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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45)

카지모도 2023. 3. 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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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쪽땅 구십여 리 폭원에 대정이 서쪽에 있고 정의가 동쪽에 있으니

정의읍에서 보면 국내에 이름높은 한라산이 서로 이십 리요, 신선의 놀이터라는

영주산이 북으로 사 마장이며 동으로는 성산포가 이십오리인데 해수 많이 모이

는 우도가 가까이 있고 남으로는 바다가 칠 마장인데 호호망망한 남해가 가이없

다. 산에서는 희귀한 약재가 나고 바다에서는 풍부한 해물이 나건마는 백성은

살기가 간구하였다. 토지가 대개 돌서덜밭인데 농구가 변변치 못하여 밭벼, 서속

같은 곡식이 소출이 적고 잠수질로 해의, 전복 등속을 따고 낚시질로 은구어, 옥

두어등속을 잡으나, 그물 같은 좋은 어구를 쓸줄 모르고 사내가 적고 계집이 많

은 곳이라 사내는 놀리고 계집이 일하는 것이 풍속인 까닭에 여름살이도 주장

계집의 일이요, 고기잡이도 역시 계집의 일이오, 잠수질은 특별히 계집의 장기

로 쳐서 바닷속에 깊이 들어가는 딸이라야 여의기가 손쉬웠다. 계집의 덕으로

먹고 사는 백성들이 다른 침해만 아니 당하여도 오히려 잘 살 수가 있지만, 관

장도 침해하고 관속도 침해하고 더욱이 도지관 벼슬을 세습하는 고씨, 문씨의 붙

이들의 침해가 자심하여 밭 뺏고 세간 뺏는 건 고사하고 사람을 잡아다가 사내

종, 계집종 같이 부리되 인록이라고 자기네 받을 녹과 같이 여기었다. 고된 신역

으로 겨우 식구 입에 풀칠을 하는 신세니 물건 지고 다니는 계집의 노래가 자연

구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건을 머리에 이지 않고 곡식을 방아로 찧지 않는

것이 역시 이곳의 풍속이었다. 백성들이 간구하니 읍 모양도 보잘것 없었다. 사가

에 와가 없는 것은 말할 것 없고 관가까지 초가라 정의현감의 동헌은 전주부내

잘 사는 집의 안마루 폭도 못 되었다. 동헌은 오히려도 번듯하지만 내아는 더구

나 말 못 되어서 내아라고 부르는 것이 외람스럽게 들릴 만하였다. 봉학이는 정

의현감 도임하기 전에 골 이야기를 많이 들어둔 까닭에 다소 눈에 설 뿐이지 마

음에 놀랄 것까지는 없었지만 전주부중에서 나서 전라감영에서 기생 노릇하던

계향이는 참말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아가 누추한 것은 마음에

시쁠 뿐이지만 뱀이 유난히 많아서 돌담 위로 날마다 기어다니는 것도 뱀이요,

마루 앞처마에서 이따금 떨어지는 것도 뱀이라 끔찍스럽기 짝이 업는데 본토 사

람들은 뱀을 영물로 위하여서 죽이지 못하고 모기가 입을 봉한다는 처서 지난

지가 벌써 오래건만, 이곳은 아직도 해만 설핏하면 처마 앞에 모기진이 새까맣

고 또 거짓말 좀 보태면 지네가 자가 넘고 거미가 손바닥만하여 무섭고 징그러

워서 몸에 소름까지 끼칠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밤에 지네 한 마리가 방안에 들

어와서 계향이는 관비들을 데리고 지네를 잡느라고 북새를 떠는 중에 봉학이가

내아에 들어왔다. 관비들이 지네를 잡고 물러간 뒤에 계향이가 봉학이 옆으로

다가앉으며 “여기 어디 오래 있겠세요?” 하고 새심스럽게 몸서리를 치니 봉학

이가 “지네 무서워 못 있겠단 말인가.” 하고 웃었다. 봉학이가 정의에 도임한

후로 계향이를 대접하여 전과 같이 해라를 아니하였었다. “지네뿐인가요?” “

그럼 또 무어?” “뱀은 무섭지 않은가요.” “오래 못 있겠단 말이 참말인가?

” “나으리는 오래 기시고 싶소.” “내말은 할 것 없구 진정으루 여기 있기

어렵다면 전주루 도루 보내주지.” “나으리는 여기 기시고?” “내야 벼슬 갈

리기 전 여기 있어야지.” “빈말씀이라도 그런 말씀을 어떻게 하시오.” “왜

못할 말인가?” “어딜 가든지 둘이 떨어지지 말자던 말씀은 벌써 잊으셨소?”

“나두 할 말 있어. 나를 따라가면 칼산지옥이라두 무섭지 않다구 말한 사람은

누구든가.” “내가 오래 못 있겠단 말은 잘못한 말이니 용서하세요.”계향이가

싹싹하게 사과하니 봉학이는 웃으면서 “이 다음에 다시 그런 말 하지 말게.”

