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가 정첨지 집에 와서 몸져 눕는 길로 곧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앓았다.
정첨지는 며느리 시켜 구호를 극진히 하게 하고 과부 누운 아랫방에 여편네 한
둘은 밤낮 떠나지 않도록 하고 사내는 누구든지 범접 못하게 하였다. 정첨지의
며느리가 정첨지보고 "앞으로 과부를 어떻게 하실랍니까? " 하고 의향을 물으니
정첨지는 자기 마음에 작정한 대로 "병만 낫거든 곧 저의 집으루 보내줄 테다. "
하고 말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이 말을 전청으로 듣고 몸이 달아서 구변 있는
동네 늙은이 하나를 중간에 놓고 아비 의향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정첨지 아들
의 청을 받은 늙은이가 정첨지 집에 와서 겉으로는 그저 놀러온 체하고 정첨지
와 같이 담화하는 끝에 과부 말을 끄집어냈다. "그 과부가 병이 났다더니 대단치
나 않은가? “ "웬걸, 대단해. 아직까지두 인사 정신을 모른다네. " "병이 나은
뒤에 또 풍파가 없을까? ” "저의 집으루 보내버리면 고만이지 무슨 풍파가 있
어. " "업어온 과부를 돌려보내는 법이 어디 있나? 자네 며느리 안 삼을라거든
내나 주게. 내 며느리 삼아보세. " "이 사람이 뉘 지기를 떠보는 셈인가? “ "실
없은 소릴세, 골내지 말게. 그렇지만 과부를 업어왔다 도루 보내면 그 집에 재앙
이 있다데. 빈말이라두 좋을 것 없지 않은가? ” "그런 말이 어디 있나. 나는 듣
지 못했네. " "그런 말이 있어. 자네가 못 들었지. 다른 사람을 내주더라두 도루
보내진 말게. " "내 딸인가, 내 맘대루 내주게. " "그러구 과부를 업어오거나 동
여오는 것이 흔한 일 아닌가. 큰 변고처럼 여길 것 무어 있나. " "누가 큰 변고
라든가? " "자네가 큰 변고처럼 집안에서 야단을 친다며? " "자식이 집안 망할
짓을 하면 누가 야단 안 치겠나. " "집안 망할 짓까지는 과한 말일세. 젊은 사람
들의 일시 장난이지. “ "장난이 다 무언가. 제 기집이 새파랗게 젊은데 왜 남의
집 과부를 업어오나. " "여보게, 우리들 젊었을 때는 그만 장난 아니했나. 우리
늙은 사람들이 젊은 축에게 너무 까다롭게 굴 것 아니니. " "이 사람, 남의 집
외아들이 제 명에 죽지 못하는 것을 보구 싶은가. 에이 사람. " 하고 정첨지가
증을 벌컥 내서 그 늙은이는 다시 말 못하고 얼마 동안 무료하게 앉았다가 일어
섰다. 그 늙은이가 정첨지 집에서 나가는 길에 정첨지 아들이 곽오주와 같이 고
샅길에 나와 섰다가 보고 쫓아들 왔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 "자네 귀에
좋은 소식 들려주려다가 공연히 내 코만 떼구 가네. " 정첨지 아들이 대번에 오
만상을 찡그렸다. 오주가 "좋은 소식이 무슨 소식이오? “ 하고 늙은이보고 물으
니 "자네가 찬물 속에 들어가서 인명을 구한 상급으루 자네 주인이
이쁜 안해 하나 구해 준다는 소식이 있네. 이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가. " 하고
늙은이는 껄껄 웃었다. 오주가 "예끼" 하고 늙은이에게 삿대질하고서 어서 가자
고 젊은 주인의 손을 끌었다.
정첨지 아들이 오주와 같이 오는 길에 그 과부를 도로 보낼 바엔 차라리 오주
를 내주어 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 과부를 가까이 두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과 과부가 밉살스러워서 욕보이고 싶은 생각과 귓속에 남아 있는 늙은이의
실없은 말이 한테 얼기설기한 중에 이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여보게 오
주, 과부를 자네 줄 테니 어떤가? “ "나더러 데리구 살란 말이지. " "그래. " "
안해가 있으면 살림할 집이 있어야지. " "그건 염려 말게. " "집이나 살림 제구는
내가 다 주선해 줌세. " "그러면 좋지. 싫을 것 무어 있어. 그렇지만 주인 영감이
나를 줄라구? ” "영감쟁이가 내 생각엔 자네는 줄 것 같애. 하여간 지금 가서
말을 비쳐보세. " 정첨지의 아들이 집에 와서 아비를 보고 과부를 오주 내주자는
의취로 말을 비쳤다. 정첨지는 과부를 돌려보내면 집에 재앙 있단 말을 꼭 곧이
들은 것은 아니나, 마음에 꺼림칙하여 하던 터이라 곧 오주를 불러 세워놓고 "과
부가 병 나은 뒤에는 너를 내줄 테니 네가 도루 업어다 주거나 차지를 하거나
맘대루 해라. " 하고 말하여 오주는 선뜻 "녜. " 하고 대답하였다.
