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여기, 용을 그리다가 말었네. 마저 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오니라. 식 혜나 한 그릇 먹자. 이얘기는 그때 허기로 하고." 기응은 꼭지연을 강모 쪽으로 밀어 주며 그렇게만 말하고 나갔다. 기응이 나 간 뒤, 벼루를 끌어당겨 붓을 적시었으나, 도무지 머리 속이 어수선하여 용이고 무엇이고 마음에 없었다. 그래서 나와 버렸다. "다 되얏네요. 이리 주시지요." 안서방은 부레풀에 개어 넣던 사기가루를 털며 강모의 손에 들고 있는 자새를 달라고 한다. 손바닥에서 푸르르 가루들이 반짝이며 날아 떨어진다. 어느새, 짧 은 겨울 해가 설핏 지려고 한다. 지대가 높은 산 밑의 집이라 그늘이 드리워지 기 시작하고 있다. "마님 지싱가... ." 대문을 들어서는 것은 아랫몰에 사는 타성 두 사람이다. 아마 세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