하고 일렀다. 봉학이도 속으로는 계향이와 같이 정의에 오래 있고 싶지 않지마

는 벼슬이 옮기거나 떨어지기까지 있고 싶지 않아도 있어야 할 처지라, 계향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막는 것이 곧 자기 속에 움직이는 맘을 누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봉학이는 이감사의 부탁대로 선치수령이 되려고 빼물었다. 봉학이는 무

변이라 먼저 무비에 힘을 썼다. 읍성을 수축하고 병기를 수선하고 대수산, 오소

포, 서귀포의 방호소와 수전소를 가끔 나가 순시하고 현내에 있는 열군데 봉화

대에 각각 다섯 패로 번을 서는 봉군들을 각별히 신칙하고, 사흘에 한번 좌우

병방 이하 장교들을 모아서 활을 쏘이되 한 달에 한 번씩은 다른 관속과 읍촌

인민의 활 쏠 줄 아는 자까지 다 불러서 편사를 쏘이었다. 편사 쏘는 날은 구경

오는 남녀가 수가 없었는데 그중에는 제주나 대정땅에서 밥 싸가지고 오는 구경

꾼도 적지 않았다. 정의원님의 활재주가 귀신 같다고 소문이 한 입 두 입 건너

널리 퍼진 까닭에 편사보다 정의원님 활재주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무비가 대강 정돈되며부터 봉학이는 치민에 성심을 다하였다. 뇌물이 관문에 들

어오지 못하게 하고 아전이 민간에 작폐하지 못하게 하고 또 토호가 발호하지

못하게 하니 살판 만난 백성들은 곧 원님을 신명같이 여기게 되었다. 우매한

백성들이 원님에게 한껏 정성을 피우느라고 각처 본향당에서 우리 안전 수명 장

수하라고 또는 우리 안전 오래 갈리지 말라고 치성드리는 남녀가 많았다. 그 해

겨울 전라도 각골 수령 포폄에 정의현감은 “삼월지치가 일도지송이라.”고 상

등이 되었다. 석 달 동안 다스린 정사가 온 섬에서 다 기리는 바라고 책방이 포

폄 뜻을 새겨서 들려줄 때 봉학이는 선치수령 노릇하기가 어려울 것 없다고 생

각하였다. 이듬해 봄에 대정현감이 상제 되어 가고 대가 나기 전에 공관이 되어

서 봉학이가 제주목사의 명으로 겸관을 보게 되었는데, 정의서 여러 달 두고 하

던 정사를 대정서는 일시에 시행하였으나 백성은 따르고 관속과 토호는 거스르

지 못하였다. 두어 달 동안 봉학이가 정의서 대정을 왕래하며 겸관을 보는 중에

농시백성을 인록 잡지 못하도록 엄령을 내리었었는데, 정의 와서 있는 사이에

대정성내에 사는 고부윤의 현손 되는 고씨의 집에서 인록을 잡아간 일이 있어서

봉학이가 뒤에 알고 고씨 대신으로 고씨의 집 하인을 잡아다가 징치하였더니 고

씨의 떨거지는 고사하고 고씨네와 한동가리지는 양씨, 부씨, 문씨네까지 속으로

좋아 아니하였다. 인록을 엄금한 탓으로 봉학이가 이해 여름포폄에는 중을 맞았

다. “소민수개회혜나 거실간혹유언이라.” 고 큰성바지의 뒷말 있단 것이 포폄

에 폄이 되어서 상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봉학이가 제주 갔을때 인록을 금할

것인가 아닌가 목사에게 품하여 본즉 “금하긴 금하더라도 보아가며 금하오.”

목사의 대답이 분명치 못하였다. “보아가며 금하라시니 무엇을 보란 말씀입니

까?” “오래된 관습이니 차차로 금하도록 하란 말이오.” “오래된 관습인 까

닭에 더욱이 일시에 엄금해야 할 것이 아니오니까.” “예전에 성주니 왕자니

하고 제주 주인 노릇하던 버릇이 뿌리가 깊어서 그렇게 쉽사리 금해지지 않소.

” “하관에게 죄책을 더하지 않으시면 그런 관습은 근절이 되도록 금해 보겠습

니다.” “근절 안될 걸 근절시키려다가는 말썽만 자주 날 게니 알아 하오.” 목

사가 굳세게 거들어 주지 않는 것을 보고 봉학이는 토호를 어루만져서 무사히

지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뒤로는 봉학이가 고씨, 문씨의 붙이들을 가끔 존문하

고 토호질을 말도록 사의로 말하여 인록 같은 못된 관습이 전같이 심하지 않았

다. 당하수령은 육 년 만에 갈리는 것이 법이나 윤원형이 권세를 잡은 뒤로 법

이 해이하여져서 여간 무세한 수령이 아니면 좋지 못한 골에서 육 년을 채우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봉학이가 정의에 육 년토록 있고 싶지 않아서 이감

사께 상서할 때 매양 이 뜻을 비치었다. 그 동안 인편에 상서한 것도 여러 순이

지만 골 하인을 보낸 것이 세 번인데 나중 하인 한번은 이감사가 경기감사로 일

년 과만을 채우고 한성부우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벼슬이 옮은 뒤라 봉학

이도 내직으로 올라가서 전과 같이 뫼시고 지내기를 청하였더니 그 하인 회편에

차차 주선하여 보자는 반허락 회답이 있었다. 봉학이가 골 하인을 보낼 때마다

교하 외숙에게와 양주 꺽정이에게도 약간 토산을 부치는데 외숙에게는 외조모

제사에 쓸 제수를 미리 닦아 부치고 꺽정이에게는 칠장사 선생에게 보낼 물종을

같이 봉해 부치었었다. 봉학이는 꺽정이의 연신으로 팔십여 세 노인 대사가 아

직 강녕한 것도 알았거니와 유복이가 평안도서 와서 부모의 원수 갚고 송도땅에

서 사는 것도 알았고, 천왕동이가 황해도에 가서 장가 들고 처가살이하는 것도

알았다. 천왕동이는 꺽정이의 처남으로 알 뿐이라 보고 싶은 생각까지 날 것은

없지마는, 유복이는 아이 적에 형이니 아우니 하던 동무라 이따금 보고 싶은 마

음이 간절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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