일시 위중하던 과부의 병이 며칠 뒤에 대세는 돌렸으나 정신기가 나며부터 죽
기를 기쓰고 약이나 미음을 받아먹지 아니하였다. 과부가 자몽하여 자는 것같이
누워 있을 때 정첨지 며느리가 미음을 가지고 와서 가만가만 몸을 흔드니 과부
는 눈을 잠깐 떠보고 곧 도로 감았다. "여보, 미음 좀 마시오. " "그렇게 안 먹으
면 병이 낫지 않소. " "우리 시아버지 말씀이 임자가 병이 나으면 곧 집으로 보
내주신다는데 얼른 병이 나아야 집에를 가지 않소. 집에를 가고 싶기 않소. 왜
아니 먹소. " 과부가 눈을 다시 뜨고 정첨지 며느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 미음을 달래서 마시었다.
과부의 병이 나날이 나아갔다. 대세를 돌린 지 사오 일 만에 머리를 들고 일
어나서 소세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첨지 며느리를 붙들고 집에 가게 하여
달라고 졸랐다. "신뱃골이 여기서 삼십 리라도 사십 리나 된다는데 지금 걸어가
려면 갈 수 있겠소? 조금 소복된 뒤에 보내주신다니 아무 소리 말고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리오. " 과부가 이 말을 믿고 잠자코 다시 수일 지나는 동안 날마다
방안에서 서성거리며 다리에 힘을 올리었다. "인제는 사십 리 아니라 팔십 리라
도 걸어갈 것 같으니 내일쯤 집에 가도록 해주시오. " "내가 이따 말씀해 보리
다. " 정첨지 며느리가 과부의 청하는 뜻을 정첨지에게 말하여 허락을 받았다.
과부가 내일은 자기 집에 가게 될 줄 믿고 초저녁부터 밤 가기를 졸이고 앉았
을 때 밤에 와서 같이 자는 동네 여편네가 빙글빙글 웃으며 들어와서 "잠동무도
고만이요그려. " 하고 말하니 과부는 자기가 내일 가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거니
짐작하고 "글쎄, 섭섭하오. " 하고 인사 치레로 대답하였다.
그 여편네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정첨지의 며느리가 와서 정첨
지의 말을 전하였다. 그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이 데리고 갈 사람을 한 사람
부탁해 놓았으니 그 사람의 집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
이 같은 여편넨가요? “ "모르겠소. 가보면 아실 테지. " 정첨지가 부탁했으면
그만이지 자기더러 가서 만나보랄 것이 무엇인가. 의심이 더럭 나나 지낸 곡경
보다 무슨 더 큰 곡경이 앞에 있으랴 생각하고 과부는 여러 말 않고 곧 "하라시
는 대로 하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지금 나하구 같이 갑시다. " 앉아 있
던 동네 여편네가 일어서니 과부는 정첨지 며느리에게 곧 다녀오리다 인사하고
동네 여편네의 뒤를 따라나섰다. 정첨지 집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있는 오두막
집이다, 집안은 괴괴하고 방안의 불빛은 희미하였다. 동네 여편네가 과부를 데리
고 와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방안에 사람도 없고 물건도 없었다.
아랫목 편에 놓인 헌 이불 한 채와 벽에 걸린 등잔거리곧만 없으면 알뜰한 빈방
이었다. "사람이 없으니 웬일이오? ” "오겠지요. " "다른 데서 온단 말이오? “
"있을 줄 알았더니 어디 잠간 나간 게요. " "밖에서 기다립시다. " "치운데 어떻
게 밖에 서서 기다리나요? 나두 들어갈 테니 들어 갑시다. "
이 방에 들어가는데 무슨 곡절이 붙은 줄은 과부가 확실히 짐작하였으나 하회
를 두고 볼 작정으로 그 여편네와 같이 방안에 들어 왔다. 정첨지 아들놈이 무
슨 흉계를 꾸며서 자기를 함정에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면 그 아비
는 모르지만 그 계집까지 한통이 될 리 있을까, 그 계집은 속아서 모르는가, 이
런 생각이 과부의 머릿속에 떠올라서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앉았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시커먼 쇠도둑놈 같은 사내가 방안에 들어섰다. 동네 여편네가 그
사내를 보고 "곽도령이 어느 틈에 곽서방이 되었어? “ 하고 웃으니 그 사내는
"오늘 아무렇게나 끌어올렸소. " 하고 역시 웃었다. 그 여편네가 과부를 보고 "
이 사람이 같이 가실 사람이오. " 말하고 곧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과부가 여편네
보다 앞질러 나가려고 하는 것을 그 사내가 덥석 끌어안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
였다. 과부는 소리개에 채인 병아리밭이 꼼짝 못하고 발발 떨었다.
