한참 되었다. 얼른 저녁 먹구 나하구 같이 가자. " "무슨 일이 생겼

소? “ "우리 언니가 오늘 왔다. " "같이 갑시다. 그렇지만 나는 내일 새벽 도루

와야겠소. " "왜 내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니? ” "주인집에서 엊그제부터 발매

를 시작했는데 와서 봐줘야지. " "주인더러 말하구 가자꾸나. 우리 언니두 바쁜

일이 있어서 모레는 간다니 내일 하루 같이 놀다 헤어지면 좋지 않겠니. " "그렇

게 속히 간다우? 내가 주인더러 말하구 나오리다. " 오주가 곧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밥 먹는 정첨지의 부자를 보고 "내가 의형님한테 갈 일이 생겨서 내일 하루

일 못하겠소. 내일못 하는 오력으루 모레 와서 동값하리다. " 하고 말하니

정점지는 대뜸에 "자네가 없으면 일이 되나? “ 하고 상을 찡그렸다.

"젊은 주인이 하루만 잘 돌아보면 되지 않소. " 정첨지가 말하기 전에 그

아들이 선뜻 "그렇게 하게. " 하고 허락하였다.

"내가 가봐서 내일 밤에 오거나 모레 식전 오리다. " "어둔 밤에 올 거

무어 있나. 모레 오게 그려. " "그러면 더욱 좋소. " 정첨지는 아들을 홀겨보며 "

그 자식, 장이 선선하다. " 하고 나무라는데 오주는 "이런 때는 우리 젊은 주인

같이 좋은 사람이 없어. ” 하고 껄쩔 웃고 곧 부엌에 가서 저의 밥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인제 우리 집에 가서 밥 한술 떠먹고 갑시다. " "나는 시장하지

않지만 잠깐 가서 인사나 하구 갈까. " "암, 인사두 해야지. " 오주는 유복이를

끌고 저의 집으로 와서 큰소리로 "여게, 우리 형님 오셨네. " 하고 방문을 왈칵

열었다. 오주의 안해가 누워 있다가 깜빡 놀라서 일어나며 나직한 목소리로 "어

디 형님이 오셨소? “ 하고 물으니 "어디 형님이 무어여? 늘 말하던 우리 의형

님이지. " 하고 오주는 곧 뒤를 돌아보며 "들어 갑시다. " 하고 유복이와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주의 안해가 유복이에게 절인사를 마친 뒤에 곧 밖으로 나

가려고 하니 오주가 "어디를 갈라나? " 하고 물었다. "밥을 지어야지요. " "찬

밥 남은 거 없나? " "찬밥은 있소. ”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지구 온 더운밥은 형

님 드리구 우리는 찬밥 먹세. " "장찌개두 없는데 어떻게 하오? “ "있는 대루

먹지, 얼른 먹구 가야겠네. " ”어디를 갈라오? “ "형님하구 같이 갈 테여. 내일

모레나 오겠네. " 오주의 안해는 방구석에 덮어놓았던 반찬 그룻과 찬밥 그릇을

내놓은 뒤에 부엌으로 물 뜨러 나갔다. "네겐 과하두룩 얌전하다. " "나는 얌전

한 계집 데리구 살면 못쓰우? ” "누가 못쓴다나. 그렇지만 네게 대면 너무 약해

보인다. " "그래 약해서 탈이오. " 물까지 떠다 놓고 밥들을 먹게 되었는데 오주

의 안해는 오주가 "같이 먹세. " 하고 숟갈을 집어 줄 뿐 아니라 유복이까지 "나

는 조금 먹을 테니 더운밥을 같이 먹읍시다. " 하고 권하였건만 나중에 먹는다고

같이 먹지 아니하였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발에 익은 길이라 오주와 유복이는 거침 없이 걸어서

초경이 지나기 전에 청석골을 들어왔다. 오가의 집마당에는 화톳불이요, 마루 끝

에는 등롱이요, 안방에는 대심박이 촛불이 밝아서 한다하는 부자집에서 밤잔치

하는 것 같았다. 오가의 마누라는 마루에서 유복이의 안해와 계집아이년을 데리

고 주식을 준비하고, 오가는 안방에서 꺽정이와 천왕동이를 대하여 경력을 이야

기하는 중이었다. 오가의 마누라가 유복이와 오주가 대문 안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곧 고개를 방 편으로 돌리며 "인제들 오는구먼요. “ 하고 소리쳐서 선통하