오주가 과부를 방 한중간에 앉히고 자기는 등으로 방문을 가로 막고 앉았다.
오주는 숫기 좋은 사람이건만 평생 처음으로 젊은 여편네와 단둘이 한방에 들어
앉으니 어째 겸연쩍은 생각이 나서 꿀 먹은 벙어리같이 앉아 있고, 과부는 숨만
쌔근쌔근하고 돌로 새긴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오주가 처음 상투 올리는 날 행
세로 빌어 쓴 망건이 머리에 테를 메운 것 같아서 훌떡 벗어버리고 머리 뒤를 긁적
긁적하였다. 오주가 우선 과부와 성명이나 통하려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말은 하
게를 안 쓰고 끝 없는 반말을 썼다. 오주는 총각 대접으로 하게하는 사람들에게
일쑤 반말질하여 반말을 잘하는 터이었다. "나는 성은 곽가구 이름은 도주구 나
이는 스물다섯이구 고향은 강령인데 정첨지 집에서 머슴을 살아. 임자는 성은
무어구 이름은 무어구 나이는 얼마여? “ 말을 한마디 한마디 줍듯이 말하며 오
주가 연해 과부의 얼굴을 바라보니, 묻는 말에 대답은 고사하고 하는 말을 듣지
도 않는 것 같았다. "우리 주인이 나더러 임자하구 같이 살라는데 내 맘엔 좋지
만 임자 맘에 어떤지, 임자가 나하구 같이 살기 싫다면 나두 굳이 같이 살자지
않을 테니 싫거든 싫다구 말해. " 오주가 과부의 말을 들으려고 한동안 기다리었
다. "나는 아직두 총각이구 임자는 젊은 과부니까 같이 살기 싫을
것 없겠지. 또 같이 살다가두 언제든지 싫다기만 하면 내가 두말 않구 갈라설
테니 그때 임자가 신뱃골 가서 도루 과부 노릇하면 고만 아니여. " 오주가 또다
시 한동안 기다리었으나 과부는 입을 겹겹이 봉한 사람같이 말 한마디 아니하였
다. 오주가 선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혼잣말하듯 "고만 자보까. " 하고 일
어나 아랫목에 가서 흩이불 쪽을 펼치었다. 그림같이 앉았던 과부가 번개같이
일어나서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려다가 한 발도 채 내미디기 전에 오주 손에
붙잡혔다, 오주가 한 손으로 열린 방문을 닫은 뒤에 "누구를 또 찬물에 들어가게
할라구. " 하고 껄껄 웃으면서 과부를 어린아이같이 번쩍 안아 들고 아랫목 자리
로 왔다. 과부는 손이 있어도 손을 놀리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발을 놀리지 못
하고 등신이나 다름이 없이 되었다.
남자는 잠이 들며 곧 코를 고는데 여자는 눈만 감고 있었지 잠이 들지 아니하
였다. 무서움과 슬픔과 분함이 모두 작이 넘었다. 남자 잠자는 틈에 방문 열고
도망할 생각이 들지 못할 뿐 아니라 손끝 하나 꼼짝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닭을 여러 홰 울린 뒤에 잠 같지도 않게 잠이 잠깐 들었다가 꿈 같지
도 않게 꿈을 하나 꾸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험악한 산길을 걸서가는데 뜻밖에 어린아이 우는 소
리가 귀에 들렸다. 소리가 어디서 나나 하고 둘레둘레 돌아보니 커다란 굴 속에
갓난아이 하나가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굴 속으로 쫓아들어가서 그 아
이를 안고 보니 이때까지 사람의 아이던 것이 곰의 새끼로 변하였다. 깜짝 놀라
서 내던지고 한번 살펴보니 여전히 사람의 아이라 다시 안아보려고 할 즈음에
난데없는 시커먼 곰 한 마리가 와서 아이를 빼앗아 안고 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곰이 무서워서 얼른 나가지 못하고 굴 속에 서 있는 중에 굴 안이 털썩 무너져
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여자가 잠이 깨었는데도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뜨고 보
니 꿈에 보던 곰의 다리와 같은 남자의 팔이 가슴 위에 와서 얹혀 있었다. 그
팔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아서 들어 내려놓지 않고 몸을 비키어 이불 밖으로 나가
려고 하는데 팔이 움직이는 바람에 팔 임자가 잠이 깨어서 이불 밖에 나간 몸을
그 팔로 끌어들였다. 날이 새며 남자는 곧 일어나고 여자는 머리를 싸고 누워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이날부터 사흘 되는 날까지는 여자가 먹도 않고 줄곧 누
워 있었고, 사흘 되는 날부터는 오주가 주인의 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우격다
짐으로 먹여서 할 수 없이 조금조금 먹고 잠간잠간 일어 앉기 시작하였고, 십여
일 지난 뒤에는 부엌에 내려가서 둘이 먹을 밥을 짓게까지 되었다. 동네 사람들
이 이것을 보고 여자를 비웃어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으나, 연분은 할 수 없
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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