니 오가가 아랫목 위쪽 바라지문을 열고 머리를 내어밀며 "어째 이렇게들 늦었

나? ”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유복이가 오가의 말에 대답하는 동안 오주는 오

가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인삿말을 마치고 유복이와 같이 윗목 지겟문으로

안방에를 들어왔다. 지겟문 편을 향하고 앉은 총각은 얼굴이 해사하고 아랫목에

오가와 느런히 앉은 사람은 얼굴이 영특하고 수염이 숱하였다. "저 털보가 꺽정

이란 이요? “ 하고 오주가 유복이를 돌아보니 "버룻 못 배운 사람이란 할 수

없네. 처음 뵈입는 터수에 면대해서 이름 부르구 게다가 별명까지 짓는단 말인

가. " 하고 오가가 웃으면서 오주를 책망하였다. "자, 오주의 절을 받으시우. "

하고 오주가 너푼 절 한번 한 뒤 바라지 앞에 모꺾어 앉은 유복이 옆에 자리에

와서 앉았다. 유복이가 맞은편 앉은 총각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황천왕동이다.

인사해라. " 하고 오주를 돌아보니 오주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자네가 걸음을

잘 걷는다지? ” 하고 말을 붙였다. "내게두 절이나 한번 하게. 나두 나이 자네

버덤 많아. " 하고 천왕동이는 나이를 자세하고 "나는 인제 어른이야. " 하고 오

주는 어른을 내세우다가 나이와 어른을 비겨버리고 두 사람은 곧 서로 너나들이

를 하였다. "요전에 들으니까 너두 총각이라더니 언제 상투를 끌어올렸니? 그건

박서방처럼 외자나 아니냐? " "오죽하니 외자상투를 올릴까? “ "어떤 팔자 험

한 여편네가 저런 쇠도둑놈 손에 잡혔을까. " 오주가 천왕동이 말을 대꾸하기 전

에 오가가 "아닌게아니라 오주 안해가 팔자 험한 사람이야. " 하고 말자루를 차

지하고 나서서 오주의 안해 얻은 곡절을 한바탕 늘어지게 이야기하였다. 오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유복이가 "참말루 얌전합디다. " 하고 오주 안해를 칭찬하니

오가는 "저 사람하구 같이 앉았는 것이 백로가 까마귀하구 짝지은 것 같든가. "

하고 웃고 오가의 말끝에 천왕동이는 "횐 비둘기하구 시커먼 곰 새끼하구 같이

앉은 것 같을 테지. " 하고 웃었다. 오가와 천왕동이가 받고채기로 오주를 시달

리는 판에 꺽정이가 "모처럼 서로 만나서 실없은 소리로 밤을 보낼 테야. "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고사하고 오가까지 움찔하여 입을 다물었다. 오주가 꺽정이

를 바라보며 "우리 형님이 형님이라니까 나두 형님이라구 하우. " 하고 싱글벙글

웃고 나서 "형님, 작년에 전장에 갔었다지요? ” 하고 물었다. “그래. ” "전장

이야기 좀 들읍시다. " "나는 구변이 없어서 이야기를 잘 못하네. 이 담 이봉학

이란 이를 만나게 되거든 이야기를 듣게. " "활 잘 쏘는 이 말이오? 그래 지금

어디 있소? “ "전라도 전주 감영에 있네. " "감영이라니 감사 있는 데지요? 거

기서 무엇 하우? " "벼슬 산다네. " "감사 노룻 하우? ” "감사 아래 있는 비장

이라네. " "난리 친 공으루 그런 벼슬 했소? “ "그런 셈이지. " "형님은 왜 벼슬

안 했소? ” "그런 벼슬은 주어두 싫다. " 이때 오가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술들

자시며 이야기합시다. " 하고 곧 바라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술상을 재촉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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